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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유표 Mar 23. 2016

민주주의는 과연 최선의 정치제도일까?

소크라테스는 민주주의를 비판하여 독배를 마시고 죽음을 당했습니다.

절대 선의 가치, 민주주의


인터넷에 널린 많은 사회적 담론을 접하다 보면, 꽤 많은 경우 "민주주의"를 절대적 가치 우위에 두고 그와 반대되는 사상에 대해서는 무조건적으로 비판하는 류의 글을 많이 접할 수 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대한민국 헌법 1조 1항조차도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고 명시되어 있을 정도이니까요.


민주주의가 지난 그 어떤 방식의 정치체제보다 인권을 중시하여 보편 다수의 행복을 증진시켰음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하지만 정도가 과하면 독이 되는 법이라 하였지요. 지나친 민주주의에 대한 맹종은 우리의 생각을 민주주의의 틀 안에 가두어버려, 사회가 발전하는데 필요한 다양한 목소리가 원천 봉쇄되어 버리는 것 같기도 합니다.


우리나라의 역사적, 국제역학적 특성 상 민주주의가 아닌 사상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는 것이 조심스럽지만, 현재 우리 사회가 직면한 변화의 한계를 인식해보고자 하는 측면에서 잠시 "민주주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어보고자 합니다.


민주주의를 가장 간결하게 정의해보면, "민중이 주권을 가진 정치 제도"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매 4년 혹은 5년마다 선거를 통해 1인 1표의 국가 운영 권력을 대표자에게 위임합니다. 국민들이 마음에 들지 않는 지도자는 차기 선거에서 낙선시킬 수 있거나 합법적 절차에 따라 중도 탄핵을 시킬 수 있는 권력을 가지고 있는 것이지요. 따라서 선출된 대표는 퇴임 후 국정에 대한 책임을 지거나 임기 중 자리에서 쫓겨나지 않기 위해 공정한 국가 운영에 힘쓰게 되며, 이런 과정은 국민에 의한 감시와 타 국가 기관(입법부, 사법부)의 견제로 보완됩니다.


이와 극명하게 대비되는 정치체제는 1인 독재가 이루어지는 전제주의나 형식상의 1당 정당제도를 운영하는 중국식 사회주의를 들 수 있습니다. 대표로 선출된 지도자가 국가를 엉망으로 운영하고 사익을 추구하며 인권을 유린하여도, 힘없는 국민들은 독재 권력을 제어할 어떤 힘도 가지고 있지 못합니다. 힘을 가진 또 다른 권력자가 일인자를 내쫓고 현명한 정치를 펴길 바라는 수밖에 없는 것이지요.


하지만 민주주의 국가도 장점 못지않은 단점을 지니고 있습니다. 주기적으로 권력의 주체가 바뀌기 때문에 국가 운영이 목적이 되지 않고 권력 자체가 목적인 정치가들이 등장하여 인기에 영합한 정책을 앞세워 국가 경쟁력을 말아먹는 경우가 자주 나타납니다. 또한 장기적 관점에서 추진해야 할 국가 과제가, 수시로 바뀌는 행정부 탓에 제대로 시행되 어려운 단점도 있습니다. 대외적으로는 국제 외교 정책을 지속적으로 추진하기 어렵기 때문에, 힘이 없는 약소국일수록 외부 세력에 휘둘려 국가 주권을 내세우기 힘들기도 하지요.


사회적으로는 특정한 제도의 도입이나 변경에 대해 국민적 합의 과정이 필수인 까닭에, 소소한 제도의 도입에도 많은 에너지가 소모되는 단점도 있습니다. 변화가 극심한 사회에서 민주주의 제도의 지나친 경직성은, 제때에 적절한 조치를 하지 못해 많은 기회비용을 발생시키는 부작용이 나타나는 것이지요.


반면 같은 맥락으로 1인 혹은 1당 독재의 정치 체제가 지니는 장점도 있습니다. 장기 집권의 안정성이 보장되기에 상대적으로 민주주의에 비해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쓸데없는 정책의 낭비가 적은 편이며, 장기적 관점의 국가 발전을 이끌기가 수월합니다. 또한 사회적 합의의 제약에서 비교적 자유로우므로 필요가 된다면 빠르게 정책을 제안하여 시행할 수 있는 민첩성을 발휘할 수 있지요.


