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화, 조직화를 통한 생존과 투쟁의 역사
생존과 투쟁
인간, 동물, 식물, 세균에 이르기까지, 모든 살아있는 유기체들이 갖는 공통점이 있다면 바로 "생존과 종족 보존의 본능"입니다. (생물이라고 말하기 애매한 바이러스까지도요.) 최초에 어떻게 생겨났는지 밝혀지진 않았지만, 세상에 존재를 드러낸 이상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합니다. 그중 먹을 것, 안전한 거처는 생명 유지에 가장 필수이자 기본적인 조건입니다. 하지만 자원은 부족하고 외부 환경은 거칠기 때문에 각 생명체들은 생존을 위해 이 세상 모두와 투쟁하며 살아가지요.
한편 사람들은 다른 생명체들과 다르게 먹을 것과 안전한 거처만으로 만족하지 못했습니다. 과거를 후회하고 미래를 두려워하는 이성적 사고가 있어서, 사바나의 사자처럼 배가 부르면 사냥을 그만두는 것이 아니라 먼 뭇날을 위해 자원을 축적하였습니다. 더불어 존재의 이유를 탐구하는 영성적 능력은 이 세상에 자신이 존재해야 될 이유를 찾았고, 가치를 인정받기 위한 정신적 에너지를 갈구하게 만들었습니다. 미래에 대한 안정과 정신적인 만족감까지 갖추어야 비로소 사람답게 살고 행복하다고 느꼈던 것이지요.
인간 사회의 생존과 투쟁의 역사는 16세기 본격적으로 나타난 "자본주의 개인소유 사상"에 의해 획기적인 변화를 맞이합니다. 중세 시대까지만 하더라도, 생존에 필요한 자원은 "신으로부터 잠시 빌려 쓰는 것"이었고 존재의 가치 증명은 "신이 지정한 운명에 충실히 사는 것"으로 충족되었습니다. 투쟁을 통해 얻은 보상은 당연히 신의 것이었으며, 신을 따르지 않는 자들은 투쟁의 대상이 되었지요. 하나의 신 아래 존재하는 사람들은 지배, 추종, 협력의 관계에서 공동체를 이루고 살았습니다.
자본주의의 "개인이 소유한다."는 사상은 생존을 위해서 나 홀로, 필요한 자원을 얻고 지켜야 함을 인식시켰습니다. 세상에 있는 만물은 이제 신의 것이 아니라, 국가의 법이나 힘에 의해 개인의 것이 되었습니다. 투쟁의 대상은 더 많은 자원을 소유한 다른 개인이었고, 한정된 자원에서 다른 사람의 것을 가져와야만 생존할 수 있었습니다. 어떠한 일을 하더라도 자신의 이해관계를 고려하는 것이 제일 중요한 가치가 되어버렸습니다.
공동체 -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
사람들은 각자의 생존을 위해 세상 모두와 투쟁해야 하는 처지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홉스가 『리바이어던』에서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 이란 문장으로 당시 변화된 시대 문화상을 멋지게 표현하였지요. "공동체"의 속성은 더 이상 관습에 따라 공동의 이익을 추구하는 집단이 아니라, 철저한 계약에 의거한 개인들의 이익 추구 수단으로 바뀌었습니다. 서양 사상가들은 공리주의 이론, 사회계약론 등을 개념화하여 자신들 - 더 엄밀히 말하자면 기득권들의 삶의 방식을 정당화하였지요.
그러면서 서양은 수백 년간 변화된 공동체 문화가 안정적으로 자리잡기 위한 과정을 거쳤습니다. 근대 국가의 출현, 시민 혁명, 종교 전쟁, 제국주의, 산업 혁명, 여성 참정권 운동 등 수많은 사건이 일어나고 사상과 제도가 출현하였습니다. 때로는 치열한 논쟁을, 어떤 때에는 참혹한 전쟁을 치르면서 사회가 잘 기능할 수 있는 법과 문화를 점진적으로 발전시켰습니다.
근대 서양 역사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상호 간 "신뢰"를 쌓기 위한 제도적 장치와 문화적 토양을 준비한 과정이었습니다. 사회 내·외부적인 도전에 맞서 새로운 질서를 만들고, 기존 규칙을 강화하기도 하면서 힘을 가진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이 균형을 이루어 살 수 있는 "정당성과 실질적 제도"를 만들어낸 것입니다. 공동체가 지향하는 목표나 방법이 시대와 맞지 않아 다른 공동체에 비해 비효율적이기도 했고, 내부적인 모순이 누적되어 돌이킬 수 없는 상황에 이르러 무너지는 경우들도 있었지만, 이들을 타산지석 삼아 차근차근 변화시켜 나갔던 것이지요.
