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P 신드롬
언제나 부담되는 변수 - 제다이로 살기 -
하는 일의 특성상 VIP 치료를 많이 하게 된다.
나는 내시경 척추 수술을 포함한 최소침습 척추 수술 전문가이다. 그렇다 보니 자연스럽게 VIP 치료를 많이 담당하게 되었다. 뭔가 씁쓸하기는 하지만 현실이다. 큰 피부절개 없이 구멍만 뚫어서 척추수술이 가능하다는 사실에 많은 분들이 매력을 느끼시는 것 같다. 그러나 이런 상황이 반복되다 보니 부담스러운 경우가 많다. 항상 VIP 신드롬이 염려되기 때문이다.
VIP 신드롬 두 가지 의미
의사들 사이에는 VIP 신드롬이라는 말이 있다. VIP 치료를 하다 보면 이상하게 예상치 못하던 문제들이 발생한다는 일종의 징크스를 말한다. 특히 수술적 치료에 있어서는 정형화된 루틴이 있는데 특별히 잘해주려다 보면 루틴이 보이지 않게 틀어지면서 합병증이 생길 수 있다.
VIP 신드롬의 또 다른 측면은 의사의 심리적인 부담감이다. 의사도 사람인지라 수술이나 치료에 임할 때 심리적 상태에 영향을 받는다. 몇 년 전 꽃보다 할배 라는 프로그램에서 이서진 배우가 노배우분들을 군말 없이 깍듯이 모시고 케어하는 모습에서 흐뭇하고 든든함을 느끼는 한편 본인의 부담감과 중압감을 엿볼 수 있어서 안타까웠다.
오늘도 며칠 전에 수술해 드린 노부인을 회진하고 왔다. 독립투사의 손녀이고 본인은 국회의원을 지낸 분이다. 아침에 밝은 웃음으로 반겨주면서 키가 커졌어라고 기뻐하시는 모습에 마음이 눈 녹듯 풀렸다.
그렇다고 오해하시면 안된다.
나에게 있어 VIP 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그런 사람들이 아니다. 기업가, 고위공무원, 정치가, 연예인들이 아니고 극히 개인적인 기준이 있다. 그래서 다른 사람이 보기에 약간 '꼴통' 기질이 있다고 할 수 있다. 나에게 있어서 VIP 란, 사회적인 지위나 유명세를 떠나서 정말로 나의 기술이 필요한 분을 의미한다.
그리고 치료자와의 궁합도 중요하다. 정착 VIP 가 와서 VIP 대접을 하려고 한다면 나는 적당히 에둘러서 돌려보낸다. 치료과정에서의 의사소통에 문제가 예상되면 아예 시작하지 않는 게 낫다.
오히려, 최소침습수술 또는 내시경수술이 정말 필요한 환자들이 내게는 VIP라고 할 수 있다. 사실 이론적으로 VIP 여부가 수술 결과에 큰 영향을 주지 않는다. 다만 의사의 심리상태나 치료괴정에 미묘한 변수를 주는 것도 사실이다. 환자로서 본인이 VIP 인지 아닌지는 사실 중요하지 않다. 오히려 치료에 고려해야 할 변수가 많은지 여부가 중요하다. 이점이다. 변수가 적으면 치료 결과도 예측한 대로 나오고 변수가 많으면 결과 예측이 어렵다. 환자들은 흔히 내게 자기 병이 중증인지 경증인지, 수술이 급한지 아닌지를 주로 묻는다. 앞으로는 이렇게 물어보자. 제 병이 진단 및 치료에 변수가 많고 까다로운가요?라고. VIP 신드롬 자체도 하나의 변수가 될 수 있다. 본인이 VIP 라면 이점을 인식하시기 바란다.
척추 수술이란 내게 이길 확률이 매우 높은 승부이다 (위험한 고백). 대부분 결과가 좋지만, 드물게 부작용이 생기는 경우도 있다. 한번 생기면 어떤 방식으로든 환자의 삶에 영향을 줄 수도 있다. 내게는 일종의 빚으로 기억에 남는다. 남의 몸에 칼을 대는 사람의 숙명이다.
많은 이들이 AI 가 의사를 대체하는 시대가 올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바둑에서의 알파고처럼 인간을 능가하는 인공지능 외과의가 나오기까지는 생각보다 많은 세월이 필요할 것이다.
그때까지 운명적으로 VIP 신드롬을 겪으면서 사는 삶도 그리 나쁘지만은 않은 듯하다.
한 줄 요약
VIP 신드롬도 하나의 변수이다. 척추수술은 변수 게임이다. 의사에게 중증도 말고 변수가 많은지도 물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