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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국가 환란과 민족정신의 쇠퇴

by 정유표
가치관 혼란의 시대


권력을 가진 자와 언론·지식인이 진실을 왜곡하고 감추고 있을 때, 한국 대중은 안타깝게도 그것을 간파할 수 있는 의식 수준이 되지 못하였습니다. 한국은 일제 식민지 해방 후 6·25 전쟁을 거쳐 미·소 냉전시대가 종식되기까지 눈부신 경제 성장을 달성했지만, 그만큼의 사회적 부작용도 얻게 되었습니다.


경제적으로 일본에게 극심한 수탈을 당했고, 해방이 되자마자 6·25 전쟁이라는 최악의 비극을 맞이하였습니다. 산업 기반 시설은 다 파괴되고 농경지는 황폐화되었습니다. 보릿고개마다 먹을 것이 없어 굶어 죽는 사람들이 속출하였습니다. 근 반세기에 걸친 국가 환란은 먹고사는 것, 돈을 벌어 성공하는 것이 지상 과제가 되게 하였으며 사람들로 하여금 양적 성장만을 추구하도록 하였습니다. 성공을 하고 돈을 벌기 위해서는 편법과 위선을 써서라도 짓밟고 이기면 된다는 사상이 자리잡기 시작하였습니다.


돈이 있는 자는 무거운 죄를 지어도 용서를 하였고, 돈이 없는 사람은 조그만 잘못을 지어도 사회 정의 실현이라는 이름하에 가혹한 처벌을 받았습니다. 사회적으로 성공했다고 알려진 사람들조차 편법과 위선으로 그 자리에 오르는 경우가 많았고, 사람들은 자연스레 법과 신의를 지키는 자가 바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타인의 부정을 고발하기보다는 자신의 영달을 꾀하는 것이 우선되었고, 어찌 되었든 결과적으로 돈과 권력을 손에 넣으면 부정한 과거가 용서된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문화적으로는 급진적인 서양 문물과 제도 도입으로 혼란을 겪었습니다. 사회 제도가 효과적이기 위해서는 그 사회의 집단 문화와 관습을 바탕으로 마련되어야 합니다. 문화와 관습은 오랜 기간에 걸쳐 좋은 것은 발전되고 그릇된 것은 보완해가며 만들어지는 것이며, 어느 하루아침에 바꿀 수가 없는 것입니다. 관습에 맞지 않는 제도를 들인다는 것은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입는 것과 같으며 사회 전반적으로 예상치 못한 문제들을 일으켰습니다.


한민족은 전통적으로 농업이 주요 산업이었습니다. 농사를 짓기 위해서는 협업이 필수였고 사람 사이의 관계를 중요시하는 문화가 형성되었습니다. 그러나 일제 강점기를 전후하여 도입된 서양식 제도와 문물은 농업 중심 집단주의 문화와는 전혀 다른 속성을 지닌 것이었습니다. 여기에 나라를 빼앗김에 대한 자문화 폄하 의식이 퍼지면서 우리의 고유 제도와 관습을 철저히 외면토록 하였습니다. 우리의 관습과 전혀 맞지 않는 제도들을 아무 비판 없이 도입하였고 그 폐해는 지금까지도 계속되었습니다.


서양 사람들은 유목 중심의 이동이나 약탈이 주요 생계 수단이었고, 그러기에 개인의 독립성을 강조하는 문화와 제도가 발달하였습니다. 중세의 영주와 농노라는 개념도 실은 동양의 양반과 노비와는 전혀 다른 개념의 계약 관계였습니다. 영주가 지나친 수탈을 하면 농노들이 봉기를 일으켜 영주를 살해하고, 옆 마을의 다른 영주를 앉혀서 새로운 계약을 맺는 일이 정당하게 벌어졌습니다. 리더가 권력을 얻은 만큼 책임을 지지 않으면 사회 공동체가 무너지고 자신의 목숨이 위태로워지는 경험을 반복하면서, 사회 지도층들에게 자기들의 권력을 지키기 위한 수단으로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정신이 스며들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한국의 서양식 계약 관계는 제도의 형식만 흉내 낸 것이었고, 제도 이면의 노블레스 오블리주 같은 정신문화는 들여오지 못하였습니다. 한국의 리더들은 자신의 성공이 오로지 스스로의 힘으로만 얻은 것이라 생각하였고, 성공의 바탕이 되는 사회에 대한 책임 같은 것은 안중에 두지 않았습니다. 성공을 하고 재산을 모은 것으로 온갖 명품과 사치품으로 치장하였고 그것이 자신의 명예를 드높이는 것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대중 매체는 자생적으로 자본의 노예가 되어 돈이 되는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방송들을 만들었습니다. 사람들이 동경해 마지않는 재벌의 사치스러운 삶이 인생의 목표이자 행복인 것처럼 포장하였습니다. 온 국민들은 외모, 명품, 자동차, 아파트에 열광하였고 사치스러운 소비문화와 향락 문화를 이끌었습니다.


의도적이든 의도적이지 않든, 한국 기득권들은 자신들의 정당하지 않은 과거에 사람들이 집중하지 않도록 하는 데 성공하였습니다. 대중 매체와 언론은 사람들의 눈을 가리려 하였고, 사람들은 성공에 대한 욕망으로 진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보지 못하였습니다.


