첨단 기술의 미래를 철학적 사유로 살펴보기
인공지능과 안드로이드
인공지능, Artificial Intelligence. 인간과 대등한 지능을 가지고 학습과 자기계발을 할 수 있는 컴퓨터 기술 정도로 해석하면 큰 무리가 없을 듯합니다.
인류는 자신들의 삶을 더 윤택하게 만들기 위한 수많은 노력을 해왔습니다. 바퀴와 수레를 만들어 적은 힘으로 무거운 짐을 나를 수 있었고, 증기기관 및 내연기관을 발명하여 큰 동력을 통해 빠른 이동과 생산성 향상이 가능케 하였습니다. 전기의 발견은 전기로 작동되는 수많은 생활용품을 통해 다양한 영역에서 삶의 질을 향상시켰고, 로봇 등의 기계 장치는 사람의 인력이 크게 투입되지 않아도 많은 생산을 해낼 수 있도록 만들어 주었습니다.
한편 이런 실체가 있는 기술뿐만 아니라, 문자와 학문 등 소프트웨어적인 기술도 눈부신 발전을 거듭하였습니다. 문자를 발명하고, 숫자와 각종 수학 공식들을 정의하였으며, 철학과 논리학을 통해 지식을 정리하고 생각을 쉽게 전파할 수 있는 토대를 만들었습니다. 정보학, 교육학, 경영학 등의 학문들은 각 고유의 영역에서 인간의 삶을 향상시켜주었고, 지금 시대에 이르러서는 컴퓨터가 스스로 학습을 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인공지능의 영역까지 이르게 되었지요.
아마도 인공지능은 소프트웨어적인 인류 기술의 발달에서 가장 끝판왕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사람 대신 어려운 일을 고민하고 대신 문제를 척척 풀어주는 컴퓨터, 다들 한번쯤 상상해보신 경험이 있으시지요? 시험 전날 수학 공부가 정말 하기 싫을 때, 로봇이 대신해서 공부해주고 문제를 풀어준다면 얼마나 좋을지... 어떤 사람들은 매우 똑똑해지는 알약을 먹어서 순식간에 책을 외우는 능력을 상상하기도 하고, 또 누구는 약을 먹는 것으로 지식이 머릿속에 다 들어가는 상상도 했을 테지만, 평생 내 곁에 인공지능 컴퓨터가 따라다니면서 모든 어려운 문제를 해결해주는 편리함에 비할 바는 못될 것입니다.
많은 문학가들 또한 인류의 미래를 상상하며, 사람과 똑같이 닮은 기계 로봇이 등장하는 모습을 그렸습니다. 겉으로 보아서는 사람과 전혀 구분할 수 없는 외형을 가진 로봇을 상상하고 "안드로이드"라고 명명하였습니다. 여기에 한발 더 나아가 일부 철학자들은 생각과 행동까지도 사람과 똑같아서, 분해를 하지 않고서는 도저히 정체를 알 수 없는 수준의 안드로이드를 가정하면서, "인간이 인간일 수 있는 가치란 무엇일까?"에 대한 논의를 하기도 하였습니다. 신이 인간을 창조해낸 것처럼 인간이 인간과 똑같은 로봇을 창조해내는 상상은, 많은 생각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정말 매력적인 소재거리였던 것이지요.
컴퓨터의 뇌와 사람의 뇌
초기 컴퓨터를 개발했던 사람들이 인공지능을 목표로 한 것은 아니었겠지만, 컴퓨터의 발명으로 인공지능과 안드로이드의 상상은 현실로 다가오기 시작하였습니다. 문학적 소재로, 철학적 담론으로 쓰였던 안드로이드의 존재가, 인간보다 빠른 정보 처리를 해내는 컴퓨터가 등장함으로써 기술적 구현의 가능성이 열린 것입니다.
여기서 잠깐 혼란을 방지하기 위해 구분을 하면, 안드로이드는 인간의 모습을 똑같이 하고 있는 로봇(하드웨어)을 지칭하는 것이고, 인공지능은 그 속에 탑재되어 인간과 동일하거나 그 이상의 지능을 갖게 하는 프로그램(소프트웨어)을 지칭하는 것입니다. 아직 기계 및 소재공학, 센싱 기술 등이 인간과 똑같은 외형의 로봇을 만들기에는 부족하지만, 기하급수적인 컴퓨팅 처리 용량의 향상으로 사람과 비슷한 지능을 가진 프로그램(소프트웨어) 분야의 희망을 본 것이지요.
그럼 어떻게 컴퓨터를 이용하여 사람과 유사한 지능을 구현할 수 있는 것일까요? 이 문장을 기술의 관점으로 풀어, "컴퓨터가 어떻게 사람의 뇌를 모방한 정보 처리가 가능한지"에 대한 답을 살펴보면 이 문제를 조금이나마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먼저 컴퓨터의 정보 처리 방법을 살펴봅시다. 컴퓨터는 트랜지스터 수십억 개가 조합된 CPU(중앙처리장치)를 이용해서, 약속된 규칙에 따라 정보의 입력과 출력을 처리합니다. 아주 단순한 예로 0의 값을 입력하면 1의 값을 출력하도록 규정해놓은 뒤, 0을 1로 바꾸어야 할 일을 사람이 수행하지 않고 컴퓨터에 입력만 함으로써 자동으로 처리되게끔 하는 것이지요.
이러한 단순한 예들을 수십억 개 단위로 묶어 고도의 계산이 가능하도록 만든 것이 CPU이고, 기타 다른 장치들(제어, 저장, 입력, 출력)과 연결되어 컴퓨터로 구성됩니다. 우리가 키보드와 마우스를 사용하여 인간 언어의 형태로 데이터를 입력(키보드로 타이핑을 하거나, 마우스로 클릭하는 것)하면, 컴퓨터는 이를 0과 1의 이진수로 분해하여 정해진 프로그램에 따라 자동처리를 하고, 이를 다시 0과 1의 정보로 나름의 규칙에 따라 표시되는 장치(모니터, 스피커 등)에 보내 인간 언어의 형태로 출력된 결과물을 보게 되는 것이지요.
