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의 주류가 될 성공한 일베 탄생의 예견
일간베스트 저장소
과거 디씨인사이드의 B급 문화가 사회 전반적으로 조망되기 시작하며, 빠르게 업데이트되는 게시물 중 사람들의 이목을 받은 "베스트 글"을 따로 모아 보기 위한 목적으로 "일간베스트 저장소"가 탄생하였습니다.
당시 디씨의 B급 문화는 디지털 이미지를 통해 자신과 타인을 희화화함으로써, 자조와 분노 속에서도 많은 사람들에게 재미와 삶의 활력을 불어넣어주었습니다. 그렇다 보니 많은 사람들이 디씨인사이드에 몰려 대형 커뮤니티가 탄생하고, 지금의 대중매체가 선정적인 예능과 뉴스로 도배되어 있는 것처럼 게시글을 올리는 사람 또한 더 많은 관심을 얻기 위해 더 강하고 자극적인 내용들을 다루게 되었지요.
현실과 예술, 비정상의 경계에서 어떤 사람들은 지극히 평범한 이야기로 주목받지 못했고, 어떤 사람들은 너무 사회 통념을 벗어난 이야기로 지탄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 둘 사이의 절묘한 균형을 찾은 이들은 다른 사람들로부터 추앙을 받으며 유명세를 떨치게 되었지요. 그러면서 자극적인 이야기에 익숙해진 관객들은 "조금 더"를 지향했고, 디씨의 B급 문화를 벗어난 이들이 모여 일간베스트가 만들어진 뒤 현실 세계와 괴리되어 버리고 맙니다. 일간베스트 저장소는 예술의 경지에서 한 단계 혹은 두 단계쯤 더 나아간 비정상의 세계에서 그들만의 세계를 창조한 것이지요.
제 기억으로 일베 초기 시절에는 정치적인 색깔이 없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막 디씨에서 떨어져 나왔을 때에는 말 그대로 디씨의 게시물 중 베스트인 글만 따로 모아놓은 사이트에 불과했으니까요. 그러던 것이 2008년 광우병 사태로 인해 사회가 보수와 진보로 나뉘어 극렬하게 대립하고, 모든 인터넷 커뮤니티들이 정치적 의견들로 뒤덮였을 때 지금의 정치적 색채를 띄기 시작하게 됩니다.
그 과정은 증빙되지 않은 정보들이 많아 딱히 무엇이라고 하긴 어렵지만, 심증적으로는 당시 인터넷 보수 여론을 만들기 위한 정부의 지원 아래 경제적, 문화적 지원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합니다. 사례로 일베에서 사용 중인 인터넷 회선은 웬만한 기업이 감당할 수 없는 가격의 대역망을 사용하고 있으며, 2010년 초에는 국정원에서 활발한 활동을 펼치는 "애국보수" 회원들을 초청하여 강연을 하거나 "절대시계"라 불리는 물품을 주기도 하였지요. 그리고 지금도 진행 중인 2012년 대선 댓글 조작 사건 수사에서 드러난 바와 같이 국정원 직원이 조직적으로 일베 사이트에 특정 후보를 지지하는 게시글을 올렸다는 점에서, 아마도 그 당시(2008년 광우병 사태) 정부 쪽에 유리한 각종 논리들을 만들어 제공하고, 이것을 일베의 일반 회원들이 확대 재생산을 하여 여론을 형성한게 아닐까 추측하는 것입니다.
일베의 초기 유저들
일베가 탄생한 과정 속에서 일베를 이끌었던 초기 유저들의 특성을 유추해볼 수 있습니다. 자극적인 게시물을 올려 타인으로부터 인정받는 것이 최대 목적이었던 까닭에, 반대급부로 현실에서는 인정받지 못하는 계층의 사람들이 더욱 일베 활동에 전념하게 된 것이지요.
