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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유표 Dec 26. 2015

18. 지속가능한 삶의 핵심, 순환 (2)

기업은 왜 순환되지 못하고 성장만 지향하는가?

기업 자체의 순환


기업 자체의 순환도 중요한 문제입니다. 기업이 경쟁에서 살아남지 못한다면, 근로자들의 일자리도 보장받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기본적으로 기업 내 수평적 조직구조가 형성되고 투명한 경영 지표 공개와 합리적인 분배가 이루어진다면 기업 자체적으로 강력한 경쟁력을 갖출 수 있습니다. 주인의식이 지배하는 회사에서는 위기에 직면했을 때 "나의 것"만을 챙겨가려는 이기주의가 아니라 "우리의 것"을 위해 모두가 조금씩 희생할 수 있는 문화가 형성되어 있기에 훨씬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 강점이 있지요.


하지만 이것만으로 외부 경쟁 회사의 등장이나 새로운 기술 개발(시장 패러다임의 변화)로 인한 기업 생존의 위협을 대처하기는 어렵습니다. 현대의 시장경제가 글로벌화되고 정보기술이 접목되기 시작하면서, 규모에 의한 경제가 작동하고 있기 때문에 자본력의 도움 없이는 웬만한 시장에서 살아남기 힘든 상황이기 때문입니다.


구글 같은 회사가 이메일이나 검색 같은 서비스를 무료로 제공하고, 안드로이드OS 같이 막대한 개발비용이 투자되는 프로그램을 거의 무료로 오픈하고, 제3세계 국가의 사람들이 공짜로 무선인터넷을 할 수 있도록 비용을 투자하는 이유는, 무료에 기반하여 형성된 사회 인프라를 이용하여 상업적 기업의 광고 및 데이터 분석 수입을 거둘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과 같은 시대에서 제2의 구글이라고 하여 아주 멋진 검색엔진이 등장한다 하여도, 도저히 구글에 대적하여 이길 방법은 없는 것입니다. 구글은 돈을 소비자에게 주어가면서 검색 엔진을 쓰도록 해도 이익을 유지할 수 있을 테니까요.


그래서 어떻게든 규모를 키워 경쟁 업체가 진입하기 어려운 수준의 제품 생산비를 달성해야 하는데, 그에 비례하여 시설 및 기술에 투자 자본은 늘어날 수밖에 없습니다. 차근차근 규모를 키워나가는 방법도 있겠지만, 상대 업체가 자본력으로 적자를 감수해가며 공격하는 상황에서 느긋하게 대응할 수도 없는 노릇이지요. 시장이 일단 장악되고 나면 돌이킬 수 없는 상황에 빠지기 때문에 우리 쪽 회사에서도 자본력에 기대어 시장을 확장할 수밖에 없습니다. 최근 요기요, 배달의민족이 벌이고 있는 수수료 인하 및 각종 광고 싸움이라던지, 손정의에게 투자를 받아 자체 전국 총알배송망을 구축하려는 쿠팡이 그 좋은 예입니다.


회사의 자본력은 대개 주식을 발행하여 증권시장에 상장하거나 전문 투자자의 투자금을 받는 형태로 이루어집니다. 아이러니한 건 이렇게 투자를 받는 순간 경영자 입장에서 더 이상 이 회사가 나만의 것이 아니게 된다는 것이지요. 기업가 정신을 발휘하여 사람들이 원하는 상품, 삶의 질을 높여줄 수 있는 서비스를 제공하고자 하는 목적으로 기업을 세웠어도, 외부 투자자금을 받게 되면 단기적인 매출 지표에 목 매일 수밖에 없게 됩니다.


투자자들은 기본적으로 자신이 돈을 빌려준 대가로 더 많은 이익을 창출해내기를 원하기 때문입니다. 그 회사가 어떤 사회적 가치에 의해 움직이고 선량한 의무를 다하는 지에 대해서는 크게 관심 있어 하지 않지요. 아무리 좋은 뜻에 의해 기업이 운영되고 장기적 전략을 바라보고 움직인다 해도, 그것이 당장의 매출 지표로 나타나지 않는다면 그 회사에 투자할 이유가 없습니다. 세상에는 얼마든지 단기적인 매출을 올리는 회사들 - 그리고 그만큼 재빠르게 몰락하는 회사들 - 이 넘쳐나거든요. 먼 미래를 보고 움직이는 회사에 돈을 투자하는 것은 기회비용이 높기 때문에, 지금 눈 앞에 좋은 매출이 기대되는 회사 중심으로 자금을 투자하고 회수하며 자본금을 운용하게 됩니다.