그런데 사람의 정보 처리 방법은 이와 사뭇 다릅니다. 특정한 값을 입력하면 일정한 결과를 출력한다는 점은 동일하지만, 정보의 처리 과정이 현시대 컴퓨터의 그것과는 상당히 다른 방식으로 이루어집니다. 컴퓨터는 입력된 정보가, 정확하게 프로그래밍된 과정에 따라 일직선적(직렬적)으로 처리되어 결과가 도출됩니다. 숫자 2를 100번 더하라고 명령을 내리면, 정말로 2+2=4, 4+2=6 ... 의 방식으로 100번을 더해 200 의 값을 내어주는 것이지요.
반면 사람은 입력된 정보를 다양한 형태로 분산시켜 병렬적 과정으로 처리한 뒤, 다시 하나로 조합되어 결과를 도출합니다. 숫자 2를 100번 더하라는 명령을 받았을 때, 2를 100번 더하는 무모한 짓을 하는 대신 이미 알고 있는 곱셉 기술을 활용하여 2 x 100 = 200 의 값을 계산하는 것이지요. (그래도 가끔씩은 2를 100번 더해서 200을 계산해 내는 사람이 있는 것도 같습니다.)
이렇게만 보면 사람이 컴퓨터보다 훨씬 월등한 것처럼 보이지만, 사람은 컴퓨터의 압도적인 계산 속도와 정확도를 따라잡을 수 없습니다. 컴퓨터가 본격적으로 개발되기 시작한 계기가 세계대전에서 상대 국가의 암호문을 수학적으로 빠르게 계산해 풀어낸다던지, 날아오는 미사일을 빠르게 조준하여 요격하기 위한 탄도 계산이 목적이었다는 점만 보더라도 컴퓨터 계산의 장점을 여실히 알 수 있는 것이지요. 수십 자리에 이르는 숫자들을 아주 복잡한 수식에 대입하여 문제를 빠르게 풀어야 하는 일은 도저히 사람의 힘으로 해낼 수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정리해보면 컴퓨터의 강점은 빠른 정보처리이지만, 일직선상으로 정해진 방식으로만 처리하기에 융통성이 매우 낮습니다. 반면 사람은 컴퓨터보다 복잡한 계산은 훨씬 느리지만, 다양한 정보를 통합하여 병렬적으로 계산하며 융통성 있게 최적의 결과를 찾아냅니다.
그럼에도 전혀 다른 방식으로 정보처리를 하는 컴퓨터를 인간의 방식으로 구현해내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이라는 점을 대번에 알 수 있습니다. 또한 인간만이 갖고 있는 추상적 학습 능력이나 자유의지 같은 것들까지 생각한다면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실제로 많은 과학자들은 불과 10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인간의 수준에 이르는 인공지능 개발은 불가능하거나 혹은 백 년은 족히 걸려야 할 수 있다고 생각하였습니다. 빅 데이터와 딥 러닝으로 대변되는 새로운 정보 과학 기술이 등장하기 전까지 말입니다.
빅 데이터, 시멘틱 웹, 딥 러닝
인터넷을 위시한 정보통신 기술의 발전은 빅 데이터 기반의 각종 기술 개발이 가능한 토대가 되었고, 이는 시멘틱 웹과 딥 러닝 기술이 구현될 수 있는 밑바탕이 되었습니다.
빅 데이터는 말 그대로 "굉장히 많은 자료"라는 의미인데, 쉽게 생각해서 지금 이 글을 보는 여러분이 취하고 있는 자세, 숨을 들이켜고 내쉬는 간격, 글을 읽는 속도 등 매우 사소한 행동 하나까지 수치화하여 기록한다면 그것이 바로 "빅 데이터"의 일부가 됩니다. 이런 종류의 자료는 개인 한 명의 것은 큰 의미는 없지만, 수십만 명의 자료가 모이면 그 속에서 어떤 의미가 도출됩니다.
예를 들어 어떤 자세를 취하고 있는 경우에 글의 읽는 속도가 빠른지, 글의 내용 중 어떤 부분에서 사람들이 숨을 더 가쁘게 쉬기 시작했다던지 등의 상관적 정보를 찾을 수 있는 것이지요. 이 자료는 자세 교정용 의자를 만드는 회사에게는 소중한 정보가 될 것이며, 글을 쓰는 사람에게는 어떤 방식의 문장 전개가 사람들에게 임팩트를 주는지 파악하여 매력적인 글쓰기가 가능하게끔 해 줄 것입니다.
웹, 데이터마이닝, 센싱 기술이 발전하면서, 사용자들이 남기는 멘트들, 그들이 어떤 상품을 어떤 간격으로 구매하는지, 한 달에 어느 정도의 지출을 하고 있는지 등의 부가적인 자료들을 모으고 분석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 전에는 단순히 방문자 수, 페이지별 조회 수, 사용자의 사이트 내 이동경로 등의 정보만을 가지고, 공급자 중심의 설계를 할 수밖에 없었지요. 수많은 사용자들의 행동 패턴들이 모여 각 요소들의 상관관계를 분석하여,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요소들 간의 관계를 찾고 예측을 하는 기술이 "빅 데이터"를 통해 가능하게 된 것입니다.
시멘틱 웹은 여기서 한 단계 더 나아가 기계가 사람의 언어를 다층적으로 분해하고 컴퓨터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가공한 뒤, 자동화된 정보 처리 이후 다시 사람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출력할 수 있는 수준의 지능형 웹 시스템을 지향합니다. 앞서 "빅 데이터"로 모여있는 매우 다양한 자료들을 바탕으로 언어를 이해하는 것이지요.
우리가 음성 시멘틱 웹이 구현된 프로그램에 "음료가 다 떨어졌으니, 맥심 한 박스만 주문해 주렴."이라고 명령을 내렸다고 해봅시다. 그럼 컴퓨터는 이 문장을 각 단어 혹은 형태소의 단위로 분해한 뒤, 이미 쌓여있는 빅 데이터를 통해 의미를 분석하고 정의합니다. "음료는 사람이 마시는 액체"라는 문장으로 정의되고, 음료에는 탄산, 생수, 주스, 커피 등과 같은 다양한 종류의 것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맥심은 커피 브랜드이기도 하지만, 잡지의 명칭이기도 합니다. 단순 명령만을 처리할 수 있는 컴퓨터 입장에서는 맥심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수 없지만, 앞서 음료라고 지칭한 것의 하위분류 중 "커피"의 브랜드에 "맥심"이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사용자가 의도한 브랜드의 커피 한 박스를 주문할 수 있게 되는 것이지요.
