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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NA Jan 01. 2017

그렇게 28년 차가 되었다.

'나'로 산지 어느덧 28년 차





 작년 송년회 자리에서 친구들과도 했던 이야기인데, 스물 여덟은 단어 자체에서 느껴지는 무게감이 있는 것 같다. '덟'을 구성하는 받침이 두 개여서 그런 것 같기도 한데, 스물 일곱은 왠단어가 꽃같이 예쁜 느낌이었다면 스물여덟은 돌같이 어두운 느낌이다. 원하지 않았는데 갑자기 진화해서 귀여움을 상실한 포켓몬 같아진 느낌이랄까. 아, 결국 28살이 되고 말았다.



스물여덟 살을 시작하며 새로 쓰는 매거진은 생각 창고 같은 느낌이다. 좋은 표현으로 에세이, 일반적인 표현으로 감성글, 객관적인 표현으로 자아성찰 정도가 되겠다. 나이가 들어도 변하지 않는, 나를 구성하는 몇 가지 것들이 있는데 이를테면 아래와 같은 생각들이다.







글을 쓰는 것


 브런치를 시작한 지 두 달 조금 넘는 기간 동안 글을 쓰면서 '글을 쓰는 것만큼 좋은 정리가 없구나'라는 생각을 한다. 글재주가 없어도, 쓰고 싶은 주제가 딱히 없어도, 그냥 내가 생각하는 것들을 한 편씩 묶어서 정리하다 보면 '아 내가 이렇게 살고 있구나' 하고 느낄 수 있다. 어차피 내가 쓸 수 있는 글은 자전적 고찰에 대한 것이 전부이다. 글을 쓰는 것을 전문적으로 배워본 적도, 관련 학과를 졸업하지도 않았다. 때문에 안타깝게도 소설·시·문학 등은 범접할 수 없는 장르다. 그냥 문득 어떤 것에 대한 생각을 정리하고 싶어 질 때 노트북을 열고 몇 개월 동안 수정에 수정을 거쳐 발행될 글을 작가의 서랍에 저장하고 있는 것이다. 지인들에게는 차마 부끄러워 보여주지 못할, 그런 솔직한 글을 말이다.









단발



 정말 멍청한 생각을 하나 가지고 있다.


머리를 자른다고 기억이 같이 잘려나가거나, 새로운 머리 스타일이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게 해주는 것이 아님을 알고 있음에도 내 인생에서 새로운 출발을 위해서는 항상 단발이라는 아이템이 필요하다.


두발 규제가 심한 중·고등학교를 나오지 않아서, (오히려 중학교 때 염색을 더 자주, 고등학교 때 생애 가장 긴 머리로 파마를 했었다) 첫 단발은 19살 때 첫 수능을 망치고 해보았다. 인생에서 처음으로 겪는 '실패'라는 것을 극복하고 다시 새롭게 시작하기 위해서 엄청난 마음의 각오가 필요했다.


그 다음 단발은 2년 뒤, 짝사랑했던 오빠를 잊기 위해서였다. 그 오빠는 이미 너무 예쁘게 사귀고 있는 여자 친구가 있었다. 한참 혼자 속앓이를 하다가 이제 그만 단념하고 새로운 인연을 찾자 라는 결심을 하며 단발머리를 했다.


그 다음은 직장생활을 시작하고 얼마 안 되어서였다. 지금 생각해도 소름 끼치게 끔찍한 하루하루였다. 앞으로 펼쳐질 내 인생이 행복할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그럴 일이 전혀 없을 일상에 정말 불행하다는 생각이 했었다. 일이 많았고, 처음이라 모르는 것 투성이었고, 가르쳐주는 사람은 없었으며, 상사는 고속충전기의 속도로 매일 나의 스트레스 지수를 충전해주는 사람이었다. 밤마다 퇴근하면서 눈물을 찔끔 흘렸다. 그래서 '버텨보자'라는 생각에 단발을 했다. 나름 보는 사람마다 깜짝 놀랐던 머리스타일의 큰 변화였다.


