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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유표 Jan 05. 2016

41. 개인에서 공동체로 (3)

기득 사회 질서를 유지하려는 왜곡된 평등주의에 대한 비판

내려놓기 3
우생학의 재해석


"정신일도 하사불성(精神一到 何事不成)" 혹은 "하면 된다." 우리 사회에 전형으로 회자되는 노력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말들입니다. 이는 개인의 능력과 노력만큼의 보상을 받는 것이 정당하다는 자본주의 사상과 부합되어, 일선의 학교 및 조직에서 널리 통용되는 가치이기도 합니다. 물론 목표를 향해 최대한의 노력을 쏟아 달성하는 것만큼 아름답고 긍정적인 일도 없습니다. 우리 사회는 지금까지 그런 정신을 통해, 수많은 불가능한 일을 가능케 했으니까요.


그런데 "하면 된다"의 논리가 "안 되는 건, 네가 하지 않아서야"라는 의미로 치환되는 것도 자주 눈에 띕니다. 치열한 경쟁의 장에서 "네가 부족했기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 밀렸다는 것, 그래서 "그건 다 너의 책임"으로 되돌립니다. 승자의 승리는 축하해 마지않을 일이지만, 패자의 패배를 위로해주기는커녕 당연히 "네가 부족해서 질만했다."라고 규정하는 사회는 뭔가 많이 이상합니다.


경쟁이 모든 여건이 동등한 상태에서 이루어질 수만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세상의 룰이란 것이 어디 그럴 수가 있겠습니까? 본질적으로 사람들은 키도 다르고, 생김새도 다르고, 목소리도 다르고, 체격도 다르고, 근력도 다르고, 지능도 다릅니다. 자연은 생물종의 번식력을 강화시키기 위해 유전자 조합을 통한 형질의 다양성이 이루어지도록 설계되어있고, 그 시스템 안에서 누군가는 머리가 좋지만 부지런하지 못하고, 누군가는 소극적이지만 신중함을 가지고 태어나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여러 다양한 환경에서 최적의 유전체가 적응하고 또다시 다양한 형질이 발현되도록 하여, 또 다른 환경에서의 적응을 대비하며 영속적으로 종이 유지되도록 하는 것이지요.


우리는 눈에 드러나는 키나 몸무게, 체격 같은 요인은 우리가 쉽게 그 차이를 납득하고 상대적인 룰을 적용합니다. 키가 큰 사람은 농구선수를 지망하고, 키가 작지만 체격이 다부진 사람은 레슬링 선수를 지망합니다. 키가 작은 사람에게 장신의 키를 가진 농구 센터와 맞붙어 경쟁하도록 강요하지 않지요. "하면 된다"의 논리로 경쟁에서 진 키가 작 사람에게 "그건 네가 부족하고, 다 너의 책임"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타고 태어난 것이 이러한데 그것을 어쩌라는 것은 폭력이기 때문입니다.


반면 눈에 잘 드러나지 않는 요인은 그렇지 못합니다. 성격, 지능 같은 요인들도 분명 유전적 형질을 타고 태어나서, 누군가는 열정적이지만 너무 성격이 급하고, 누군가는 호기심이 강하지만 집중력이 부족합니다. 그리고 이런 것들이 모여 그 사람의 인성을 만들고 학습 능력을 결정하지요. 물론 자라나는 환경에서 어떤 양육 경험을 하였느냐에 따라서도 달라지는 부분이 많지만, 기본적인 소질은 출발선 자체가 다릅니다.


그럼에도 우리 사회는 기본적으로 출발선 자체가 다른, 서로 다른 영역에 소질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한데 모아 "단 하나의 기준"으로 경쟁시키고 줄을 세웁니다. 행정의 관점에서 보면 대단히 편리한 방식입니다. 다양한 역량을 평가하고 그에 맞는 자리에 배분하기 위해서는, 그 이상의 다양한 평가자와 다원적 사회 질서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사회가 덜 발달되었을 시기에는 하나의 기준을 가지고 평가하여 인재를 배분한 뒤에 훈련을 시키는 것이 효율적이었겠지만, 지금 시대에 이르러서는 그 부작용이 더 큰 것 같습니다. 오히려 다양한 영역에 재능을 가진 사람들이 "단 하나의 기준"에 부합되지 못한다는 이유로 사회의 낮은 자리에 임하고, 20년 넘는 시절을 패배자의 멍에를 지고 살아가고 있으니까요.