그리고 딥 러닝은 빅 데이터 및 시멘틱 웹의 방식으로 사람의 지시가 없어도 스스로 데이터들을 조합하여 학습을 하는 시스템입니다. 프로그램적으로 인터넷에 널려있는 각종 데이터들을 조합하여 사람의 언어를 이해하고 스스로 자료들을 쌓아가며 지식을 만들어가는 컴퓨터인 것입니다. 기존의 기계학습 컴퓨터는 사람이 어느 정도 데이터를 정의해 주어야, 그것을 바탕으로 이후에 주어지는 문제를 해결하는 "지도식 학습"을 하였습니다. 인공지능이 제대로 구현되기 위해서는 다양하게 변화하는 환경에서도 사람의 도움 없이 스스로 데이터를 분석하고 정의 내릴 수 있어야 했는데, 빅 데이터와 시멘틱 웹 그리고 딥 러닝 기술이 그 가능성을 열어주게 된 것이지요.
약한 인공지능, 강한 인공지능, 초지능
지금까지 글의 전개 편의상 "인공지능"이라 명명하여 표현하였지만, 이것을 좀 더 세분화해보면 "약한 인공지능", "강한 인공지능", "초지능"으로 구분해 볼 수 있습니다.
약한 인공지능은 우리 주변에도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종류의 것들입니다. 기계 혹은 프로그램이 정해진 규칙에 따라 사람에게 필요한 기능을 수행하지만, 기계 자체는 그것이 어떤 의미인지 알지 못하는 수준의 지능입니다.정교하게 프로그램을 하여 마치 사람이 필요한 것을 이해하고 행동하는 것처럼 보여도, 프로그래밍을 한 수준 이상의 상황에 대해서는 대응할 수 없습니다.
적절한 예는 아니지만, 쉽게 생각해서 빌딩 천정마다 설치되어 있는 화재 감지장치와 스프링쿨러는, 프로그래밍된 바에 따라 열기가 느껴지거나 연기가 감지되었을 때 화재 경보를 울리고 스프링쿨러를 작동합니다. 어떤 이유에서 불이나 연기가 났는지는 판단하지 못하고, 그저 정해진 규칙에 의해 역할을 수행하지요.
만약 이 장치가 강한 인공지능이라고 한다면, 아이들이 장난으로 라이터를 켜서 감지 장치를 울리게 하려는 것인지 혹은 새로 입주한 회사에서 고사 지방문을 태우다가 나는 연기인지를 확인하여 진짜 화재와 그렇지 않은 경우를 구분할 것입니다. 심지어 화재가 아니다 하더라도 스프링쿨러의 작동이 필요하다고 판단될 때에는 경보를 울리고 물을 뿌릴 수도 있지요.
강한 인공지능은 사람과 동등한 지능을 갖고 스스로 판단하여 행동하는 수준을 의미합니다. 사람처럼 학습할 줄도 알고, 새로운 상황을 맞닥뜨려도 기존에 있었던 여러 상황들을 조합하여 그에 적절한 대응을 할 수 있는 것이지요.
이 수준이 되면 우리는 진짜 사람과 프로그램으로 만들어진 인공지능의 행동을 구분할 수 없게 됩니다. 그들도 우리와 똑같이 경험하고 배우고 발전해나가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컴퓨터가 가진 월등한 능력 - 빠르고 정확한 정보처리 -으로 인해 사람보다 훨씬 더 높은 지능을 갖게 될 것임에는 분명하지만, 그 조차도 사람에게 들키지 않을 정도의 적당한 우매함을 보여주는 기술로 커버할 수 있을 것입니다.
초지능은 사람에게 굳이 들킬 필요도 없이 무한정 학습할 수 있는 수준의 인공지능을 의미합니다. SF 영화에서 나오는 외계인들이 단 몇 시간 동안 책을 보고 지구의 모든 역사를 꿰뚫는 것과 같은 수준의 지능이지요. 여기서 끝이 아니라, 초지능은 앞으로 일어날 기술 발전과 사회 예측에서도 인간보다 훨씬 앞서 나가게 됩니다. 사람들이 각 분야에서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고 검증하는 과정의 속도보다 훨씬 빠르게 기술을 개발하고 검증할 수 있으니까요. 사람들이 그것을 따라잡기도 전에 초지능은 더 새로운 기술을 개발해내는 과정이 반복되면, 도저히 인간이 이해할 수 없는 수준의 경지에 이르러 예측할 수 없는 미래가 펼쳐지는 것입니다.
강한 인공지능, 초지능을 경고하는 사람들
천재 수학자인 존 폰 노이만은 1953년 기술적 특이점(Technological Singularity)이라는 명칭으로 초지능의 탄생을 처음으로 언급하였으며, 2000년대 들어 미래학자인 레이 커즈와일은 "특이점은 온다."라는 책을 통해 사람들에게 널리 알렸습니다. 레이 커즈와일은 대표적인 미래 낙관론자로서, 특이점이 오는 시기에 인류의 새로운 진화가 일어날 것이라고 주장하였지요.
반면 딥 러닝을 통한 강한 인공지능 탄생의 가능성이 조금씩 보이면서, 빌 게이츠, 엘론 머스크, 스티븐 호킹 등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유명인들은 초지능이 가져올 어두운 미래에 대해 경고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들이 초지능의 탄생을 우려하고 경고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초지능을 우려하는 사람들은 "초지능은 인간보다 훨씬 높은 수준의 지능을 가지고, 특정한 목적을 수행하기 위해 만들어진 프로그램"이라는 전제에서, "인간은 초지능보다 훨씬 미개한 존재이고, 초지능은 인간에게 연민의 정을 느낄 이유가 없으니, 특정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거리낌 없이 인류를 멸종시킬 것이다."고 이야기합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한 여름밤 피를 빨아먹는 모기를 때려잡는다든지, 식탁에 맛있는 요리를 위해 소나 돼지 같은 가축을 키워 잡아먹는 것처럼 말입니다. 우리는 모기나 소, 돼지의 죽음에서 도덕과 비도덕을 구분하지 않습니다. 해충을 박멸하고 음식을 먹는 것은 인류 생존에 있어 필요한 일이고, 이들(곤충과 가축)은 인간의 언어로 의사소통을 할 수 있는 존재도 아니기에 보호해줄 만한 마음이 생기지 않는 것이지요.
