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은 힘이다, 정보 통신기술 발달의 혜택
기술의 진보, 연대의 가능성
인류 역사에서 기술의 진보는 생각지도 못한 방식으로 사회 전체를 송두리째 바꾸어놓기도 하였습니다. 구텐베르크의 인쇄술이 종교 개혁에 힘을 실어 교황 중심의 중세 질서를 무너뜨렸고, 나침반의 발명이 지중해 및 실크로드 중심의 상업 권력을 대양 중심으로 재편시켰습니다. 화약 및 총포술은 기사 중심의 봉건 귀족세력이 힘을 잃게 하였고, 스페인 무적함대가 영국 해군에게 무참히 짓밟히는 이변을 낳았습니다. 이러한 변화는 단지 권력의 이동뿐만 아니라 신정 국가에서 군주 국가로의 변화, 봉건 체제에서 초기 자본주의 체제로의 변화 등 이전 시대에는 상상하지도 못했을 방식의 정치 제도 전환 및 경제 시스템을 가능케 하습니다.
지금 우리가 사는 시대는 이에 못지않은 기술의 진보로 새로운 시대의 진입을 눈 앞에 두고 있습니다. 바로 한계비용이 제로에 가깝게 된 커뮤니케이션 인터넷을 중심으로 한 정보기술의 혁명이 그 주인공입니다. 인터넷과 관련 기술의 발달은 소통에 필요한 비용을 거의 무료 수준으로 절감시킴으로써, 이전 시대에는 상상도 하지 못한 방식으로 비즈니스 환경을 재편하고 있습니다. 이미 우리는 구글, 애플, 페이스북 같은 회사가 전통 제조산업의 강자들을 제치고 세계 유수의 기업으로 등장한 것을 목도하고 있습니다.
그럼 과연 "커뮤니케이션(=소통)"이란 무엇이길래 이처럼 거대한 사회 변화를 이끌어내고 있는 것일까요? 우리는 평상시에는 크게 의식하고 있지 못하지만 "소통"은 많은 곳에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어린아이와 부모 간의 소통에서부터, 단체 운동경기, 기업 내 팀워크, 사회적 소통까지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늘 소통이 함께하고 있지요. 그리고 원활한 소통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생각 외로 많은 비용이 필요하며, 제대로 된 소통의 여부에 따라 일의 성패가 좌우되기까지 합니다.
축구 경기에서 11명의 플레이어가 약속된 전술에 따라 움직이고, 눈빛 교환을 통해 서로의 위치를 조정하는 팀워크가 탄탄한 팀은 개인 역량이 뛰어난 팀을 상대로도 대등한 시합을 겨룰 수 있을 만큼 힘을 발휘합니다. 회사에서는 조직의 손, 발이 잘 맞도록 하기 위해 고유의 보고, 결제 시스템을 활용하며, 퍼실리테이션 회의 기법, 원격 화상 회의, 정해진 과업 매뉴얼 등 여러 가지 방법을 동원하여 의사결정 체계를 효율화하려 노력합니다. 상황의 변화를 빠르고 정확하게 캐치하고, 올바른 대응방안을 모색하여 즉시 실행에 옮길 수 있는 유기적인 조직을 만드는 것이 21세기 기업 생존 전략의 하나로 꼽히기까지도 하지요.
18세기 미국의 철도 황금시대도 기업 관료제를 기반으로 조직 내 소통을 일원화시켜 중앙 통제하에 각 지역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게 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었습니다. 이후 19세기 전보 및 전화의 통신 시설이 등장하면서 각 기업의 통제력은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을 정도로 확장되었지요. 그리고 인터넷은 단순히 소리와 문자 정보뿐만 아니라 영상 및 아주 복잡한 데이터도 순식간에 송수신이 가능케 함으로써, 지구 반대편에 있는 공장의 계기판을 조작할 수 있을 정도로 소통 기술을 고도화시켰습니다.
이렇게 경쟁자에 비해 한계비용을 낮추려는 자본주의 속성이, 소통에 필요한 기술적 비용을 무료에 가깝게 낮추어낸 후, 아이러니하게도 발전의 혜택은 자본주의 질서에 대항하려는 사람들에게 더 큰 기회가 주어지게 되었습니다. 대안적 삶을 추구하는 사람들의 본질적 핸디캡이었던 "자본의 부족"이, 기술의 혜택으로 인해 상당 부분 보완되었던 것입니다. 그들은 여태껏 조직화, 홍보, 이벤트 모든 것이 돈으로 움직이는 사회에서, 부를 손에 쥐고 있는 기득 세력에 대해 늘 밀리는 "기울어진 운동장"의 게임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던 것이 "소통" 비용이 무료화 됨으로써 조직화 및 홍보 이벤트 운영에 자본에 절대 의존하던 패러다임이 바뀌었고, 이제는 해볼 만한 게임으로 변모한 것이지요.