* 쓰레기 분리수거제도

혹시 쓰레기 분리수거 제도가 세계 최초로 우리나라에서 전국적 시행이 되었다는 사실을 아시나요? 쓰레기 배출량을 줄이기 위해 쓰레기를 분류해서 버리고 이를 지키지 않는 사람에게 벌금을 매기는 구상은 당시 선진국에서도 시행하기 어려운 정책이었습니다. 누구나 적절한 세금을 내면 쓰레기를 자유롭게 버리던 상황에서, 쓰레기를 잘못 버리는 것에 대한 벌금을 매기는 것은 지나친 자유의 간섭이라는 정서 때문에 사람들에게 납득되기 어려웠던 것이지요.

쓰레기 분리수거의 제도적 도입을 위해 각 나라가 시민 사회의 의견을 구하고 합의를 이끄는 과정을 지난하게 펼치는 동안, 민주주의 제도를 가졌지만 사실 상 대통령 독재와 비슷한 운영이 이루어지던 한국은 1990년 3월 국가적으로 쓰레기 분리수거 제도와 그에 대한 벌금제를 실시하였고, 국민들이 이 제도를 큰 저항 없이 받아들여 협조함으로써 효율적 국가 행정을 달성할 수 있었습니다.




소설 속 민주주의와 전제주의


『은하영웅전설』은 일본의 유명 SF 작가인 다나카 요시키의 대표작으로, 전체주의 정권으로 황제의 무소불위 독재가 이루어지는 "은하제국"과, 서슬 퍼런 제국을 탈출하여 민주주의를 기치로 제국 타도를 외치는 "자유행성동맹"이 서로 국 존폐를 걸고 싸우는 우주시대를 배경으로 한 소설입니다.


소설 속 은하제국은 무능한 황제와 그를 둘러싼 십상시 같은 귀족들이 젊고 유능하며 인본주의적 사상을 가진 영웅 "라인하르트"에게 정권을 찬탈당하며, 이상적인 전제국가의 기틀을 이루어 살기 좋은 국가로 발돋움하게 됩니다. 이에 반해 자유행성동맹은 초기 민주주의 건국 정신이 사라지고, 권력 쟁탈에 눈이 먼 치졸한 정치가들에 의해 국가 경제력이 쇠퇴하며, 매스미디어를 통한 언론 왜곡을 통해 국민들이 진실을 보지 못하도록 만들어 비판이 수용되지 않는 형식상의 민주국가로 전락하게 되지요.


자유행성동맹을 대표하는 군 사령관 "얀 웬리"는, 더럽고 추악하게 타락하였지만 숭고한 민주주의 제도를 가진 자유행성동맹을 지키기 위해, 불합리한 전제주의지만 선하고 효율적인 은하제국에 맞서 싸워야 하는 딜레마에 빠집니다. 그리고 자유행성동맹이 제국군에 의해 궤멸 직전에 이르렀을 때에는, 망가져버린 동맹국가의 통치 대리인이 되어 함께 살기 좋은 사회를 만들자는 제안까지 받게 됩니다. 결국 그는 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해 제국군의 제안을 완곡히 거부하지요. (왜 그가 그런 선택을 하였는지, 그 이후에 소설은 어떻게 진행되는지는 스포일러가 될 수 있는 관계로 생략하겠습니다. ^^;)


『은하영웅전설』은 단순한 SF 소설이라고 하기에는 상당히 의미 있는 질문을 던져주고 있습니다. 선한 의지에 의해 통치되는 - 민주주의 제도 형식이 존재하지 않는 - 전제국가와 악한 권력자들의 카르텔로 사실 상 전제국가에 가깝지만 민주주의 제도 형식을 갖추고 있는 민주국가 중에 어떤 나라가 사람들에게 더 이로운 것일까요?