2013년 즈음 표창원 교수는 자신의 블로그에 일베에 대한 분석글을 올린 적이 있는데, 상당히 날카로운 통찰력으로 일베 유저의 특성을 잘 살핀 것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참고기사 : 표창원 일베 분석글 화제, 고학력자 일베회원도 그들 무리에선 루저(바로가기 링크))
요약해보면 강하고 능력 있고 싶어 하는 욕구가 현실에서 좌절되어, 사이버 공간상의 강자로 군림하기 위해 상대적인 약자를 공격한다는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자신을 현실의 강자와 동일시하기 위한 방편으로 정치적 보수층의 논리를 추앙했으며, 정치 세력이 이를 이용하여 사이버 친위대로 성장시켰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현실에서는 소심하고 자신을 잘 드러내지 않으며, 일부 고학력자들의 경우에도 그들 사회에서는 패배자인 까닭에 일베에서 여왕벌 노릇을 하며 욕구를 해소하고 있다고도 합니다.
그들이 자주 언급하는 "팩트"라는 단어 속에서 그 면모를 여실히 살필 수 있습니다. 주장이 용이하게 잘 가공된 데이터(20%의 진실과 80%의 거짓으로 꾸며진)를 들이밀며 상대방의 논거를 반박하며 객관적 자료를 가지고 이야기하자 주장하지만, 정작 그 데이터의 정의와 의미에 대해 깊은 통찰이 필요한 질문에 대해서는 꿀 먹은 벙어리 혹은 무논리와 집단 린치의 방식으로 대응하는 패턴입니다. 만들어진 자료를 퍼다 나르며 그것을 논파하지 못하는 상대를 보며 승리자가 된 듯한 쾌감을 느끼지만, 해당 사건에 대한 지식이 부족하기 때문에 상위 논리에 대한 언급은 회피하며 인신공격을 일삼았던 것이지요.
이제 국가 앞에 당당히 선 일베의 청년들
2014년 9월 시사인 367호에 올라온 천관율 기자의 컬럼 제목입니다. 지금까지 일베 유저가 온라인 상에서 그들만의 언어로 타인을 조롱하고 공격했던 것에 탈피하여, 오프라인으로 등장하여 자신들의 주장을 개진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참고기사 : 이제 국가 앞에 당당히 선 일베의 청년들(바로가기 링크))
기사에 나온 것처럼, 최초의 움직임은 세월호 사건의 유가족들의 광화문 단식농성이 연일 국가적 이슈일 때, "폭식 투쟁"의 이름으로 유가족 앞에서 치킨과 햄버거 등의 음식을 조롱하듯 먹은 퍼포먼스였습니다. 그들은 거리로 나와 단체 행동을 하였고, 자신들이 국가를 올바른 길로 나아가도록 일조했다는 등의 자부심을 가졌습니다.
정치적으로 진화한 일베는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는 복지 논리는 국가 경쟁력을 좀먹는 일이며, "무임승차"하려는 그들을 단죄하는 것을 정의라고 내세웁니다. 신자유주의적 사회에서 능력에 따라 대우받는 것이 당연하며, 지금의 기득권들은 그런 능력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의 위치를 차지할 수 있었다는 것이지요.
이는 최초 디씨인사이드에서의 B급 문화와도 잘 들어맞는 부분이 있습니다. 자신의 부족함을 희화화하고 수용하는 것과 달리, 적극적으로 권리를 주장하며 이익을 챙기려는 사람들을 비겁한 자들로 인식하는 것입니다. "내가 이렇게 못나게 사는 것은 사회 탓이야."라는 논리 대신 "내가 못났기 때문에 지금 이렇게 못나게 사는 거지."의 논리가 뿌리 깊게 내려있고, 이는 지금의 기득 세력이 딱 원하는 모양의 그것입니다.
그래서 더 깊은 주제의 사회 구조적 문제에 대해서는 알지도 못하고 궁금해하지도 않습니다. 이미 그 시점에서 온 관심의 초점은 "비겁한 자에 대한 애국 행동"에 맞춰지고, 그 이상의 상위 담론을 살필 여력과 능력이 부족해져 버리는 것이지요.
아이러니하게도 그들이 꿈꾸는 미래는 "평범한 일상"이라고 합니다. 아버지의 가부장적 권위가 살아있고, 힘든 역경의 시기를 이겨내 지금의 경제적 안정을 이룬 삶을 희망하는 것이지요. 소수자에 대해서는 극단적인 욕설과 행동을 보이고 힘이 있는 자에게 동조하는, 전형적인 한국 근현대사의 생존전략을 꿈꾸고 있는 것입니다.