그뿐만이 아닙니다. SNS 및 블로그와 같은 개인 미디어 서비스는 중앙에서 통제되던 정보 권력이 대중에게 넘어가는 일대 혁신을 일으켰습니다. 불과 십 년 전이었으면 뉴스에 나온 대로, 신문에 나온 대로 곧이 곧대로 믿었어야 할 여러 사회적 사건에 대해서, 다양한 채널로 사실 관계를 접할 수 있는 통로가 열리게 된 것이지요. 정말 잘 꾸민 거짓이 아닌 이상, 누군가는 진실을 목격하고 알리며 전파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막으려 해도 막을 수 없고, 거짓으로 왜곡하여도 어디선가 진실의 목소리가 들리는 시민감시 권력이 등장한 것입니다. 중앙 권력의 힘은 약해지고, 파편적 개인들의 암묵적으로 조직화된 힘이 강해지게 된 것이지요.
소통 비용의 무료화는 여러 사회 분야에 관심 있는 사람들의 조직화를 낮은 비용에 가능토록 하였고, 시민감시 기능의 강화로 거대 권력만이 가능했던 감시 통제기능까지 갖추게 되었습니다. "지속가능한 삶"을 지향하는 소소한 개인들이, 가볍게 행동하면서도 단단한 연대를 이룰 수 있는 기술적 토대가 마련된 것이지요. 사람들이 조금만 관심을 가지고 생각을 공유하고 목소리를 낸다면, 기존 질서에 대항할 거대한 힘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린 것입니다.
중앙 집중화된 권력에서 분산된 권력으로
앞서 설명했던 공유경제 시스템이라든지, 시민 연대의 협력 가능성, SNS 등 시민 감시기능의 강화는 결국 중앙 집중화된 권력에서 개인에게 분산된 권력으로의 변화를 가져올 것입니다. 산업화 시대 기술의 부족으로 어쩔 수 없이 중앙 통제를 했었어야 하는 시절을 벗어나, 각 개인이 스스로 생각하고 움직이면서도 유기적인 조직력을 가질 수 있는 바탕이 마련된 것입니다.
이미 몇몇 기업에서도 중앙 통제 방식의 비효율성을 깨닫고, 각 근로자들이 주체적으로 일할 수 있으면서도 성과 효율을 극대화시킬 수 있는 각종 기술 및 제도를 도입하고 있습니다. 도요타의 "간판" 방식의 생산 시스템, 위키피디아의 "애자일 & XP" 기반 프로그래밍, 유수의 벤처 기업들이 추구하는 "린스타트업"들은 중앙 집중적 통제 방식의 단점(부족한 정보에 기반한 의사결정, 느린 의사소통 과정)을 보완하기 위해 등장한 기법들이지요. 게다가 각 근로자들이 스스로의 권한을 가지고 일을 하는 것은 사람들의 작업 동기를 향상시킨다는 점에서도 탁월한 생산성의 향상, 조직력의 강화를 꾀할 수 있는 것입니다.
공유경제의 사회에서 정보 통제 권력이 중앙에서 지방으로 이양된다는 것은, 우리 사회의 여러 제도에도 큰 영향을 미칠 것입니다. 당장은 눈에 드러나지 않겠지만, 서서히 일상의 행동 패턴(분권화된 경제 권력)과 맞지 않는 사회적 권력, 문화적 권력, 정치적 권력의 이양 방식에 불편함을 느끼고 의문을 던지기 시작할 것입니다. 이미 기술적으로 충분히 검증되었기 때문에 더욱 목소리는 강해질 것입니다. 이전 시대의 제도를 모든 면에서 뛰어넘는 새로운 방식의 구체적 대안을 제시하는 사람들도 늘어날 것입니다.
여러 분야의 조직 체계도 수직적 형태에서 수평적 형태로 변화할 것입니다. 누군가 의사결정을 주도하는 사람은 존재하지만, 예전처럼 모든 것이 불투명한 상태에서 비밀리에 일을 해치우는 것이 아니라, 모든 정보가 공개된 투명한 상태에서 상식과 시스템에 의거한 선택이 이루어지게 될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덮어두고 모르쇠로 일관하거나 권위를 앞세워 반대 목소리를 무마시키는 무능력한 리더는 설자리를 잃게 될 것입니다. 자신의 선택이 어떤 면에서 타당하고 어떤 면에서 단점을 보완할 것인지 명확히 설명하고 제시할 수 있는 사람에게 권력이 주어질 것입니다.
그 혜택은 지금 우리가 겪는 불합리한 사회를 만들어낸 여러 정치, 사회, 경제 제도의 개선을 이끌어낼 동력으로 이어질 것입니다. 힘을 가진 사람끼리 몰래 감추고, 자기들끼리 이득을 나눠먹기 하고, 불공정한 룰을 만들어서 보편적 대중을 착취하는 비윤리적인 행태가 어려워지게 되겠지요. 1인 1표를 주어 선거철에만 넙죽 엎드리는 정치인들을 양산하는 흉내내기식 민주주의에서, 권력이 항상 대중과 시스템에 있는 진정한 민주주의가 이룩될 수 있는 가능성도 열릴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은 "소통" 비용의 무료화가 가능케 한 미래입니다. 기술은 이제 막 완성 단계에 접어들었고, 이제 남은 것은 우리들 개개인의 생각의 변화입니다. "개인소유 사상"에 물들어 있는 약육강식의 짐승과 같은 삶의 습성을 희석시키고 "집단공유 사상"에 기반한 배려와 순환의 가치를 심을 수 있다면, 모두가 이상적으로 그리는 "건강한 삶"과 "인류애"와 "지속가능한 삶"이 존재하는 사회를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입니다.
