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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NA Oct 15. 2024

33살, 연애 5년 차

30대에 하는 장기연애




 우리는 코로나로 사람들과의 소통이 자유롭지 않던 2020년 여름에 처음 만났다. 그는 국경이 닫히면서 장기 출장을 갑작스럽게 끝내고 캐나다로 돌아와 일상을 지루해하던 상황이었고, 당시 식당에서 일하던 나는 일자리를 잃고 하루종일 할 일이 없던 때였다. 나는 20대 끝자락이라는 나이에 맞게 결혼을 생각할 수 있는 파트너를 만나고 싶다고 했고, 나보다 5살 어린 그는 코로나로 인해 가치관이 바뀌어 정착을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었다. 만난 지 1년이 조금 넘었을 때, 그가 뉴욕에 직장을 얻게 되면서 우리는 2년 동안 뉴욕과 토론토를 오가며 장거리 연애를 했다. 그리고 그동안 결혼 문제로 여러 번 다투었다. 사실 정말 다툼을 한 건 영상통화 한 번이었고 주로 내가 속을 썩는 날들을 많이 있었다. 나는 서로 평생 함께 할 것이 아니라면 장거리 연애가 시간 낭비라고 생각했기에 그가 나에게 결혼에 대한 약속을 해주길 원했다. 나는 오늘이 가장 어리고 예쁜 날인데, 주말에 한번 하는 영상통화를 기다리면서 날씨가 좋은 날에도 아무 약속 없이 혼자 집에 있는 게 너무 싫었다. 그는 만나서 얼굴을 보면서 미래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싶어 했고, 정작 만났을 때는 정해둔 일정을 소화하느라 대화할 시간을 내지 못했다. 그의 단점들을 곱씹어보면서 그가 나의 배우자가 되었을 때 행복할지 확신이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리고 나는 결혼에 대한 마음을 접었다.


 그는 모든 집안일에 서툴렀다. 자취할 때는 주로 음식을 시켜 먹거나 간단한 파스타 정도만을 조리했던 사람이라 집에서 밥을 해 먹을 때 요리는 자연스레 내 몫이 되었다. 우리가 결혼을 하게 되면 내가 더 적게 벌고 관계에서 지출을 적게 하니 집안일을 조금 더 하는 것이 합당한 것 같으면서도, 혼자 살림과 육아를 하는 상상을 하면 전혀 행복하지 않았다. 우리는 인종 차이와 동반하는 문화 차이가 있어 함께 나눌 수 있는 것이 한정되어 있다. 유튜브에서 볼 수 있는 모든 한국 음식을 같이 먹으며, 명절에 TV에서 하는 프로그램을 같이 볼 수 있는 커플들이 부러웠다. 결혼에 있어서 어떤 부분에 가장 중요한 가치를 두어야 하는지 고민하는 사이 4번째 기념일이 지나갔다. 그는 내년에 경영 대학원을 가기 위해 미국으로 이사를 준비하고 있고, 나는 미국에서 살고 싶지는 않기에 같이 가지 않겠다고 이야기했다. 한국에서 캐나다로 이민을 하며 새로운 나라에서 새롭게 모든 것을 시작하며 정을 붙이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경험했다. 미국은 캐나다보다 집값과 물가가 저렴하고 직장에서의 연봉이 높지만, 총기와 마약문제가 더 심각하다. 그가 자아실현과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여러 도전을 마다치 않는 인생의 시기라면, 나는 모든 도전을 끝내고 가진 것에 만족하며 살고 싶은 시기에 있다. 나이 차이에서 나오는 일과 삶을 바라보는 방향성의 차이도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타고난 개인의 성향 차이도 있겠지. 나는 한국에서의 짧은 직장생활을 그만두며 더 이상 일에서 행복을 찾지 말자고 다짐했다. 결국 내일이 아니었기에 껍질을 벗겨놓은 나라는 사람에게는 남는 것이 없었다. 사람마다 행복의 기준이 다르듯이 무엇이 더 좋은 것인지 우열을 가릴 수 없는 것이겠지.


 가장 친하게 지내던 한국 친구들 3명이 올해 결혼을 한다. 마지막으로 남아있던 친구들이라 이제 정말 혼자가 된다는 사실에 기분이 조금 이상하다. 근데 새삼 놀라운 것은 내가 20대 후반에 한국을 떠났던 이유 중 하나는 결혼을 하고 싶지 않아서였다는 것이다. 돈을 비롯해 아무런 준비도 되어있지 않은 나에게 결혼은 일어나지 않을 것 같은 일인데, 그 사실이 해가 갈수록 나를 부담스럽게 만들 것이 너무 선명히 보였다. 그래서 나이와 결혼 문화에서 자유로운 외국에서 살고 싶다고 생각했다. 사람이 간사하게도 외국생활이 익숙해지고 나니 가족을 꾸리면서 평범하게 살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욕구를 충족시킬 수 없어서 자연스레 시간이 더 지나버렸고, 이제는 아직 싱글이라니 사실이 행복하다. 자녀를 위한 저축이 필요하지 않고, 커리어로 닿을 수 있는 곳에 한계가 없고, 파트너조차 생각하지 않고 오로지 나만을 위해 살 수 있다. 친구들이 주말에 아이들과 문화 체험 공간에 가서 즐거운 시간을 보면 사진을 올린다면, 나는 등이 깊게 파인 드레스를 입고 와이너리에 놀러 가서 와인잔을 들고 있는 사진을 올린다. 신혼 여행지라고 생각했던 장소들을 연애하면서도 쉽게 다닐 수 있고, 서로의 필요를 채워주면서 연애만 하는 현재에 지금은 불만이 없다. 예전에는 평생을 함께하지 않을 사람과의 추억은 헤어지고 나면 버려야 된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그 추억들을 돌아보니 내가 세상을 배우고, 새로운 감정을 느끼고, 나에 대해 알아가는 순간들이 더 많이 남아있었다. 나에게 집중된 나의 기억이라 옆에 있는 사람이 바뀌더라도 달라질 것 같지 않았다. 그래서 나중에 생각이 또 바뀌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다들 기죽지 말고 재밌게 살라고 응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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