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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유표 Dec 25. 2015

탈스펙, 스펙 블라인드 채용의 아이러니

인사 담당자와 취업 준비생의 lose-lose 게임

최근 취업 시장에는 탈 스펙, 스펙 블라인드 면접 같은 새로운 방식의 입사 제도가 도입되고 있다 합니다. 그 이유는 입사 스펙과 업무 성과 사이에 상관관계를 내어보니 학벌이 좋은 직원과 그렇지 못한 직원 사이에 별 차이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아울러 명문대 출신일수록 대기업 조직 문화에 잘 적응하지 못해 이직률이 높아서 오히려 학벌이 너무 좋은 경우에는 면접에서 유의 깊게 살핀다고 합니다.


일부 언론들은 기업들이 시대의 요구에 부합되는 변화를 추구하고, 학벌주의를 바꿔보려는 사회적 공생의 일환이라는 논지로 친기업적 기사를 냅니다만, 저는 문제를 접하는 기업의 관점이 문제의 원인을 취업준비생에게만 전가하려는 태도가 불편하기 그지없습니다. 기업의 논리와 해결책이 겉만 봐서는 합당해 보이지만, 기업 단편적 입장에서만 문제를 접근한다면 이런 시도도 수포로 되돌아갈 것입니다.


이 주제의 일차적인 원인은 기업 문화가 근대적인 수준에서 정체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군대식 제도, 상명하복식 체계, 하이라키(hierarchy) 구조의 말들로 대표할 수 있는 "까라면 까"는 문화를 의미합니다. ("미생"이라는 드라마에서 정말 잘 묘사되었고, 극단적이긴 하지만 막돼먹은 영애 씨"라는 드라마에서는 희화화되어 보이기도 합니다.) 최근 국내 기업들이 새로운 먹거리를 찾지 못하고 미국, 일본, 중국 등 선진, 신생 기업들에게 무참히 사업영역을 빼앗기는 근본적인 원인이기도 하지요.


이미 세계 경제는 정보화를 기반으로 한 융합형 기술 시대로 진입한 지 오래입니다. 휴먼 테크놀로지, 나노 테크놀로지, 바이오 테크놀로지 등의 기술들이 인문학적 감성과 스토리로 무장하여 이미 시장 포화상태가 된 소비자들의 구매욕구를 창출하는 것이지요. 우리나라의 기업 문화는 지나치게 경직되어 있고 바른 의견이라 할지라도 리더에게 전달되지 못하는 까닭에 시대가 요구하는 빠른 변화와 공감과 수용을 이끌어낼 수 없습니다.


의사 결정 과정은 세월아 네월아 하는데다가, 젊은 감각으로 설계된 상품을 윗사람의 구시대적 판단에 따라 여지없이 무산시키기가 일쑤입니다. 올바른 기업 환경이라면 톡톡 튀지만 시야가 좁은 젊은 사람의 아이디어와 시대에 뒤떨어지지만 많은 경험을 가진 윗사람의 의견이 서로 충분히 소통되고 조율하여 합의점을 찾는 방향으로 일이 이루어져야 하나, 우리나라 기업에는 "소통"이라는 과정이 거의 없다고 해도 무방합니다.


인터넷을 기반으로 한 수평적 소통에 익숙한 젊은 층들은 시키는 대로 움직여야만 하는 한국식 기업 문화에 적응하기 어렵습니다. 그렇기에 스펙과 업무 성과 사이에 차이가 없었다는 주장도 있는 그대로 해석할 수 없는 것입니다. 기업이 평가하는 업무 성과라는 것도 결국 기업 문화에 얼마나 잘 스며들었나 가 매우 중요한 요인이 되는데, 애초에 서로 맞지 않은 결을 가진 사람을 기업의 잣대로 평가하였으니 결과가 제대로 나올 리 없겠지요.


같은 맥락으로 학벌이 좋은 직원일수록 이직률이 높은 현상도 설명할 수 있습니다. 학창 시절에 나름 주위에서 인정받고 높은 자존감을 갖게 된 명문대 출신의 직원들일수록, 가장 아래에서 명령에 무조건 복종해야 하는 문화에 적응하기 힘들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기업 문화 문제를 도외시한 탈 스펙과 스펙 파괴의 면접 도입 같은 형태의 일방적 해결책으로 문제의 본질을 해소할 수 없을 것입니다.




두 번째로 고려해야할 것은 현재 취업을 준비하고 있는 세대에 대한 몰이해입니다. 교육계에서는 2010년도를 즈음하여 "헬러콥터 엄마"라는 용어가 유행하였습니다. 자녀의 모든 것을 엄마가 결정해주고 자녀는 그대로 따르는 방식으로 키운다는 것이지요. 사람에게 선택권을 주지 않고 오로지 실행만 시키게 되면 점차 아무것도 선택할 수 없는 존재로 전락하고 맙니다. 그래서 학원도 엄마가 결정하고, 교재도 엄마가 골라주며, 대학과 학과도 엄마가 지정해 준 곳에 지원합니다. 심지어 수강 신청도 엄마가 대신해주고, 성적이 기대에 맞지 않게 나왔을 때 엄마가 교수님을 찾아와서 상담을 하는 촌극이 연출됩니다.


