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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NA Dec 13. 2017

My Las Vegas

라스베이거스에서 꼭 하지 않아도 되는 것.





 일단 티켓을 끊긴 했는데, 혼자 거기서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도박과 관광의 도시에 내가 어울리는 사람이었나? 요새는 모르겠는 것들 투성이다.


 

 이 곳, 밴쿠버에서 만난 캐네디언들은 결혼을 앞두고 친구들끼리 Las Vegas로 여행을 많이 간다. 이동 시간이 비행기로 2시간 40분 정도인 데다, 1년 내내 영상의 날씨를 자랑하는 유흥의 도시이니 Bachelorette party, Bachelor Party를 즐기기에 이만한 곳이 없다. 세계에서 결혼도, 이혼도 가장 간단히 할 수 있는 도시라고 하는데, 둘 중 하나라도 내가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카지노가 처음이라, 슬롯머신을 한 번쯤 당겨보고 싶긴 한데 아무래도 잭팟이 나올 것 같지는 않다. 클럽은 혼자 가면 재미가 없으니 정말 마지막에 할 게 없으면 가는 걸로 한다. 호텔들 구경만 해도 시간이 금방 간다고 하는데, 화려한 것들이 주는 상대적 박탈감이 미리 걱정되기도 한다.









 2017년 11월 마지막 주 화요일,

점심이 조금 지난 시간에 라스베이거스에 떨궈졌다.



한 여름 날씨를 예상하고 기내에서 반팔, 얇은 바지로 옷을 갈아입었는데 생각보다 바람이 차다.

2주 전까지만 해도 한낮에 기온이 40도까지 올랐다고 들었는데, 지금은 완전히 늦가을 날씨다.

'아 한주만 더 빨리 올 걸' 후회가 된다. 추운 건 질색인데.



 공항에서 Lyft앱을 깔고 pick up 장소를 찾아왔던 길을 돌아갔다가, 다시 갔다가를 반복했다. 미리 사온 핸드폰 유심의 데이터가 잘 터지지를 않는다. 이번 여행의 난항이 예상된다. 호텔에 도착해 체크인을 하고 3일 동안의 일정을 짰다. 이를 위해 호텔 1층 Concierge Desk에서 각종 투어와 쇼의 안내 자료를 받아왔다. 나와 비슷한 나이 때로 보이는 여자 직원에게 개인적인 추천을 받는 것도 잊지 않았다. 국적을 떠나 모든 여성들의 취향에 공통점이 있으리라 믿는다.





종이로 된 지도도 챙겼다. 여행은 왠지 아날로그 감성이 어울린다.




 그랜드 캐니언 투어를 예약했다.

자연환경에 큰 감흥을 받는 타입이 아니지만, 죽기 전에 한 번은 가봐야 하는 곳이라고 하니 한번 가보기로 했다. 투어는 관광버스를 타고 아침 6시에 호텔에서 출발해서, 저녁 6시에 다시 호텔에 도착하는 일정이다. 라스베이거스에서 가장 가깝게 갈 수 있는 West Rim을 선택했고 아침 박스와 점심 BBQ도 포함해서 총 160불(세금 포함)을 결제했다. 헬리콥터 투어, Jeep 트럭 투어, 1박 2일 캠핑 투어 등 많은 투어가 있었지만, 우선 한번 눈으로 보는 것이 중요하니 가장 무난한 투어를 골랐다.




Grand Canyon


 라스베이거스에서 3시간 반 정도를 달려 그랜드 캐니언 국립공원에 도착했다. 라스베이거스가 있는 네바다 주에서 애리조나 주로 지역이 바뀌었다고 시간이 한 시간 느려졌다. 공원 내에는 차를 가지고 들어갈 수가 없다고 투어 가이드가 입구에서 갑자기 인사를 한다. 각자 일행들과 무료 셔틀버스를 타고 자유롭게 포인트 3곳을 구경한 뒤, 1시 반에 버스에서 만나자고 덧붙인다. 이런 나는 혼잔데, 사진은 누가 찍어주지.






 첫 번째 포인트는 카우보이 마을이었다. 한쪽에 말을 키우는 농장이 있고, 카우보이 복장을 한 마을 사람들이 5분가량의 짧은 쇼를 보여주기도 했다. 예전에 서울아트시네마에서 봤던 'Rio Bravo 리오 브라보' 영화가 생각났다. 서부극 중 가장 신나고 통쾌한 영화인데, 그 영화를 볼 때는 서울아트시네마가 지금 있는 서울극장이 아니라 인사동 낙원상가 옥상에 있었다. 지금 그곳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있을까 궁금하다.