선진국에서 시행하는 것이라고 하여 서양 제도를 그대로 답습하는 세태는 여전하며, 사회 성장을 더디게 만드는 원인이 되고 있습니다. 앞서 언급하였던 입학 사정관 제도나 학생 체벌금지 제도의 도입 역시 외국의 교육 제도를 문화적, 사회적 이해 없이 그대로 따라 하려는 데에서 나타난 산물입니다. 공공의 이익을 배제하고 자기의 영달만을 추구하며 과거의 정통성을 감추기에만 급급한 정책 제시자, 한국인들의 정서와 사회 상황을 고려치 않고 서양의 제도를 흉내내기만 하는 제도 기획자들의 촌극이 벌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 리더의 도덕성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

우리 사회는 어느 순간부터 리더의 도덕성에 대해서 관대한 사회가 되었습니다. 선거를 통하여 리더를 뽑거나, 장관 임명 예정자의 국회 청문회를 할 때에 위장 전입, 군역 비리, 탈세 등의 허물이 있더라도 그 사람이 능력이 있다는 이유로 뽑아주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조금 흠이 있더라도 우리 지역구에 국가사업을 유치하고, 땅값·집값을 올려줄 것 같은 사람을 리더로 올려놓는 것이 나에게 이익이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실제 한국의 정치·경제적 상황은 이런 선택이 비합리적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공공의 이익을 따져 사업을 시행하기 보다는 관계 부처에 행사할 수 있는 실력이나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정책이 결정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부정과 편법으로 권력과 자본을 끌어 모을 수 있었던 지난 세기를 생각해보면 대부분 그러한 사람이 선거에 출마하며, 선거권을 가진 국민들의 선택지는 그리 넓지 못한 것입니다.

하지만 그런 리더가 지역구의 국회의원이 된다 해도 우리가 얻을 이익은 매우 표면적이고 지엽적입니다. 장기적으로, 국가적으로 보았을 때는 더 큰 것을 잃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부도덕한 리더가 리더가 되었을 때 잃게 되는 것은 크게 두 가지 측면에서 살펴볼 수 있습니다.

하나는 리더 자체의 부도덕성에 기인한 문제입니다. 리더는 다른 사람과 다른 권한과 혜택이 주어지는데, 그것은 리더가 공공을 대표하고 집단의 주요한 정책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위치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사람의 심성과 행동은 관성의 법칙과 같이 과거에 해온 바에 따라 현재와 미래를 살아갑니다. 과거의 행적에서 부정을 함께한 사람들과의 관계는 더욱 떨쳐내기 어렵거니와 자신의 인생관 또한 갑자기 바뀔 수도 없는 것입니다. 특히 권한과 혜택이 많은 큰 공동체의 리더일수록 그만큼 오랜 시간을 살아온 역사로 인해 관성의 힘은 더욱 크고 바꾸기 힘들게 됩니다.

결국 주요한 정책에서 자기의 이익이나 자신과 이익 관계에 있는 사람의 이익을 우선하는 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게 됩니다. 눈에 드러나는 부분은 공공의 이익이라고 말하지만, 대중들이 알지 못하는 곳에서 부정을 저지르고 뒷주머니를 챙기는 일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부도덕한 리더는 그렇게 살아왔고, 앞으로도 그렇게 살아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는 리더가 사회적 성공 모델이 됨으로써 사회 구성원들에게 끼치는 악영향입니다. 리더는 모든 사람들이 바라보는 자리로써 그 자체만으로 다른 사람의 삶에 지침이 되는 인물입니다. 그 사람이 살아온 인생관과 행동은 ‘성공하기에 따라야 할 가이드’이면서 ‘우리 사회의 질서와 법칙’이 되는 것입니다.

부도덕한 사람이 리더에 오르게 되었을 때 다수의 사람들은 그의 인생을 모델로 삼아 삶을 살아가려 합니다. 그것이 위대하고 멋있어서가 아니라 사회의 질서와 법칙을 받아들이고 적응하려 하기 때문입니다. 또 다른 소수의 사람들은 사회의 부도덕한 질서에 개탄하고 실의에 빠지게 됩니다. 특히 선거 상황이라면 리더에 대한 적개심뿐만 아니라 이 사회에 대한 실망이 더욱 크기 때문입니다.

그 이후 나타나는 사회 전반적인 도덕 경시 현상은 이 사회 모두가 모두를 불신하고 긴장하도록 만듭니다. 아무도 믿을 수 없는 전쟁터와 같은 상황에서 벌어지는 경쟁은 삶을 더 삭막하게 만들고 서로에게 더 큰 상처를 주게 됩니다. 경쟁은 더 치열해지고, 사회는 분열되며, 공동체의 힘은 분산되어 버립니다. 그 최후는 다른 경쟁 사회에게 정복당하거나 스스로 자멸하는 수순을 밟게 되는 것이 역사이래 많은 공동체의 운명이었습니다.



본 글은 『지속가능한 삶을 향해서』를 집필하기 전, 교육 분야를 중심으로 사회적 제언을 써본 내용의 글입니다. 시기상으로 1년 전 즈음에 작성된 글이므로 감안하시고 보아주시길 부탁드립니다.

매일 혹은 이틀에 한 편씩 기 작성된 글을 게시할 예정이며, 약 30여 편 분량이 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저의 글을 처음 접하시는 분들은, 본 글보다 더 포괄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 『지속가능한 삶을 향해서』(바로가기 링크)의 글도 구독해 보시기를 추천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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