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과 남성이 아닌 개인으로 대접받는 사회
여성에 대한 관념의 변화
앞선 주제에서 논했던 제약적 가족 관계로부터의 해방은 실질적으로 여성들에게 더 많은 혜택이 돌아갈 것입니다. 아이를 출산하는 몸을 가졌다는 이유로 수천 년 동안 억압받았던 삶의 굴레를 벗어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같은 일을 하더라도 남성보다 박한 평가를 받고, 가정에 얽매여 자신의 꿈을 펼치지 못하였던 것은 지난날 남성 중심의 세계, 더 정확히 말하자면 기득 자본층이 만들어 낸 사회 시스템에서 더 적은 임금으로 양질의 노동력을 착취하기 위한 목적의 산물이었습니다. "모성애"라는 개념을 만들어서 자녀를 돌보지 않고 직장에 나가 일하는 여성들이, 자신을 죄인처럼 느끼게 하는 동시에, 본디 아이를 낳고 키워야 하는 신체 특성을 가진 사람이기에 일의 효율성도 떨어진다고 주장하기 위한 근거로 사용했던 것이지요. (참고기사 : 현대적 모성애는 산업화 시대의 발명품(바로가기 링크))
산업화 시대에 만들어진 여성 관념은 현대에 이르러서도 그대로 유효하게 작동하고 있습니다. 어머니들은 남편의 벌이만으로 가정의 지출을 감당하지 못해 맞벌이를 해야 하면서도, 집안일과 육아를 책임져야 하는 불공평한 사회에서 고군분투하고 있습니다. 남성이 직장에서 일을 열심히 하는 것은 아름다운 노력이고, 여성이 아이를 낳지 않고 혹은 아이를 돌보지 않고 직장에서 일을 하는 것은 이기적이라고 생각하는 사회 문화는 더욱 그들을 힘들게 합니다. 전통적인 가정 문화에서 그저 아내는 집에서 애를 잘 돌보는 것이 가장 아름답다는 생각이 뿌리 깊게 박여있기 때문이지요.(참고기사 : SBS 엄마의 전쟁이 말하는 워킹맘의 삶(바로가기 링크))
게다가 기업 내 보이지 않은 유리 천장으로, 남성과 같은 일을 하더라도 승진에 불이익을 받으며 적은 임금을 받는 일이 허다합니다. 여성은 결혼을 하면 그만둘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회사에서 오래 일하지도 못하며, 체력적으로도 남성보다 약한 까닭에 저녁 늦게까지 일을 하지 못한다는 기업의 고충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자기 집에서는 아내가 살림에 전념하기를 원하면서, 본인이 몸담고 있는 회사에서 여성들이 결혼과 출산을 이유로 그만두는 것을 불편해하는 것은 어째 조금 이상하지 않나요? 자신들이 만들어낸 구시대적 가치를 논거 삼아 여성들이 기업에서 일을 오래 하지 못한다고 말하는 것은 일방적인 폭력이자 이율배반적 행동입니다.
그저 회사에서 밤새도록 야근하고 회식하며 주말에도 일터에 나가 일하는 것이 능사라고 생각하는 가치관도 바뀌어야 합니다. 이제 세상은 예전처럼 죽어라 열심히 일한다 해서 성공이 담보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기계처럼 우직하게 일하는 것이 독이 되는 세상이 되었음에도 그런 방식을 고집하는 것은, 장기적으로 회사와 사회의 발전 가능성을 좀먹게 될 것입니다. (참고기사 : 가족 품에서 창의력 샘솟아, 야근 및 회식 줄여야 스마트워크 빛난다(바로가기 링크))
가족의 각 구성원들이 가정에 매몰되어 있던 삶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은, 여성으로 하여금 관습적인 성(姓) 역할에서 해방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누군가는 가정에서 전통적인 어머니의 역할을 맡아야 하겠지만, 그것이 꼭 여성일 필요가 없다는 것이지요. 기업은 사회적 차원의 생산(미래 세대의 양육)에 대한 순환을 고려함으로써 아버지와 어머니 모두 가정 양육에 충분히 시간을 투자할 수 있도록 배려해 줄 것입니다. 국가는 자녀를 키우는 가정에 대한 자금 지원을 통해 경제적 문제 때문에 누군가의 일방적인 희생을 하지 않더라도 아이들을 부양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 줄 것이고요.
교육은 어떠할까요? 변화된 세상의 교육에서는 모든 학생들이 각자의 소질에 맞게 잘 할 수 있는 일을 찾는 것이 목표가 될 것이므로, 지금처럼 성적이 높고 낮음 혹은 특정 대학에 입학하거나 그렇지 못함에 의해 차별받지 않게 될 것입니다. 어머니들에게 주어졌던 또 하나의 짐, "자녀가 어떤 대학교에 들어갔는지?"에 대한 평가로부터도 자유로워질 수 있는 것이지요.
