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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느린나로 Dec 24. 2023

백남준, 달은 가장 오래된 TV

해방을 위한 상상력


백남준, 대단한 예술가라고만 들었을 뿐 나는 그에 대해서 아는 것이 거의 없다. TV를 매체로 사용해 무언가를 전달하려고 했던 난해한 전위예술가 정도가 내가 아는 것의 전부였다. 사실 난 예술과 거리가 멀다고 하는 1인이었고 음악에 취하고 영화를 좋아했어도 그것을 예술이라는 단어와 연결시키지 않았다. 취미에 머물면서 미침방지를 위한 방어였을 것이다. 


1956년, 독일에 건너가 기꺼이 미친 백남준이 이제야 이해가 되는 것은 하나의 서사로 구성된 영화를 본 때문이기도 하고 그래도 조금이나마 금기의 실선들이 옅어진 나의 마음 때문일 것이다.




이 익살스러움이란....



6.25가 막 끝나고 분단되고 전쟁으로 피폐한 시기에 유럽으로 떠날 수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는데 한국에서 그의 집안은 금수저 중의 금수저여서 가능했을 것이라는 예측을 해본다. 하지만 그는 아버지와 거의 인연을 끊다시피 하면서 독일에서 홀로 고독과 혼란 속을 배회하며 지낸다. 


그러다 존 케이지의 즉흥적인 연주 또는 퍼포먼스를 보게 되면서 그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즉각 알아차리고 머리에 물감을 떡칠하고 그림을 그리거나 피아노를 넘어뜨려 부수는 등의 기존의 예술 형식들을 파괴하는 아방가르드 그룹에 함께 참여한다.


보수적인 권력과 유착하여 비리로 돈을 버는 아버지에게 그는 쓸모없는 놈이었고, 거기에 반발해 13살부터 사회주의자라고 단언할 만큼, 시대에게 아버지에게 반항적이었다. 모든 예술이 그렇지만 그의 예술은 아주 적극적으로 기존의 형식들을 깨뜨리고 변형하고 비틀어 비판하는 것에 주력한다.


미국으로 건너가서도 많은 실험들을 하고 기계 문명, 테크노에 대한 우려와 저항을 그 당시 로봇을 만들어 구현하기도 하면서, 가난과 함께 끊임없이 시도하고 모색하고 만들어내는 것을 중단하지 않는다. 


이것이 참 놀랍다. 소위 예술계에서 비판 내지는 구박을 받고 인정받지 못하면서도 계속 연결하고 만들어나가는 것은 그와 함께 하는 아방가르드 집단의 친구들이 있어서이기도 하겠지만 그냥 떠오르는 대로 마구 달려 나가는 의지는 흡사 천진난만한 돈키호테를 떠올리게도 한다. 


그는 바이올린을 끌고 다닌다.  태연하게 사람들 사이를 가로지른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떠오르는 영감들을 그는 끊임없이 실행에 옮긴다. 이것이 보통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인가? 더구나 지금보다 더 근대 보수적인 사회틀 안에서 미치지 않고서는 할 수 없는 일이지 않을까?


백남준은 예술적 광기와 천재성 그리고 예감과 직관이 흘러넘친다. 예술가는 어쩌면 적어도 한 세대를 먼저 앞서 나가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니체 혹은 고흐처럼. 애쓰며 살다 간 그들이 있어서 우리는 지금을 살 수 있는 것이고 백남준 역시 우리나라에 적지 않은 기여를 했고, 전 세계 많은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었다. 


라디오를 보급하게 된 것이 히틀러라는 것, 그래서인지 TV가 나오자마자 그 흐름을 예측하고 TV가 가지는 일방향의 권력을 깨뜨리기 위해 TV를 자신의 표현 매체로 삼는다. TV의 주어진 기계성을 해체하기도 하고 TV와 상호작용을 시도하고 다양한 실험들을 하다가, TV 앞에 불상을 가져다 놓으면서 전 세계적으로 대가의 반열에 오른다.


근엄하고 자비로우신 부처님이 TV 앞에서 울고 웃는 모습에 많은 사람들이 열광한다. 이후 백남준은 보다 자유롭게 전 세계를 무대로 자신의 세계를 펼쳐 나가고 덕분에 우리나라에도 오게 되는데, 그 시절 자신의 안전이 위태로워질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조심하면서 위험에 대한 안배를 해놓는다. 목숨을 걸고 방문했다는 것이 참 슬프기도 하고 무언가 턱~ 하고 걸린다. 