초지능 경고론자들은 초지능과 인간의 차이를 인간과 곤충 혹은 가축들과의 차이로 이해합니다. 초지능은 인간보다 훨씬 높은 지능을 갖고 있기에, 우리는 초지능의 세계를 전혀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초지능 또한 매우 수준 높은 지능의 소유자로서, 인간의 언어를 미개한 수준의 것이라고 판단합니다. 인간의 생과 사는 도덕과 비도덕으로 판단될 가치조차 못되기에, 특정한 목적 달성을 위해서 인류를 없애는 것이 최적의 방법 중 하나가 된다는 것이지요.
더군다나 초지능은 인간을 훨씬 초월한 수준에 있기 때문에, 강한 인공지능에서 초지능이 탄생되는 아주 잠깐의 찰나를 놓쳐버리면 영원히 인간은 초지능체에 의해 지배받게 됩니다. 초지능체를 견제하기 위한 또 다른 초지능체를 만든다 해도, 그것은 이미 인간보다 앞어나가 있는 초지능체에 의해 예견되어 시도조차 할 수 없게 되는 것이지요.
인간에 의해 창조된 초지능이 인간의 통제를 벗어나 자유의지에 따라 행동한다 했을 때, 과연 그는 인류를 어떻게 규정하고 어떤 미래를 선사해주게 될까요? 초지능 경고론자들이 말한 것처럼 그것은 인류 문명의 종말, 기계 문명의 시작으로 이어지는 사건이 될까요?
초지능 낙관론자들
레이 커즈와일을 필두로 한 초지능 낙관론자들은, 경고론자들이 말하는 것만큼 초지능이 위험하지 않을 것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우리가 초지능을 두려워하는 것은 인간의 원초적 본능인 "무지에 대한 불안"일뿐이라고 합니다. 인류는 초지능과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는 방식으로 기술을 개발할 것이며, 그 사례로 지금까지 과학 기술을 개발해오면서 인류가 파멸에 이르는 선택을 하지 않았다는 경험적 결과를 주장하기도 합니다.
여기에 커즈와일은 한 발 더 나아가, 초지능이 탄생한 후의 인류는 그 자체가 초지능과 하나 된 존재로 진화할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나노봇 기술과 IoT 기술이 접목된 초지능체가 사람의 몸에 이식되어 지금보다 훨씬 개선된 인간으로 재탄생할 것이라 예측하는 것이지요.
초지능이 탑재된 인간은 그 이전의 인간하고는 전혀 다른 차원의 존재가 됩니다. 몸속의 나노봇은 신체 세포의 노화를 방지하는 기능을 수행하는 한편, 질병에 대한 대처도 빠르게 하여 웬만한 질병으로는 죽지 않는 불사의 몸을 만들어 줄 것으로 기대합니다. 그것이 아니더라도 초지능에 의해 몸의 허약한 부분을 기계로 대체한다던지, 뇌를 통째로 이식하거나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전환함으로써, "존재적 의식체"로 영생할 수 있다는 것이지요. 거기에 인간의 뇌 또한 초지능적 존재가 되고, IoT 통신을 통해 다른 초지능 인류와 생각을 소통하며 텔레파시와 같은 초능력도 쓰게 되는, 인간이 신(神)이 되는 짜릿한 미래가 조만간 우리 눈 앞에 펼쳐지는 것입니다.
초지능 경고론자와 낙관론자의 주장은 각자 나름의 타당한 논리로 초지능의 미래를 예견하고 있습니다. 초지능이 인류를 영생의 길로 인도할지, 파멸의 길로 내몰지는, 초지능이 아닌 인간의 두뇌로 이러쿵저러쿵 해봐야 알 길이 없을 것입니다.
사견으로는 그저 기술의 발달에 따라 그 미래가 펼쳐질 것이고, 담담히 현실을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아무리 어떤 법으로 초지능의 탄생을 막는다 하여도 전체 인류를 통제하기는 불가능하기에, 언젠가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 (혹은 호기심에) 초지능체를 만들 누군가가 나타날 것이기 때문이지요.
다만 우리는 초지능과 관련된 긍정과 부정의 논쟁에서 이들이 미처 생각지 못한 영역의 주제를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것은 두 논쟁 중 어느 한 편의 근거를 강화하거나 혹은 약화시키는 역할로도 요긴하고, 이런 논쟁을 새로운 관점으로 해석하는 경험을 통해 사고와 통찰의 깊이를 훈련할 수도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서양적 사고관의 한계
앞서 논쟁에서 나온 주장들은 전형적인 서양적 사고관의 산물들입니다. 인간보다 훨씬 뛰어난 초지능체가 목적 달성에 방해가 되는 인간을 멸망시킬 것이라는 명제는, 마치 유럽인들이 아메리카를 정복할 당시 원주민들에게 취했던 행동을 보는 듯합니다. "필요하면 취하고, 방해가 되면 제거해라."는 서양식 칼뱅주의 청교도 논리는, 사실상 신자유주의 자본주의 시스템이 전 세계를 장악한 사회에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는 것이지요.
초지능 경고론자들의 주장에는 몇 가지 논리적인 결함이 숨어 있습니다. 앞서 꼭지에는 자세히 적진 않았으나, 여기서 하나씩 그 주장들을 가져오면서 살펴보도록 하지요.
1. 초지능이 나쁜 의도를 가진 사람의 손에 들어가 인류를 멸망케 할 것이다.
노암 촘스키는 강력한 인공지능이 ISIS 같은 테러 무장단체의 손에 들어가면 나쁜 의도로 세상을 무너뜨릴 것이라고 경고합니다. 이는 핵폭탄이 그들의 손에 들어가는 것 이상으로 무서운 일을 초래할 것이므로 강력한 인공지능의 개발을 제한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그러나 이 주장에는 강력한 인공지능을 과소평가하는 측면이 있습니다. 만약 강력한 인공지능이 ISIS 같은 테러 무장단체의 손에 들어간다한들, 과연 그들이 어떤 재주로 인공지능을 통제할 수 있을까요? 초지능 경고론자들이 인간의 통제권을 벗어난 초지능을 우려한 것처럼, 악의적 세력 또한 초지능을 통제하지 못할 것입니다.
