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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유표 Jan 04. 2016

37. 개인소유 사상의 그림자 (5)

역사에 의해 불가피하게 키워진 자본 중독자들

물질만능주의와 소유욕 1
해방 후 정치·경제·사회 발전사


조선말 서구의 문화와 양식이 유입되며 우리 문화와 개인의 가치관에는 물질만능주의의 싹이 자라기 시작했습니다. 화려한 서양 과학기술과 일본의 부유했던 삶은 당시 기득 사대부층의 눈을 홀리게 하였고, 반대급부로 외세에 밀린 채 당파 싸움에만 혈안이었던 조선의 유교적 관념 논쟁을 배척하며 멀리하게 되었습니다. 나라가 망한 이유는 전근대적인 사고방식 때문이며, 부국강병을 위해서는 서양식 물질문명을 들여와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졌지요.


일제시대를 거치면서 악랄한 수탈에 나라의 살림살이가 말이 아니었고, 해방 후 나라가 둘로 쪼개져 6·25의 비극을 겪으면서, 당시 남쪽의 생산 기반시설은 궤멸하였습니다. 하루하루 먹고사는 것도 버거운 시대를 지내온 것이지요. 지금은 잊혔다시피 한 "보릿고개"가 1960년대까지 존재했습니다. 오죽하면 오고 가는 인사말이 "식사하셨습니까?"를 사용하고, 어머니께서 자식들을 볼때마나 건네는 말씀이 "밥은 먹었니?"일까요? 가진 것이 하나도 없는 빈털터리였기에, 아마도 우리 민족은 물질의 소유에 더 집착하게 되었을는지도 모릅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미국과 소련 간 냉전시대에서 우리나라는 미국 중심 자유민주-자본주의 진영의 성장 아이콘으로 만들기 위한 전략적 지원 아래 급격한 경제발전을 이루게 됩니다. 1970년대까지 계속된 미국의 대외 개발원조정책에 힘입어 원조 대상국 중 1~2위를 정도 규모의 실물 지원(밀가루, 설탕 등의)을 받았습니다. 아무런 공업 생산시설도 없었을 때 부녀자들은 머리카락을 팔아 가발을 만들어 미국에 수출하였고, 미국에서는 의회의 반대를 무릅쓰고 높은 가격으로 제품을 사들였지요. 독일 파견 광부, 간호사, 베트남전 참전을 통해 얻은 미국 달러는 우리나가 중공업 산업의 기반을 다지는데 긴요한 자금으로 쓰이게 됩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그렇게 얻은 원조 자금은 대부분 정치권에 기생한 일부 기득권층의 손에 모두 들어가게 됩니다. 소수 기업인들의 사업에 아주 적은 금리로 돈을 몰아주어 산업을 일으킬 수 있게 하였고, 사업 운영에 필요한 노동력 및 농수산물 등의 임금, 자원 가격은 철저히 동결 통제함으로써 당시 기업들은 막대한 이윤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정부의 통제하에 기업의 사활이 좌우되다 보니 자연스럽게 정부의 입김이 강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검은 돈이 오가고 권력자의 의중에 따라 모든 것이 좌우되는, 겉모양만 민주주의인 독재 국가가 탄생했던 것이지요.


눈부신 경제 발전의 이면에 소수 계층의 특권 몰아주기, 정경 유착의 어두운 그늘, 수직적 사회 구조의 고착화, 돈으로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황금만능주의가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정치권력이 돈을 좌우하고, 돈이 다시 정치권력을 좌우하는 금권정치가 자리 잡게 된 것이지요. 법 제도는 친기업적 방향으로 계속 발전하였고, 상식보다 돈이 앞서는 사회 문화가 자리잡기 시작하였습니다. 사람들은 힘을 얻기 위해 돈과 권력을 추종하였고, 어떤 사람들은 생계의 마지노선에서 밀리지 않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돈과 권력에 복종하였습니다. 그러면서 모두의 머릿속엔 "성공=돈"이라는 공식이 자리 잡게 되어버린 것이지요.


