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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용 Aug 29. 2020

척추 내시경 제다이 분투기

척추 내시경 수술 증례 - 제다이로 살기-

앗! 이런... 내시경이 환부로 삽입이 안된다. 너무 좁다. 게다가 혈압도 낮다. 수축기 혈압 79. 내시경 통을 살짝 돌려 조심스럽게 신경구멍을 깎으면서 진입했다. 5번 신경 손상 없이 시야를 확보해야 한다. 극도로 긴장된 첫 번째 고비다...


며칠 전 외래에 80세 할머니 환자가 왔다. 휠체어를 타고 울면서... 3년 전 요추 3-4-5번에 나사못 수술을 받은 환자였다. 잘 지내다가 한 달 전부터 시작된 우측 엉덩이 및 다리의 신경 통증으로 오신 것이다. 이미 주사치료를 받은 상태로 전혀 효과를 못 보고 극심한 통증으로 다리를 잘라냈으면 좋겠다고 했다. 입원하여 시행한 MRI를 보니 요추 5-천추 1번 디스크의 우측 신경구멍 협착이 심하고 디스크 탈출증이 겹쳐 있었다. 한마디로 협착증과 디스크 병이 동시에 있는 심각한 상황이었다. 마침 전공의 파업 사태로 말미암아 관혈적 수술이 어려운 데다 환자는 전신 소견이 불량한 80세 할머니이다. 표준적인 관혈적 수술을 하기에는 모든 조건이 열악했다. 병을 고치려다가 합병증으로 문제가 생길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부분 마취하에 진행하는 경피적 척추 내시경 수술이었다. 신경 병증을 일으키는 협착증이 워낙 심한 상황이라 내시경 수술의 적응증은 아니었지만, 사실 요즘은 웬만한 말기 협착증도 내시경으로 치료하는 일이 많다. 아직 논문으로 내지는 않았지만...


... 그래서 시작한 내시경 수술. 환자는 진정 마취가 되어있어서 엎드린 자세로 잠들어 있었다. 나는 척추 내시경 수술의 제다이 (스타워즈에 나오는 그 제다이 맞다). 내시경 통을 경피적으로 삽입하여 환부로 접근하는 첫 과정으로부터 시작했다. 신경 구멍이 두꺼워진 뼈로 둘러싸여서 너무 좁았다. 게다가 혈압도 낮게 유지되었고... 가능한 빠르게 일을 진행시켜야 한다. 조심스럽게 내시경 통을 5번 신경을 피하고 동시에 주변 뼈들을 깎아가면서 환부로 도킹시켰다. 내시경으로 보이는 신경 구멍의 상태는 매우 심각했다. 5번 신경은 주변 군 뼈와 인대, 그리고 디스크에 의해 심하게 눌려 있었고 조금의 여유도 없었다. 자칫 감압이 제대로 안되면 영구적인 장애가 남을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직접 신경 감압을 시도하는 것은 바보짓이다. 주변 조직부터 접근하여 어느 정도 공간을 만들고 다음 단계로 신경 감압을 하자고 마음먹었다. 환자는 엎드린 자세로 오래 버틸 수 없는 상황이라 제한된 시간에 신속한 작업이 필요했다. 단계적이고 정밀할 감압이 진행되었다. 드릴과 집게를 이용한 점진적인 신경 감압. 점차 눌렸던 신경이 펴지고 숨을 쉬는 것이 확인될 때 나를 억누르던 긴장감은 사라지고 일종의 쾌감이 밀려왔다. 환자가 깨기 시작한다. 그리고 자세가 불편한지 움찔거릭기 시작한다. 쫓기는 마음으로 지혈과 마무리를 하고 수술을 마쳤다. 휴 아슬아슬하게 끝났다. 그래도 오늘도 윈!. 이 승부는 언제나 제다이의 승리로 끝이 난다. 사람의 몸을 고치는 것이니 당연히 그래야 한다.


치료한 의사인 나는 한 시간 동안 극도의 긴장감과 묘한 쾌감으로 내시경 제다이로서의 여정을 마쳤다. 환자분은 수술받는 동안 진정 마취하에 있었기 때문에 한숨 자고 깨어보니  통증이 사라져서 신기해하면서 기뻐했다. 다음날 퇴원했다. 이게 미세침습 내시경 수술의 장점이다. 의사는 어렵고 환자는 편한... 그 효과와 보상은 즉각적이다.

현대 외과 치료의 메인 스트림은 미세침습 치료이다. 과거의 표준 수술은 전신 마취하에 환부를 충분히 (많이?) 절개하여 필요하면 수혈하면서 수시간 또는 그 이상 진행하는 것이었다. 마취와 절개에 의한 합병증과 오랜 회복기간이 필요하였고 환자는 어느 정도의 후유증을 겪어야 했다. 최근에는 그 패러다임이 바뀌었다. 서서히 (또는 기념비적인 개념의 등장으로 갑자기) 의학 기술이 발달하면서 정상조직은 보존하면서 환부만 선택적으로 수술하는 미세침습 수술의 개념이 표준으로 자리 잡은 것이다. 그 개념 중의 하나의 분야로서 척추 내시경 수술이 있다. 필자는 20년간 이 기술의 제다이로 디스크 병과, 협착증과 싸워왔다. 괴로운 경험도 물론 있었지만 그마저도 소중한 시간들이었다. 현재 척추 내시경 치료는 비록 그 적응증이 제한적이지만, 적응증에 합당하기만 하면 관혈적 수술에 비해서 압도적으로 우수한 치료 성적을 보인다. 또한 위험 인자들을 보유한 환자들이나 고령층에도 안전하게 치료할 수 있다. 앞으로도 이 내시경 수술의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

고백하자면, 내시경 수술을 앞두고 스크럽을 하고 수술복을 입을 때 나도 모르게 마음이 설레고 짜릿한 행복감을 느낀다. 궁극적으로는 공상과학 영화에 나오는 오차 제로의 수술 로봇이 인간 의사를 대체하는 날이 오겠지만, 그날이 오기까지는 우리 제다이 들이 그 역할을 맡아야 한다. 지구라는 행성이 태어난 이상 우리 모두는 동료다. 질병으로부터 우리 동료 인간들을 구하고 세상을 이롭게 하는 것이 우리의 임무라는 것을 잠시도 잊지 않고 있다. 승률 100퍼센트의 승부. 세상의 모든 제다이들이여,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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