기업 입장에서는 난감합니다. 투자금을 받지 않자니 상대 경쟁 업체의 자본력에 밀려 시장을 장악당할 위기에 처하고, 투자금을 받자니 회사의 매 분기 매출마다 민감하게 투자자들의 자본 이윤에 집중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지게 됩니다. 때론 사업 방법이 비윤리적이더라도, 매출이 기대되고 법을 회피할 수 있다면 여론의 비판을 감수하고서라도 사업에 착수하게 됩니다. 다른 경쟁자들도 다 그렇게 사업을 하니까요. 그리고 기업의 비윤리적 행위가 외부에 알려지지만 않으면 되기도 하고, 사업 규모가 커지면 돈을 이용하여 언론을 매수하여 깨끗한 기업 이미지를 만드는 방법도 있습니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자본금을 감당할 도리가 없습니다. 회사가 망해서 조직을 축소하고 성장동력을 잃어버릴 바에는, 후일을 기약하기 위해 지금 당장 손에 흙을 묻힐 수밖에 없습니다. 안타까운 것은 항상 후일을 기약하기만 하고 눈 앞에 이익만 좇을 수밖에 없는 상황만 벌어진다는 것이지만요.


기업도 사람과 마찬가지로 자체적인 순환의 과정이 필요합니다. 사람이 낮에 열심히 일을 하고 밤에 잠을 자며 휴식을 취하듯이, 기업도 어느 정도 빠른 성장을 하게 되었을 때 그에 상응하는 수준의 휴식기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것이지요. 늘 앞만 보고 성장하는 기업들은 그에 수반하는 기업의 내실을 다지는 일에 소홀히 할 수밖에 없습니다. 기업의 모든 관심사가 매출에 집중되어 있을 때 빠른 상황에 대응하기 위해 잦은 사업부의 신설과 통폐합 등에 몰두하지만, 새로운 사업은 대부분 실패할 수밖에 없기 마련입니다. 남는 것은 그 안에서 휘둘린 근로자들의 패배감과 회사에 대한 불신, 자기 안위에 대한 불안뿐이지요.


그 전에 조금만 성장의 기치를 낮추고 회사 근로자에 대한 돌봄과 배려, 회사 가치와 사명에 대한 합일, 근로자들 사이의 공동체 의식을 고양시킬 시간이 주어진다면, 앞서 이야기한 잦은 사업부의 신설과 통폐합 등을 하고 다수의 시도가 실패하더라도 기업에는 여전히 성장 동력이 남아있을 것입니다. 기업이 처음 내세웠던 소비자를 위한 경영, 사회에 기여하는 서비스의 가치를 지킬 수도 있을 것이고요.


이를 경영 언어로 표현하면 지나치게 빨리 성장하면서 비정상적으로 커진 비효율적인 사업부를 정돈하는 시간을 통해, 회사 내 근로자들이 가장 최적의 자리에서 최고의 성과를 내고 그들 또한 기여의 보람을 느낄 수 있도록 재조직화하는 것입니다. CSR이나 CSV 같은 경영 전략이 마케팅 표어가 아닌 진실된 형태로 나타나는 것이기도 합니다.


아마도 새로운 시도를 할 때에도 다른 경쟁 회사보다 훨씬 강력한 응집력을 발휘하여 멋진 결과물을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입니다. 잠깐의 성장 정체가 훗날의 큰 성장을 기약할 수 있는 에너지를 축적하는 시간이 되는 것이지요.


실제로 우리나라 중소기업의 단계에서 중 기업 규모로 커진 회사들의 사례를 보면, 갑자기 성장하는 시기에는 일시적인 성장의 정체가 찾아왔다고 합니다. 이때 크게 두 가지 방법을 통해 그런 위기를 극복하게 되는데, 하나는 ERP(전사적자원관리) 시스템의 도입이고 나머지 방법은 회사의 목표 매출을 일시적으로 낮추어 잡아서 조직이 재편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했다는 것입니다. ERP의 도입은 단순히 IT를 통해 경영 자원(자본이나 생산 재료, 근로자의 업무 자료 등)을 시각화한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ERP 에 구성되는 기업의 업무 프로세스를 정의하고 최적화하는 형태의 구조화, 그에 따른 조직 구성원들의 적응 독려도 포함됩니다.


