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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NA Feb 09. 2017

My Wine, Mavin

맛있는 음식, 와인 한 병. 이보다 행복하기도 어려울 텐데


* 이 글은 와인에 대한 전문적인 상식을 다룬 글이 아니라, 평범한 20대 후반 여성이 와인을 접하고 좋아하게 된 과정을 적은 글이다.




와인은 인생을 압축적으로 보여줄 때가 있다.
별 볼 일 없던 와인이 정작 개봉하자 엄청난 맛을 보여줄 때,
당신은 '잠재력'의 가치를 배운다.




 '와인'을 정확히 언제부터 마시기 시작했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와인과 친해지게 된 건 대학교 2학년 여름, '워크캠프(Work camp)'를 할 때였다.

 

* 워크캠프는 세계에서 모인 청년들이 함께 생활하면서 각 나라의 문화를 교류하고, 머무르는 지역사회에 필요한 환경, 개발, 평화, 건축, 교육과 관련된 일을 무료로 해주는 국제 봉사 활동 프로그램이다. 만 19세 이상 누구나 참여할 수 있고, 참여하고 싶은 지역 선택이 가능하다.


약 3주 동안 어느 곳에서 생활을 해볼까라는 고민을 하다가 프랑스 남부의 한 시골 마을을 선택했다. (Paris에 대한 막연한 환상 때문이었다.)

그 마을은 산 밑에 드넓은 포도밭이 펼쳐져 있었고, 마을 와이너리에서 와인 한 병을 1유로에 팔았으며, 매일 저녁 마을에서 만든 와인으로 파티를 벌이는 곳이었다.




1)-4) 마을 포도밭, 포도, 와이너리, 자체 제작 와인



정작 그 당시에는 와인에 대해 관심이 있거나, 와인 마시는 것을 좋아하는 편이 아니었기 때문에 (대부분의 대학생들처럼 쏘맥을 즐겼다), 식사 때마다 와인을 물처럼 마실 수 있는 것에 대해 고마움을 느끼지 못했다. 그냥 주면 먹고 기분 좋게 취해서 잠에 드는 정도였다.



와인의 나라 프랑스에서 그런 시간을 보내다니.

지금 생각해보면 천하의 바보가 아닐 수 없다.



1) 근처 지역 와이너리 투어

2) 레이블도 없이 물병에 담겨있던 마을 자체 생산 와인




귀국해서는 주위에 와인을 즐기는 친구들도 없고,

국내에 유통되는 와인의 비싼 가격을 감당할 대학생의 경제적 사정이 아니었기 때문에

와인이 인생에서 멀어졌다.







특별한 날에 좋은 와인을 따는 것이 아니라, 그 와인을 따는 날이 특별한 날이에요.
- 영화 'Sideways (사이드웨이)'



 취업을 하고 비즈니스 매너와 사교적인 부분에서 와인 이야기를 종종 들려오자,

잊고 있던 와인에 대한 관심이 다시 슬금슬금 떠오르기 시작했다.



'가자 주류' 같은 곳에서 저렴한 와인 한 병을 사서 혼자 집에서 마셔보기도 하고,

와인 원데이 클래스를 통해 잔을 잡는 법, 와인을 따는 법, 와인의 맛을 느끼는 법 따위를 배우기도 했다.





1) '포도'로 만든 프랑스 화장품 브랜드 'CAUDALIE (꼬달리)'에서 진행한 뷰티&와인 클래스

2) 3) Frip에서 찾을 수 있는 와인 관련 원데이 클래스 (Photo at 와인주막차차)


+ 와인에 대한 기본부터 전문 클래스를 듣고 싶다면 서교동에 있는 '마농 와인'을 추천. (무료로 진행하는 원데이 클래스가 있다.)




1)-5) 원데이 클래스, 집에서 마신 와인들




하지만 와인을 집에서 혼자 마시니 맛과 향에 대해서 같이 이야기할 사람이 없고,

원데이 클래스는 일회성으로 끝나니 기초 수준의 상식에서 더 발전할 수가 없었다.