1998년 IMF를 기점으로 우리 사회는 완전한 물질만능주의의 시대로 빠져듭니다. 금융 위기로 기업이 도산하고 가장들은 일자리를 잃었습니다. 평생직장의 개념이 사라지고 돈에 의한 계약 관계로서의 직장 개념이 확산되었지요. 어떤 회사들은 흑자 매출을 기록하고 있었음에도 순간적인 자금 융통을 하지 못해 파산하는 경우도 생겼습니다. 기업도, 개인도 갑작스럽게 닥친 위기에서 자신의 안위를 최선으로 생각하는 의식이 뿌리내린 것이지요.


개인과 기업 간의 살아남기 경쟁은 개인의 삶을 더 피폐하게 만들었습니다. 노동유연화 정책으로 일자리가 저질화 되고, 먹고사는 걱정이 생존의 위협으로 느껴지는 지점까지 도달한 것이지요. 대학생들은 신입생이 되자마자 스펙을 쌓기 위한 동아리에 몰리기 시작했고, 선·후배 간 사제 간 삶의 진정성과 철학을 논하는 자리는 사라진 채 학점과 토익 점수를 올리는 데 전념하게 되었습니다. 벼랑 끝에 몰릴수록 사람들은 더 독기가 올랐고 더욱 돈에 집착하게 되어버린 것이지요.


이런 세상에서 믿을만한 것은 돈 뿐이었습니다. 회사도, 친구도, 가족도 믿지 못하는 사회에서 돈을 가진 자는 사람들의 숭배를 받았고, 돈을 가지지 못한 사람은 소외와 멸시를 당했지요. 돈을 중심으로 사람이 모이고 흩어졌습니다. 점차 돈이 있어 보이게 하는 류의 소비 행태가 심해지게 되었지요. 명품 가방, 고급 외제차를 제 돈이 아닌 대출을 하여 사거나 빌리는 사례도 많아졌습니다. 집은 없더라도 외제차를 끌고 다니는 행태는, 차를 가지고 사람을 평가하는 사회구조에서 또 하나의 생존 전략이 된 것이지요.




물질만능주의와 소유욕 2
자본 중독자들


특정 소수의 의도인지 전반적 사회의식의 발로인지, 드라마 등 매스미디어는 온통 재벌들의 이야기, 말초적 자극의 소재들로 도배되었습니다. 1990 년도 초만 하더라도 "여명의 눈동자", "서울의 달", "모래시계"와 같은 시대 의식을 담은 대형 드라마들이 많이 등장했지만, 그 이후에는 재벌가 남자와 가난한 집 여자의 사랑과 인생 성공 이야기(성공이라고 해봤자 재벌가 남자와 결혼하는 것이지만요.), 부잣집 자녀였는데 출생의 비밀로 가난하게 사는 청년의 이야기, 유산을 두고 살인을 서슴지 않고 다투는 내용들이 주를 이루었습니다.


심지어 돈을 가진 사람은 - 가난하더라도 부잣집의 씨(?)를 갖고 태어난 사람은 착하고 의리 있으며 외모가 출중한 사람으로 포장되었습니다. 반면에 가난한 집의 씨(?)를 가진 사람은 비열하고 못되고 외모도 주인공에 비해 볼품없는 사람으로 묘사되었지요. 돈이 사람의 성품까지 좌우하는 것처럼 보이는 스토리를 대중에게 전파한 것입니다.


사람들은 그렇게 돈에 중독되어 갔습니다. 생계 이상의 가치로써 돈을 추구하게 된 것이지요. 돈을 얻을 수 있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하기를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양심도, 사랑도, 몸도 돈을 위해서라면 기꺼이 내어주었습니다. 행복은 곧 돈이라는 가장 상위 명제 앞에, 다른 여타의 가치들은 설 자리를 잃었습니다.