 나머지 포인트 두 곳은 명성대로 굽이쳐진 협곡들을 볼 수 있는 곳이었다. '대도시의 대명사' 같은 곳에 여행 와서, 이런 대자연을 만나본다는 게 이질적이었다. 무척 파란 하늘과 선명한 구름이 붉은 색인 바위와 대조를 이뤘다. 산책하듯이 바위 산을 한 바퀴 돌아보기도 하고, 높이 올라가 하염없이 조용한 그곳을 잠시 바라보기도 했다. 말라비틀어진 듯 살아있는 선인장들을 보면서 사막을 여행한다면 이런 광경을 볼 수 있는 건가 싶었다. 그리고 문득 이 광경을 혼자 보고 있는 것이 아까웠다. 그와 이곳을 같이 왔다면 어땠을까. 이 비탈을 오를 때 내 손을 잡아줬을 텐데. 그 밤 나는 또 그에게 연락을 했다.





대자연을 바라보면서 점심을 먹었다.









각종 '쇼'의 천국 Las Vegas.


 라스베이거스에서는 그야말로 '쇼'의 천국이다. 이곳에서 꼭 해야 할 것을 꼽는 다면 여러 호텔에서 주최하는 분수쇼, 화산쇼, 서커스 쇼, 전구쇼, 해적선쇼 등을 무료로 보는 것이다. 그리고 '3대 쇼'라고 불리는 유료 쇼도 놓칠 수 없다. (3대 쇼는 벨라지오 호텔에서 열리는 'O show 오쇼', MGM Grand 호텔에서 열리는 'KA show 카쇼', 윈 호텔에서 열리는 'Le Reve 르 레브 쇼'를 지칭한다.) 티켓 값이 보통 140~230불 정도이긴 하지만 엄청난 규모의 무대 장치와, 눈으로 보고도 믿을 수 없는 곡예를 하는 예술가들이 어울려 환상적인 공연을 보여준다. 보통 한국에서 여행을 오는 분들은 인터넷으로 미리 할인된 가격에 3대 쇼 티켓을 구매하고, 이 쇼 일정에 여행 일정을 맞추신다고 들었다. 각 쇼가 열리는 요일이 상이하고, 11월부터는 일정 기간 휴식기를 갖기도 하기 때문이다.






벨라지오 호텔 분수쇼 사진을 가장 못 찍은 사람이 있다면 내가 아닐까 싶다.





 혼자서 시간을 보내기에 '쇼를 관람하는 것'만큼 적절한 것이 없을 것 같아서 쇼 티켓을 구매하기로 했다. 문제는 어떤 쇼를 보느냐였다. 사실 나는 태양의 서커스 퀴담의 내한 공연을 본 적이 있다. 너무 신기하고 경이로웠지만, 커다란 공연장 좌석에 앉아 무대만 바라보고 있다가 이내 졸음이 오는 것을 참을 수는 없었다. 연극도, 뮤지컬도, 오페라도, 사람이 나오는 공연은 모두 좋아하는데, 마술이나 서커스 류는 나와 맞지 않는다는 생각을 한다. 호텔방 책상에 앉아 공연 안내 자료를 뒤적거리다가, 내가 묶고 있는 호텔에서 하는 공연이 눈에 띄었다.






그렇게 27년 인생 최고의 쇼를 만났다.



 쇼 제목은 "THUNDER FROM DOWN UNDER". 제목과 팜플렛 사진에서 느껴지듯이 여성들을 위한 19금 쇼다. 작년에 서울 올림픽 홀에서도 공연했던 'Chippendales show 치펜데일 쇼'와 비슷하게 근육질 훈남들이 무대에서 섹시한 춤과 퍼포먼스를 보여준다. 공연 시작 전 홍보 영상을 보니 할리우드의 많은 스타들이 섹시 쇼를 언급할 때 항상 이 쇼를 언급한 부분이 나왔다. 공연장은 홍대의 한 술집 느낌의 작은 공간이었고, 바 의자에 앉아 있으니 동양인은 나밖에 보이지 않았다. 무대가 바뀔 때마다 테마가 바뀌고, 공연자들이 무대 밑으로 내려와서 화끈한 무대 매너를 보여줬다. 공연 수위가 높아질 때마다 인종에 관계없이 모든 여자들이 'OH MY GOD'을 연발하며 공연을 즐겼다. 나이 먹으니 이런 게 좋다. 6만 원도 안 되는 돈에 이런 행복을 느낄 수 잇다니. 직접 보기 전에는 절대 그 즐거움을 상상할 수 없다. 공연 도중 여성 관객이 참여해서 함께 꾸미는 무대가 6번 정도 있었는데, 우연히도 내가 무대에 올라가게 됐다. 오 마이 갓. 공연이 끝나고 기념품 잠옷을 샀다. 꿈에 그들이 나오길 바라면서.






