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에서 개인은 어떻게 순환될 수 있는가?
순환하지 않는 사회, 순환되지 못하는 개인
지금까지 살펴본 여러 가지 지속가능한 삶의 위기를 다른 말로 표현하면 바로 "순환의 부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회적으로는 돈이 물 흐르듯이 돌아야 하는데 어느 한 부분에 막혀 정체되거나, 생산노동인구가 유지되지 못할 정도로 출산율이 낮아져서 노년층 인구가 많아지는 고령화 문제를 예로 들 수 있습니다. 개인 차원에서 직업이나 건강을 얻고 잃음의 과정이 자연스럽게 전환되지 못하고 낙오하는 것도 "순환의 부재"이며, 환경적으로 지나친 자원 낭비와 오염물질 배출로 인해 미래 세대의 지구 환경이 망가지는 것 또한 "순환"을 염두에 두지 않는 제조, 환경 정책을 원인으로 지목할 수 있지요.
이처럼 자본이나 자원, 개인이 순환되지 못하고 한 곳에 고여있는 것은 개인소유 사상에 의해 만들어진 각종 사회 제도들이 순환의 흐름을 가로막고 자본과 자원을 웅켜쥐게끔 하도록 유인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기업은 자본시장에서 양질의 상품을 내놓아 소비자의 선택을 받아야 성장할 수 있는데, 다른 기업의 상품 경쟁에서 이겨야만 지속적인 성장이 담보됩니다. 그렇다 보니 기회가 왔을 때 매출의 많은 부분을 잉여자금으로 비축해두어 위기를 대비하는 것이지요.
다른 경쟁사가 발을 들여놓지 못하도록 시장을 장악하여 절대 영역을 구축하는 것이 더 좋은 방법입니다. 그런데 독과점 시장은 결국 "순환의 부재"를 의미합니다. 상품 권력이 특정 기업에 종속되어 있고 견제할 수 있는 수단이 없다 보니 계속 그 상태에 정체되어 장기적인 발전을 저해하게 되는 것이지요.
그럼에도 아직 우리가 "순환"에 대한 인식을 사회적 차원의 기본 의식으로 갖고 있지 못하고 있기에 변화가 더딥니다. 거의 모든 분야의 지표가 일직선으로 우상단을 향한 성장 패턴으로만 목표되어 있고, 성장과 정체 혹은 쓰임과 재생의 패러다임에 따라 순환되는 고리로서 그려지는 것은 고려되지 않습니다. 그나마 최근 들어 지구 생태계의 문제가 심각해지면서 자원 순환의 형태로 생태 사이클이 주목받고 있지만, 사회 전체를 놓고 봐서는 아직 미미한 수준이지요.
기업에서의 개인의 순환
기업에서 근무하는 근로자는 어떠할까요? 기업 입장에서는 더 많은 생산성을 내기 위해 되도록 많은 일자리를 자동화하고, 표준화하여 기계나 단순 노무자로 대체하는 것이 최선입니다. 기업 이윤이 최고의 목표이니 인간의 노동은 일회성 수단이 되어버리는 것이지요. 쉽게 말해 상품을 만들어내는 과정에 있는 "일부 단계"에 불과한 취급을 받는 것입니다. 보고, 느끼고, 사고하는 존재로서 사람을 대하는 것이 아니라 투자 비용 대비 효과의 관점으로 대하는 근로자에게는, 하고 있는 일을 그만두게 되었을 때 다음 단계에 무엇을 제공해야 할지, 즉 어떻게 순환시켜야 할지 고민할 필요가 없는 것이지요. 자연스럽게 근로자 교육 같은 투자에 대해서도 인색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키워 가르치느니 새로운 사람을 뽑는 것이 비용 절감에 이익이거든요.
