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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NA Jan 05. 2018

LA에서 꼭 하지 않아도 되는 것.

혼자 떠난 미국 여행



 La La Land 촬영 장소 투어를 하루에 마치고 나니 일정이 붕 떴다.


애초에 일정을 계획해서 떠난 여행이 아니었기에, 어찌 보면 예정된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일단 묶고 있던 호스텔에서 Lyft를 타고 다운타운으로 나왔다. 미술관을 가볼까 했더니, 설상가상으로 월요일 휴무란다. 기껏 LA까지 왔는데 좋은 곳들을 제대로 즐기지 못하고 돌아가게 될까 봐 살짝 겁이 났다. 거리 한복판에서 구글 지도를 켜고 현재 위치를 확대해서 근처에 있는 장소들을 한 곳씩 클릭해서 살펴봤다. 걸어서 10분 안 되는 거리에 잠깐 시간 때우기 좋을 만한 장소가 눈에 띄었다. 이게 그 이상한 장소를 가게 된 계기다.








 먼저 입구에서 짐을 맡겼다. 짐을 맡기는 행위가 방문자의 편의를 위한 건지, 이 곳을 방문하기 위한 필수적인 요소인지 잘 모르겠지만, 제지당하고 싶지 않은 마음에 앞서 입장한 사람을 따라 했다. 그리고 정면에 펼쳐진 공간을 제대로 대면하기도 전에 왼쪽 방으로 몸을 돌렸다. 커다란 공간을 한 번에 마주 보면 왠지 숨이 막힌다. 한쪽 구석부터 시작해서 빼먹지 않고 꼼꼼히 둘러보는 방법을 선택한다. 일단 나무 한 그루 한 그루를 먼저 보고 숲을 봐야지 압도당하는 기분에서 벗어난다.









방을 들어가자마자 머리 위에서 묵직한 시선이 느껴졌다. 고개를 들어 보니 바로 위 벽에 그림이 빽빽이 걸려 있다. 마치 영화 '베스트 오퍼'에 나오는 미술품 창고의 한 면을 보는 것 같다. 중세 시대 여인의 초상화, 현대적 캐릭터, 거리의 가로등 그림들이 섞여 있는 그 벽을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미술관을 못 간 게 못내 아쉬워서였을까. 그림이 선명하게 눈에 들어왔다.





 그 방을 나와 오른쪽 공간으로 시선을 돌렸다. 먼저 보이는 창문에 덕지덕지 붙은 CD 모양의 모빌이 인상적이다. 아무렇게나 배치 해 놓은 것 같은 식물들이 편안한 느낌을 준다. 인테리어가 현대 미술의 느낌이라면, 그 밑에 자리한 수많은 LP들은 고전 물건의 상징 느낌이다. 왼쪽은 미술, 오른쪽은 음악이라. 예사롭지 않은 공간이다. 한쪽 구석에 턴테이블이 자리해 80년대 느낌의 재즈 음악이 흘러나왔으면 하지만, 스피커에서 울려 퍼지는 음악은 시끄러운 비트에 트렌디한 음악이다. 이 음악이 이 곳이 LA 다운타운 중심가라는 것을 알려주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아티스트들의 샵이 있는 2층으로 걸음을 옮겨 본다.

기다란 복도의 한쪽 방마다 작은 샵들이 자리해 있다. 직접 만든 향초, 수공예품을 파는 샵이 있었고, 각종 털실과 오래된 카메라를 파는 샵도 있었다. 판매되는 물건도, 물건을 전시하는 샵의 인테리어도 인상적이다. 유럽의 소호샵 느낌이기도 하고, 동남아의 작은 상점 같기도 하다. 캐리어 위에 올려진 물건들을 보니 내가 여행자라는 사실이 상기된다. 여행을 추억하기 위한 기념품을 사야 할 것만 같다.




  밖에 걸려 있는 저 문패를 사고 싶은데, 문이 닫힌 샵이 아쉽다. 창문 너머로 보이는 샵 안에 빈 캔버스와 물감들이 어질러져 있고, 벽에는 그림과 판매 가격이 붙어있는 걸 보니 이 곳에서 작업도 하고 판매도 하는 것이 분명하다. 뒤쪽에 위치한 작은 갤러리의 그림들도 그가 그린 걸까. 예쁜 일러스트가 그려진 배지를 판매하는 자판기를 지나쳐서 다음 장소로 걸어본다. 다음에는 어떤 것들과 마주하게 될지 설레기 시작한다.








 저 멀리서 이 보인다. 책의 분류에 따라 여러 개의 방이 있는 것 같다. 방들이어져 미로 같은 느낌이다. 방안에 책들은 정리되지 않은 듯 정리되어 있고, 다양한 소품들과 함께 있다. 나무로 된 진열대는 오래된 개인 서재 분위기를 느끼게 해준다. 어떤 책들이 있나 쭉 둘러보며 걸으니 책들과 함께 산책하는 기분이 든다. 이 곳에서 책을 읽으면 책이 주는 비현실적인 느낌이 200% 구현될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한쪽 구석에서 고등학교 때 푹 빠져 읽었던 뱀파이어 소설 전시리즈를 발견했다. 미드 'True blood 트루 블러드'의 원작인 소설인데, 스토리 전개 능력과 실감 나는 묘사에 반해서 난생처음으로 작가에게 영어로 된 팬레터를 썼었다.








 서점을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다 서점을 좋아할까. 이 문장이 명제로 성립될 수 있을까 잘 모르겠다. 그와 데이트는 만나서 밥을 먹고 함께 서점에 가는 걸로 시작할 수 있을 것 같다. 각자 좋아하는 분야에서 책을 읽다가 그가 마음에 드는 책을 발견하면 내가 사줘야겠다. 그러면 그는 이 책을 볼 때마다 나를 생각하겠지. 아예 첫 장에 초등학교 때 하던 것처럼 글을 남겨야겠다. 어느 봄날, 남색 니트를 입고 있던 너에게. 그리고 그에게 사실 내가 추리 소설을 좋아한다는 것도 알려줘야지. 셜록 홈스 애장판 전권을 집에 보관하고 있다고. 애거서 크리스티도 좋아한다고. 약간 창피해서 숨겼지만, 사실 판타지 소설도 좋아한다고. 전민희 작가님의 룬의 아이들 3부를 아직도 기다리고 있다고. 그에게는 부끄럽지만, 내가 브런치에 글을 쓰고 있다는 것도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방향을 잃고 같은 공간을 돌고 돌아 다시 1층으로 내려왔다. MOLESKINE 노트, 100% RECYCLED PAGES로만 만든 공책을 판매하는 선반이 보인다. 오랫동안 이어나갈 수 있는 것을 추구하는 걸까. 자체 굿즈 티셔츠 하나를 구매하려고 하는데 계산대가 책으로 만들어져 있다. 이렇게 멋있는 건 좀 반칙이다.




 LA 도심 한 복판에 갤러리+소호샵+LP샵+서점을 복합시켜 놓은 공간은 누가 기획했을까. 낮보다 밤에 오면 더 좋을 것 같다. 빈티지 감성이 더 증폭될 수 있게. 사실 LA의 밤에 혼자서 할 일이 별로 없기도 하지만.





 어쩌면 LA를 회상할 때, 이 곳이 가장 먼저 떠올려 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The Last Bookstore.

주소 : 453 S Spring St,  Los Angeles, CA 90013, 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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