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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기득권의 정통성 문제

by 정유표
감추고 싶은 한국 근대사


인류 역사 이래 모든 사회의 기득권들은 국가 정책, 법률, 제도, 여론 등을 이용하여 그들의 자본과 권력 우위를 지키고자 하였습니다. 이는 한국 사회도 마찬가지이며 인간 본성의 관점으로 보면 매우 자연스러운 현상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특히 우리 사회는 그들이 가진 자본 권력의 정통성이 매우 빈약하다는 것을 이해해야 합니다. 그 이유는 앞서 살펴본 교육 주체들의 총체적 혼란을 관통하는 중요한 요인이 되기 때문입니다.


조선 후기 서양 열강 및 일본 제국주의의 침략을 맞는 사이, 조선의 권세 가문들은 외세의 침략을 맞서 싸우지 않고 자신의 이익만을 위해 싸우고 있었습니다. 흥선대원군을 대표하는 세력과 명성황후 민씨를 대표하는 세력은 권력을 뺏고 빼앗기는 어지러운 상황이 계속되었습니다. 민씨 일가의 가족들은 나라의 주요 직책을 모두 차지하여 나라의 공금을 착복하였습니다. 국가의 기강은 극도로 문란해졌고 행정 관리들은 불법적인 세금을 걷어 착복했으며 자본력을 가진 사대부들은 새로운 서양 문물을 사들이며 자신을 치장하기에 여념이 없었습니다.


이 와중에 명성황후 민씨는 외세를 끌어들이면서까지 흥선대원군 일파나 백성들의 개혁 운동을 저지하여 자신의 권력을 공고히 하려 하였습니다. 중국, 러시아, 일본은 각자의 세력을 확장하기 위해 호시탐탐 조선을 침략할 기회를 엿보고 있었는데, 결국 청일 전쟁, 러일 전쟁이 벌어지는 빌미를 제공하여 조선은 일본에 의해 강제 합병을 당하였습니다.


이즈음 조선 주류 층에서는 나라를 빼앗긴 이유에 대해, ‘조선의 문화와 과학이 너무나도 후진적이었기 때문이며, 우리도 일본의 메이지 유신과 같은 운동을 통해 선진국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퍼지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일본이 내세운 신민사상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창씨개명 등과 같은 정책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습니다. 일본 신민이 아닌 자신이 부끄럽기 때문에, 조선인은 일본인과 하나가 되어야 한다는 내용의 시나 소설들도 나타났습니다.


소위 친일파라고 부르는 기득권들은 조선 총독부의 체계적 지원 아래 근대 정치, 사업, 경제, 군사 분야의 지식과 기술들을 배우고, 누구보다도 앞서 조선이 일본과 동화될 수 있는 정책들을 추진하였습니다. 이들의 입장에선 민족 해방을 외치는 독립 열사들이 눈에 가시 같은 존재였고, 일본에 대한 충성심을 보여주기 위해 독립 열사들을 더 잔혹하고 가혹하게 괴롭혔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바람과 달리 미·일 태평양 전쟁이 벌어지고, 히로시마, 나가사키 핵폭탄 투하로 일본은 무조건 항복을 선언하여 일본 제국이 멸망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나라는 자력이 아닌 타력으로 해방이 되어버렸고, 그로 인해 미국의 정치적 전략에 따라 조선 땅에 새로운 국가가 세워졌습니다. 이때 미국이 쉽게 통제할 수 있는 사람들을 대거 중용하였는데, 그 인물들은 바로 일제 치하 때 누구보다도 앞서 민족정신을 훼손시키려 노력했던 친일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일제 치하에서 했었던 일들은 묻어둔 채 미국에 충성하며 한국의 정치, 행정, 사법, 경제, 군사 등의 주요 직책들을 차지하였습니다. 또한 일본 재력가들이 한국을 도망가듯이 쫓겨나며 남겨둔 자본들을 정당한 절차 없이 손에 넣었습니다. 그 자본과 땅으로 공장을 짓고, 회사를 경영하고, 학교를 세우면서 기득권들의 자본과 힘은 나날이 커져갔고, 먹고 살길이 없었던 일반 국민들은 ‘모두가 힘드니 다 같이 희생하자’라는 구호 아래 허리를 졸라매고 국가 발전에 이바지하였습니다.


