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소침습 척추치료의 철학 - 제다이로 살기 -
1999년 어느 날, 비디오 아티스트 고 백남준 선생님이 서울 청담동의 어느 척추전문병원에 기념비적인 작품을 선물한다. 몇 년 전까지 그 병원에 설치되어 있던 "안심 낙관"이라는 작품이다. 백남준 선생님 본인이 많은 병을 갖고 있었기에 더더욱 고통 없는 희망적인 삶이 절실했으리라...
이후 안심 낙관은 이 병원에서 최소침습 척추치료의 상징과도 같은 철학이 되었다. 필자는 대학에 오기 전 이 병원에서 근 20년을 근무하며 그 철학을 배우고 척추 신경외과의로서 잔뼈가 굵어 왔다.
과거의 안심 낙관
2000년대 초반 어느 날, 필자는 신경외과 주 학회에 참석하여 최소침습 수술의 한 분야인 내시경 척추수술에 대한 구연 발표를 하면서 척추 소사이어티에 데뷔를 하게 된다. 동영상과 PPT 슬라이드를 여러 번 고치고 수십 번 발표 연습을 하고 나서 떨리는 마음을 다잡고 발표를 했다. 정확한 시간에 더듬지 않고 해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웬걸! 돌아오는 반응을 차가운 냉소와 거친 비판이었다. 특히 대학병원의 선배 교수님들의 비판이 뼈아팠다.
척추같이 뼈로 둘러싸인 기관에 내시경 진입이 이론적으로 옳지 않다...
발표의 객관성에 의심이 간다...
기본이 안되었다....
등등......
공개적으로 인민재판을 당했으며, 그때 필자의 심정은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들어가 숨고 싶었다.
20여 년 전만 해도 척추 수술을 부분마취 비절개로 한다는 것에 대한 기성 의학계의 의심과 거부감이 심했던 것이다. (십수 년이 지난 다음 알게 된 사실이지만, 학회에서 작정하고 필자가 속한 병원의 버르장머리를 고치겠다고 이면 합의하였고 그 희생양이 필자였던 것이다! 학계의 정치란...!)
현재의 안심 낙관
하지만 세월이 흘러 내시경 척추수술의 우수성이 국내는 물론 전 세계적인 대세가 되고 트렌드가 되어 왔다. 더구나 이 분야의 연구 논문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고, 현재는 일종의 K 메디슨의 한 분야가 되어 오히려 대학병원을 위시한 주류 학회에서도 인정하는 현실이 되었다. 그 덕에 개원가 봉직의였던 필자도 대학병원 교수가 되었다. 언제 그랬냐는 듯, 과거의 홀대는 온 데 간데없고 오히려 최소침습 수술의 정신 또는 안심 낙관의 철학이 원래 주류 학계의 소유물인 것처럼 신봉하는 시대가 되었다.
경위야 어떻든, 안심 낙관은 현재의 가치가 되었다.
미래의 안심 낙관
이제는 100세 시대이다. 말로만 그런 것이 아니라, 진짜 100세를 산다. 또한 삶의 질도 더욱 강조되는 시대가 될 것이다. 청년 같은 노인, 평생 현역으로 건재한 시대가 될 것이다. 디스크병과 협착증은 더욱 우리의 삶의 질을 떨어뜨리는 방해물이 될 것이고, 우리는 적극적으로 이에 대비해야 한다. 그러므로
전신마취보다는 부분마취
절개보다는 비절개
수술보다는 시술
딱딱한 나사못보다는 부드러운 인조 인대
현미경 수술보다는 내시경 로봇 수술
등등의 미래의 최소침습 척추치료의 세계로 발전해 가고 있다.
안심 낙관!
안심 낙관의 정신은 의학에서의 최소침습치료의 철학과 정확히 일치한다.
이미 20여 년 전에 현재의 최첨단 의학의 정수를 설파했던 선구자들에게 경의를 표한다.
우리 제다이들은
환자들을 고통에서 벗어나 100세까지 안심하고 활동하고 미래에 대해 낙관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