물론 전제국가에 대한 설정 자체가 비현실적인 조건이긴 합니다. 설사 한 두 명의 성군이 나와 태평성대를 이끌  있다 해도, 그보다 훨씬 많은 폭군이나 무능한 지도자가 나오는 것이 일반적이며, 그렇게 되었을 때 절대 권력을 통제할 수 있는 장치가 없는 치명적 약점을 안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 소설에서도 적나라하게 묘사된 바와 같이 - 현대의 민주주의 국가가 봉착한 폐습과 한계를 생각한다면, 무조건적으로 민주주의 제도를 옹호하기도 어려울 것 같습니다.




현대 민주주의 제도의 구조적 한계


이상적으로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되기 위해서는, 1인 1표를 행사하는 국민들의 의식 수준이 높아야 하며, 국가의 중요한 운영 정책 및 선거 입후보자들에 대한 정보 균등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쉽게 말해 KTX 선로가 지나는 시군구의 지역민들이 우리 지역구의 이익만을 대변하는 대표를 선출하여, KTX가 서울에서 부산까지 이르는 약 30여 개의 지역마다 정차를 하도록 만든다면, KTX 본연의 이익이 사라지고 지역 이기주의로 점철된 실패한 운송수단이 되는 것입니다. 지역의 이익을 위한 대표도 필요하지만, 그보다 더 큰 차원의 국가적 이익을 우선하는 의식이 담보되어야 올바른 권력 위임이 가능한 것이지요.


또한 다양하고 복잡한 여러 정책의 이면들을 파악하고, 국제적 관계 등을 고려하여 "살을 내어주고 뼈를 취하는" 실속을 위한 전략을 취하는 것이 마땅하나 모든 국민이 그에 대한 정보를 다 알고 이해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합니다. 각자가 자신의 앎의 수준만큼 이해하고 해석하며, 자신의 이익이 걸린 일에는 눈에 불을 켜고 대의를 반대하는 경우도 부지기수이기 때문에, 투명하고 효과적인 정책 제안을 하기도 어렵습니다.


선거 입후보자들에 대한 정보도 마찬가지입니다. 최대한 많은 정보를 드러내어 어떤 사람이 대의와 소신을 가진 정치인인지, 어떤 사람이 사익을 추구하고 권력에 기생하려는 정치인인지를 판별할 수 있도록 해야 하나, 제도의 한계와 선거권을 가진 국민들의 관심 및 정보의 한계로 합리적 판단을 내리기가 불가능합니다.


이런 경우 사람들은 언론을 통해 정보의 비대칭성을 해소하고자 노력하지만, 이때에도 정치와 언론의 카르텔로 바른 정보를 얻을 수가 없습니다. 한국의 언론사들은 제 사익에 부합하는 정치인을 띄워주려 노력하며, 그에 맞지 않는 정치인은 아예 뉴스에서 다루어주지 않거나 나쁜 면을 부각하는 등의 방법을 사용하여 자신들이 원하는 정치인을 사람들이 지지하게끔 유도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정치인들은 선거에서 표를 얻기 위해, 가급적 자주 대중들에게 노출함으로써 사람들이 수월하게 자신을 알아볼 수 있도록 노력합니다. 이는 보통 매스미디어의 힘을 빌리게 되는데, 이도 마찬가지로 돈의 논리에 의해 결정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텔레비전 프로그램의 한 코너, 신문의 한 구석에 자신의 이름이나 회사를 알리는 것 자체가 돈이 드는 일이니까요.


렇듯 현대의 민주주의는 자본 세력의 시장 장악과 언론의 정보 왜곡으로, 1인 1표를 가진 사람들이 올바른 선택을 하기 어렵도록 변화하였습니다. 겉으로만 1인 1표의 권력을 가졌지, 실제로는 돈과 언론에 세뇌되어 진실을 보지 못하는 기계적 유권자로 전락해버려, 돈을 가진 사람에 의해 장악된 정치 제도인 것이지요.


소크라테스가 독배를 마셔 죽도록 만든 이들도 아테네의 민주정치였습니다. 그는 "철인(哲人)" 어질고 사리에 밝은 사람이 소신을 가지고 국가를 이끌어야 공동체가 지속적으로 발전할 수 있다는 신념을 피력하여, 민주주의 정신을 위배했다는 죄목으로 죽음을 선고았습니다.