조금 더 많은, 다양한 와인을 마셔보고 그것에 대한 설명을 듣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찾은 것이 와인 소모임이었다. (from 소모임 App)



내가 참여한 모임은 소믈리에 출신의 모임장님이 매주 다른 주제로 같이 시음할 와인 몇 가지를 선정하고 관련 설명도 해주시는 모임이었는데, 일주일에 한 번씩 퇴근하고 와인과 안주를 마음껏 즐기는 것이 한 주의 가장 큰 재미였다. 7~8번 정도 모임에 참여하고 다양한 와인을 마셔보면서 '내가 좋아하는 와인 스타일'을 알게 되었다. 이런 모임은 와인이라는 공통의 관심사를 가진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자리일 뿐만 아니라 저렴한 가격(참가비 3만 5천 원 내외)으로 다양한 와인과 안주까지 즐길 수 있다는 엄청난 장점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쉬운 부분이 있었다.

 

와인에 대해서 더 알기 위해서 스스로 시간을 내서 공부를 해야 하는데, 직장인의 주말은 무언가를 하기엔 너무 피곤했다. 그 당시 나에게 '와인'은 취미로 부르기에도 민망한, 특별한 여가에 불과했다. 게다가 그 세계가 너무나 거대해서 나 따위가 지금에 와서 알고 싶다고 덤벼도 백만분의 일도 알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1)-4) 와인 소모임에서 마셨던 와인들





한 가지 변화

 


 그런 생활을 하다가 한 가지 변화가 생겼다. 갑자기 백수가 돼서 유럽행 비행기에 오르게 된 것이다.


두 달 동안 유럽에 있으면서 가장 많이 머물렀던 곳은 독일이었는데, 그곳 사람들은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할 때 티나 커피를 주문하더라도 꼭 와인을 시켜서 음식이랑 같이 먹고는 했다. 와인이 술 중에 한 종류의 개념이 아니라 그야말로 음식의 풍미를 살려주고 소화를 도와주는 조미료 혹은 소화제 같은 느낌이랄까.


그래서 나도 레스토랑에서 밥을 먹을 때 꼭 glass wine을 시켜서 먹는 습관을 들였다.

한 잔에 3~5유로 사이의 테이블 와인이었지만 맛은 훌륭했다.


더욱이 마트에 정말 다양한 종류의 와인이 저렴한 가격으로 진열되어 있었기 때문에, 국가별 유명 와인을 찾아서 마시지 않더라도 그 나라에서 생산한 와인을 마셔보는 호사를 누렸다.

특히 기억에 남는 와인은 스위스에서 마신 와인이었는데, 생에 처음 마신 스위스 와인이었다.

(스위스는 와인 생산량이 적어서 자국에서 생산된 와인을 자국민이 거의 소비하는 바람에 수출되는 양이 많지 않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이 시절, 나에게도 와인은 미식템 이라기보다 생활템 느낌으로 자리 잡았다.

 




1) 스위스 마트에서 산 스크루 캡의 레드 와인

2) 스위스 레스토랑에서 마신 로제 와인

3) 스페인 타파스 1개 1유로 뷔페에서 마신 샹그리아



+ 스페인에서는 공항 면세점에서 멋도 모르고 쉐리 2박스를 선물용으로 사왔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쉐리는 스페인에서만 생산하는 도수가 강한 주정강화 와인이었다. Nice choice!!








훌륭한 동반자, 좋은 와인, 따뜻한 분위기에 둘러싸이면 누구든 좋은 사람이 된다.
- 윌리암 셰익스피어의 "헨리 8세" 중



다시 귀국 후 이제는 와인이 간절해졌다.


비싸고 유명한 것들을 마셔보고 싶어 졌으며,

모르고 그냥 마시는 것이 아니라 조금이라도 알고 마시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와인에 대한 을 파기 시작했다.

지역 도서관에 가서 검색을 하니 아래 제목들의 책이 있었다.


와인의 세계, 세계의 와인 1.2 - 이원복
왕초보 피터, 와인을 배우다 - 레티 티그
와인 공감 - 와인 21 닷컴 설립자
와인의 기쁨 1,2 - 아기 다다시
와인 생활백서 - 다사키 신야
와인 스캔들 - 박찬일



'와인의 기쁨'은 일본인 아기 다다시가 어느 날 우연히 인생 와인을 접하고 와인 마니아가 되어 '신의 물방울'이라는 만화책을 쓰게 된 스토리와, 평소 와인을 즐기는 방법, 그리고 와인과 관련된 역사적인 일화들을 설명해주는 책이라 재미있게 읽었다.