현재 대부분의 한국 기득권들은 위에 적은 것과 같이 떳떳하지 못한 과거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들이 가진 정치, 행정, 사법, 경제, 교육 모든 분야의 핵심 기반이 정당하지 못하게 얻은 것이기에 근대 이후 역사에 대한 왜곡과 날조에 극렬히 애를 쓰고 있습니다. 현재 국사에서는 한국 역사 중 근·현대사에 대한 연구는 거의 이루어지지 않고 있으며, 심지어 이미 역사 교과서에 적힌 내용마저도 다른 관점으로 바꾸려는 시도도 하였습니다. ‘일본 식민지 시대는 국가 근대화에 이바지한 시기였다.’ 라던지, ‘과거사는 모두 잊고 미래를 이야기하자.’는 등의 말로 사람들의 눈을 속이고 감추려 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그들은 일제 관료들이 썼던 방법을 사용하여 국민들을 지역, 이념, 세대로 분열시켰습니다. 자신이 가진 자본을 활용하여 일부러 특정 지역에만 노골적으로 자본을 투자하여 지역 간 다툼이 일어나게 하였습니다. 경제 성장의 혜택을 받은 지역은 그렇지 못한 지역의 사람들이 자신들을 시기하고 질투한다고 생각하게끔 만들었습니다. 반대로 혜택을 받지 못한 지역은 혜택을 받은 지역의 사람들을 미워하도록 만들었습니다. 공정한 문제에 대해 의문을 제기해도 그것은 감정적 도발이라는 이름으로 무시하였고, 그런 문제를 드러내는 사람을 더욱 증오하게 하였습니다.


여기에 민주주의와 사회주의의 이념을 씌워 자신들의 정통성을 공격하는 자들을 빨갱이라는 이름으로 매도하였습니다. 6·25를 직접 경험하여 공포 트라우마가 있는 노년 세대를 이용하여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에게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빨갱이라는 딱지를 씌워 그들을 미워하도록 하였습니다.


새로운 교육 환경으로 의식이 깨어난 젊은 세대에게는 자신의 앞가림에만 전전하여 사회에 의문을 갖지 못하도록 옥죄었습니다. 그리고 노년에겐 복지를 청년에겐 희생을 선물하여 서로를 미워하게 하였습니다. 물론 노년에게 준다는 복지는 그럴싸한 거짓 공약이었고, 선거가 끝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입을 닦았습니다.


국민들이 모두 분열하여 서로 헐뜯고 싸우게 만들었고, 그 와중에 자신들의 편을 드는 다수의 선거 표를 모아 자신의 권력을 탄탄히 하였습니다. 국민들은 진정 이 상황을 만드는 사람이 누구인지 모른 채 조종당하며 살아온 것이었습니다.


* 엎질러진 물을 주워 담는 방법

그들은 아마 어쩌면 자신들이 가진 권력과 자본은 정당하게 얻은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단지 여기서 말하는 “정당함”의 정의가 보통의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과 다를 뿐입니다. 혼란스러운 사회에서 능력 있는 사람이 기회를 잡고 힘을 얻는다는 약육강식의 관점으로 그들의 정당함이 정당화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다만 자신이 빼앗긴 것을 되찾으려 할 때는 보통의 사람들이 생각하는 정당성을 외치는 행태가 이율배반적일 뿐입니다.)

