부동산 버블과 주거 불안정
주거 불안정
앞서 살펴본 삶의 위기들이 "수입"과 관련된 것이었다면 주거 불안정은 "지출"에 대한 부분입니다. 특히 주거는 사회 활동을 위해 필요한 에너지를 재생(리프레쉬)하는 곳으로, 양질의 삶을 추구하는데 절대적인 영향력을 미치고 있습니다. 캐나다 워털루 대학 연구팀이 장기간 연구한 바에 따르면, 직장인의 생활 만족도에 가장 큰 영향을 주는 것은 출퇴근 시간이라고 합니다. 집에서 먼 직장에 다닐수록, 업무 집중도가 떨어지고 퇴근 후 건강을 챙기거나 휴식을 취하는 등의 여가 생활을 거의 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하지요. 심지어 출퇴근 시간이 길면 배우자나 연인과도 헤어질 확률이 높다고도 합니다. (참고기사1 : 출퇴근 오래 걸리는 사람일수록 불행하다(바로가기 링크), 참고기사2 : 출근길 행복하셨나요?(바로가기 링크))
아울러 자녀를 키우는 부모들은 주거 지역의 치안 및 교육 분위기도 매우 중요하게 여깁니다. 아무래도 중상류층이 모여사는 지역은 강도나 폭행 같은 생활형 범죄가 적어 안심하고 자녀를 키울 수 있습니다. 동네 부모들도 자녀 교육에 관심이 많아 교육 시설이 잘 갖추어져 있고 양질의 학업 정보들을 구할 수 있지요. 여기에 중상류층 부모 및 상위권 성적의 학생들 사이에 인적 네트워크가 형성되므로 장래 사회생활에도 큰 도움을 얻을 수도 있습니다.
문제는 이런 양질의 주거지가 한정되어 있어 가격이 너무 비싸다는 것입니다. 평균적인 월급 벌이로는 전세조차 구할 수 없을 정도로 부동산 가격이 폭등하였습니다.(요즘은 전세 가격이나 매매 가격이나 큰 차이도 없지요.)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은행 대출을 통해 주거 자금을 마련하지만, 비용이 워낙 비싼 탓에 평생을 벌어야 겨우 빚과 이자를 상환할 정도입니다.
주거 불안정에 의한 지속가능한 삶의 위기는 여기에서 출발합니다. 월급의 많은 부분이 주거비 및 대출 이자로 지출되므로, 미래를 대비할 여유자금을 모으기가 어렵고 일상적인 소비의 씀씀이도 줄이게 됩니다. 그만큼 시장에 유통되는 돈은 줄어들고 사회 전반적인 소비 저하와 경제 불황으로 이어지지요. 반면 그들이 지불하는 주거 관련 비용은 고스란히 토건 기업 및 은행의 이익으로 돌아갑니다. 가정은 점점 가난해지고 일부 기업과 은행은 점점 부자가 되었지만, 막상 기업들은 그 돈을 어디에 쓸데가 없습니다. 가정의 소비력이 없으니 뭘 만들어도 잘 팔리지 않아, 섣불리 새 사업에 투자하기가 어려운 것이지요.
여기에 사회적 이슈나 개인의 문제로 은행에 지불해야 할 원금과 이자를 제대로 갚을 수 없는 상황이 되면 문제는 더 심각해집니다. 가볍게는 부동산을 처분하여 상대적으로 저품질의 주거지로 옮기는 것으로 그치겠지만, 최악의 경우 자산을 팔아도 빚을 다 갚지 못한 채 신용불량자가 되고 사채를 끌어 쓰며 사회 가장 밑바닥 인생으로 전락해버리는 것입니다. 그 와중에 가족은 온전할 리가 없겠지요. 잦은 부부싸움과 이혼, 부모의 가출 등은 한창 자아 정체성을 확립하는 시기의 자녀들에게 치유하기 힘든 정신적 상처를 남길 것이고, 그들은 잠재적인 사회 불안요소가 될 것입니다. 우리나라가 1998년 IMF를 겪으면서 많은 이혼가정이 생겨났던 것 처럼요.
또한 주거 불안정 위기가 사회적 이슈로 촉발되었을 때에는, 모든 것이 도미노와 같은 연쇄 반응으로 이어져서 끝을 알 수 없는 바닥으로 치달을 것입니다. 자산을 처분하고 싶어도 구매 여력을 가진 사람이 없으니, 거대한 빚만 남긴 채 집은 은행에 넘어가고 길거리에 나앉게 되는 것이지요. 이 즈음되면 많은 사람들이 삶의 희망과 의지를 상실할 것입니다. "제로"는커녕 "마이너스"의 수준으로 삶이 내동댕이 쳐진 것이니까요. 편안한 잠자리, 좋은 음식, 자녀 교육 등 위기 이전에 경험했던 일상은 꿈도 못 꿀 정도로 삶이 망가지고 미래를 포기하게 됩니다. 요즈음 간간이 들려오는 "생계 비관형 일가족 자살"과 같은 뉴스가 매일 수차례씩 접하는 날이 올지도 모르는 것이지요.