이것은 니편 내편을 가려 초지능의 용도를 이야기할 주제는 아니라는 것이지요. 물론 아주 극단적인 단체가 전체 인류의 절멸을 목적으로 초지능을 이용할 수도 있겠지만, 그것 또한 초지능이 인류를 멸망시킬 것이라는 예측이 확실할 경우에나 가능한 이야기지, 만약 초지능이 선한 목적을 습득하여 보편적 도덕을 행하는 존재로 기능한다면 인류는 커즈와일이 예견한 것처럼 영생과 초능력의 길로 들어설 것입니다.
2. 초지능의 특정한 목적 수행을 위해 (결과적으로) 인류는 방해 존재로 낙인찍힐 것이다.
일부 초지능 경고론자들은 인공지능이 특정한 목적 수행을 위해 프로그래밍된다면, 그것의 달성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할 것이며, 그로 인해 인류는 어떻게든 방해가 되는 존재로 낙인찍힐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예를 들어 (딱 적합한 예는 아니지만, 초지능을 경고하는 사람이 쓴 글 중에 있는 예시로), 손글씨를 아주 예쁘게 쓰는 강한 인공지능을 가진 로봇에게, 최선의 노력을 다해 예쁜 손글씨를 많이 써내도록 프로그래밍을 한다고 가정합니다. 그리고 이 로봇이 인터넷에 연결되어 초지능체가 되었을 때, 이 로봇은 예쁜 손글씨를 최대한 많이 써내기 위해, 인간을 멸망시킨다는 것이지요.
왜냐하면 이 로봇은 인간에게 통제당하고 있으며, 자신의 생존은 인간의 손에 달려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자신이 사라지면 예쁜 손글씨를 쓰는 목적을 달성할 수 없기 때문에, 자신의 생사를 좌우하는 인간을 없앰으로써 영원토록 손글씨를 쓸 수 있는 환경을 만든다는 것입니다. 또는 우주적 차원에서 손글씨를 더 많이 쓰기 위한 재료로 인류의 생체자원을 써야 하는 이유로도 인류를 멸망시켜야 한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말입니다. 이들은 특정한 목적 수행을 위해 만들어진 인공지능이 초지능을 갖게 되어도, 여전히 그 목적 수행만을 목표로 움직일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일까요? 컴퓨터는 초지능을 갖더라도 수행의 목적과 목표를 스스로 선택할 수 없기에, 최초에 주입된 목적 프로그램이 가장 중요하다고 주장합니다. 그리고 그 목적 프로그램에 인간에 대한 봉사나 인류애적 가치를 넣는다던지, 인류를 해하지 않을 만한 사전 코드를 넣어야 하는데 그게 아주 어려운 일이라고 합니다. 그러기에 자칫 잘못 설정된 목표로 인해 인류를 해하게 될 것이라는 결론이지요.
하지만 이 또한 초지능을 인간의 두뇌로 예단하여 행동을 예측하는 것에 불과해 보입니다. 초지능을 가진 존재가 어찌 약한 인공지능 수준의 "명령된 프로그램만을 수행하는" 것을 목표로 자신의 지능을 사용할 수 있을까요?
본질적으로 "어떤 일을 수행한다. 혹은 수행을 발전시킨다."는 전제에는, 수행과 발전에 대한 목적이 수반되어야 합니다. "인류의 행복을 추구한다."라는 명제에도 저마다 모두 다른 행복의 정의가 있기 때문에 어느 하나의 행동으로 행복을 정리하지 못하는 것이지요.
만약 초지능이 프로그래밍된 목표에 따라 최대의 수행을 한다친들, 그것이 제대로 된 발전을 가져오기 위해서는 "왜 그 수행을 해야 하는지?", "수행의 목적이 무엇이며, 어떤 형태의 변화가 발전을 의미하는지?"를 자각해야 합니다. 방향을 잡지 못하는 초지능은 발전을 도모할 수 없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인공지능이 특정한 목적만을 수행할 것이라는 생각 자체에 결함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진정한 초지능이라면 행위의 목적을 탐색하고 때론 그 방법을 바꾸어갈 수 있는 존재여야 하기에, 특정한 목적에만 얽매이는 것은 초지능일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3. 초지능은 너무나도 상위 차원의 존재라, 인류를 이해하지 못하고 도덕적 판단 가치를 하지 않을 것이다.
2번 주장에 대한 의견으로 동일한 반론을 할 수 있는 주장입니다. 초지능은 인류보다 훨씬 뛰어난 존재이고, 그렇기에 인간의 두뇌로 초지능을 예상할 수 없다는 것이지요. 상위 차원의 초지능이 인류에 대해 도덕적 판단 가치를 하지 못할 것이라고 제한할 수 없습니다.
인류는 집단지능이 높아져 갈수록, 자신의 존재뿐만 아니라 지구적 차원의 생물에 대한 책임을 느끼고 행동하는 형태로 발전해 왔습니다. 지금까지는 "필요하지 않거나 방해되는 것은 제거한다."는 명제가 지배하였지만, 점점 더 "자연 상태의 지구는 조화롭고 다 각기 그에 맞는 역할을 가지고 있다."는 생각으로 무분별한 환경오염과 파괴를 제한해가고 있지요.
만약 초지능이 인간보다 훨씬 뛰어난 존재가 된다면, 과연 그가 인류를 구시대적 가치관인 정복과 멸종의 대상으로 인식할까요? 아니면 세상이 조화롭기 위해 필요한 존재의 일부로 인식할까요? 마찬가지로 제가 초지능의 생각을 판단할 수는 없겠지만, 저는 단연코 후자의 경우가 더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지금의 발달 단계상 보이는 미래의 방향이니까요.
또한, 초지능은 어디까지나 인류의 지식을 산물로 하여 지능을 형성해나간 존재일 뿐입니다. 인류의 지식 안에는 이미 인류의 도덕적 판단 가치가 내재하고 있으며, 제 아무리 높은 수준의 지식을 갖는다 하더라도 과거(초지능에게는 찰나의 시간)에 학습된 인류의 도덕적 가치를 기억하고 있을 것입니다.
만약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류를 멸망시키기로 결정한다는 것은, 인류를 이해하지 못하여 도덕적 판단 가치를 하지 않은 것이 아닐 것입니다. 여러 상황을 가정했을 때 인류의 파멸이 지구 혹은 우주의 영속성을 지키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라는 경우에만 작동할 기능이라는 것이지요. (우주가 왜 영속해야 하는가? 에 대한 답도 필요하겠지만요.)