형식적 절차만 남아버린 민주주의는 과연 최선의 정치제도일까요? 그렇지 않다면 어디서부터 어떻게 이것을 고쳐나갈 수 있으며, 그 지향점은 어디를 향해야 할까요?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 한, 이 사회의 다양한 문제들은 늘 반복되며 우리의 삶을 괴롭힐 것입니다.






2022년 10월 신간


불안과 슬픔이 휘몰아치는 혼란스러운 시대,

『우리는 어디에서 왔고, 무엇이며, 어디로 가는가』에서 이 험난한 세월을 헤쳐갈 지혜를 찾아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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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   차

시대의 혼란 속에서

1. 문제 제기

2. ‘왜’라는 질문의 힘

3. 우리의 익숙함에 ‘왜’를 묻자

4. 현실의 혼돈 속으로

5. 한 차원 높은 시선에서

6. 다시, 자연으로          



우주: 자연의 진화 법칙     

7. 왜 우주를 사유하는가

8. 상식 밖의 우주

   -  우주의 중심은 어디일까

   -  21세기 지구의 1초와 138억 년 전 우주 중심의 1초는 같은 1초일까

   -  우주의 시간과 인간의 시간

9. 빅뱅에서 생명까지

10. 의식에 관한 새로운 관점

11. 무의식과 비의식

12. 영성

13. 홀로 존재하고 함께 창발하는 자연의 진화

14. 역사의 필연, 개인의 우연

   -  선형 세계관 대 복잡계 세계관

   -  미래를 가늠할 수는 있지만 누가 언제 어떻게 될지는 알 수 없는 자연의 세계

15. 진화와 도태의 사이에서

   -  사회진화론과 상호부조론

   -  필연적 도태와 인류의 진화

   -  누가 진화를 결정하는가: 적합도 지형

   -  유연성과 다양성

   -  불용지용(不用之用)과 총체(wholeness)의 자연

16. 원형(原型)에서 분화로, 다시 통합의 제자리로

   -  죽음에 대하여

17. 무(無)에서 유(有), 다시 무(無)     

     


사회: 냉혹한 생존의 장(場)     

18. 나약한 인간, 집단생활의 시작

19. 문명의 태동, 국가와 종교

   -  사람 위의 법

   -  표준 화폐의 등장

   -  스스로 복종시키는 최고의 기술, 종교

20. 이성 과학 합리의 시대

   -  세상 모든 것의 혁명

   -  금화에서 지폐로, 가치의 진화

   -  종교를 대체한 공교육

   -  영토 전쟁에서 식민지 쟁탈전으로

   -  초강대국 미국의 비상

21. 세계화, 미디어, 다원주의

   -  대공황과 세계 대전 이후

   -  여론과 미디어

   -  마케팅과 물신주의

   -  문화 전쟁과 코퍼라토크라시

   -  인터넷과 중우 정치의 시대

22. Spiral Dynamics, 나선형 역학 이론

   -  1단계: 미분화된 사회

   -  2단계: 원시 권력 사회

   -  3단계: 절대 질서 사회

   -  4단계: 목적 지향 사회

   -  5단계: 다원론적 사회

   -  6단계: 통합 의식 사회

23. 붕괴의 징후들

   -  세계화의 그림자

   -  21세기 신 냉전의 개막

   -  지속 불가능한 이자 기반 금융 시스템

   -  도시화의 모순

   -  혁신의 한계, 정치 및 행정 시스템의 경직

   -  결(結)

24. 진화와 도태의 갈림길에서

   -  과거와 현재, 미래를 이어가는 유유한 흐름

   -  선(線)에서 원(圓)으로         

 


인간: 존재의 이유     

25. 깨어나는 사람들

   -  깨어남을 이끌어 줄 재료들

26. 인간의 존재 목적

   -  우주를 바라보는 자

   -  사회와 역사, 개인의 과업

   -  개인의 성장

27. 자유와 얽힘 사이에서

   -  인간에게는 자유의지가 있을까

   -  자유를 향한 본능

   -  얽힘의 모순

   -  자유와 얽힘의 균형

   -  우주적 사명으로서의 자유

28. 성장의 두 날개

   -  주체성과 총체성

   -  지성과 감성

   -  무지(無知)는 악행의 근원이다

29. 의식과 영성의 날아오름

30. 우리 앞의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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