극단적인 사례이지만 2000년대 이후 전반적인 교육문화 풍토가 이런 흐름을 취했습니다. 부모의 양육 방식에서부터 학교의 수업과 평가 과정에 이르기까지, 사전에 정해진 답을 넣고 그것을 내어야 올바른 삶을 사는 것처럼 느끼도록 아이들을 길러낸 것이지요. 이렇게 자라난 아이들은 스스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이 불편하고, 다른 사람의 생각을 나의 생각이라 느끼고, 다른 사람의 행동을 따라 하는 것이 옳은 답이라 생각하는데 익숙합니다.


이런 현실을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가 삼성이 면접 방식을 바꾸었더니 삼성 면접 대비 학원이 생기고, 인성 평가를 하겠다고 발표하니 인성 평가 대비 학원이 등장하는 사건들입니다. 자기소개서에 "나의 꿈과 목표"를 써오라 하면 다른 사람이 미리 써준 글의 기승전결을 따와서 적당히 자기와 알맞은 것으로 부분 부분 바꿔치기합니다. 정작 그 글에는 "나의 꿈과 목표"에 대한 내용은 없고 그저 200자 원고지를 다 채워 넣은 파편적인 문장들만 남는 것이지요. 인성을 가진 사람이 어떠한 가를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 인성이 있는 사람이 말하는 법, 글 쓰는 법, 행동하는 법을 외우고 따라 합니다. 옆에서 보기엔 우스꽝스럽고 답답한 상황이지만, 당사자들은 매우 절실하고 진지하게 임한다는 것이 블랙코미디인 것이지요.




상황이 이런데도 기업들은 창의적이고 시대에 적합한 인재를 뽑기 어렵다고 아우성입니다. 창의를 발휘할 수 없는 조직 문화이면서, 사회적으로 경직된 교육의 피해자인 학생들을 탓합니다. 예전에 잠깐 스쳐가듯이 들은 이야기로, 스펙 블라인드 면접(출신 대학을 보지 않고 면접을 하는 것)을 처음으로 실시한 기업에서 합격자들을 뽑아놓고 보니 일반 면접을 했을 때와 동일한 비율로 명문대 출신 지원자들이 채용되었다고 합니다.


그 말을 전해준 사람의 의견으로는 "역시 학벌이 좋은 친구들이 똑똑하니 말도 유창하게 잘한다."며 탈스펙, 스펙 블라인드 면접과 같은 것은 요식행위라고 평하더군요. 저도 그 자리에서는 그분의 생각에 공감을 하였지만, 지금 좀 더 깊이 생각해 본바 그것 또한 경직된 교육 문화의 부작용이라는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학벌 좋은 지원자들이 면접을 잘 본다는 사실은 맞지만, 학벌이 좋지 않은 지원자들이 말을 유창하게 하지 못하는 것이 그들 탓은 아니라는 것이지요.


지식의 정확성 여부로 상대적인 평가를 받는 교육 과정을 20년 가까이 경험하게 되면, 졸업장에 찍힌 대학교 이름 이상으로 그 사람의 인격과 성격 형성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당사자 입장에서는 평생의 시간 동안 늘 "못한다.", "부족하다.", "무능하다."와 같은 메시지를 전달받았을 테니까요. 성인들조차 잘못한다고 나무라면 하루 종일 기분이 나쁠지언데, 특히 정체성이 만들어지는 청소년 시기에 늘 겪는 경험은 고착화된 성격을 빚어낼 것입니다. 학습과 수행에 있어 자신감이 결여되고 부정적 정체성을 지닌 학생이 얼마나 유창하게 면접을 잘 해낼 수 있을까요? 그들이 오히려 피해자인 것이고 그들에게 탓을 돌려 더 열심히 노력하라고 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이 문제는 상대적 비교 우위에 있는 기업이나 국가 차원에서 해결해야 될 사안이라고 생각합니다. 먼저 기업부터 소통이 잘 이루어지는 문화가 정착되어야겠지요. 쓸데없는 회의와 회식을 반복하고, 비효율적인 업무 처리로 야근이 일상인 근로 환경이 개선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모든 변화와 혁신에 가장 중요한 것은 경영자의 의지인데 지금과 같은 사회 문화에서는 기대하기가 어렵습니다...)


취업 준비생들에게는 장기간의 재교육 기간이 주어져야 합니다. 기존의 중·고등, 대학 교육의 연장선인 교육이 아니라, 논리와 합리성을 일깨우고 자신감을 불어넣을 수 있는 종합적인 케어 과정이 필요합니다. 기업의 업무 프로세스를 이해하고 효율적인 소통에 필요한 기능들(기획, 회의, 연구방법론, 공동체 의식 등)을 배우는 과정을 경험하며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는 능력을 다시 되찾아 주는 것입니다.


