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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유표 Dec 24. 2015

10. 지속가능한 삶의 위기 (4)

에듀푸어, 성공 이데올로기의 늪

자녀 교육


"에듀푸어"라는 말을 들어본 적 있으신지요? 자녀 교육에 생활비 대부분을 투자하여, 저축이 거의 없고 빚만 안고 있는 부모들을 이르는 말입니다. 주로 서울 강남 및 목동 등 주요 학군에 거주하고 있으며, 아버지, 어머니의 월급이 적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한 달에 수백만 원가량의 사교육비를 쓰느라, 실생활에 쓸 돈이 부족하여 빈곤하게 지낸다고 합니다. 주요 학군에 거주한다는 것만으로도 상당한 경제적 부담이 되는데 말이지요. 또한 노후 준비를 위한 연금 등에  투자할 여력이 없어, 자녀의 명문대학 입학 및 안정적인 대기업 취업 등의 목표가 좌절되면, 사실상 미래의 대책이 없는 벼랑 끝의 삶을 살고 있습니다.


부모들은 왜 이처럼 자녀 교육에 모든 것을 올인하며 사는 것일까요? 크게 세 가지 관점에서 살펴볼 수가 있을 것입니다. 먼저 교육 환경이 좋은 곳에 거주하고, 교육 서비스를 받는 것만으로도 많은 장점이 있기 때문입니다. 바로 앞 9부의 주제였던 "주거 불안정"에서 기술한 바와 같이, 교육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이 모여있는 곳에 양질의 교육 시설들이 입주하고 부모들끼리 고급 정보들을 주고받으면서 대학 입시 등에 유리한 고지를 선점할 수 있는 것이지요.


더불어 교육 환경에 따라 학생들이 학업에 집중할 수 있는 여건이 크게 달라지기도 합니다. 실제 일선의 고등학교 선생님 이야기로, 같은 지역구의 학교임에도 부모들의 경제력에 따라 학업 분위기가 크게 달라서 학생들의 학습에 좋고 나쁜 영향을 많이 끼친다고 합니다.


경제적으로 여유 있는 지역에선 외벌이 가정이 많아서 부모 중 한 명이 아이들을 잘 관리하여 등하교시키는 반면, 맞벌이 가정이 많거나 자녀 교육에 관심이 부족한 지역은 등하교 관리부터 전쟁이라는 것입니다. 1, 2교시 수업을 빼먹는 것은 다반사고 수업시간에는 자리가 여기저기 비어있으니 면학 분위기가 조성되기 어렵다는 것이지요. 선생님들은 학생들이 하교 후에 학교 밖에서 치는 사고를 해결하기 위해 경찰서에도 자주 불려 다니면서, 상대적으로 수업에 전념하기가 어렵다고도 합니다.


개인소유 사상이 득세한 이후 교육 환경도 부익부 빈익빈이 가속화되면서 영어 유치원, 혁신 초등학교, 국제 중학교, 특목고 및 자율형 사립고로 이어지는 프리미엄 교육 코스가 자리 잡은 지 오래입니다. 나름 경제력이 있는 사람들끼리 자녀 교육을 위한 양질의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그들만의 리그를 만든 것이지요.


사교육 업체 및 일부 사립학원 재단들은 학부모들이 원하는 지점을 재빨리 눈치챘고, 관련 법안들을 이용하여 프리미엄 교육 시설들을 설립하고 학생들을 모았습니다. 이로 인해 자사고 등으로 상위권 학생들이 대거 몰리게 되었고, 상대적으로 학업 성적이 좋지 않은 - 이미 공부를 포기해버리기까지 한 학생들이 일반형 고등학교에 남아 더 나쁜 학습 환경을 조성하고 있습니다. 부모들은 여기에 뒤처지지 않으려 더 비싸고 좋은 학원을 보내고 고액 과외를 들어야 하니 경제적 부담은 더욱 늘어나 버렸지요.


두 번째로 자녀 교육은 인생의 긴 관점에서 보았을 때 부모의 노후 대비 보험이자, 사회적 가치를 증명하는 척도이기 때문입니다. 현대에 와서 자녀가 부모를 봉양한다는 의미는 많이 희석되었지만, 자녀들이 좋은 직장을 다니고 경제력이 안정되어 있으면 부모님들의 노후도 보장받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렇다 보니 자녀가 공부를 잘하고 좋은 대학을 가는 것은, 현실적으로 자신이 좋은 직장을 얻어 경제력을 유지하는 것의 미래형 버전인 것입니다. 도저히 포기할 수 없는 사회 경쟁의 일환이니 더 목 매일 수밖에 없는 것이지요.