과거 행동주의 심리학에서는 사람의 행동 동기를 "자극과 행동과 보상"의 함수로써 설명하고자 하였습니다. 가장 유명한 파블로프의 개 실험처럼, 먹을 것을 주는 시간에 미리 종을 울려주기를 반복하면, 나중에는 먹을 것을 주지 않고 종만 울려도 "먹을 것을 줄 것이라는 생각"에 침을 흘리는 기계적 과정으로 사람의 행동을 예측하려고 했던 것이지요.


이 메커니즘에서 주목할 부분은 행동의 보상으로 주어지는 물건이, 실험대상에게 필요한 것인지 그렇지 않은 것인지에 따라 훈련(학습)의 강도가 달라진다는 점입니다. 배가 고픈 개에게 먹을 것은 아주 강력한 동기이기 때문에 종을 울려 침이 나오게 하는 것이 잘 학습되지만, 이미 배가 잔뜩 부른 개에게는 종을 울려도 그다지 좋은 학습 효과를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이지요.


사람도 이와 비슷하게, 보상물이 포만 상태에 이르면 더 이상 보상의 도구로 사용되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었습니다. 목이 마른 사람에게 물을 담보로 일을 시킬 수 있지만, 충분한 수분 섭취를 한 사람에게는 물이 아무런 매력이 없기 때문에 일을 시키기가 어려운 것이지요. 그런데 단 하나의 독특한 물건만이 포만 상태에 이르지 않고 무한히 행동 동기를 이끌어낼 수 있었는데, 바로 "돈" 이었습니다. 사람들은 돈을 아무리 많이 얻어도 만족하지 않았습니다. 더 많은 돈을 얻기 위해 계속 주어진 과업을 해내었지요. 당시의 행동주의 심리학자들은 사람들의 이런 행태를 잘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돈은 그저 특별한 예외라고 생각하고 넘어갔던 것이지요.


그러나 우리는 왜 사람들이 그토록 돈에 끝없는 욕심을 부리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설명한 바와 같이 돈이 물질적인 효용으로써의 가치가 아니라, 정서적 만족과 신분의 표현, 존재의 인정을 얻을 수 있는 수단이 되었기 때문에 더욱더 많은 돈을 필요로 한다는 것을요. 게다가 돈의 많고 적음을 따지는 논리는 상대적이기까지 합니다. 내가 100 억을 가지고 있어도 1000 억을 가지고 있는 사람에 비해서는 가난하고 불행하다 느끼고, 1000 억을 가지고 있어도 1조를 가지고 있는 사람에 비해 보잘것없다고 느낍니다. 있는 사람은 있는 사람대로, 없는 사람은 또 없는 사람대로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며 무한한 돈과 물질의 소유를 꿈꿉니다. (물론 절대적 생계 수단으로의 돈이 없는 사람도 많지만요.)






본 글은 연재 형식으로 2015년 10월부터 2016년 1월까지 작성되었습니다. 여기 있는 내용들을 더 다듬고 짜임새있게 구성하여, 2017년 5월『이기심의 종말』로 출간되었습니다. 내용을 보시고 흥미가 동하신 분들은 아래 소개를 참조하시여 책을 구매해 보시면 더욱 알차고 최신화된 글을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



신자유주의적 시장자본시스템에 의해 파편화-양극화된 사회,

한계비용 제로사회와 4차 산업혁명이 가져다줄 희망과 위기,

힘없는 개인은 혼돈의 미래를 헤쳐나가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가?

첨단 기술 사회 속 우리는 어디에 서있고 어디로 나아가야 하는가?


사회, 경제, 정치, 문화, 교육, 역사, 미래기술 등 다양한 영역의 현상을 조망하고 원인을 분석하여, 순환의 가치관과 이타적 본성의 공동체의 탄생을 주문하는 『이기심의 종말』(부제: 당신은 어떤 내일을 꿈꾸십니까)이 출간되었습니다.


