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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에필로그

by 정유표
어느 정도 사회의 구조를 볼 수 있게 되었을 때,
역시 세상은 그러한 것이라는 생각을 했던 적도 있었습니다.


동물들의 세계가 약육강식의 법칙에 의해 움직이는 것처럼 인간의 세계도 약육강식의 법칙이 적용되는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것이 사회의 비효율을 없애는 것이고 자연도태의 법칙에 부합되는 것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나 제가 간과하고 있었던 것이 있었습니다. 인간은 공동체를 이루며 협동할수록 더 크고 어려운 일을 해낼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이었습니다. 제 아무리 잘 나봐야 혼자 할 수 있는 일은 한계가 있으며, 더 큰 일을 해내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과의 협력이 필수적이었습니다. 협력의 과정 속에서 누군가는 대통령을 하고 누군가는 청소부를 해야 하지만, 그것이 사람의 위치나 인격을 결정하는 기준이 될 수 없습니다. 어디엔가 꼭 필요로 하는 일이고 그것을 가장 잘 수행할 수 있는 사람이 그것을 맡을 뿐입니다.


똑똑한 사람은 똑똑한 만큼 그렇지 못한 사람들에게 빚이 있고, 잘생긴 사람은 잘생긴 만큼 그렇지 못한 사람들에게 빚이 있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왜냐하면 내가 똑똑하고 잘생겼다고 생각하는 것은 그렇지 못한 사람들이 있기에 그렇게 받아들여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이돌 여가수가 예쁘다 해도 여배우 틈바구니에선 미모의 빛이 바래 지듯이, 우리가 사회로부터 받는 수많은 평가는 결국 다른 사람이 있기에 가능한 것이라 생각하였습니다.


자본의 이름으로 어쩔 수 없이 누군가에게 더 집중되고 분배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 세상 모두가 그 자리에 오르기 위해 노력하였습니다. 그런데 개인의 능력이 아니라 기득 자본의 힘이 들어가는 순간 모든 것이 헝클어져 버렸습니다. 능력이 없는데도 자리에 오른 사람이 생겼고, 능력이 있는데도 자리에 못 오른 사람이 생겼습니다. 전자는 전자대로 분수에 맞지 않는 자리로 인한 스트레스와 두려움을 느꼈고, 후자는 후자대로 사회에 대한 분노와 자신에 대한 좌절을 느꼈습니다.




이 거대하고 오래된 사회 구조가
어느 하루아침에 변화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길어봤자 100년을 채 살지 못하는 인간의 관점에서는 영원해 보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달이 차면 기우는 자연의 이치와 같이 언젠가 이 사회도 변화할 것임은 분명합니다. 그리고 인간 사회는 변화의 에너지가 서서히 채워지다가, 아무도 예측하지 못한 시점에 일순간 뒤집어지는 특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특히 이렇게 변화가 빠른 시대에는 더욱 그러할 것입니다. 그리고 이미 그런 변혁의 징조가 보이고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이라고 구체적으로 말 하기엔 지면도 부족하고 주제도 적절치 않아 쓸 순 없지만, 분명 경제 상황, 정치 문제, 대중 집단 심리는 그 징후를 예견해주고 있습니다.


그런 까닭에 현시대의 청소년들에게 바라는 바는 변화하는 지금을 주인 된 입장에서 살펴보고 행동할 수 있는 인재로 성장하는 것이었습니다. 앞으로 어떻게 이 사회가 변할 것인지는 아무도 예측할 수 없지만, 변화가 일어났을 때 빠르게 캐치하고 그 상황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 자기가 가진 역량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기를 바랐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좀 더 바른 의식을 가지고 있다면 변화된 사회는 제가 지향하는 바람직한 세상이 될 것이라고 기대하였습니다.


한 가지 더 이야기하면 변화의 흐름은 일직선으로 향해 가지는 않을 것이라는 점입니다. 바다의 파도가 밀려왔다가 빠져나가듯이 반복적인 움직임을 보일 것입니다. 그것은 더욱 빨라질 것이지만 분명한 것은 어느 지향점을 향해 점차 변화할 것입니다. 여기에서 작은 변화 하나하나에 일희일비하지 말고 그 안에서 자기중심을 갖고 상황을 대비할 수 있는 역량을 키워야 함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이것 또한 자기주도적 삶, 깨어있는 삶, 융통성 있는 삶을 통해 가능한 것입니다.




사실 이 글을 쓰려고 했던 가장 큰 이유는
청년과 청소년에 대한 안타까움이었습니다.


지난 우리의 역사와 사회 구조로 인해 그들이 역사에서 잃어버린 세대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였기 때문입니다. 자기중심 없이 그저 어른들이 시키는 대로 경쟁적으로만 살아온 세대, 사회에 나가서는 소모품처럼 쓰이다 버림받는 세대, 그리고 그런 현실을 바꿀 수 있는 힘 조차도 없는 세대가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청년들이 빛도 들지 않는 고시원에 틀어박혀 경쟁률 1000:1의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고 있다는 뉴스를 볼 때마다 너무 미안하였습니다. 그나마 조금 일찍 태어났다는 것 하나만으로 그들보다 덜 노력하고 덜 경쟁했으면서 그들이 원하는 것보다 더 많이 가질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부디 저의 경험과 지식으로 쓰인 이 글이 많은 청년들에게 힘과 희망이 되길 기대합니다. 제 글이 정말 좋다고 생각하신다면 많은 사람들에게 추천하고 전달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이메일이든 P2P 이든 상관없습니다. 어떤 방법이든 저의 글을 많은 이들이 보는 것이 제가 가장 바라는 바입니다.


또 제가 쓴 글에 느낀 바나 하시고 싶은 말, 궁금하신 것이 있으시면 개의치 말고 말씀을 주시면 더욱 좋겠습니다. 이 글 하나로 끝을 맺는 것이 아니라 꾸준히 소통하며 살아있는 글이 되길 바랍니다.



본 글은 『지속가능한 삶을 향해서』를 집필하기 전, 교육 분야를 중심으로 사회적 제언을 써본 내용의 글입니다. 시기상으로 1년 전 즈음에 작성된 글이므로 감안하시고 보아주시길 부탁드립니다.

매일 혹은 이틀에 한 편씩 기 작성된 글을 게시할 예정이며, 약 30여 편 분량이 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저의 글을 처음 접하시는 분들은, 본 글보다 더 포괄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 『지속가능한 삶을 향해서』(바로가기 링크)의 글도 구독해 보시기를 추천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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