10대 일베 유저의 진화
2016년이 되어 일간베스트의 유저는 한층 더 진화한 것으로 보입니다. 사이트가 근 10년 가까이 운영되면서, 초기 유저들이 만들어낸 집단 문화를 학습한 10대 일베들이 등장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얼마 전 이와 관련된 재미있는 기사가 보도되었습니다. (참고기사 : 공부 잘하는 남학생일수록 일베 홀릭 많아, 경기도교육연구원 보고서 내용 분석(바로가기 링크)) 우리가 흔히 '일베'라고 하면 떠올렸던 이미지와 전혀 다른 성질의 유저들이 생겨난 것이지요. 현실 세계에서 패배자의 멍에를 썼던 초기 유저와 달리, 학교에서 높은 성적을 받는, 나름의 "성공한" 계층들이 유입되고 있는 것입니다.
물론 일베의 이미지가 사회적으로 부정적인 뉘앙스를 가지고 있어 이런 형태의 설문조사가 실제 학생들의 분포를 예측하기에는 어려운 측면이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심층 면접에서 보인 학생들의 응답, "일베 게시판에서 정치에 대해 빈정거리며 공격하는 걸 즐거워하는 친구들은 대부분 공부도 잘한다.", "선생님도 누가 일베인지 알면 깜짝 놀랄 정도로 평소 우수한 학생들이 일베를 하고 있다." 들은 우리에게 의미 있는 통찰을 주고 있습니다.
앞서 일베 유저들의 기본 사고 구조인 신자유주의적 약육강식의 사상이, 지금의 교육 경쟁 사회의 그것과 딱 들어맞는 것입니다. 공부를 잘하는 아이들이 자신의 위치를 정당화하는 논리로써, 일베의 그것을 차용하기에 더할 나위 없이 적합합니다. 이 아이들은 나의 성공은 오로지 내 능력으로 달성한 것이므로, 그에 못 미치는 사람들은 내쳐지고 소외받는 것이 마땅하다는 생각이 무의식 단계에서 지배하기 시작할 것입니다.
이것이 더 우려스러운 건 앞으로 우리 사회를 이끌어갈 세대, 특히 리더 역할을 맡을 부류의 아이들이라는 점입니다. 지금의 주류 세대는 그래도 인성과 인륜에 대한 의식이 살아있어, 승자독식의 세태 속에서도 어느 한 편에는 사회적 약자를 돌보기 위한 움직임이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앞으로 이들이 사회의 주류가 될 시대에는 더 이상 루저의 프레임으로 그들을 비웃고 폄훼하는 것이 불가능할 것입니다. 그 세상에선 과연 어떤 가치관이 퍼져있을지, 사회는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지, 생각만 해도 두렵습니다.
우리는 이 현상을 어떻게 슬기롭게 대처해야 할까요? 한 가지 제안을 드리자면, 감성적 논리로 접근하는 사회적 약자에 대한 복지의 프레임을 바꾸어야 합니다. 우리가 부족한 타인을 돕는 것은 단순히 그 사람을 동정해서가 아니라, 모두가 함께 나아가는 것이 나에게도 장기적으로 더 큰 효용을 가져다준다는 점을 깨우치는 것이지요. (이 부분이 일베가 주장하는 무임승차론과 맞닿아 있는 영역입니다.) 이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궁금하시다면, 아래 별도로 안내하고 있는 책을 살펴보시기를 권장해드립니다.
신자유주의적 시장자본시스템에 의해 파편화-양극화된 사회,
한계비용 제로사회와 4차 산업혁명이 가져다줄 희망과 위기,
힘없는 개인은 혼돈의 미래를 헤쳐나가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가?
첨단 기술 사회 속 우리는 어디에 서있고 어디로 나아가야 하는가?
사회, 경제, 정치, 문화, 교육, 역사, 미래기술 등 다양한 영역의 현상을 조망하고 원인을 분석하여, 순환의 가치관과 이타적 본성의 공동체의 탄생을 주문하는 『이기심의 종말』(부제: 당신은 어떤 내일을 꿈꾸십니까)이 출간되었습니다.