책에서 알게 된 와인의 세계는 정말 흥미진진했다.


불륜을 상징하는 와인이 있기도 하고,

모든 와인에 대해서 점수를 매기고 와인의 가격에 영향을 끼치는 엄청난 평론가가 있기도 하며,

와인은 과학이며 예술이라는 신념 하에 NASA의 협조를 얻어 포도를 재배하는 와이너리가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몇 가지 일화를 적어보면,


헤밍웨이는 손녀가 "샤토 마고" 와인 같이 매력적인 여성이 됐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훗날 여배우가 되는 손녀에게 마고라는 이름을 지어줬다고 한다.


공산당 선언으로 알려진 엥겔스는 "당신에게 있어 행복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샤토 마고 1848년산 이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아 너무나 낭만적이지 않은가.




 책을 읽으면서 모든 내용을 흡수한 건 아니지만, 책마다 공통적으로 나오는 내용이 조금씩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레드 와인과 화이트 와인의 대표적인 포도 품종들 / 구대륙과 신대륙의 특정 와인 재배지들 / 프랑스와 이탈리아 와인의 등급 체계 / 와인 제조 방법에 대한 기본 상식 / 와인 레이블을 읽는 방법



탄닌이란 단어 외에 몇 가지 단어들도 추가로 알게 되었다.


떼루아 / 아로마 / 부케 / 빈티지 / 바디감 / 피니쉬



+ 와인과 관련된 영화도 몇 편 봤다.

- 사이드웨이 (2004, 미국)

- 해피 해피 와이너리 (2014, 일본)



그리고 정말 그 매력에서 벗어날 수 없게 되었다.








와인 한 잔을 바라보는 것 이상으로 미래를 장미 빛으로 만드는 것은 없다. - 나폴레옹


 현재, 와인을 가까이하려는 노력을 계속하고 있다.


와인 모임을 통해서 알게 된 지인들과 소규모로 와인 모임을 갖기도 하고,

어플을 통해서 테이스팅 노트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구글 플레이에 '와인'을 검색하면 굉장히 다양한 와인 서칭·테이스팅 노트 어플이 있는데, 나는 Wine Secretary 어플을 쓰고 있다.(디자인이 예뻐서..)



1)-7) 지인들과 최근에 마신 와인들





그리고 가로수길의 작은 와인샵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직수입하는 13개의 와인만 판매하는 작은 매장이지만, 무료 테이스팅이 가능해서 와인을 시음해보고 구매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재고 정리와 청소 등의 업무가 더 많긴 하지만, 시음용 와인을 나도 종종 마실 수 있다는 더 큰 장점이 있다)



매장 외관



우리 매장 벽에는 와인에 관한 명언이 몇 개 적혀 있다.



True love is like a fine wine, the older the better.


 Wine adds a smile to friendship and a spark to love. - Edmondo de Amicis


 Men are like wine - some turn to vinegar, but the best improve with age. - pope john XXIII


 I do yoga to relieve stress just kidding... I drink wine in youga pants!




1) 매장에서 겨울 이벤트로 끓인 뱅쇼                              2) 매장 인스타 업로드 용으로 찍은 사진                    

3) 인테리어로 너무 예쁜 와인 꽃병                                     4) 캘리 등 할 수 있는 것 총동원한 와인 사랑





내가 좋아하는 노래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I've never been in love before, 난 전에는 사랑에 빠진 적이 없었어요.

I thought my heart was safe. 내 마음은 안전하다고 생각했죠.

But this is Wine. 하지만 이건 와인 같아요.

It's all too strange and strong. 너무나 낯설고 강하네요.






와인의 세계의 정말 작은 발을 디뎠다.





+ 인상 깊었던 와인바의 인테리어들

가로수길 'UPPER WEST' 외관


잠실 롯데월드몰 'Agra'


연희동 '라뮤즈드 연희'


가로수길 '몽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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