가정에서의 여성 역할을 바라보는 사회적 시각이 바뀌게 되면, 아직 가족을 이루지 못하였지만 장차 미래의 어머니가 될 젊은 여성들의 삶에도 자유가 찾아올 것입니다. 결혼을 염두에 두고 스스로 제약된 상황을 가정하여 사회생활을 한다던지, "여성은 어머니로서 OOO 해야 한다."는 관념에 다양한 상황에서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며 부자연스러운 행동을 취하지 않아도 될 것입니다.
이는 "종속적 여성"으로서의 내가 아닌, "주체적 사람"으로서의 나를 드러내고 평가받을 수 있는 세상이 될 수 있음을 뜻합니다. 억압에서 벗어난 여성들은 더 주도적으로 자신의 삶을 살 것이며, 이 혜택은 여성에게만 돌아가는 것이 아닌 여성과 남성을 모두 아우르는 우리 공동체의 과실이 될 것입니다.
여성, 남성이 아니라 개인으로 대접받는 사회
여성의 역할 해방은 행동의 방종을 뜻하는 것은 아닙니다. 남성이 잘 할 수 있는 영역을 막무가내로 요구한다던지, 남성이 잘 하지 못하는 일에 대해서 억지로 떠넘기는 것은 오히려 사회 발전에 역행하는 태도이기 때문입니다.
성별을 떠나 자신이 잘 할 수 있는 영역과 그렇지 못하는 영역을 솔직히 인정하고, 그에 맞는 역할을 맡아 제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며 다른 사람들에게 기여하는 것이, 궁극적으로 공동체가 지향해야 할 사회의 모습일 것입니다. 잘 하지도 못할 일을 "평등"의 이름으로 할당받아 억지로 하는 것은, 누군가 그 역할을 더 잘 해낼 수 있음을 가로막는 이기적인 행태이며 사회적으로도 피해를 끼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앞서 "내려놓기 3, 우생학의 재해석"(바로가기 링크)에서 기술한 바와 같이 사람은 타고 태어난 소질과 적성, 능력이 각기 다 다르고, 잘 할 수 있는 일과 그렇지 못하는 일의 한계가 분명해 정해져 있습니다. 남성과 여성의 차이도 이러한 관점에서 이해해야 하는 것이지요. 물론 어떤 여자는 남성보다 뛰어난 공간 지각력을 가지고 있을 수도 있고, 어떤 남자는 여성보다 뛰어난 대인 공감능력을 가지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다만 평균적으로 여성들이 남성보다 공감능력이 좋고, 남성들이 여성보다 공간지각력이 좋다고 하는 것뿐이지요.
우리는 이러한 여성 혹은 남성의 틀에서 벗어나 그 개인이 가진 고유의 소질과 재능을 확인하는데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며, 그것을 바탕으로 각자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그곳에 기여함으로써 삶의 행복을 찾을 수 있는 사회를 이룩해야 할 것입니다. 지금까지의 사회는 특정한 직업과 역할이 타인에 대한 치명적 생사여탈권을 가지고 있었기에, "평등"의 명목으로 능력이 부족한 이가 억지로 혹은 비겁한 방법으로 자리를 꿰차는 일이 벌어져던 것입니다. 이는 거시적으로 "자유"와 "평등"의 가치 싸움으로 확대되어 사회주의가 옳은지, 자유주의가 옳은지에 대한 사상 전쟁으로도 이어졌던 것이지요.
답은 명확합니다. 자유가 우선이냐 평등이 우선이냐의 논쟁이 아니라, "공동체를 위한 길이 무엇이냐"의 논점으로 현상을 바라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공동체적 가치를 바탕으로, 사회의 어떤 일을 맡는지에 상관없이 경제적 안정을 꾀할 수 있고 타인으로부터 존경과 감사함을 받을 수 있는 사회라면,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가 무슨 상관이 있겠습니까?
세상에서 가장 낮은 위치에서 힘든 일을 하여도 감사하며, 세상에서 가장 높은 위치에서 골치 아픈 일을 하여도 고마울 것입니다. 집에서 부모들의 사랑만을 받으며 자라는 아기들에게도 감사하고, 노년에 좋지 않은 병에 걸려 요양시설에 있는 노인들에게도 고마운 마음이 들겠지요. 앞으로 이 사회를 만들어 갈 미래 세대, 그리고 지금까지 우리의 삶을 만들어준 과거 세대에 대한 존경심이 내재해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나를 둘러싼 성 역할의 관념으로부터 해방되는 것은 여성과 남성을 가리지 않고 모두에게 주어지는 자유입니다. 지금 시대가 남성 위주의 사회이기에 여성에게 더 많은 혜택이 주어지는 것처럼 느껴지겠지만, 장기적으로 이것은 남성들에게도 축복입니다. "남자라서 울면 안 돼.", "남자는 가장으로서 책임을 져야지.", "남자는 강인해야 돼."와 같은 편견이 사라질 수 있을 테니까요. 남자들도 슬픈 드라마를 보면 울고 싶고, 어려운 일을 겪으면 누군가에게 하소연하고 의지하고 싶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사회생활이 힘들고 집에서 아이들을 양육하는 것에 더 큰 행복을 느끼는 사람도 있습니다. 비록 여성들에 비해서는 소소한 것들이긴 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관념적 책임의 무게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은 참 매력적인 일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본 글은 연재 형식으로 2015년 10월부터 2016년 1월까지 작성되었습니다. 여기 있는 내용들을 더 다듬고 짜임새있게 구성하여, 2017년 5월『이기심의 종말』로 출간되었습니다. 내용을 보시고 흥미가 동하신 분들은 아래 소개를 참조하시여 책을 구매해 보시면 더욱 알차고 최신화된 글을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
신자유주의적 시장자본시스템에 의해 파편화-양극화된 사회,
한계비용 제로사회와 4차 산업혁명이 가져다줄 희망과 위기,
힘없는 개인은 혼돈의 미래를 헤쳐나가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가?