한편, 어떤 사람들은 "차별"을 해소하기 위한 방법으로, 얼마 전 시대의 교육(학력고사 같은...)을 옹호하기도 합니다. 어정쩡한 입시 다양화로 경제적 여건이 되지 못하는 아이들이 원천적으로 입신양명의 길이 차단되었으니까요. 차라리 완전히 한 가지의 방식으로 평가를 하면 출신과 신분을 떠나 공평하게 기회를 잡을 수 있지 않느냐고 주장합니다. 일견 맞는 부분도 있긴 하지만, 궁극적으로 다양한 영역의 재능을 가진 사람들이 하나의 잣대로 평가되고 버려진다는 점에서는 매한가지입니다. 우리는 과거를 바탕으로 미래를 향해야 하지, 과거 그 자체로 회귀해서는 안됩니다.


게다가 이렇게 "차별 해소"를 논하는 사람들도 사실 "하면 된다"의 논리를 더 강화시켜줄 뿐입니다. 타고난 것의 다름이 없고 누구나 열심히 하면 다 이룰 수 있다는 주장이 전제되어야, 이전의 교육 제도를 통해 진정한 차별 해소가 이루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지요. 타고난 것이 각자가 모두 다릅니다. 양육 환경은 더욱 천차만별이지요.


우리는 지금까지 너무나도 오랫동안 차별 대우를 받는 사회에서 살아와서인지. "너는 어차피 할 수 없어."라고 말하는 것을 불편해합니다. 그러면서 누구나 열심히 하면 모든 것을 이룰 수 있다는 꿈과 희망을 이야기합니다. 사실은 그렇지 않은데 말이지요. 태어난 신장 조건이 다르고, 지능 조건이 다른데도 "하면 된다"는 논리에 하나의 기준으로 경쟁시키고, "네가 하지 못해서 못 이룬 거다"라고 경쟁에서 뒤쳐진 것을 책임 묻습니다.


이것은 비단 우리뿐만 아니라 전 세계 대부분의 문화에서 모두 그러할 겁니다. 히틀러가 홀로코스트를 자행할 때, KKK 단이 인종청소를 내걸고 악행을 저질렀을 때와 같은 매우 악질적인 논리로 보이니까요. 그래서 "타고난 것이 다르니, 너는 할 수 없다."라고 말하는 것을 금기시하고, 인정하지 않으려 합니다. 아예 논의의 대상이 아닌 까닭에 주제를 꺼내는 것도 어렵습니다. 그렇게 아주 자연스럽게 서로 다른 재능을 가진 사람들을 단 하나의 "공평해 보이는" 하나의 기준으로 평가합니다. 패배의 논리를 가장 손쉬운 방법으로 패배자에게 전가시키면서요.


"우생학" 자체가 악질적인 학문인 것이 아닙니다. 그것을 사용하는 누군가가 자신의 힘을 지키기 위한 악질적 수단으로 사용했기 때문에 문제였던 것이지요. 예전에는 "우생학"을 내세워 인종청소를 자행했다면, 지금은 "우생학이 없음"을 내세워 차이에 대한 배려를 말살하고 있습니다. 사람들 간에 재능과 능력의 차이가 있다는 것은 우리 사회가 그런 사람들을 포용하고 배려해야 함을 의미하기에, 힘을 가진 사람들은 굳이 그 사실을 공론화하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마음속으로는 자신이 선택받은 피(?)를 가지고 있다 생각하면서, 겉으로는 만민 평등의 가치를 설파하는 것이지요. 아이러니한 것은 힘을 가지지 못한 사람들도 "차별 해소"를 내세워 그들의 질서를 옹호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제 발목을 잡고 지금의 부당한 대우를 합리화시킨다는 것을 모른 체 말입니다.


