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의 재건, 제약적 가족 관계에서의 해방
가족은 사회 위기에 대항하는 최후의 보루이다
우리는 "가족"이라는 단위 공동체를 소중히 여기고 여기에 형용할 수 없는 큰 의미를 부여하지만, 실상 이만큼 물질적인 여건에 취약한 존재도 없습니다. 전통적인 가정에서 아버지는 가족이 먹고사는데 필요한 경제력을 담당하고, 어머니는 아버지와 자녀들이 건강히 사회생활을 할 수 있도록 물심양면의 지원을 담당합니다. 그리고 아이들은 미래 가정의 경제력을 책임지기 위한 교육 훈련을 받는 것이 일반적인 가정 구성원의 역할입니다.
그런데 이 중 하나라도 적절한 수행이 되지 못하는 경우, 가정의 응집성과 안정성은 삐그덕거리게 됩니다. 직장을 잃어 돈을 벌지 못하는 아버지, 집안일은 나몰라라 제 삶에만 관심이 있는 어머니, 학교 성적은 둘째치고 바르지 못한 행실로 앞날이 막막한 자녀가 있는 집안은, 뭐 하나 기대할 것 없는 불행 속에 빠져 지낼 수밖에 없는 것이지요. 이쯤 되면 법적인 가족 관계가 해체되는 일도 이상하지 않습니다.
실제로도 1998년 IMF 사태를 맞아 많은 실직 가장이 생긴 이후인 2000년부터 2003년에 이르기까지 우리나라의 조(粗)이혼율은 급격히 상승하였다고 합니다. 그러다 잠시 세계 경제 호황의 성장기를 맞아 이혼율이 낮아졌다가, 2009년 미국 금융위기를 기점으로 다시 상승한 통계를 통해서도 경제적 벌이가 가정의 안정에 얼마나 큰 역할을 하는지를 확인할 수 있는 것이지요. (참고기사 : 2000년대 한국 이혼율, 1950년대의 13.6배(바로가기 링크))
아울러 불행한 사건에 의한 가정의 법적, 정서적 해체는 어린 나이의 자녀들에게 씻을 수 없는 마음의 상처를 안겨주게 됩니다. 출생 후 3년간 부모들의 관심과 애정을 듬뿍 받아 건강한 정서를 갖추어야 할 나이에, 부모의 다툼과 냉대로 충분한 돌봄을 받지 못하기 때문이지요. 이렇게 어렸을 적 겪은 정서적 상처는 겉으로 드러나진 않지만, 무의식 속에 자리 잡아 애정 결핍과 대인 의존증, 분노조절 장애, 주의결핍 및 과잉행동 장애를 야기합니다.
일선에서 학생들의 심리치료를 담당하는 관련 종사자의 이야기에서도 그 증거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에 따르면 우리나라 청소년 중 IMF 이후 3년간 태어난 1999년생 ~ 2001년생 아이들의 경우에 유독 학교 부적응 행동을 일으키는 확률이 높다고 합니다. 교사들도 해당 시기의 학생들을 3년간 내리 맡게 되면, 정신적 스트레스가 너무 심해 일 년은 휴가를 내고 쉬어야 한다고 할 정도입니다. 이것은 그 시기에 벌어졌던 가정의 해체가 아이들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가 되어 개인과 사회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치게 됨을 알 수 있는 실질적 사례인 것이지요.
반복되는 경제의 호황과 불황 사이클, 그로 인해 찾아오는 가정의 불행, 자녀들의 불안정한 정서는 그 자체로 사회적 차원의 지속가능성을 위협할 것입니다. 게다가 사회안전망도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고, 모두가 각자도생하고 있는 사회에서는 그 여파가 더욱 강력 테고요. 운 좋게도 지난 두 번의 경제 위기에는 그나마 가정의 여유 경제력과 사회 단결력을 바탕으로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지만, 이제는 그러한 여력도 전혀 남아있지 않는 것으로 보입니다. 지금의 가계들은 저축보다 빚이 많고, 사회는 각자 파편화 되어 반목과 다툼을 일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앞으로의 위기가 우리 사회의 절체절명의 명운을 좌우하고 있다 생각하는 것도 바로 이 부분 때문입니다. 어떤 위기가 닥치더라도 가정 단위에서 흔들리지 않고 꿈과 희망을 가질 수 있다면 언제든 훗날을 기약할 수 있지만, 지금은 그조차도 기대하기가 어려운 시절이 되었으니까요. 사람들은 마지못해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으며, 태어난 것이 죄스러워서 나의 짐을 아이들에게 지울 수 없다는 생각에 출산마저 꺼리고 있는 실정입니다. 얼마나 이 사회에 미래가 보이지 않으면 우리나라 청년들 중 많은 수가 사회가 붕괴하고 새로운 시작을 바란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을까요? (참고기사 : 부들부들 청년, 우리는 붕괴를 원한다(바로가기 링크)) 우리가 다가올 위기를 슬기롭게 대처하지 못한다면 도저히 회생 불가능한 나락으로 빠져들 수 있음을 짐작할 수 있는 것입니다.