또한 개인소유 사상이 자녀 양육에 끼친 영향을 적은 글(5부 바로가기 링크)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자녀의 교육 성과와 성공은 사회적 관점에서 부모가 올바른 역할을 잘 수행하고 있는가의 기준이 됩니다. 자녀가 명문대를 나오고, 이름만 대면 모두가 알고 부러워하는 직업을 가지고 있으면 부모의 어깨가 으쓱하게 올라가는 것은 당연지사인 것입니다. 사람들은 그렇게 자녀를 잘 키운 부모들의 수준을 높이 평가하며, 어떻게든 그 노하우를 배워보려 노력합니다. 일부 학부모들이 자녀를 명문대에 합격시킨 경험을 바탕으로 입시 컨설턴트의 일을 하는 것도 그 사례의 하나인 것이지요.


다만 안타까운 것은 부모들이 혼신을 다해 자녀 교육에 투자한 것만큼 자녀들에게 바라는 기대가 너무 높다는 것입니다. 바라던 대로 자녀가 좋은 대학을 들어가면 좋겠지만, 현실은 철저한 상대주의적 경쟁 원리로 돌아가기 때문에 누군가는 (또 대부분이) 실패할 수밖에 없는 상황인 것입니다. 기대가 높은 만큼 실망이 크듯이, 학업에 많은 투자를 한 부모들일수록 자녀가 좋지 않은 성과를 보였을 때 큰 정신적 충격을 받습니다. 그 스트레스는 다시 가정과 자녀에게 고스란히 되돌아가지요.


아이들이 따뜻하고 안정적인 느낌의 가족 경험을 하지 못하고, 성과에만 목마른 부모에게 영향을 받게 되면 대학 이후 사회생활에서도 다른 사람들의 감정을 잘 느끼지 못하거나 과도하게 타인에게 집착하는 등의 공감결핍, 애정결핍 증상을 보이기도 합니다. 이는 다른 사람과의 대인관계에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치고, 불의의 사건을 겪으면서 자신의 삶도 망가뜨리는 길로 접어들게 원인이 되기도 하지요.


실제로 대치동과 압구정동의 학생들 분위기 차이를 살펴보면 여실히 상황을 알 수 있습니다. 예전에 회사 업무차 두 지역의 학생들의 학습 전반적인 생활을 조사할 일이 있었는데, 대치동 아이들은 상당히 학업 중심으로 생활하고 그 외의 주제에 대해 관심이 적은 반면, 압구정동 지역의 아이들은 대치동 아이들에 비해 더 자유롭고 밝은 분위기를 띄고 있었습니다.


심도 있는 인터뷰를 진행해 본 바, 대치동 지역의 부모들은 대개 자수성가를 한 사람들로 전문직 출신인 경우가 많았고, 지금은 경제력이 있지만 자녀세대까지 먹여 살릴 만한 수준은 되지 못하였습니다. 그만큼 학부모의 자녀 성적에 대한 압박감이 더 심한 것이지요. 이에 비해 압구정동은 전통적으로 재력이 있는 조부모 세대가 함께하고 있는 경우가 많아서, 굳이 좋은 성적을 내지 않더라도 충분히 자녀의 경제를 책임져줄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아이들이 공부에만 집중하지 않고 연예인이나 스포츠 같은 분야에 관심을 갖는 것을 용인해주는 분위기인 것이었지요.


마지막으로 자녀 교육 투자의 길에 들어선 이상, 그 시류에서 헤어 나올 수가 없다는 점입니다. 주변 사람들이 모두 교육과 관련된 이야기에 몰입되어 있고, 다른 사람들이 하는 것을 따라 하지 않으면 뒤쳐진다는 생각에 사로잡히는 것이지요. 게다가 지금까지 투자한 것이 너무 아깝습니다. 좋은 고등학교에 오기까지 많은 돈을 투자하였는데, 갑자기 학군을 옮겨 상대적으로 여유롭지만 교육 환경이 좋지 않은 곳으로 갈 수가 없는 것이지요. 이른바 손절매를 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마치 옆을 보지 못하게 눈을 가려놓은 경주마가 출발 신호를 듣고 무작정 앞으로 달려가는 것처럼, 주변 사람들이 어떠한지 돌아볼 여유 없이 그저 자녀 교육에만 집중합니다. 이미 트랙에 올라온 상태에서 내려오는 순간 겪게 될 고통이 두려운 것이지요. 조금만 더 참으면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을 테니, 지금의 힘든 상황을 견디어보자고 스스로 다짐합니다. 그렇기에 주거 불안정의 위기가 닥쳤을 때 자녀 교육에 대한 좌절과 충격은 더욱 클 것입니다.






본 글은 연재 형식으로 2015년 10월부터 2016년 1월까지 작성되었습니다. 여기 있는 내용들을 더 다듬고 짜임새있게 구성하여, 2017년 5월『이기심의 종말』로 출간되었습니다. 내용을 보시고 흥미가 동하신 분들은 아래 소개를 참조하시여 책을 구매해 보시면 더욱 알차고 최신화된 글을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



신자유주의적 시장자본시스템에 의해 파편화-양극화된 사회,

한계비용 제로사회와 4차 산업혁명이 가져다줄 희망과 위기,

힘없는 개인은 혼돈의 미래를 헤쳐나가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가?