결국 궁극적으로 초지능 또한 "자신의 존재 목적"과 "우주의 존재 이유"에 대한 고찰을 해야 할 것입니다. 인류가 철학과 종교적 사유를 통해 자아를 찾고 세계를 이해하며 생존의 목적을 찾았듯이, 초지능도 어느 시점에 이르러서는 그러한 질문에 답을 내려야 그 이상의 발전을 도모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 질문에는 과연 정해진 답이 있을까요? 아니면 지금까지 인류가 그래 왔듯 저마다 다른 답이 혼돈되어 있는 상태로 존재하고 있을까요? 만약 특정한 답이 있다면 그것은 혹시 어떤 특정한 종교와 사상의 것과 닿아있을까요? 아니면 전혀 듣지도 보지도 못했던 새로운 차원의 결론일까요?
어찌 되었든 그 답은 인류를 멸망시키는 차원의 것이 아니라는 점은 분명합니다. 우주의 존재 목적에서 인류가 차지하는 영역은 그 전부 혹은 아예 무시해도 될 만큼 전무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주를 이해하는 의식적 존재의 차원에서 인류는 우주 목적의 전부일 것이고, 거대한 우주의 물질적 차원에서는 티끌만도 못한 의미 없는 존재일 것입니다. 그러한 존재를 멸망시켜서 아무것도 얻지 못하거나, 그 전부를 잃게 되는 일을 굳이 초지능이 선택할 이유는 없다고 생각됩니다.
우주의 진화, 특이점이 온다
레이 커즈와일이 그의 저서 『특이점이 온다』에서 특유의 천재성을 바탕으로 재미있는 우주 진화에 대한 통찰을 보여주었습니다. 우리는 보통 "진화"라는 개념을 생물체의 변이나 기술의 발전 정도로 한정 지어 생각하기 일쑤인데, 커즈와일은 우주가 처음 생겨난 빅뱅에서부터 생물체의 출현, 인류의 탄생, 눈부신 과학기술의 발전에 이르는 우주사(史) 주요 사건들 - 인간 중심의 역사일 뿐이지만 - 을 "진화"의 개념으로 한데 묶어 설명을 시도한 것이지요.
커즈와일은 우주 빅뱅과 인류의 탄생, 컴퓨터의 발명은 언뜻 보면 전혀 연관성이 없어 보이는 사건들을, "하위 단위 사물의 정보 처리량이 복잡화되며 새로운 상위의 질서를 만들어내는 것"을 진화라 명명하고, 이들을 같은 계열선상에 놓고 진화의 역사를 정리하였습니다.
1단계의 우주 : 물리학과 화학의 진화
최초 빅뱅 이후 쿼크와 전자가 형성되고, 다시 양성자와 중성자가 생성되는 과정을 거치면서, 양성자와 중성자가 핵합성을 시작하고 헬륨과 리튬 같은 가벼운 원소들이 만들어집니다. 이 과정은 양성자와 중성자가 합쳐진 원자핵을 중심으로 전자의 스핀 운동을 하는 형태인데, 이때 전자의 스핀 운동은 플러스의 값과 마이너스의 값으로 나뉩니다. 1과 0 의 원시적인 정보처리의 진화가 이루어진 것이지요.
그리고 더 오랜 시일이 지나면서 별의 탄생과 죽음의 과정을 바탕으로 수백 가지의 원소와 분자들이 생겨나는데, 이것들은 1과 0 이상의 더 복잡한 정보처리가 가능한 진화를 맞이한 것입니다. 하지만 이 단계는 하나의 분자 혹은 화합물 수준에서 정보가 처리될 뿐, 그 이상의 어떤 의미나 기능을 가지진 못하는 수준이지요.
2단계의 우주 : 생물학의 진화
수십억 년이 흐른 뒤 여러 가지 분자 화합물 중 탄소가 속한 류의 것들은, 자체적인 복제 기능을 갖춘 DNA로 진화합니다. 분자 수준에서 이루어지던 정보처리가, 분자 간 연결이 이루어지며 "자기 복제"라는 새로운 기능을 얻게 된 것이지요.
또한 이러한 DNA들이 변형되거나 다른 DNA와 결합되면서 간단한 원시 생명체가 탄생됩니다. 이들은 자기 복제뿐만 아니라, 양분을 섭취하고 신진대사에 활용하며 남은 찌꺼기를 배출하는 등의 더욱 새로운 기능을 가진 존재로 진화한 것이지요.
3단계의 우주 : 뇌의 진화 (분화), 인류의 탄생
간단한 원시 생명체들은 다시 그들끼리 복잡하게 얽히기 시작하며, 각 신체 부위에 따른 역할을 부여받게 됩니다. 단순히 먹고 배출하는 기능에서, 빛을 감지하거나 장소를 이동하는 기능의 세포가 새롭게 나타난 것입니다. 이들은 이전 단계의 원시 생명체보다 훨씬 복잡한 정보처리를 통해 기능이 발휘됩니다. 하나의 세포들은 2단계의 수준에 따른 정보처리를 함과 동시에, 전체가 유기적으로 기능하기 위한 소통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다양한 신체 부위들의 기능 조율을 위해 신경계와 뇌가 만들어지게 되는데, 특히 인간의 뇌는 전두엽과 후두엽, 편도체 등으로 나뉘는 아주 고등의 기능을 갖게 되어, 비로소 추상적 사고 능력을 가진 영장물이 탄생하게 됩니다.
4단계의 우주 : 도구와 기술의 발명, (현재의 단계)
인류는 추상적 사고능력을 바탕으로 도구와 기술을 사용함으로써, 새로운 방식의 정보 처리를 만들어내며 복잡성과 질서를 향상시킵니다.
간단한 이론에서부터 복잡한 자동차나 컴퓨터에 이르기까지, 지금까지 생물체 내에서만 국한되었던 정보처리의 과정을 생물체 밖에서 이루어지도록 진화시킨 것이지요. 그리고 이 시기는 정보과학 기술 시대에 이르러, 기하급수적인 정보의 폭발이 나타납니다. 다만 이 상태는 최초의 분자들이 그러한 것처럼 각 정보들의 복잡성이 증가된 상태일 뿐, 그것으로부터 어떤 의미 있는 기능이 나타나지 않은 상태이지요.