결국 어떤 공동체라도 영속적으로 잘 기능하기 위해서는 구성원 간 혹은 사회와 개인 간 "신뢰"가 중요합니다. 사상과 제도의 완벽성 여부를 떠나, 사람들이 얼마나 서로 믿고 맡길 수 있느냐에 따라 사회적 합의의 수월성이 결정되고 그것은 공동체의 시너지와 전체 역량을 좌우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축구 시합에서 선수들끼리 미리 약속된 플레이에 따라 움직여 전광석화 같이 상대의 공을 빼앗아 골을 내는 장면과 흡사합니다. 불필요한 분석과 계산 과정을 건너뛰고 최소의 투입으로 최고의 결과를 이끌어내는 것이지요.
한국의 공동체
한국은 서양이 수백 년간 겪었던 역사를 불과 100 년도 채 안 되는 기간에 거쳐버렸습니다. 할아버지는 일제 식민지 시대, 아버지는 독재 산업화 시대, 자녀는 민주 정보화 시대의 가치 아래 살아온 것이지요. 그만큼 세대 간 공감대도 낮았고, 극명한 가치관의 갈등을 겪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게다가 해방 이후 산업화 시대에 있었던 정치적 상황으로 인해 지역 간, 집단 간 갈등까지 더해져서 온 나라가 갈등과 해체의 늪에 빠져있는 상태입니다.
앞서 서양의 역사와 비교해 보면, 이는 공동체의 "신뢰" 부재로 인한 문제라고 볼 수 있습니다. 사회가 지나치게 빠르게 성장하는 바람에, 상호 간 신뢰할 수 있는 제도와 문화가 갖추어질 시간이 없었던 것이지요. 구성원들끼리도 믿지 못하고 사회(정부와 같은 조율 기관)와 국민 사이에도 신뢰가 없으니, 불필요한 과정과 제도들이 난무합니다. 여기에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은 나의 것을 지키고자 하는 배타성을 한층 더 심화시킵니다. 개인은 더욱 홀로 자립할 수밖에 없으며, 자신이 아닌 그 누구도 믿지 못하는 사회가 되어가는 것입니다.,
특히 1998년 IMF 이후 무너진 평생직장의 개념은 이 사회의 공동체 신뢰를 완전히 해체시켰습니다. 그 어떤 어려운 일이 생겨도 지켜줄 것 같았던 사회(기업)는 사람들을 헌신짝 던지듯 내버렸습니다. 그 후 약 20여 년간 신자유주의 물결에 따라, 개인소유의 사상은 강화되었고 불신과 갈등은 늘어갔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이 사회 거의 모든 영역이 갈등과 투쟁밖에 남지 않은 지경이 되었지요. (참고 기사 : 외로운 대한민국, "어려울 때 의지할 친구 없어" (바로가기 링크))
불투명한 사회 제도와 사회 기득권의 자기 밥그릇 챙기기는 신뢰와 질서가 무너지는데 더욱 부채질 하였습니다. 법은 힘을 가진 자에게만 유리했고, 큰 이익은 정의롭지 못한 방법으로 특정 소수인들에게 집중되었습니다. 법을 믿고 따르는 사람은 바보가 되고, 법을 지키지 않고 큰 돈을 번 사람이 오히려 법의 비호를 받는 이상한 사회가 되어버렸습니다. 사회 질서를 대표하는 법부터 이러하니 생존을 위해서는 질서보단 개인의 이익을 추구해야 한다는 인식이 팽배해졌습니다.
결국 자기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개인소유 사상"이 남긴 사회 문화의 변화는 개인 투쟁과 사회 불신, 공동체의 해체를 시작으로 정치행정, 교육, 기업문화, 자녀양육, 성차별, 이성관계, 물질만능주의, 개인의 불행 등 범위와 수준을 막론하고 사회 전 분야에 걸쳐 지대한 영향을 주었습니다. 미처 우리가 인식하지도 못하는 사이 무의식에 스며들어 우리의 사고방식을 바꾸어놓은 것이지요.
본 글은 연재 형식으로 2015년 10월부터 2016년 1월까지 작성되었습니다. 여기 있는 내용들을 더 다듬고 짜임새있게 구성하여, 2017년 5월『이기심의 종말』로 출간되었습니다. 내용을 보시고 흥미가 동하신 분들은 아래 소개를 참조하시여 책을 구매해 보시면 더욱 알차고 최신화된 글을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
신자유주의적 시장자본시스템에 의해 파편화-양극화된 사회,
한계비용 제로사회와 4차 산업혁명이 가져다줄 희망과 위기,
힘없는 개인은 혼돈의 미래를 헤쳐나가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가?