미래가 어찌 흘러가게 될지 궁금한 분들, 두루 넓은 영역의 시대상과 기본적인 원리를 살피고픈 분들,

통합의 관점에서 사회 문제를 바라보고자 하는 분들, 원칙과 상식이 있는 사회를 만들기를 원하시는 분들,모두에게 자신있게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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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 목차 정보 >

1장. 우리 앞의 현실

1. 자본주의와 개인소유 사상
자본주의 / 블라인드 스팟 / 개인소유 사상
2. 개인소유 사상의 사회문화
생존과 투쟁, 공동체의 역사 / 한국의 공동체 해체 / 혼자가 될 때까지 / 경영과 노동 / 기업 조직 문화 / 교육 / 자녀 양육 / 국가 정치/ 경제 제도 / 학문과 문화 / 성 역할 갈등 / 이성 교제 / 행복
3. 지속가능한 삶의 위기 - 개인편
경제 능력의 상실 / 직업의 귀천 / 실직과 사회 안전망 / 결혼, 출산, 경력단절 / 산업 구조의 변화 / 주거 불안정 / 자녀교육 / 질병, 사고, 장애 / 다시 일어설 기회가 없는 사회
4. 지속가능한 삶의 위기 - 사회편
빈부 격차, 소득 격차 / 청년 빈곤 / 저출산, 노령화 / 산업 성장의 정체 / 미래 인재의 부재 - 교육과 기업문화 / 필연적 불황과 전쟁 


2장. 선택의 시간

5. 순환, 지속가능한 삶의 가능성
개인의 위기, 사회의 위기 / 순환의 부재 / 기업 내 개인의 순환 / 기업 스스로의 순환 / 기업 밖에서의 개인의 순환 / 자본의 순환 / 직업 분배의 모순 / 직업의 가치, 개인의 가치, 사회적 효용 / 순환이 있는 사회
6. 공유경제와 한계비용 제로사회
공유경제의 역사 / 공유지의 희극, 인터넷 / 인터넷 + 자본주의 = 한계비용 제로사회 / 에너지 인터넷, 운송 인터넷 / 공유경제의 현재와 미래
7. 제4차 산업혁명과 위기의 미래
제4차 산업혁명 / 이제 기업과 노동자는 어떻게 돈을 벌지? / 현대판 러다이트 운동 / 창의적 직업으로의 전환, 가능할까? 


3장. 미래를 여는 열쇠

8. 공유경제 시대의 사상들
협력적 공유주의자의 시대 / 망중립성, 오픈소스 운동가들 / 공유가 소유를 앞서 나가는 시대 / 공유가 가진 힘의 원천 / 공유경제 시대의 동반자들
9. 지속가능한 삶을 향한 의식적 연대
대안적 삶을 추구하는 이들의 연대 협력의 필요성 / 기술의 진보, 연대의 가능성 / 중앙 집중화된 권력에서 분산된 권력으로 / 연대 협력의 장애물들
10. 개인소유 사상의 그림자
미래를 결정하는 것 / 자기포장, 위선, 성장 절대주의 / 배려와 공감이 없는 자기중심 사고 / 불신 / 물질만능주의와 소유욕
11. 개인에서 공동체로
내려놓기 / 보다 영속적인 가치 / 관심, 인정, 배려 / 공동체 의식의 확장 


4장. 우리가 꿈꾸는 세상

14. 우리가 꿈꾸는 세상
소유자, 생산자, 소비자가 하나 된 공유기업 / 생의 지속가능성이 보장되는 사회 안전망 / 최소 지원(복지)의 기준 : 주거, 교육, 질병 / 개인의 성장과 사회적 기여에 특화된 직업 / 변화된 교육이 바꾸어갈 세상 / 제약적 가족 관계에서의 해방 / 여성에 대한 관념의 변화 / 여성, 남성이 아니라 개인으로 대접받는 사회 / 지속가능한 삶이 있는 사회
15. 우리를 넘어 세계를 향해
  페이비언 사회주의, 칼 폴라니, 제3의 길 / 서양과 동양의 문화적 차이 / 언어의 힘, 한민족의 정신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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