지금 또다시 머리 한 구석에 단발 생각이 가득한 이유는, 몸과 마음이 좀 가벼워졌으면 해서다. 왠지 머리가 가벼워지면 운동도 더 열심히 해서 근력도 만들 수 있을 것 같고, 마음을 짓누르는 인생의 고민도 가벼워질 것만 같다. 정말 누가 들어도 말이 안 되는 이야기를 진지하게 쓰고 있다.









아침에 잠에서 깨며,


 우리 엄마는 꿈을 거의 예지몽처럼 꾸는 사람이다.


간단한 일화를 이야기하면, 불합격인 시험 결과가 나온 날 아침에는 정말로 미역국을 먹는 꿈을 꾸고, 다리를 다친 날 아침에는 몸이 아픈 꿈을 꾸신다. 그래서 항상 나와 내 동생에게 '오늘 꿈이 좋지 않으니 조심해'라는 말을 달고 다니신다. 물론 우리는 여느 21세기를 살아가는 20대처럼 곧잘 듣지 않는다.


 반면 내가 꾸는 꿈은 미래와 전혀 관련 없는 과거의 산물이다. 주로 전 직장에서 나를 괴롭혔던 사람이 많이 나오는데, 잊어버리고 잘 살고 있다고 생각했다가도 꿈에 나온 날에는 정말 소스라치게 놀라며 잠에서 깬다. 이미 오래전 일임에도 불구하고 무의식은 아직 시달리고 있는게 분명하다. 이런 꿈을 꿀 때는 이갈이를 하는데, 같은 침대에서 자던 룸메이트의 말로는 정말 이를 바득바득 간다고 한다.


 꿈은 정말 신기하다.


어떤 날은 누군가를 엄청 그리워하면서 그 사람과 함께 했던 시간 속에서 깨기도 하는데, 그것들은 지금은 불가능한 것들이 대부분이다. 정말로 슬픈 일이다.








수족냉증


 나는 손발이 항상 차다.


신기하게도 내 주위에는 나처럼, 혹은 나보다 심한 수족냉증녀들이 모여있다. 손발이 차서 좋은 점은 딱 하나 여름에 시원한 것이다. 여름에는 내 손이 마치 휴대용 선풍기처럼 사람들이 가져가는 물건으로 쓰이기도 한다. 이 한 가지를 제외하고는 모두 나쁜 점뿐이다. 특히 지금 같은 겨울은 퍽 참 난감하다.

아무리 따뜻한 곳에 있더라도 내 손과 발은 어느새 얼음장처럼 차가워져 옆에 있는 사람을 놀라게한다. 나도 가끔 자다가 내 손·발 체온에 놀라서 깰 때가 있다.


겨울을 함께 보냈던 남자 친구는 나는 날마다 핫팩을 3-4개씩 가져와 두 손 가득 쥐어주고는 했었다. 그도 손이 그다지 따뜻한 사람은 아니었다.


올해를 함께 시작한 남자 친구는 같이 길을 걸을 때 자리를 옮겨가며 양쪽 손을 번갈아 잡아준다. 그리고 "지금 니 손 그렇게 차갑지 않아"라는 왠지 안심이 되는 말과 함께, 손끝이 차가울 수 있다고 손끝까지 자신의 손으로 꽉 잡아준다. 이따금 나는 그의 세심한 면에 자잘한 감동을 받곤 한다.


어렸을 때는 "손이 차가운 사람은 마음이 따뜻" 라고 변명했었는데, 지금도 통할지 갑자기 궁금하다.




이런 생각들이 모여 어느새


28년 차 인생이 되었다.





p.s

작년은 말띠들의 삼재가 시작되는 해라고 해서 긴장을 많이 했었는데 역시나 큰일이 많았다. 남은 2년 동안 얼마나 많은 일들이 생길지 걱정이 되면서도, 그렇게 일이 많이 생기는 것이 인생이지 싶다. 2017년, 지금까지와 다른, 또 새로운 인생을 시작해보자는 각오로 내일은 머리를 자르러 가야겠다.






이번 글에 쓴 사진은 작년에 선영이와 다녀온 최랄라 사진전 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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