분명히 말하건대, "절대 해도 되지 않는 것"이 있습니다.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타고난 소질과 적성이 의사를 할 수 없는 사람이 있고, 판·검사를 할 수 없는 사람이 있습니다. 운 좋게도 의사와 판·검사의 소질을 가진 사람이 경제적 여건이 불우하여 못 이른 자리를 꿰찬 사람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그렇다 해서 그 사람이 그 일을 잘 수행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어쩌면 의사를 하는 것보다 어린이집에서 아이들을 돌보며 가르치는 것에 더 적합한 자질을 가지고 있었을는지도 모릅니다. 그 일을 할 때 더 자연스럽고 생의 행복을 느낄 수 있었을 테지요.


결국 "직업의 귀천"의 문제입니다. (참고자료 : "직업의 귀천"(바로가기 링크)) 파편화 된 개인이 각자도생 하는 사회에서, 눈에 드러나는 돈을 잘 버는 직업이 분명해져 버린 경제 시스템 속에서, 우리는 더 이상 "내려놓을" 수가 없게 된 것입니다. 그렇기에 개인적 차원의 내려놓기와 사회적 차원의 순환 경제, 사회 안전망을 만드는 일은 동시에 병행되어야 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또한 정말 극소수의 사람은 이것저것 모든 것을 다 잘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또 어떤 극소수의 사람은 이것저것 모든 것을 다 잘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습니다. 중증 장애를 가지고 태어난 사람들, 혹은 정상으로 태어났으나 아주 불행한 사건을 겪어 장애를 가지게 된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우리 사회에서 어떻게 포용해야 할까요? 우리는 그들에게 무한정 베풀기만 해야 하는 것일까요?


질문 자체가 틀렸습니다. 우리와 그들을 서로 다른 개체로 분리하고 포용을 논하고, 베풂을 논하는 것 자체가 오답인 것입니다. 그냥 "공동체"라는 이름으로 한 몸으로써 당연히 함께 동행해야 할 존재인 것입니다. 나의 자녀가 운 나쁘게도 중증장애를 가지고 태어날 수도 있고, 내가 어느 날 큰 교통사고를 당해 제 기능을 상실할 수도 있습니다. "공동체"의 개념으로 서로 연대하여 사회적 안전망을 갖추는 것이지, 베푼다라는 개념으로 접근하는 것이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참고기사 : 장애인을 대하는 우리 사회의 얼굴(바로가기 링크))


한 걸음 더 나아가, 저는 이것을 "재능의 사회적 부채"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똑똑하고, 잘 생기고, 힘이 세다는 평가를 받는 것은 다른 그렇지 못한 사람 대비 상대적인 수준을 지칭하는 것이지, 나 홀로 무인도에 떨어져 산다면 그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다른 사람보다 잘난 것이 있다면, 그 재능을 통해 다른 사람을 도움으로써 이 공동체를 더욱 튼튼하게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나 혼자 외딴 방에 갇혀 평생을 살 것이 아니라면, 그렇게 하는 것이 나에게도 도움이 되는 일이니까요.






본 글은 연재 형식으로 2015년 10월부터 2016년 1월까지 작성되었습니다. 여기 있는 내용들을 더 다듬고 짜임새있게 구성하여, 2017년 5월『이기심의 종말』로 출간되었습니다. 내용을 보시고 흥미가 동하신 분들은 아래 소개를 참조하시여 책을 구매해 보시면 더욱 알차고 최신화된 글을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



신자유주의적 시장자본시스템에 의해 파편화-양극화된 사회,

한계비용 제로사회와 4차 산업혁명이 가져다줄 희망과 위기,

힘없는 개인은 혼돈의 미래를 헤쳐나가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가?

첨단 기술 사회 속 우리는 어디에 서있고 어디로 나아가야 하는가?