제약적 가족 관계에서의 해방
"우리가 꿈꾸는 세상"은 앞서 이야기한 가정과 가족의 불행들이 반복되지 않는 사회를 지향합니다. 시민 조직에 의한 상호 호혜적 공유 기업이 탄생하고, 사회 안전망이 갖추어져 미래의 경제적 불안이 해소된 미래는, 매 경제 위기의 주기마다 반복되는 근본적 가정의 위기에 이르는 일을 줄어들게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와 더불어 치열한 등수 경쟁이 사라진 교육은, 각자의 소질과 적성에 따라 마음껏 공부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줄 것이며, 부모와 자녀 관계에 긍정적인 변화를 선사할 것입니다. 주거비, 교육비를 마련하지 못해 전전긍긍한 상황에서 벗어난 아버지, 자녀의 성적이 오르지 못하는 불안에서 해방된 어머니, 늘 다른 아이들에게 뒤떨어져 생긴 낮은 자존감을 탈피한 자녀들이 만들어갈 새로운 가족 관계는, 우리가 이상적으로 바라는 아름다운 모습으로 다시 탄생할 수 있을 것이라 믿습니다.
이것은 각 가족의 구성원들 입장에서, 주어진 역할에 충실하기 위해 노력하여도 불가피하게 좌절할 수밖에 없었던 삶에서 자유로움을 얻는 것을 의미합니다. 결혼을 하고 자녀를 키운다는 이유로 지금까지 살아온 삶을 포기하고 직장 생활에만 얽매이는 아버지, 자신의 이름마저 잃어버리고 "OO엄마"로 불리는 어머니, 하고 싶은 일이 있어도 성적을 위해 혹은 경제적인 이유로 의미도 모르는 공부를 해야 하는 아이들이, 각자가 원하는 삶을 위한 시간과 마음의 여유를 찾게 되는 것이지요.
이것은 가족을 버리고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무조건적으로 한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가정에 헌신하기 위해 자신의 에너지를 채울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이 마련된다는 뜻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함께 하고 싶은 욕구 이면에, 홀로 있고 싶은 욕구도 상존하기 때문입니다. 이 두 가지가 적절히 조화되지 못하고 어느 하나에만 치우치게 되었을 때 문제가 발현되는 것이지요. 사람들은 자신의 시간을 활용하여 몸과 마음을 충만히 채운 뒤에, 다시 가정에 헌신하여 다른 가족 구성원들의 몸과 마음을 채워줄 것입니다.
결국 우리가 기대하는 것은 건강한 가정에서 바른 아이들이 자라고, 이들이 사회에 진출하여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가는 모습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현재의 제약적 가족 관계로부터의 해방은 부모들에게 "일과 가정의 조화"을 가능케 하고, 자녀들에게는 "전인적 교육과 양육을 선사"하는 것으로 미래 사회에 희망이 될 것입니다. 가정과 교육이 바르게 서도록 하는 것이, 100년 후 우리 사회의 미래를 기약하는 것이니까요. 비록 이것이 당장에 코 앞에 다가온 경제 위기를 피할 수는 없더라도, 그 속에서 희망을 가지고 버틸 수 있는 힘이 될 것을 기대하는 바입니다.
관련 기사로 약 50년간 경제 제재조치로 인해 국가 경제 파탄의 길에 접어든 쿠바가, 악전고투 끝에서 살아남아 중남미 특유의 대중문화를 발달시키고 의료 선진 체계를 갖출 수 있었던 과정을 살펴볼 수 있는 기사를 소개합니다. 아무리 먹고살기 힘들어도 아이들의 교복만큼은 깨끗하게 입혔다는 의식에서, 어려운 역경을 극복해낸 동력이 있지 않을까 생각하는 바입니다. (참고기사 : 쿠바에서 보는 쿠바의 미래, 답이 하나가 아닌 질문을 하라, 비로소 창의력이 발현된다(바로가기 링크))
본 글은 연재 형식으로 2015년 10월부터 2016년 1월까지 작성되었습니다. 여기 있는 내용들을 더 다듬고 짜임새있게 구성하여, 2017년 5월『이기심의 종말』로 출간되었습니다. 내용을 보시고 흥미가 동하신 분들은 아래 소개를 참조하시여 책을 구매해 보시면 더욱 알차고 최신화된 글을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
신자유주의적 시장자본시스템에 의해 파편화-양극화된 사회,
한계비용 제로사회와 4차 산업혁명이 가져다줄 희망과 위기,
힘없는 개인은 혼돈의 미래를 헤쳐나가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가?