이런 단점을 극복하기 위해 기업 내 직무교육이나 순환보직제도를 운영한다 하더라도, 일부 사전에 경영 자감으로 지목된 특별한 대상자가 아니고서는 대부분 빚 좋은 개살구로 구색만 갖추며 운영되고 맙니다. 임원 역할 후보자의 경우에는 여러 사업 분야를 경험하는 것이 필수적이기 때문에, 체계적으로 교육 투자를 하고 순환 보직을 시키면서 각 부서의 실무나 분위기를 파악하는 용도로 교육이 운영됩니다.
반면 일반적인 근로자에게 그런 교육을 제공하거나 여러 부서에 전환 배치하며 일하도록 하는 것은 여러모로 어려운 점이 많습니다. 기업 입장에서는 교육 투자도 일종의 비용인지라 단기 회계에서 손해를 감수해야 하고, 전환 배치에 있어서는 일이 익숙해질 만할 때 부서를 옮겨버리면 생산성 저하가 일어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개인 입장에서도 가뜩이나 야근이 생활인데 교육까지 받는 것은 부담이 되고, 전환 배치를 한다고 이도 저도 아닌 일을 전전하다 보면 경력도 잘 쌓이지 않아 나중에 회사를 옮길 때에 상당한 곤란을 겪게 됩니다.(악독한 기업은 순환보직의 이름을 내걸고 일부러 전혀 엉뚱한 부서로 발령 내어 사람을 쫓아내기도 하지요.)
그래서 보통 한 부서에 오래 머무르며 별다른 교육 없이 현장의 경험만 바탕으로 상향 승진을 하지만 그것도 녹록지가 않습니다. 위로 갈수록 자리는 줄어들기 때문에 어느 시점에 퇴직을 하고 나면 한 분야밖에 모르는 "우물 안 개구리"가 되어 있기 십상이니까요.
보통 기업의 승진체계가 일직선상으로 설계되어 있고, 올라가는 것 아니면 내려가는 것의 차원밖에 존재하지 않는 것이 문제입니다. 눈에 드러나는 성과에 기반한 보상체계는 극명하게 좋은 직무와 그렇지 않은 직무로 나누어지게끔 하지요. 회사 내 직원들이 역량에 따라 순환되어 각 위치에 맞는 역할을 할 수 있는 형태가 아니라, 그저 현재에서 위로만 향해가다가 어느 시점에는 떨어질 수밖에 없는 형태인 것입니다. 회사 입장에서도 많은 경험과 지혜가 있는 직원을 적당한 대우를 해주지 못해 내쳐야 하고, 개인 입장에서도 더 이상 자리에 맞는 성과를 내지 못한 까닭에 버려져야 하는 상황이 연출되는 것이지요.
반면 자연적으로 사람은 청년에서 장년으로 갈 때, 그리고 장년에서 노년으로 갈 때 각 세대에서 발휘할 수 있는 최고의 성과 영역이 달라지게 됩니다. 젊었을 적에는 빠르게 변화하는 환경에서 창의적이고 열정적으로 파이팅할 수 있는 분야의 일에 적합한 반면, 중장년으로 갈수록 여러 상황을 통합적으로 두루 살펴야 하는 분야나 사람을 대면하고 소통해야 하는 분야의 일에 알맞게 변화하는 것입니다. 이런 것이 자연 흐름의 큰 법칙이고 인간의 성장주기인데, 이것을 부자연스러운 인공의 조직 체계에 맞추려고 하니 답이 안 나오지요. 갈등과 부작용, 제도의 복잡함만 더해질 뿐입니다.
기업 내 순환의 개념은 이 부분에서 적용 가능성을 찾을 수 있습니다. 일직선상으로 지위체계가 이루어지지 않은 수평적 조직체계에서는, 각자가 성장주기에 따라 맡을 수 있는 최적의 업무에 배치되어 일할 수 있는 순환 구조가 만들어질 수 있습니다. 지금처럼 업무의 직접적인 성과가 직무의 좋고 나쁨을 결정하지 않고, 전체의 성과가 고르게 분배될 수 있는 형태로 구성하는 것이지요.