첨단 기술 사회 속 우리는 어디에 서있고 어디로 나아가야 하는가?
사회, 경제, 정치, 문화, 교육, 역사, 미래기술 등 다양한 영역의 현상을 조망하고 원인을 분석하여, 순환의 가치관과 이타적 본성의 공동체의 탄생을 주문하는 『이기심의 종말』(부제: 당신은 어떤 내일을 꿈꾸십니까)이 출간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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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 목차 정보 >
1장. 우리 앞의 현실
1. 자본주의와 개인소유 사상
자본주의 / 블라인드 스팟 / 개인소유 사상
2. 개인소유 사상의 사회문화
생존과 투쟁, 공동체의 역사 / 한국의 공동체 해체 / 혼자가 될 때까지 / 경영과 노동 / 기업 조직 문화 / 교육 / 자녀 양육 / 국가 정치/ 경제 제도 / 학문과 문화 / 성 역할 갈등 / 이성 교제 / 행복
3. 지속가능한 삶의 위기 - 개인편
경제 능력의 상실 / 직업의 귀천 / 실직과 사회 안전망 / 결혼, 출산, 경력단절 / 산업 구조의 변화 / 주거 불안정 / 자녀교육 / 질병, 사고, 장애 / 다시 일어설 기회가 없는 사회
4. 지속가능한 삶의 위기 - 사회편
빈부 격차, 소득 격차 / 청년 빈곤 / 저출산, 노령화 / 산업 성장의 정체 / 미래 인재의 부재 - 교육과 기업문화 / 필연적 불황과 전쟁
2장. 선택의 시간
5. 순환, 지속가능한 삶의 가능성
개인의 위기, 사회의 위기 / 순환의 부재 / 기업 내 개인의 순환 / 기업 스스로의 순환 / 기업 밖에서의 개인의 순환 / 자본의 순환 / 직업 분배의 모순 / 직업의 가치, 개인의 가치, 사회적 효용 / 순환이 있는 사회
6. 공유경제와 한계비용 제로사회
공유경제의 역사 / 공유지의 희극, 인터넷 / 인터넷 + 자본주의 = 한계비용 제로사회 / 에너지 인터넷, 운송 인터넷 / 공유경제의 현재와 미래
7. 제4차 산업혁명과 위기의 미래
제4차 산업혁명 / 이제 기업과 노동자는 어떻게 돈을 벌지? / 현대판 러다이트 운동 / 창의적 직업으로의 전환, 가능할까?
3장. 미래를 여는 열쇠
8. 공유경제 시대의 사상들
협력적 공유주의자의 시대 / 망중립성, 오픈소스 운동가들 / 공유가 소유를 앞서 나가는 시대 / 공유가 가진 힘의 원천 / 공유경제 시대의 동반자들
9. 지속가능한 삶을 향한 의식적 연대
대안적 삶을 추구하는 이들의 연대 협력의 필요성 / 기술의 진보, 연대의 가능성 / 중앙 집중화된 권력에서 분산된 권력으로 / 연대 협력의 장애물들
10. 개인소유 사상의 그림자
미래를 결정하는 것 / 자기포장, 위선, 성장 절대주의 / 배려와 공감이 없는 자기중심 사고 / 불신 / 물질만능주의와 소유욕
11. 개인에서 공동체로
내려놓기 / 보다 영속적인 가치 / 관심, 인정, 배려 / 공동체 의식의 확장
4장. 우리가 꿈꾸는 세상
14. 우리가 꿈꾸는 세상
소유자, 생산자, 소비자가 하나 된 공유기업 / 생의 지속가능성이 보장되는 사회 안전망 / 최소 지원(복지)의 기준 : 주거, 교육, 질병 / 개인의 성장과 사회적 기여에 특화된 직업 / 변화된 교육이 바꾸어갈 세상 / 제약적 가족 관계에서의 해방 / 여성에 대한 관념의 변화 / 여성, 남성이 아니라 개인으로 대접받는 사회 / 지속가능한 삶이 있는 사회
15. 우리를 넘어 세계를 향해
페이비언 사회주의, 칼 폴라니, 제3의 길 / 서양과 동양의 문화적 차이 / 언어의 힘, 한민족의 정신문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