첨단 기술 사회 속 우리는 어디에 서있고 어디로 나아가야 하는가?
사회, 경제, 정치, 문화, 교육, 역사, 미래기술 등 다양한 영역의 현상을 조망하고 원인을 분석하여, 순환의 가치관과 이타적 본성의 공동체의 탄생을 주문하는 『이기심의 종말』(부제: 당신은 어떤 내일을 꿈꾸십니까)이 출간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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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 목차 정보 >
1장. 우리 앞의 현실
1. 자본주의와 개인소유 사상
자본주의 / 블라인드 스팟 / 개인소유 사상
2. 개인소유 사상의 사회문화
생존과 투쟁, 공동체의 역사 / 한국의 공동체 해체 / 혼자가 될 때까지 / 경영과 노동 / 기업 조직 문화 / 교육 / 자녀 양육 / 국가 정치/ 경제 제도 / 학문과 문화 / 성 역할 갈등 / 이성 교제 / 행복
3. 지속가능한 삶의 위기 - 개인편
경제 능력의 상실 / 직업의 귀천 / 실직과 사회 안전망 / 결혼, 출산, 경력단절 / 산업 구조의 변화 / 주거 불안정 / 자녀교육 / 질병, 사고, 장애 / 다시 일어설 기회가 없는 사회
4. 지속가능한 삶의 위기 - 사회편
빈부 격차, 소득 격차 / 청년 빈곤 / 저출산, 노령화 / 산업 성장의 정체 / 미래 인재의 부재 - 교육과 기업문화 / 필연적 불황과 전쟁
2장. 선택의 시간
5. 순환, 지속가능한 삶의 가능성
개인의 위기, 사회의 위기 / 순환의 부재 / 기업 내 개인의 순환 / 기업 스스로의 순환 / 기업 밖에서의 개인의 순환 / 자본의 순환 / 직업 분배의 모순 / 직업의 가치, 개인의 가치, 사회적 효용 / 순환이 있는 사회
6. 공유경제와 한계비용 제로사회
공유경제의 역사 / 공유지의 희극, 인터넷 / 인터넷 + 자본주의 = 한계비용 제로사회 / 에너지 인터넷, 운송 인터넷 / 공유경제의 현재와 미래
7. 제4차 산업혁명과 위기의 미래
제4차 산업혁명 / 이제 기업과 노동자는 어떻게 돈을 벌지? / 현대판 러다이트 운동 / 창의적 직업으로의 전환, 가능할까?
3장. 미래를 여는 열쇠
8. 공유경제 시대의 사상들
협력적 공유주의자의 시대 / 망중립성, 오픈소스 운동가들 / 공유가 소유를 앞서 나가는 시대 / 공유가 가진 힘의 원천 / 공유경제 시대의 동반자들
9. 지속가능한 삶을 향한 의식적 연대
대안적 삶을 추구하는 이들의 연대 협력의 필요성 / 기술의 진보, 연대의 가능성 / 중앙 집중화된 권력에서 분산된 권력으로 / 연대 협력의 장애물들
10. 개인소유 사상의 그림자
미래를 결정하는 것 / 자기포장, 위선, 성장 절대주의 / 배려와 공감이 없는 자기중심 사고 / 불신 / 물질만능주의와 소유욕
11. 개인에서 공동체로
내려놓기 / 보다 영속적인 가치 / 관심, 인정, 배려 / 공동체 의식의 확장
4장. 우리가 꿈꾸는 세상
14. 우리가 꿈꾸는 세상
소유자, 생산자, 소비자가 하나 된 공유기업 / 생의 지속가능성이 보장되는 사회 안전망 / 최소 지원(복지)의 기준 : 주거, 교육, 질병 / 개인의 성장과 사회적 기여에 특화된 직업 / 변화된 교육이 바꾸어갈 세상 / 제약적 가족 관계에서의 해방 / 여성에 대한 관념의 변화 / 여성, 남성이 아니라 개인으로 대접받는 사회 / 지속가능한 삶이 있는 사회
15. 우리를 넘어 세계를 향해
페이비언 사회주의, 칼 폴라니, 제3의 길 / 서양과 동양의 문화적 차이 / 언어의 힘, 한민족의 정신문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