혹시 오해하실까 봐 노파심에 말씀드리면 이것은 공산주의와는 다른 개념입니다. 고르게 분배한다는 것이 모두가 똑같이 받는다는 것이 아니라, 업무가 직접적인 성과로 드러나지 않는다 하여도 개인이 열심히 일을 수행했을 때 그에 합당한 수당을 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직접적인 성과를 내지 않는 업무가 과연 회사에서 정말 필요한 일인가?"에 대한 문제가 생길 수도 있습니다. 소위 "꿀 빠는 자리"가 늘어나서 기업의 성장동력을 떨어뜨릴 수도 있으니까요. 그것은 회사를 이끄는 리더의 역량과 구성원들의 주인 의식에 따라 결정됩니다. 직관에 따라 직무의 가치를 판단하는 것이야 말로 리더의 역할이고, 구성원들의 배려와 사명 의식에 따라 자연스럽게 그런 자리는 생기거나 없어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다만 이런 조직 체계가 전제되어야 할 것은, 체계 내 구성원들이 하나 될 수 있는 사명의식과 협력 문화가 있어야 하고, 성과에 따른 분배를 누구나 인정할 수 있도록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결국 사상이나 가치관의 문제로 귀결되는 것입니다. 어떤 분들은 이 지점에서 "누구나 인정하는 성과 분배의 룰은 없다."라고 말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개인소유 사상에 기반한 의식이 팽배할 때의 상황일 뿐입니다. 성과 분배의 양이 일반적인 생활의 질을 보장할 수 있는 수준이면서, 업무를 수행함에서 얻는 자기만족과 사명 충족에 가치를 둘 수 있다면 "모두가 인정하는 성과 분배의 룰"은 구현될 수 있을 것입니다.
경영 정보의 투명한 공개에 있어서도 커다란 가치관의 전환이 필수입니다. 특히 우리나라 기업주들은 회사에 대한 자기 소유 의식이 강합니다. 심지어 주식 비율에 따라 소유 지분이 정해지는 주식회사에서, 자신의 주식 보유량이 100%가 아님에도 마치 자기 회사인 것처럼 생각하고 경영에 임합니다. 그렇다 보니 자연스럽게 투명한 공개라는 것은 생각할 수 없는 개념인 것이지요. 우리 집의 모든 벽을 다 유리로 세워서 지나가는 사람이 누구나 다 속속들이 볼 수 있게 할 수 없는 것처럼, 내 회사에 벌어지는 여러 제도와 평가 기준에 대해서 굳이 남에게(부하 직원들) 알려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공정한 분배의 룰을 인식시켜주기 위해 필수적인 것임에도 불구하고요.
본 글은 연재 형식으로 2015년 10월부터 2016년 1월까지 작성되었습니다. 여기 있는 내용들을 더 다듬고 짜임새있게 구성하여, 2017년 5월『이기심의 종말』로 출간되었습니다. 내용을 보시고 흥미가 동하신 분들은 아래 소개를 참조하시여 책을 구매해 보시면 더욱 알차고 최신화된 글을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
신자유주의적 시장자본시스템에 의해 파편화-양극화된 사회,
한계비용 제로사회와 4차 산업혁명이 가져다줄 희망과 위기,
힘없는 개인은 혼돈의 미래를 헤쳐나가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가?
첨단 기술 사회 속 우리는 어디에 서있고 어디로 나아가야 하는가?
사회, 경제, 정치, 문화, 교육, 역사, 미래기술 등 다양한 영역의 현상을 조망하고 원인을 분석하여, 순환의 가치관과 이타적 본성의 공동체의 탄생을 주문하는 『이기심의 종말』(부제: 당신은 어떤 내일을 꿈꾸십니까)이 출간되었습니다.