그런데 자본주의 투자자들의 속성과 우리 사회에 만연하여 있는 성장 위주의 사고관(개인소유 사상으로 비롯된)은, 성장의 정체나 하락이라는 것 자체를 불경시하고 두려워합니다. 그래서 ERP를 도입하고 기업 문화를 단단히 하는 액션은 취하지만, 실상은 매출에 기반한 업무 롤이 그대로 적용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근로자 입장에서는 더 혼란스러운 상황에 빠집니다. 캐치프레이즈는 화합과 단결을 외치는데, 성과 평가와 인사고과는 매출에 의해서 결정되니까요. 눈치가 빠른 이들은 알아서 잘 분위기에 맞추어 행동하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앞과 뒤가 다른 회사 상황에 당황해합니다. 그리고 둘 다 "이것이 사회 현실이다."는 논리를 학습하게 되지요.


사람이 성장하는 과정도 이런 정체의 시간, 곁가지를 쳐내는 작업이 이루어집니다. "사춘기"라고 부르는 질풍노도의 시기가 바로 그것이지요. 겉으로 보기에는 정체나 하락이라고 표현하지만 실제로는 그 시간을 통해 더 도약할 수 있는 힘을 얻습니다.


실제 사람의 뇌는 일생에 걸쳐 약 2번의 뇌신경 재조직 활동이 일어나는데, 태어난 이후 약 몇 년간, 그리고 청소년 사춘기에 들어선 약 몇 년간이라고 합니다. 아주 많던 뇌세포들이 이 기간을 지나면서 상당한 양이 퇴화된다고 합니다. 단순히 숫자로만 따지면 뇌세포가 줄어든다고 볼 수 있지만, 이 과정을 통해 생각과 관점을 정립하고 집중할 수 있는 가지치기가 이루어집니다. 청소년기에 이 시기를 거치고 나면, 비로소 어른으로서 갖는 추상적 사고 능력이 완성되고 자아가 형성되어, 한 명의 인간으로서 존재할 수 있는 바탕이 되는 것이지요.


사실 이런 정체와 하락에 대한 관점을 달리 보는 것은 어느 한 사람의 힘, 한 기업의 역량으로 될 일은 아닙니다. 기업은 여러 사람의 집단의식이 엮어진 환경에 놓여있고, 경쟁 업체 또한 마찬가지의 룰로 움직이기 때문에 사회 전반의 의식이 바뀌지 않고서는 기업 자체의 순환을 달성할 수 없습니다. 몇몇 근로자와 상생하는 좋은 기업이라고 소개하는 회사들도 수많은 기업 중에 운 좋은 하나의 사례 - 게다가 대체 불가능한 해당 분야의 1위 업체 - 일 뿐, 대부분의 기업에 적용할 수 있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그러므로 사회 전반적인 인식 변화가 제일 중요한 과제이며, 그로부터 이어지는 "기업-근로자"의 자본 순환구조, 기업의 소유권에 대한 구조, 개인에 대한 사회 안전보장 망 등이 갖추어지지 않고서는 요원한 일입니다. 이와 관련된 생각과 가능성에 대해서는 추후 자세히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본 글은 연재 형식으로 2015년 10월부터 2016년 1월까지 작성되었습니다. 여기 있는 내용들을 더 다듬고 짜임새있게 구성하여, 2017년 5월『이기심의 종말』로 출간되었습니다. 내용을 보시고 흥미가 동하신 분들은 아래 소개를 참조하시여 책을 구매해 보시면 더욱 알차고 최신화된 글을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



신자유주의적 시장자본시스템에 의해 파편화-양극화된 사회,

한계비용 제로사회와 4차 산업혁명이 가져다줄 희망과 위기,

힘없는 개인은 혼돈의 미래를 헤쳐나가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가?

첨단 기술 사회 속 우리는 어디에 서있고 어디로 나아가야 하는가?


사회, 경제, 정치, 문화, 교육, 역사, 미래기술 등 다양한 영역의 현상을 조망하고 원인을 분석하여, 순환의 가치관과 이타적 본성의 공동체의 탄생을 주문하는 『이기심의 종말』(부제: 당신은 어떤 내일을 꿈꾸십니까)이 출간되었습니다.