첨단 기술 사회 속 우리는 어디에 서있고 어디로 나아가야 하는가?


사회, 경제, 정치, 문화, 교육, 역사, 미래기술 등 다양한 영역의 현상을 조망하고 원인을 분석하여, 순환의 가치관과 이타적 본성의 공동체의 탄생을 주문하는 『이기심의 종말』(부제: 당신은 어떤 내일을 꿈꾸십니까)이 출간되었습니다.


미래가 어찌 흘러가게 될지 궁금한 분들, 두루 넓은 영역의 시대상과 기본적인 원리를 살피고픈 분들,

통합의 관점에서 사회 문제를 바라보고자 하는 분들, 원칙과 상식이 있는 사회를 만들기를 원하시는 분들,모두에게 자신있게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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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 목차 정보 >

1장. 우리 앞의 현실

1. 자본주의와 개인소유 사상
자본주의 / 블라인드 스팟 / 개인소유 사상
2. 개인소유 사상의 사회문화
생존과 투쟁, 공동체의 역사 / 한국의 공동체 해체 / 혼자가 될 때까지 / 경영과 노동 / 기업 조직 문화 / 교육 / 자녀 양육 / 국가 정치/ 경제 제도 / 학문과 문화 / 성 역할 갈등 / 이성 교제 / 행복
3. 지속가능한 삶의 위기 - 개인편
경제 능력의 상실 / 직업의 귀천 / 실직과 사회 안전망 / 결혼, 출산, 경력단절 / 산업 구조의 변화 / 주거 불안정 / 자녀교육 / 질병, 사고, 장애 / 다시 일어설 기회가 없는 사회
4. 지속가능한 삶의 위기 - 사회편
빈부 격차, 소득 격차 / 청년 빈곤 / 저출산, 노령화 / 산업 성장의 정체 / 미래 인재의 부재 - 교육과 기업문화 / 필연적 불황과 전쟁 


2장. 선택의 시간

5. 순환, 지속가능한 삶의 가능성
개인의 위기, 사회의 위기 / 순환의 부재 / 기업 내 개인의 순환 / 기업 스스로의 순환 / 기업 밖에서의 개인의 순환 / 자본의 순환 / 직업 분배의 모순 / 직업의 가치, 개인의 가치, 사회적 효용 / 순환이 있는 사회
6. 공유경제와 한계비용 제로사회
공유경제의 역사 / 공유지의 희극, 인터넷 / 인터넷 + 자본주의 = 한계비용 제로사회 / 에너지 인터넷, 운송 인터넷 / 공유경제의 현재와 미래
7. 제4차 산업혁명과 위기의 미래
제4차 산업혁명 / 이제 기업과 노동자는 어떻게 돈을 벌지? / 현대판 러다이트 운동 / 창의적 직업으로의 전환, 가능할까? 


3장. 미래를 여는 열쇠

8. 공유경제 시대의 사상들
협력적 공유주의자의 시대 / 망중립성, 오픈소스 운동가들 / 공유가 소유를 앞서 나가는 시대 / 공유가 가진 힘의 원천 / 공유경제 시대의 동반자들
9. 지속가능한 삶을 향한 의식적 연대
대안적 삶을 추구하는 이들의 연대 협력의 필요성 / 기술의 진보, 연대의 가능성 / 중앙 집중화된 권력에서 분산된 권력으로 / 연대 협력의 장애물들
10. 개인소유 사상의 그림자
미래를 결정하는 것 / 자기포장, 위선, 성장 절대주의 / 배려와 공감이 없는 자기중심 사고 / 불신 / 물질만능주의와 소유욕
11. 개인에서 공동체로
내려놓기 / 보다 영속적인 가치 / 관심, 인정, 배려 / 공동체 의식의 확장 


4장. 우리가 꿈꾸는 세상

14. 우리가 꿈꾸는 세상
소유자, 생산자, 소비자가 하나 된 공유기업 / 생의 지속가능성이 보장되는 사회 안전망 / 최소 지원(복지)의 기준 : 주거, 교육, 질병 / 개인의 성장과 사회적 기여에 특화된 직업 / 변화된 교육이 바꾸어갈 세상 / 제약적 가족 관계에서의 해방 / 여성에 대한 관념의 변화 / 여성, 남성이 아니라 개인으로 대접받는 사회 / 지속가능한 삶이 있는 사회
15. 우리를 넘어 세계를 향해
  페이비언 사회주의, 칼 폴라니, 제3의 길 / 서양과 동양의 문화적 차이 / 언어의 힘, 한민족의 정신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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