미래가 어찌 흘러가게 될지 궁금한 분들, 두루 넓은 영역의 시대상과 기본적인 원리를 살피고픈 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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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 목차 정보 >
1장. 우리 앞의 현실
1. 자본주의와 개인소유 사상
자본주의 / 블라인드 스팟 / 개인소유 사상
2. 개인소유 사상의 사회문화
생존과 투쟁, 공동체의 역사 / 한국의 공동체 해체 / 혼자가 될 때까지 / 경영과 노동 / 기업 조직 문화 / 교육 / 자녀 양육 / 국가 정치/ 경제 제도 / 학문과 문화 / 성 역할 갈등 / 이성 교제 / 행복
3. 지속가능한 삶의 위기 - 개인편
경제 능력의 상실 / 직업의 귀천 / 실직과 사회 안전망 / 결혼, 출산, 경력단절 / 산업 구조의 변화 / 주거 불안정 / 자녀교육 / 질병, 사고, 장애 / 다시 일어설 기회가 없는 사회
4. 지속가능한 삶의 위기 - 사회편
빈부 격차, 소득 격차 / 청년 빈곤 / 저출산, 노령화 / 산업 성장의 정체 / 미래 인재의 부재 - 교육과 기업문화 / 필연적 불황과 전쟁
2장. 선택의 시간
5. 순환, 지속가능한 삶의 가능성
개인의 위기, 사회의 위기 / 순환의 부재 / 기업 내 개인의 순환 / 기업 스스로의 순환 / 기업 밖에서의 개인의 순환 / 자본의 순환 / 직업 분배의 모순 / 직업의 가치, 개인의 가치, 사회적 효용 / 순환이 있는 사회
6. 공유경제와 한계비용 제로사회
공유경제의 역사 / 공유지의 희극, 인터넷 / 인터넷 + 자본주의 = 한계비용 제로사회 / 에너지 인터넷, 운송 인터넷 / 공유경제의 현재와 미래
7. 제4차 산업혁명과 위기의 미래
제4차 산업혁명 / 이제 기업과 노동자는 어떻게 돈을 벌지? / 현대판 러다이트 운동 / 창의적 직업으로의 전환, 가능할까?
3장. 미래를 여는 열쇠
8. 공유경제 시대의 사상들
협력적 공유주의자의 시대 / 망중립성, 오픈소스 운동가들 / 공유가 소유를 앞서 나가는 시대 / 공유가 가진 힘의 원천 / 공유경제 시대의 동반자들
9. 지속가능한 삶을 향한 의식적 연대
대안적 삶을 추구하는 이들의 연대 협력의 필요성 / 기술의 진보, 연대의 가능성 / 중앙 집중화된 권력에서 분산된 권력으로 / 연대 협력의 장애물들
10. 개인소유 사상의 그림자
미래를 결정하는 것 / 자기포장, 위선, 성장 절대주의 / 배려와 공감이 없는 자기중심 사고 / 불신 / 물질만능주의와 소유욕
11. 개인에서 공동체로
내려놓기 / 보다 영속적인 가치 / 관심, 인정, 배려 / 공동체 의식의 확장
4장. 우리가 꿈꾸는 세상
14. 우리가 꿈꾸는 세상
소유자, 생산자, 소비자가 하나 된 공유기업 / 생의 지속가능성이 보장되는 사회 안전망 / 최소 지원(복지)의 기준 : 주거, 교육, 질병 / 개인의 성장과 사회적 기여에 특화된 직업 / 변화된 교육이 바꾸어갈 세상 / 제약적 가족 관계에서의 해방 / 여성에 대한 관념의 변화 / 여성, 남성이 아니라 개인으로 대접받는 사회 / 지속가능한 삶이 있는 사회
15. 우리를 넘어 세계를 향해
페이비언 사회주의, 칼 폴라니, 제3의 길 / 서양과 동양의 문화적 차이 / 언어의 힘, 한민족의 정신문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