사회, 경제, 정치, 문화, 교육, 역사, 미래기술 등 다양한 영역의 현상을 조망하고 원인을 분석하여, 순환의 가치관과 이타적 본성의 공동체의 탄생을 주문하는 『이기심의 종말』(부제: 당신은 어떤 내일을 꿈꾸십니까)이 출간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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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 목차 정보 >

1장. 우리 앞의 현실

1. 자본주의와 개인소유 사상
자본주의 / 블라인드 스팟 / 개인소유 사상
2. 개인소유 사상의 사회문화
생존과 투쟁, 공동체의 역사 / 한국의 공동체 해체 / 혼자가 될 때까지 / 경영과 노동 / 기업 조직 문화 / 교육 / 자녀 양육 / 국가 정치/ 경제 제도 / 학문과 문화 / 성 역할 갈등 / 이성 교제 / 행복
3. 지속가능한 삶의 위기 - 개인편
경제 능력의 상실 / 직업의 귀천 / 실직과 사회 안전망 / 결혼, 출산, 경력단절 / 산업 구조의 변화 / 주거 불안정 / 자녀교육 / 질병, 사고, 장애 / 다시 일어설 기회가 없는 사회
4. 지속가능한 삶의 위기 - 사회편
빈부 격차, 소득 격차 / 청년 빈곤 / 저출산, 노령화 / 산업 성장의 정체 / 미래 인재의 부재 - 교육과 기업문화 / 필연적 불황과 전쟁 


2장. 선택의 시간

5. 순환, 지속가능한 삶의 가능성
개인의 위기, 사회의 위기 / 순환의 부재 / 기업 내 개인의 순환 / 기업 스스로의 순환 / 기업 밖에서의 개인의 순환 / 자본의 순환 / 직업 분배의 모순 / 직업의 가치, 개인의 가치, 사회적 효용 / 순환이 있는 사회
6. 공유경제와 한계비용 제로사회
공유경제의 역사 / 공유지의 희극, 인터넷 / 인터넷 + 자본주의 = 한계비용 제로사회 / 에너지 인터넷, 운송 인터넷 / 공유경제의 현재와 미래
7. 제4차 산업혁명과 위기의 미래
제4차 산업혁명 / 이제 기업과 노동자는 어떻게 돈을 벌지? / 현대판 러다이트 운동 / 창의적 직업으로의 전환, 가능할까? 


3장. 미래를 여는 열쇠

8. 공유경제 시대의 사상들
협력적 공유주의자의 시대 / 망중립성, 오픈소스 운동가들 / 공유가 소유를 앞서 나가는 시대 / 공유가 가진 힘의 원천 / 공유경제 시대의 동반자들
9. 지속가능한 삶을 향한 의식적 연대
대안적 삶을 추구하는 이들의 연대 협력의 필요성 / 기술의 진보, 연대의 가능성 / 중앙 집중화된 권력에서 분산된 권력으로 / 연대 협력의 장애물들
10. 개인소유 사상의 그림자
미래를 결정하는 것 / 자기포장, 위선, 성장 절대주의 / 배려와 공감이 없는 자기중심 사고 / 불신 / 물질만능주의와 소유욕
11. 개인에서 공동체로
내려놓기 / 보다 영속적인 가치 / 관심, 인정, 배려 / 공동체 의식의 확장 


4장. 우리가 꿈꾸는 세상

14. 우리가 꿈꾸는 세상
소유자, 생산자, 소비자가 하나 된 공유기업 / 생의 지속가능성이 보장되는 사회 안전망 / 최소 지원(복지)의 기준 : 주거, 교육, 질병 / 개인의 성장과 사회적 기여에 특화된 직업 / 변화된 교육이 바꾸어갈 세상 / 제약적 가족 관계에서의 해방 / 여성에 대한 관념의 변화 / 여성, 남성이 아니라 개인으로 대접받는 사회 / 지속가능한 삶이 있는 사회
15. 우리를 넘어 세계를 향해
  페이비언 사회주의, 칼 폴라니, 제3의 길 / 서양과 동양의 문화적 차이 / 언어의 힘, 한민족의 정신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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