본 글은 연재 형식으로 2015년 10월부터 2016년 1월까지 작성되었습니다. 여기 있는 내용들을 더 다듬고 짜임새있게 구성하여, 2017년 5월『이기심의 종말』로 출간되었습니다. 내용을 보시고 흥미가 동하신 분들은 아래 소개를 참조하시여 책을 구매해 보시면 더욱 알차고 최신화된 글을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
신자유주의적 시장자본시스템에 의해 파편화-양극화된 사회,
한계비용 제로사회와 4차 산업혁명이 가져다줄 희망과 위기,
힘없는 개인은 혼돈의 미래를 헤쳐나가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가?
첨단 기술 사회 속 우리는 어디에 서있고 어디로 나아가야 하는가?
사회, 경제, 정치, 문화, 교육, 역사, 미래기술 등 다양한 영역의 현상을 조망하고 원인을 분석하여, 순환의 가치관과 이타적 본성의 공동체의 탄생을 주문하는 『이기심의 종말』(부제: 당신은 어떤 내일을 꿈꾸십니까)이 출간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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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 목차 정보 >
1장. 우리 앞의 현실
1. 자본주의와 개인소유 사상
자본주의 / 블라인드 스팟 / 개인소유 사상
2. 개인소유 사상의 사회문화
생존과 투쟁, 공동체의 역사 / 한국의 공동체 해체 / 혼자가 될 때까지 / 경영과 노동 / 기업 조직 문화 / 교육 / 자녀 양육 / 국가 정치/ 경제 제도 / 학문과 문화 / 성 역할 갈등 / 이성 교제 / 행복
3. 지속가능한 삶의 위기 - 개인편
경제 능력의 상실 / 직업의 귀천 / 실직과 사회 안전망 / 결혼, 출산, 경력단절 / 산업 구조의 변화 / 주거 불안정 / 자녀교육 / 질병, 사고, 장애 / 다시 일어설 기회가 없는 사회
4. 지속가능한 삶의 위기 - 사회편
빈부 격차, 소득 격차 / 청년 빈곤 / 저출산, 노령화 / 산업 성장의 정체 / 미래 인재의 부재 - 교육과 기업문화 / 필연적 불황과 전쟁
2장. 선택의 시간
5. 순환, 지속가능한 삶의 가능성
개인의 위기, 사회의 위기 / 순환의 부재 / 기업 내 개인의 순환 / 기업 스스로의 순환 / 기업 밖에서의 개인의 순환 / 자본의 순환 / 직업 분배의 모순 / 직업의 가치, 개인의 가치, 사회적 효용 / 순환이 있는 사회
6. 공유경제와 한계비용 제로사회
공유경제의 역사 / 공유지의 희극, 인터넷 / 인터넷 + 자본주의 = 한계비용 제로사회 / 에너지 인터넷, 운송 인터넷 / 공유경제의 현재와 미래
7. 제4차 산업혁명과 위기의 미래
제4차 산업혁명 / 이제 기업과 노동자는 어떻게 돈을 벌지? / 현대판 러다이트 운동 / 창의적 직업으로의 전환, 가능할까?
3장. 미래를 여는 열쇠
8. 공유경제 시대의 사상들
협력적 공유주의자의 시대 / 망중립성, 오픈소스 운동가들 / 공유가 소유를 앞서 나가는 시대 / 공유가 가진 힘의 원천 / 공유경제 시대의 동반자들
9. 지속가능한 삶을 향한 의식적 연대
대안적 삶을 추구하는 이들의 연대 협력의 필요성 / 기술의 진보, 연대의 가능성 / 중앙 집중화된 권력에서 분산된 권력으로 / 연대 협력의 장애물들
10. 개인소유 사상의 그림자
미래를 결정하는 것 / 자기포장, 위선, 성장 절대주의 / 배려와 공감이 없는 자기중심 사고 / 불신 / 물질만능주의와 소유욕
11. 개인에서 공동체로
내려놓기 / 보다 영속적인 가치 / 관심, 인정, 배려 / 공동체 의식의 확장
4장. 우리가 꿈꾸는 세상
14. 우리가 꿈꾸는 세상
소유자, 생산자, 소비자가 하나 된 공유기업 / 생의 지속가능성이 보장되는 사회 안전망 / 최소 지원(복지)의 기준 : 주거, 교육, 질병 / 개인의 성장과 사회적 기여에 특화된 직업 / 변화된 교육이 바꾸어갈 세상 / 제약적 가족 관계에서의 해방 / 여성에 대한 관념의 변화 / 여성, 남성이 아니라 개인으로 대접받는 사회 / 지속가능한 삶이 있는 사회
15. 우리를 넘어 세계를 향해
페이비언 사회주의, 칼 폴라니, 제3의 길 / 서양과 동양의 문화적 차이 / 언어의 힘, 한민족의 정신문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