캐리언니도 이야기했다. 이 티켓이 필요하다고.

 

'Thunder from down under' 유튜브 영상 보기 >








  아무런 사전 정보도 없이 그냥 골라서 본 쇼가 너무 재밌어서 기분이 좋아졌다. 이 기분을 유지하기 위해 쇼를 하나 더 보기로 했다. 다음날 저녁 다시 호텔 1층 컨시어지 데스크 언니에게 가서 상담을 했다. '오늘 밤에 당장 볼 수 있는 쇼 중에 내가 볼만한 쇼가 뭐가 있을까?' 물어보니 Blue Man Group 쇼를 추천해줬다.  




 얼굴에 파란색 분장을 한 3명의 공연자가 말은 한마디도 하지 않고 표정과 몸짓으로 관객과 소통하는 쇼다. 시작할 때 공연 관계자가 관객들에게 야광 종이를 나눠주면서 스스로를 decoration 하라고 이야기하는데, 모든 사람들이 이 종이를 머리에 두르기도 하고 팔에 감기도 하면서 공연을 즐길 준비를 한다. 공연 시작 시에는 무대 위 전광판에 관객의 이름이 등장하기도 하고,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멘트(오늘 카지노에서 돈 잃은 사람 소리 지르기)가 나와서 관객이 공연이 집중할 수 있게 만든다.






 공연 내내 의도하지 않게 기획자의 의도를 생각하면서 공연을 봤다. 소리을 통한 표현에 시선을 집중시키기 위해 공연자들은 검은색 옷을 입고 얼굴에 파란 분장을 하고 있다. 공연 소품으로 아이패드 화면과 신종 어플리케이션 같은 현대적인 요소가 등장하기도 하지만, 반대로 소리를 내는 악기는 자연적인 요소에서 찾기도 한다. 테크놀로지와 자연을 조화가 이루어졌다고 느낄 때쯤, 피날레로 공연장 하늘에 엄청난 양의 색종이가 흩날린다. 분홍색과 노란색의 기다란 종이들이 인공 바람에 휘날리는 모습을 보면서 '아 이곳이 진짜 라스베이거스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공연이 끝나고,




 가장 재미있었던 부분은 공연 도중 갑자기 무대 위 전광판에 빨간 글씨로 'Late Arrivals'라는 글자가 뜨면서 카메라가 공연장에 늦게 입장하고 있는 커플을 비췄는데, 사운드가 "You are late"이라는 음악이 계속 나와서 모두가 얼마나 웃었는지 모른다. 확실히 작은 공연 들은 규모가 큰 쇼에 비해, 관객 참여 형식에 큰 틀을 두고 있다. 공연 도중 즉석으로 그림 작품을 만들어 관객에게 선물하기도 하고, 관객과 셀피, 관객과 꾸미는 무대 등을 통해 지속적인 소통을 꾀한다. 공연자들은 무대에 내려와서 좌석 전체를 휘젓고 다니기도 하고, 각종 묘기를 보여주기도 하는데, 공연하는 동안 얼마나 많은 체력이 소모될까 하는 걱정도 들었다. 이런 공연에는 항상 돈이 아깝지 않다.




Blue Man Group 유튜브 영상 보기 >






 두 쇼 모두 가장 유명하게 꼽히는 메인 쇼는 아니었지만,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에 후회 없이 본 쇼다.





 비싼 물가의 라스베이거스에서 매끼 무엇을 먹을지는 큰 고민거리였다. 사실 나는 여행지에서는 먹는 것이 크게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그래서 지나가다 받은 샌드위치 1+1 쿠폰을 쓰기도 했고, 같은 뷔페를 두 번 가기도 했다.(처음 갔을 때 두 번째 방문 시 50% 할인 쿠폰을 받았다) 그래도 이곳까지 왔으니 사람들이 다 가는 고든 램지 식당을 가거나, 미국 유명 버거 투어를 해야 하나 잠깐 고민했지만, 그것들이 나에게 커다란 만족감을 줄 것 같지 않았다.


정리하고 보니, 내가 한 것들은 '라스베이거스에서 꼭 해야 하는 것' 과는 절대적으로 거리가 있다. 세상에 다양한 사람이 있고, 각자의 여행 스타일이 다른 것이니 이렇게 여행을 하는 사람도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 라스베이거스 아울렛은 정말 좋았다. 시애틀 아울렛보다 훨씬 좋은 물건을 저렴하게 건질 수 있었다.










- My Las Vegas 마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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