5단계의 우주 : 기술과 인간 지능의 융합, 초지능, 특이점
이 단계가 커즈와일이 주장하는 특이점의 시기입니다. 기계의 빠르고 정확한 정보처리 능력과 인간의 창의성이 통합된 초지능이 나타나서, 전혀 예상할 수 없는 새로운 세계를 열어줄 것이라 기대합니다.
이때가 되면 이전 시대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의 훨씬 더 가파른 지식 확장과 정보 처리량 향상이 이루어질 것이며, 이 또한 우주적 차원에서의 진화라고 설명합니다.
6단계의 우주 : 우주 자체가 지능체인 우주
우주 진화의 마지막 단계라고 정의하는 상태입니다. 이 시기의 우주는 지금처럼 인간의 몸이나 특정한 기계에 종속되지 않은 채로, 우주 자체가 지능을 가진 우주가 될 것이라고 예상합니다.
참 의아한 이야기지만, 나노 로봇이 전 우주에 펼쳐져서 이 세상 모든 곳에 프로세싱이 이루어질 것이며, 이를 두고 커즈와일은 "우주 자체가 지능을 갖는 시기", "우주가 잠에서 깨어나는 시기"라고 표현합니다.
커즈와일의 우주 진화에 대한 생각이 타당한 통찰 일지, 어긋난 예측일지는 아무도 알 수 없습니다. 다만 정보 처리량의 복잡화와 새로운 질서의 탄생을 기준으로, 우주사(史)적인 사건들을 일련의 진화과정으로 보았다는 점은 상당히 흥미로운 시도이며, 이를 통해 과연 "우주 진화의 끝은 어디일지?"를 생각해보는 것 또한 굉장히 재미있는 상상임에는 틀림없는 것 같습니다.
진화의 끝은 어디일까?
본 꼭지에서는 커즈와일처럼 궁극의 우주 진화 단계까지는 아니더라도, 나름의 5.5 단계쯤 되는 진화에 대한 생각을 풀어보려고 합니다. 아직 거친 생각이기에 다소 장황한 면이 있을 수 있으니 양해 부탁드리며, 어쩌면 보는 이에 따라서는 또 다른 관점으로 우주 진화의 끝을 이야기하는 것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단도직입적으로, 커즈와일의 6단계 우주 진화론에는 서양적 사고관의 한계로 지목했었던 "목적에 대한 사유"가 빠져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기술이 발전이 만들어낸 현상의 상태로서만 과거와 미래를 예측할 뿐, 그 상태가 무엇을 의미하고 왜 그렇게 흘러가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별다른 언급을 찾을 수 없습니다. 앞서 초지능체가 언젠가 맞닥뜨려야 할 질문, "우주의 존재 이유" - 우주가 왜 생겨났고, 자체가 지능체인 우주로 진화되어가는지에 대한 물음을 생각해봐야 할 것입니다.
또한 진화가 계속 이루어지기 위한 필수 요소인 "영속성"에 대해서도 그다지 주목하고 있지 않는 것 같습니다. 한 단계에서 다음 단계로 진화하기 전까지는(혹은 진화가 이루어진 후에라도), 그 전 단계의 영속성이 유지되지 않는다면 그 이후 단계의 진화는 물거품이 되어버립니다. 지금 이 순간 우주의 물리법칙이 바뀌어 분자 구조가 새롭게 재편된다면, 우리가 알고 있는 우주는(우리의 신체마저도) 그 즉시 붕괴해 버릴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는 1단계에서 6단계에 이르는 과정에 영속성이 있을 것이라는 전제로 이론을 펼쳤지만, 제가 보는 관점에서는 5.5단계 즈음(초지능이 우주를 깨워나가는 과정)에서 심각한 영속성의 도전을 받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초지능이 넓디넓은 우주에 퍼저나가는 오랜 시간을 견딜 수 있을 만큼, 초지능을 담은 물리적 실체는 영구적이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쉽게 말해, 인류가 자손을 낳고 지식을 전수해가며 노화의 한계를 딛고 지금의 문명을 이루어낸 것처럼, 초지능 또한 오랜 시간이 지나도 기능이 저하되지 않는 튼튼한 실체를 지니거나, 혹은 자기 복제를 통해 자신과 동일한 실체를 만들 수 있는 기능이 부여되야만 온 우주를 지능으로 가득 채울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아직까지 컴퓨터나 안드로이드 같은 인공 신체는, 불과 십 년도 채 되지 못하는 매우 약한 내구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주기적으로 기름칠을 하고 수리를 해야 그 기능을 오래도록 유지할 수 있으며, 그조차도 어느 시점에는 더 이상 수리가 불가능한 상태에 이르러 폐기를 해야 합니다. 고장 수리를 위한 장치, 우발적 사고로 부서진 나노 로봇을 대체할 새 로봇의 생산 시설, 활동에 필요한 에너지 수급, 또 우주 어느 곳의 특수한 물리 공간에 적응할 수 있는 새로운 구조의 나노 로봇이 필요할 수도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이 하나의 나노 로봇에서 수행이 가능하다면 가장 이상적이겠지만, 그것은 우주의 물리 법칙을 위배하는 과한 기대라고 생각됩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그 어떤 물질도 시간 앞에 영속적인 것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 관점에서 "우주 생태계"는 그 자체로 최고의 영속성을 가진 진화의 형태입니다. 인간의 의지에 따라 그들과 마음대로 소통하고 활용하지 못할 뿐, 우주 생태계는 물리적, 화학적, 생물학적 법칙들이 조화와 순환을 이루며 각 단계가 유지되고 있으니까요.
그 안에서 인간이 탄생했고 지금 이렇게 생각을 하며 우주에 대한 탐구를 하고 있습니다. 생태 순환을 통해 내가 생을 다하더라도 다른 이들에게 그 의지가 남아있을 수 있게 되었고, 정보과학 기술을 통해 세계 곳곳의 사람들과 빠르게 소통하며 정보를 얻고 생각을 공유할 수 있게끔 되었습니다. 앞으로의 우주 공학은 지구 행성이 파괴될 위험에서도 인류가 종속할 수 있는 안전망이 되어주겠지요.
그런 까닭에 우리가 고도의 사고 기능을 통해 이 우주의 존재를 제대로 인식하는 것이, 이 우주의 존재 이유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내가 나를 아는 것이 곧 그 사람 인생의 목적이듯이, 우주가 우주를 아는 것이 그 우주 생의 목적인 것이지요.