첨단 기술 사회 속 우리는 어디에 서있고 어디로 나아가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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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 목차 정보 >
1장. 우리 앞의 현실
1. 자본주의와 개인소유 사상
자본주의 / 블라인드 스팟 / 개인소유 사상
2. 개인소유 사상의 사회문화
생존과 투쟁, 공동체의 역사 / 한국의 공동체 해체 / 혼자가 될 때까지 / 경영과 노동 / 기업 조직 문화 / 교육 / 자녀 양육 / 국가 정치/ 경제 제도 / 학문과 문화 / 성 역할 갈등 / 이성 교제 / 행복
3. 지속가능한 삶의 위기 - 개인편
경제 능력의 상실 / 직업의 귀천 / 실직과 사회 안전망 / 결혼, 출산, 경력단절 / 산업 구조의 변화 / 주거 불안정 / 자녀교육 / 질병, 사고, 장애 / 다시 일어설 기회가 없는 사회
4. 지속가능한 삶의 위기 - 사회편
빈부 격차, 소득 격차 / 청년 빈곤 / 저출산, 노령화 / 산업 성장의 정체 / 미래 인재의 부재 - 교육과 기업문화 / 필연적 불황과 전쟁
2장. 선택의 시간
5. 순환, 지속가능한 삶의 가능성
개인의 위기, 사회의 위기 / 순환의 부재 / 기업 내 개인의 순환 / 기업 스스로의 순환 / 기업 밖에서의 개인의 순환 / 자본의 순환 / 직업 분배의 모순 / 직업의 가치, 개인의 가치, 사회적 효용 / 순환이 있는 사회
6. 공유경제와 한계비용 제로사회
공유경제의 역사 / 공유지의 희극, 인터넷 / 인터넷 + 자본주의 = 한계비용 제로사회 / 에너지 인터넷, 운송 인터넷 / 공유경제의 현재와 미래
7. 제4차 산업혁명과 위기의 미래
제4차 산업혁명 / 이제 기업과 노동자는 어떻게 돈을 벌지? / 현대판 러다이트 운동 / 창의적 직업으로의 전환, 가능할까?
3장. 미래를 여는 열쇠
8. 공유경제 시대의 사상들
협력적 공유주의자의 시대 / 망중립성, 오픈소스 운동가들 / 공유가 소유를 앞서 나가는 시대 / 공유가 가진 힘의 원천 / 공유경제 시대의 동반자들
9. 지속가능한 삶을 향한 의식적 연대
대안적 삶을 추구하는 이들의 연대 협력의 필요성 / 기술의 진보, 연대의 가능성 / 중앙 집중화된 권력에서 분산된 권력으로 / 연대 협력의 장애물들
10. 개인소유 사상의 그림자
미래를 결정하는 것 / 자기포장, 위선, 성장 절대주의 / 배려와 공감이 없는 자기중심 사고 / 불신 / 물질만능주의와 소유욕
11. 개인에서 공동체로
내려놓기 / 보다 영속적인 가치 / 관심, 인정, 배려 / 공동체 의식의 확장
4장. 우리가 꿈꾸는 세상
14. 우리가 꿈꾸는 세상
소유자, 생산자, 소비자가 하나 된 공유기업 / 생의 지속가능성이 보장되는 사회 안전망 / 최소 지원(복지)의 기준 : 주거, 교육, 질병 / 개인의 성장과 사회적 기여에 특화된 직업 / 변화된 교육이 바꾸어갈 세상 / 제약적 가족 관계에서의 해방 / 여성에 대한 관념의 변화 / 여성, 남성이 아니라 개인으로 대접받는 사회 / 지속가능한 삶이 있는 사회
15. 우리를 넘어 세계를 향해
페이비언 사회주의, 칼 폴라니, 제3의 길 / 서양과 동양의 문화적 차이 / 언어의 힘, 한민족의 정신문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