아마도 근래에 서울의 봄을 봐서 더 그럴 수도...있지 싶다.




달은 가장 오래된 TV


달은 저절로 우리에게 상상력을 불러온다. 다큐가 아닌 최초의 공상과학 영화, 조르쥬 멜리어스의 [달세계 여행]도 아마 연장선이지 않을까? 우리 안의 여러 가지 이야기들을 달을 보면서 떠올릴 수 있고, 거의 감각하지 못하지만 달의 변화에 따라서 우리의 몸도 영향을 받는다. 


우리의 것을 투사하게 하고 이야기를 잣게 하고 몸과 마음에 영향을 미치는 달의 이야기를 그는 TV라는 기계장치로 변용했을 것이다. 






환장하게 열정적으로 자신의 마음을 향해 나아갔던 거인이자 천재는 뇌졸중으로 반신불수의 몸으로도 끊임없이 만들어내고 나아간다. 그렇게 그가 이 세계에 머물다 떠났다.


영화로 그의 이야기를 듣고 보는 것으로 그의 삶을 얼마나 알 수 있겠냐만 건너다보는 것만으로 다시 살아나게 하는 그는 거인이 틀림없다.


우리가 살 수 있는 시간은 고작 100년, 요즘은 길게 120년까지, 그런데 뭘 그렇게 두려워하고 피하고 안전하게 살려고 하는지, 이 맹목적인 욕구는 참 질기기도 하다. 그리고 그 절반정도 만치 살아온 이 지점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생각들이 오고 간다. 


불가능해 보이는 것들을 시도해 보고 실패하고 다시 해보고, 다르게 해 보고, 또 다시 해보는 것, 습관화된 몸의 움직임에서 다른 움직임들을 찾아가 보는 것, 그리고 내 안에서 추동되는 것들을 되도록 거르지 않고 시작해 보는 것, 이것을 지금이 아니면 언제 해볼 것인지...


그래서 마음속에만 있다가 시도하지 못한 것들을 차례대로 조금씩 해나가고 있다. 전혀 관계없을 것 같았던 메주를 만들기 위해 콩을 삶고 있다. 웬만하면 내가 먹는 것들의 전부는 아니지만 그래도 되도록 많은 부분들을 직접 하려고 한다. 


내가 먹는 것들이 나의 몸을 구성하고 거기에 마음도 덧붙여진다. 먹는 것이 나를 이루고 있다는 단순한 자각을 하게 되면서 기본적인 음식들은 내가 만들어 먹는 것이 최소한의 책임이자 거대한 우주의 흐름을 타는 것이다. 







이렇게 하기 위해서는 시간의 틈을 벌려서 좀 느리게 흘러야 한다. 매 순간마다 나도 모르게 즉각적으로 계산하고 효율적인가를  따지는 의식의 흐름에 밀려가지 않으려 저항하면서 처음에는 답답함이 느껴지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왠지 모르는 편안함의 맛을 알았다. 편리하고 빠르고 요령 좋은 것들을 좀 미뤄두고 미련하게 살아보는 것이다.


당장 돈이 안되고 비전이 없어 보이는 일에 기꺼이 몰입해 보는 것, 그 안에서 나는 내 삶의 목적을 발견할 수 있을 것 같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목적 자체가 원인이 되는 그 무엇을 삶에서 발견하고 구체화하게 되는 것은, 기존에 나에게 요구되었던 삶에 대한 변형에서 올 것이다. 아무것도 행동하지 않으면서 생각만으로 변화를 기대하는 것은 그냥 살지 않는 것과 같다.



백남준, 이 분을 보면서 나는 용기를 얻는다.

이제는 좀 미쳐도 되지 않을까?


그리고 이 영화를 보면 백남준과 함께 활동했던 다양한 분야의 귀로만 익숙하게 회자되던 예술가들을, 비록 스치며 지나갈지언정 실물을 접하는 재미가 있다. 존 케이지, 쉔베르크, 머스 커닝햄, 오노 요코... 훨씬 많은 아티스트를 보았는데... 아~ 나의 비천한 기억력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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