언어를 도단하여 상대방과 대중을 속이고, 자기와 선대의 역사를 합리화하며, 그것이 심지어 진실이었다고 주장하는 행태를 보면, ‘어떻게 저렇게 낯짝이 두꺼울까?’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제가 생각하는 관점에선 그들은 정말 자신이 정의롭다고 생각할 수도 있으며 이는 심리학에서 말하는 몇 가지 기제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기억의 저장과 인출의 메커니즘의 측면입니다. 사람의 머리는 사진을 찍듯이 있는 그대로의 정보를 저장하지 않습니다. 정보를 여러 갈래로 나눈 뒤 이를 논리적 관계에 따라 분할하여 여러 저장소에 저장하게 되는데, 이때 단순한 정보뿐만 아니라 그때의 감정과 냄새, 주변의 온도 같은 정보가 같이 섞이게 됩니다.

이렇게 기억된 정보를 꺼낼 때에도 그때의 주변 정보들이 같이 떠올려지게 되는데, 이때 자신의 관점과 시각에 따라서 논리적 관계를 다시 조합하여 풀어내게 됩니다. 분명 눈으로 보았던 물건이었지만 보지 않았었다고 생각하고, 반대로 듣지 않았던 소리도 마치 들었던 것처럼 기억을 하는 것입니다. 이 경우 거짓말탐지기를 동원하더라도 기억이 사실이었는지 거짓이었는지 확인할 수가 없습니다. 그 사람의 뇌는 자기가 경험한 기억이 진실이라 생각하고, 그렇게 머릿속에 저장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둘째는 이미 벌어진 사건에 대한 자기 합리화입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생각하는 신념에 맞지 않는 행동을 하였을 때, 대개 두 가지 선택을 하게 됩니다. 하나는 자기의 잘못을 바로 잡는 행동을 다시 하거나, 나머지는 자신의 생각을 바꾸는 것입니다.

그런데 보통 이미 벌어진 일을 다시 수습하는 것은 매우 어렵습니다. 자신의 잘못을 드러내야 하는 어려움도 있고, 시간이 지난 일이라면 아예 불가능하기도 합니다. 그렇게 되면 사람은 심리적인 자신을 지키기 위해 생각을 바꾸게 됩니다. ‘그때의 일은 다른 사람의 탓이었어.’라며 자신이 아닌 외부의 원인으로 돌리거나, ‘그렇게 하는 것이 맞는 방식이야.’라고 굳게 믿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형성되기 시작한 관념은 이후 유사한 사건이 벌어졌을 때에도 더욱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하는 가치 체계가 형성되는 단초가 됩니다.

이는 허언증이라는 정신과적 질병과도 유사합니다. 자신이 말한 거짓말을 진실이라고 믿게 되는 습관입니다. 보통의 사람들은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하니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겠느냐.’라고 생각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자신이 말한 거짓말을 진짜라고 믿으며, 생활 전반에 행동이 그 거짓말을 바탕으로 구성됩니다. 예를 들어 ‘나는 사법 고시를 패스해서 이제 곧 사법 연수원에 들어가 판·검사가 될 거야.’라고 거짓말을 진짜로 믿고, 주변 사람들에게 사시를 합격한 양 행동하는 것입니다. 거짓말은 거짓말을 낳게 되는데 그 조차도 진실이라고 믿기 때문에 그 사람의 가치 체계가 그에 맞추어 형성되는 것입니다.



본 글은 『지속가능한 삶을 향해서』를 집필하기 전, 교육 분야를 중심으로 사회적 제언을 써본 내용의 글입니다. 시기상으로 1년 전 즈음에 작성된 글이므로 감안하시고 보아주시길 부탁드립니다.

매일 혹은 이틀에 한 편씩 기 작성된 글을 게시할 예정이며, 약 30여 편 분량이 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저의 글을 처음 접하시는 분들은, 본 글보다 더 포괄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 『지속가능한 삶을 향해서』(바로가기 링크)의 글도 구독해 보시기를 추천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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