미래가 어찌 흘러가게 될지 궁금한 분들, 두루 넓은 영역의 시대상과 기본적인 원리를 살피고픈 분들,

통합의 관점에서 사회 문제를 바라보고자 하는 분들, 원칙과 상식이 있는 사회를 만들기를 원하시는 분들,모두에게 자신있게 추천합니다.


지금 바로 『이기심의 종말』을 만나보십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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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풍 - https://goo.gl/gPqNDA

교보 - https://goo.gl/3hhkU7



< 글 목차 정보 >

1장. 우리 앞의 현실

1. 자본주의와 개인소유 사상
자본주의 / 블라인드 스팟 / 개인소유 사상
2. 개인소유 사상의 사회문화
생존과 투쟁, 공동체의 역사 / 한국의 공동체 해체 / 혼자가 될 때까지 / 경영과 노동 / 기업 조직 문화 / 교육 / 자녀 양육 / 국가 정치/ 경제 제도 / 학문과 문화 / 성 역할 갈등 / 이성 교제 / 행복
3. 지속가능한 삶의 위기 - 개인편
경제 능력의 상실 / 직업의 귀천 / 실직과 사회 안전망 / 결혼, 출산, 경력단절 / 산업 구조의 변화 / 주거 불안정 / 자녀교육 / 질병, 사고, 장애 / 다시 일어설 기회가 없는 사회
4. 지속가능한 삶의 위기 - 사회편
빈부 격차, 소득 격차 / 청년 빈곤 / 저출산, 노령화 / 산업 성장의 정체 / 미래 인재의 부재 - 교육과 기업문화 / 필연적 불황과 전쟁 


2장. 선택의 시간

5. 순환, 지속가능한 삶의 가능성
개인의 위기, 사회의 위기 / 순환의 부재 / 기업 내 개인의 순환 / 기업 스스로의 순환 / 기업 밖에서의 개인의 순환 / 자본의 순환 / 직업 분배의 모순 / 직업의 가치, 개인의 가치, 사회적 효용 / 순환이 있는 사회
6. 공유경제와 한계비용 제로사회
공유경제의 역사 / 공유지의 희극, 인터넷 / 인터넷 + 자본주의 = 한계비용 제로사회 / 에너지 인터넷, 운송 인터넷 / 공유경제의 현재와 미래
7. 제4차 산업혁명과 위기의 미래
제4차 산업혁명 / 이제 기업과 노동자는 어떻게 돈을 벌지? / 현대판 러다이트 운동 / 창의적 직업으로의 전환, 가능할까? 


3장. 미래를 여는 열쇠

8. 공유경제 시대의 사상들
협력적 공유주의자의 시대 / 망중립성, 오픈소스 운동가들 / 공유가 소유를 앞서 나가는 시대 / 공유가 가진 힘의 원천 / 공유경제 시대의 동반자들
9. 지속가능한 삶을 향한 의식적 연대
대안적 삶을 추구하는 이들의 연대 협력의 필요성 / 기술의 진보, 연대의 가능성 / 중앙 집중화된 권력에서 분산된 권력으로 / 연대 협력의 장애물들
10. 개인소유 사상의 그림자
미래를 결정하는 것 / 자기포장, 위선, 성장 절대주의 / 배려와 공감이 없는 자기중심 사고 / 불신 / 물질만능주의와 소유욕
11. 개인에서 공동체로
내려놓기 / 보다 영속적인 가치 / 관심, 인정, 배려 / 공동체 의식의 확장 


4장. 우리가 꿈꾸는 세상

14. 우리가 꿈꾸는 세상
소유자, 생산자, 소비자가 하나 된 공유기업 / 생의 지속가능성이 보장되는 사회 안전망 / 최소 지원(복지)의 기준 : 주거, 교육, 질병 / 개인의 성장과 사회적 기여에 특화된 직업 / 변화된 교육이 바꾸어갈 세상 / 제약적 가족 관계에서의 해방 / 여성에 대한 관념의 변화 / 여성, 남성이 아니라 개인으로 대접받는 사회 / 지속가능한 삶이 있는 사회
15. 우리를 넘어 세계를 향해
  페이비언 사회주의, 칼 폴라니, 제3의 길 / 서양과 동양의 문화적 차이 / 언어의 힘, 한민족의 정신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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