기초적인 생각이지만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지고 교육 과정과 제반 정책 설계가 뒷받침된다면 가능성은 충분합니다. 워낙 지금까지 제대로 해준 것이 없었기에 더 높은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불가능해 보이겠지만 지금 시점에서 이 외에는 대안이 없다고 생각하며, 아울러 저는 우리나라 청년들의 잠재력을 믿습니다.







신자유주의적 시장자본시스템에 의해 파편화-양극화된 사회,

한계비용 제로사회와 4차 산업혁명이 가져다줄 희망과 위기,

힘없는 개인은 혼돈의 미래를 헤쳐나가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가?

첨단 기술 사회 속 우리는 어디에 서있고 어디로 나아가야 하는가?


사회, 경제, 정치, 문화, 교육, 역사, 미래기술 등 다양한 영역의 현상을 조망하고 원인을 분석하여, 순환의 가치관과 이타적 본성의 공동체의 탄생을 주문하는 『이기심의 종말』(부제: 당신은 어떤 내일을 꿈꾸십니까)이 출간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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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제 : 당신은 어떤 내일을 꿈꾸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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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 목차 정보 >

1장. 우리 앞의 현실

1. 자본주의와 개인소유 사상
자본주의 / 블라인드 스팟 / 개인소유 사상
2. 개인소유 사상의 사회문화
생존과 투쟁, 공동체의 역사 / 한국의 공동체 해체 / 혼자가 될 때까지 / 경영과 노동 / 기업 조직 문화 / 교육 / 자녀 양육 / 국가 정치/ 경제 제도 / 학문과 문화 / 성 역할 갈등 / 이성 교제 / 행복
3. 지속가능한 삶의 위기 - 개인편
경제 능력의 상실 / 직업의 귀천 / 실직과 사회 안전망 / 결혼, 출산, 경력단절 / 산업 구조의 변화 / 주거 불안정 / 자녀교육 / 질병, 사고, 장애 / 다시 일어설 기회가 없는 사회
4. 지속가능한 삶의 위기 - 사회편
빈부 격차, 소득 격차 / 청년 빈곤 / 저출산, 노령화 / 산업 성장의 정체 / 미래 인재의 부재 - 교육과 기업문화 / 필연적 불황과 전쟁 


2장. 선택의 시간

5. 순환, 지속가능한 삶의 가능성
개인의 위기, 사회의 위기 / 순환의 부재 / 기업 내 개인의 순환 / 기업 스스로의 순환 / 기업 밖에서의 개인의 순환 / 자본의 순환 / 직업 분배의 모순 / 직업의 가치, 개인의 가치, 사회적 효용 / 순환이 있는 사회
6. 공유경제와 한계비용 제로사회
공유경제의 역사 / 공유지의 희극, 인터넷 / 인터넷 + 자본주의 = 한계비용 제로사회 / 에너지 인터넷, 운송 인터넷 / 공유경제의 현재와 미래
7. 제4차 산업혁명과 위기의 미래
제4차 산업혁명 / 이제 기업과 노동자는 어떻게 돈을 벌지? / 현대판 러다이트 운동 / 창의적 직업으로의 전환, 가능할까? 


3장. 미래를 여는 열쇠

8. 공유경제 시대의 사상들
협력적 공유주의자의 시대 / 망중립성, 오픈소스 운동가들 / 공유가 소유를 앞서 나가는 시대 / 공유가 가진 힘의 원천 / 공유경제 시대의 동반자들
9. 지속가능한 삶을 향한 의식적 연대
대안적 삶을 추구하는 이들의 연대 협력의 필요성 / 기술의 진보, 연대의 가능성 / 중앙 집중화된 권력에서 분산된 권력으로 / 연대 협력의 장애물들
10. 개인소유 사상의 그림자
미래를 결정하는 것 / 자기포장, 위선, 성장 절대주의 / 배려와 공감이 없는 자기중심 사고 / 불신 / 물질만능주의와 소유욕
11. 개인에서 공동체로
내려놓기 / 보다 영속적인 가치 / 관심, 인정, 배려 / 공동체 의식의 확장 


4장. 우리가 꿈꾸는 세상

14. 우리가 꿈꾸는 세상
소유자, 생산자, 소비자가 하나 된 공유기업 / 생의 지속가능성이 보장되는 사회 안전망 / 최소 지원(복지)의 기준 : 주거, 교육, 질병 / 개인의 성장과 사회적 기여에 특화된 직업 / 변화된 교육이 바꾸어갈 세상 / 제약적 가족 관계에서의 해방 / 여성에 대한 관념의 변화 / 여성, 남성이 아니라 개인으로 대접받는 사회 / 지속가능한 삶이 있는 사회
15. 우리를 넘어 세계를 향해
페이비언 사회주의, 칼 폴라니, 제3의 길 / 서양과 동양의 문화적 차이 / 언어의 힘, 한민족의 정신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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