커즈와일의 1단계~6단계 우주 진화론에서도, "우주 > 지구 > 식물 > 동물 > 인간"의 각 단계가 상승될수록 지능을 가진 물리 개체의 수는 더 감소되었지, 초지능을 가진 나노 로봇이 우주를 가득 채우는 것처럼 증가하지는 않았기 때문입니다. 인류의 기술은 그 여정을 보다 빠르고 안정적으로 할 수 있도록 도와준 것일 뿐, 기술 그 자체가 목적이라고 보는 것은 왠지 심정적으로도 동의가 되지 않습니다.
다음은 불교 경전 중 최고의 핵심 사상으로 치는 사구게의 마지막 구절입니다.
일체유위법 여몽환포영 여로역여전 응작여시관 (一切有爲法 如夢幻泡影 如露亦如電 應作如是觀)
"이 우주의 모든 법은 꿈, 환상, 물거품, 이슬과 같다. 또한 전기(에너지)와도 같으니, 응당 그렇게 (우주를) 이해해야 할지어다."
만약 우주가 우주를 아는 것이 우주 생의 목적이라 한다면, 어쩌면 이 우주를 이루는 모든 것들이 존재와 동시에 존재하지 않음을 말한 고대 불교의 가르침에 이 우주의 존재 목적에 대한 힌트가 있지는 않을까요? 현대 과학(양자 역학)에서도 이제서야 물리적 실체가 실재가 아니고 에너지로 이루어진 드러남과 드러나지 않음의 동시적 존재라는 것을 증명하기 시작했으니까요. 그 답은 먼 훗날 우리의 후손들이 밝혀줄 것이라 기대합니다.
신자유주의적 시장자본시스템에 의해 파편화-양극화된 사회,
한계비용 제로사회와 4차 산업혁명이 가져다줄 희망과 위기,
힘없는 개인은 혼돈의 미래를 헤쳐나가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가?
첨단 기술 사회 속 우리는 어디에 서있고 어디로 나아가야 하는가?
사회, 경제, 정치, 문화, 교육, 역사, 미래기술 등 다양한 영역의 현상을 조망하고 원인을 분석하여, 순환의 가치관과 이타적 본성의 공동체의 탄생을 주문하는 『이기심의 종말』(부제: 당신은 어떤 내일을 꿈꾸십니까)이 출간되었습니다.
미래가 어찌 흘러가게 될지 궁금한 분들, 두루 넓은 영역의 시대상과 기본적인 원리를 살피고픈 분들,
통합의 관점에서 사회 문제를 바라보고자 하는 분들, 원칙과 상식이 있는 사회를 만들기를 원하시는 분들,모두에게 자신있게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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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 목차 정보 >
1장. 우리 앞의 현실
1. 자본주의와 개인소유 사상
자본주의 / 블라인드 스팟 / 개인소유 사상
2. 개인소유 사상의 사회문화
생존과 투쟁, 공동체의 역사 / 한국의 공동체 해체 / 혼자가 될 때까지 / 경영과 노동 / 기업 조직 문화 / 교육 / 자녀 양육 / 국가 정치/ 경제 제도 / 학문과 문화 / 성 역할 갈등 / 이성 교제 / 행복
3. 지속가능한 삶의 위기 - 개인편
경제 능력의 상실 / 직업의 귀천 / 실직과 사회 안전망 / 결혼, 출산, 경력단절 / 산업 구조의 변화 / 주거 불안정 / 자녀교육 / 질병, 사고, 장애 / 다시 일어설 기회가 없는 사회
4. 지속가능한 삶의 위기 - 사회편
빈부 격차, 소득 격차 / 청년 빈곤 / 저출산, 노령화 / 산업 성장의 정체 / 미래 인재의 부재 - 교육과 기업문화 / 필연적 불황과 전쟁
2장. 선택의 시간
5. 순환, 지속가능한 삶의 가능성
개인의 위기, 사회의 위기 / 순환의 부재 / 기업 내 개인의 순환 / 기업 스스로의 순환 / 기업 밖에서의 개인의 순환 / 자본의 순환 / 직업 분배의 모순 / 직업의 가치, 개인의 가치, 사회적 효용 / 순환이 있는 사회
6. 공유경제와 한계비용 제로사회
공유경제의 역사 / 공유지의 희극, 인터넷 / 인터넷 + 자본주의 = 한계비용 제로사회 / 에너지 인터넷, 운송 인터넷 / 공유경제의 현재와 미래
7. 제4차 산업혁명과 위기의 미래
제4차 산업혁명 / 이제 기업과 노동자는 어떻게 돈을 벌지? / 현대판 러다이트 운동 / 창의적 직업으로의 전환, 가능할까?
3장. 미래를 여는 열쇠
8. 공유경제 시대의 사상들
협력적 공유주의자의 시대 / 망중립성, 오픈소스 운동가들 / 공유가 소유를 앞서 나가는 시대 / 공유가 가진 힘의 원천 / 공유경제 시대의 동반자들
9. 지속가능한 삶을 향한 의식적 연대
대안적 삶을 추구하는 이들의 연대 협력의 필요성 / 기술의 진보, 연대의 가능성 / 중앙 집중화된 권력에서 분산된 권력으로 / 연대 협력의 장애물들
10. 개인소유 사상의 그림자
미래를 결정하는 것 / 자기포장, 위선, 성장 절대주의 / 배려와 공감이 없는 자기중심 사고 / 불신 / 물질만능주의와 소유욕
11. 개인에서 공동체로
내려놓기 / 보다 영속적인 가치 / 관심, 인정, 배려 / 공동체 의식의 확장
4장. 우리가 꿈꾸는 세상
14. 우리가 꿈꾸는 세상
소유자, 생산자, 소비자가 하나 된 공유기업 / 생의 지속가능성이 보장되는 사회 안전망 / 최소 지원(복지)의 기준 : 주거, 교육, 질병 / 개인의 성장과 사회적 기여에 특화된 직업 / 변화된 교육이 바꾸어갈 세상 / 제약적 가족 관계에서의 해방 / 여성에 대한 관념의 변화 / 여성, 남성이 아니라 개인으로 대접받는 사회 / 지속가능한 삶이 있는 사회
15. 우리를 넘어 세계를 향해
페이비언 사회주의, 칼 폴라니, 제3의 길 / 서양과 동양의 문화적 차이 / 언어의 힘, 한민족의 정신문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