어떻게 이런 지경까지 이르게 된 것일까요? 부동산 관련 문제는 너무 거대하고 복잡해서 한 편의 글에서 다루기가 어렵습니다.(사람들마다 생각과 의견이 다 제각각이기도 하고요.) 주요 키워드만 간단히 나열해봐도 토건 만능주의와 정경 유착의 문제, 고도 경제성장기에 만들어진 부동산 불패 신화와 투기세력의 개입, 미국 자본세력이 주도해 온 양적 완화 정책, 정치적 이권이 개입된 국내 저금리 강달러 경제 정책 등 많은 것들이 얽혀있습니다. 여기에 우리나라의 여러 경제 지표가 부동산 기준가에 의해 결정되고 있어서, 일순간에 무너져버리기 쉬운 취약한 구조인 것도 한 몫하고 있습니다.
사회 구조적 관점의 논의를 떠나, 주목해야 할 것은 주거 불안정이 개인의 삶에 지속적인 위협요소가 되고 있으며 문제가 터질 경우 회생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심각한 위기를 초래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그 어떤 문제보다도 가장 직접적이고 빠르게 사회를 붕괴시킬 파괴력을 보여줄 것입니다. 게다가 지금은 이 문제의 명쾌한 해결책도 없어 보입니다. 언젠가 "한 번은 맞아야 할 매"인 것이지요.
본 글은 연재 형식으로 2015년 10월부터 2016년 1월까지 작성되었습니다. 여기 있는 내용들을 더 다듬고 짜임새있게 구성하여, 2017년 5월『이기심의 종말』로 출간되었습니다. 내용을 보시고 흥미가 동하신 분들은 아래 소개를 참조하시여 책을 구매해 보시면 더욱 알차고 최신화된 글을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
신자유주의적 시장자본시스템에 의해 파편화-양극화된 사회,
한계비용 제로사회와 4차 산업혁명이 가져다줄 희망과 위기,
힘없는 개인은 혼돈의 미래를 헤쳐나가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가?
첨단 기술 사회 속 우리는 어디에 서있고 어디로 나아가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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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 목차 정보 >
1장. 우리 앞의 현실
1. 자본주의와 개인소유 사상
자본주의 / 블라인드 스팟 / 개인소유 사상
2. 개인소유 사상의 사회문화
생존과 투쟁, 공동체의 역사 / 한국의 공동체 해체 / 혼자가 될 때까지 / 경영과 노동 / 기업 조직 문화 / 교육 / 자녀 양육 / 국가 정치/ 경제 제도 / 학문과 문화 / 성 역할 갈등 / 이성 교제 / 행복
3. 지속가능한 삶의 위기 - 개인편
경제 능력의 상실 / 직업의 귀천 / 실직과 사회 안전망 / 결혼, 출산, 경력단절 / 산업 구조의 변화 / 주거 불안정 / 자녀교육 / 질병, 사고, 장애 / 다시 일어설 기회가 없는 사회
4. 지속가능한 삶의 위기 - 사회편
빈부 격차, 소득 격차 / 청년 빈곤 / 저출산, 노령화 / 산업 성장의 정체 / 미래 인재의 부재 - 교육과 기업문화 / 필연적 불황과 전쟁
2장. 선택의 시간
5. 순환, 지속가능한 삶의 가능성
개인의 위기, 사회의 위기 / 순환의 부재 / 기업 내 개인의 순환 / 기업 스스로의 순환 / 기업 밖에서의 개인의 순환 / 자본의 순환 / 직업 분배의 모순 / 직업의 가치, 개인의 가치, 사회적 효용 / 순환이 있는 사회
6. 공유경제와 한계비용 제로사회
공유경제의 역사 / 공유지의 희극, 인터넷 / 인터넷 + 자본주의 = 한계비용 제로사회 / 에너지 인터넷, 운송 인터넷 / 공유경제의 현재와 미래
7. 제4차 산업혁명과 위기의 미래
제4차 산업혁명 / 이제 기업과 노동자는 어떻게 돈을 벌지? / 현대판 러다이트 운동 / 창의적 직업으로의 전환, 가능할까?
3장. 미래를 여는 열쇠
8. 공유경제 시대의 사상들
협력적 공유주의자의 시대 / 망중립성, 오픈소스 운동가들 / 공유가 소유를 앞서 나가는 시대 / 공유가 가진 힘의 원천 / 공유경제 시대의 동반자들
9. 지속가능한 삶을 향한 의식적 연대
대안적 삶을 추구하는 이들의 연대 협력의 필요성 / 기술의 진보, 연대의 가능성 / 중앙 집중화된 권력에서 분산된 권력으로 / 연대 협력의 장애물들
10. 개인소유 사상의 그림자
미래를 결정하는 것 / 자기포장, 위선, 성장 절대주의 / 배려와 공감이 없는 자기중심 사고 / 불신 / 물질만능주의와 소유욕
11. 개인에서 공동체로
내려놓기 / 보다 영속적인 가치 / 관심, 인정, 배려 / 공동체 의식의 확장
4장. 우리가 꿈꾸는 세상
14. 우리가 꿈꾸는 세상
소유자, 생산자, 소비자가 하나 된 공유기업 / 생의 지속가능성이 보장되는 사회 안전망 / 최소 지원(복지)의 기준 : 주거, 교육, 질병 / 개인의 성장과 사회적 기여에 특화된 직업 / 변화된 교육이 바꾸어갈 세상 / 제약적 가족 관계에서의 해방 / 여성에 대한 관념의 변화 / 여성, 남성이 아니라 개인으로 대접받는 사회 / 지속가능한 삶이 있는 사회
15. 우리를 넘어 세계를 향해
페이비언 사회주의, 칼 폴라니, 제3의 길 / 서양과 동양의 문화적 차이 / 언어의 힘, 한민족의 정신문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