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제 가능과 불가능의 경계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자 - 제다이로 살기 -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에픽테토스는 말했다. 세상엔 내가 통제 가능한 일과 통제 불가능한 일로 나뉘어 있고, 인생을 잘 사는 지혜는 통제 불가능한 것에 너무 아쉬워하거나 억울해하지 말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는 것이다. 나의 인종이나 가정환경, 그날의 날씨, 천재지변, 심지어는 부와 명예까지도 자신의 통제 영역 밖의 일이니 좀 더 가볍게 생각할 필요가 있다.
신경외과 의사로서 환자를 수술하고 치료하는 일을 오래 하다 보니, 더더욱 공감하게 된다.
수술을 포함한 의학적 치료에는 생각보다 많은 변수가 존재한다. 같은 병, 동일한 조건에서 수술을 해도 어떤 사람은 무사히 잘 회복되고 어떤 사람은 합병증에 시달린다. 물론 대부분의 치료는 성공적이다. 그러나 드물지만 한 명이라도 합병증이 생길 경우 의사의 마음은 몹시 괴롭다. 이경우 통제 불가능한 영역까지 자신의 책임으로 돌린다면 제대로 된 진료를 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래서 필자는 주로 통제 가능 영역에 집중하여 변수를 없애려고 노력 중이다.
- 통제 가능과 불가능의 경계
수술 후 감염증 - 지병으로 인한 면역력 저하
수술 후 출혈 - 출혈성 경향
수술 후 심장 또는 뇌혈관 문제
골다공증에 의한 골절 또는 불안정증
지병으로 인한 예후 불량
사실문제가 되는 것은 통제 가능한 일과 통제 불가능한 일 사이의 경계에 자리 잡은 변수들이다. 과거에는 통제 불가능한 일이었지만 세상이 바뀌고 의학이 발달하면 어느새 통제 가능한 변수가 될 수 있다. 과거의 불치병 내지 괴질로 여겨졌던 병이 현대에는 완치가 가능한 병들도 많다. 또한 현재에는 통제 불가능하지만 미래의 어느 날에는 우리의 능력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도 있을 수 있다.
-제다이 의사가 해야 할 일은 이 회색지대에 있는 변수들을 제거하여 통제 가능 범위를 넓히는 것이다. 그래서 생각할 수 있는 모든 변수를 제거하여 최고의 치료 방법들을 확립하는 것이 환자들을 위한 좋은 의사, 좋은 병원이 되는 것이라고 믿는다.
-필자의 경험을 예로 들어 보겠다. 최소침습 방식을 택한 허리 나사못 수술을 처음 했을 시절에는 수술 후 환자들이 오래 아파했고, 간혹 골유합이 완전치 못해 환자는 오랫동안 정상생활에 복귀하지 못하기도 했다. 수술 후 감염증도 심심찮게 생겨서 재수술을 하는 경우도 있었다.
이래서는 안 되겠다 싶어 책도 찾아보고, 동료들의 수술법도 참고하고, 스스로 깊이 생각도 해보면서 문제가 생길 수 있는 변수들을 찾아내었고 점차로 그 변수들을 제거해 나갔다. 이 변수들은 교과서에 나오는 것들이 아닌 매우 미묘한 요소들이었다. 스스로 찾아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경험이 쌓여갈수록 변수들은 제거되어 갔고 점차 환자들의 수술 후 통증도 줄었고, 재원기간도 줄었으며, 그들의 만족도도 높아졌다. 무엇보다 예측 가능한 수술이 되었다는 자신감도 생겼다.
현재 미세침습 요추 감압술 및 골유합술은 필자의 주된 수술법 중의 하나가 되었고, 예후가 좋을 환자, 나쁠 환자를 수술 전에 가릴 수 있게 되었고, 자신 있게 수술로써 그들의 고통을 덜어 줄 수 있게 되었다.
-놀랍게도, 이러한 변수를 없애가는 작업을 진지하게 하지 않는 의료진도 있다는 것이다. 정말 열심히 찾아보고 연구하지 않으면 10년, 20년이 지나도 개선의 여지가 없는 경우도 있다. 의사의 게으른 경험이 환자에게는 독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수술 마치고 녹초가 되어서 병실 회진을 도는데 환자와 나의 대화가 다시 생각났다.
너무 힘들어 보이세요....
괜찮습니다. 즐겁게 힘듭니다...
통제 불가능이 통제 가능으로 바뀔 때의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시간이 많이 없다. 촌음을 아껴서라도 변수들을 없애 나가야겠다.
변수 없는 수술법! 합병증 제로!
이것이야 말로 제다이로서 필자가 추구하는 최고의 경지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