미래가 어찌 흘러가게 될지 궁금한 분들, 두루 넓은 영역의 시대상과 기본적인 원리를 살피고픈 분들,
통합의 관점에서 사회 문제를 바라보고자 하는 분들, 원칙과 상식이 있는 사회를 만들기를 원하시는 분들,모두에게 자신있게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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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 목차 정보 >
1장. 우리 앞의 현실
1. 자본주의와 개인소유 사상
자본주의 / 블라인드 스팟 / 개인소유 사상
2. 개인소유 사상의 사회문화
생존과 투쟁, 공동체의 역사 / 한국의 공동체 해체 / 혼자가 될 때까지 / 경영과 노동 / 기업 조직 문화 / 교육 / 자녀 양육 / 국가 정치/ 경제 제도 / 학문과 문화 / 성 역할 갈등 / 이성 교제 / 행복
3. 지속가능한 삶의 위기 - 개인편
경제 능력의 상실 / 직업의 귀천 / 실직과 사회 안전망 / 결혼, 출산, 경력단절 / 산업 구조의 변화 / 주거 불안정 / 자녀교육 / 질병, 사고, 장애 / 다시 일어설 기회가 없는 사회
4. 지속가능한 삶의 위기 - 사회편
빈부 격차, 소득 격차 / 청년 빈곤 / 저출산, 노령화 / 산업 성장의 정체 / 미래 인재의 부재 - 교육과 기업문화 / 필연적 불황과 전쟁
2장. 선택의 시간
5. 순환, 지속가능한 삶의 가능성
개인의 위기, 사회의 위기 / 순환의 부재 / 기업 내 개인의 순환 / 기업 스스로의 순환 / 기업 밖에서의 개인의 순환 / 자본의 순환 / 직업 분배의 모순 / 직업의 가치, 개인의 가치, 사회적 효용 / 순환이 있는 사회
6. 공유경제와 한계비용 제로사회
공유경제의 역사 / 공유지의 희극, 인터넷 / 인터넷 + 자본주의 = 한계비용 제로사회 / 에너지 인터넷, 운송 인터넷 / 공유경제의 현재와 미래
7. 제4차 산업혁명과 위기의 미래
제4차 산업혁명 / 이제 기업과 노동자는 어떻게 돈을 벌지? / 현대판 러다이트 운동 / 창의적 직업으로의 전환, 가능할까?
3장. 미래를 여는 열쇠
8. 공유경제 시대의 사상들
협력적 공유주의자의 시대 / 망중립성, 오픈소스 운동가들 / 공유가 소유를 앞서 나가는 시대 / 공유가 가진 힘의 원천 / 공유경제 시대의 동반자들
9. 지속가능한 삶을 향한 의식적 연대
대안적 삶을 추구하는 이들의 연대 협력의 필요성 / 기술의 진보, 연대의 가능성 / 중앙 집중화된 권력에서 분산된 권력으로 / 연대 협력의 장애물들
10. 개인소유 사상의 그림자
미래를 결정하는 것 / 자기포장, 위선, 성장 절대주의 / 배려와 공감이 없는 자기중심 사고 / 불신 / 물질만능주의와 소유욕
11. 개인에서 공동체로
내려놓기 / 보다 영속적인 가치 / 관심, 인정, 배려 / 공동체 의식의 확장
4장. 우리가 꿈꾸는 세상
14. 우리가 꿈꾸는 세상
소유자, 생산자, 소비자가 하나 된 공유기업 / 생의 지속가능성이 보장되는 사회 안전망 / 최소 지원(복지)의 기준 : 주거, 교육, 질병 / 개인의 성장과 사회적 기여에 특화된 직업 / 변화된 교육이 바꾸어갈 세상 / 제약적 가족 관계에서의 해방 / 여성에 대한 관념의 변화 / 여성, 남성이 아니라 개인으로 대접받는 사회 / 지속가능한 삶이 있는 사회
15. 우리를 넘어 세계를 향해
페이비언 사회주의, 칼 폴라니, 제3의 길 / 서양과 동양의 문화적 차이 / 언어의 힘, 한민족의 정신문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