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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향 Oct 04. 2022

갠지스 강가에서

인도의 참모습을 볼 수 있다는 바라나시로 향하는 기차 안에서

인도에서의 셋째 날을 맞았다.


<큰 배낭을 메고 샤룩 칸의 영화를 보다>


40도를 육박하는 뜨거운 햇살과

갑자기 쏟아지는 소나기를 온몸으로 맞으며 보낸 

델리에서의 이틀을 정리할 여유가 없다.

천장에 코가 닿을 듯한, 삼층으로 된 침대 꼭대기 칸에서 단잠을 자고 일어나

오랜 인도인처럼 짜이 한 잔으로 아침을 시작한다.



바라나시에서의 첫날은 대부분의 시간을 갠지스 강가에서 보내기로 마음먹었다. 

며칠 간의 폭우로 강은 가트(강가와 맞닿아있는 계단)까지 삼킨 채 온통 흙빛으로 넘실대고 있었다.

언제 나는 저렇게 시원스럽고 힘차게 흘려본 적이 있었던가.

넋을 잃고 앉아 있는 이방인에게 강물은 말한다.

‘내가 흘러가야 하는 길인데 무슨 두려움이, 주저함이 있을까. 나는 길을 갈 뿐인데.’

목소리는 낮고 강렬했다.


강가는 많은 사람들로 붐볐다.

쉬바 신의 도움으로 천계(天界)의 강이 지상으로 내려와 흐른다는 전설을 믿는 그들은

 물에 몸을 씻는 것으로 죄사함을 받고

그들의 신에게 소원을 빈다.

사람과 한데 뒤엉켜 사는 소들의 배설물과

화장터에서 쏟아내는 불탄 시신이 부유(浮游)하는 그 강물에서

순례자들은 천천히 자신의 방식대로 몸을 씻으며 경건한 의식을 거행한다.

‘나의 눈으로 그들을 보지 말아야지. 판단하지 말아야지.’

수없이 타일러 보지만 어쩔 수 없는 나는, 이방인이었다.


<갠지스 강가의 화장터 - '인도로 가는 길' 여행사 홈페이지에서 옮겨 옴>


강가 바로 옆 화장터에서 네 무더기의 장작불이 타오르고 있었다.

장작더미 밖으로 빠져나온 시신의 팔을 불길 속으로 밀어 넣어주는 화장터 일꾼의 얼굴도,

둘러서서 쳐다보는 사람들의 얼굴도 슬퍼 보이지를 않았다.

그저 냉랭하고 담담하다.


휑한 옥상 같은 곳에서

한 도막으로 커다란 장작처럼

시신을 끼워 넣어 화장(火葬)을 하고,

불탄 검은 고깃덩이를 그대로 강으로 쓸어내다니.

사랑하는 이를 마지막 배웅하는 모습이라 하기엔 너무 어설프고 서글퍼 보였다.

그들에게 죽음이란 슬픈 이별이 아닌가 보다.

이승에서 자신의 카르마[업(業)]를 다한 사람만이 갈 수 있는

천계(天界)의 강으로 흘러들어 가 

불멸의 삶으로 거듭나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일까.


뜨거운 햇살 아래 장작불 속에서 ‘죽음이 삶을 껴안은 채 한 죽음을 받는 것을’ 보며

나는 내 삶과 연결된 내 죽음을 생각해 보았다.

죽음은 삶과 늘 동행하는 또 하나의 얼굴이며 마지막 뒷모습이다.

죽음이 두렵다면 우리는 삶도 두려워할 줄 알아야 하고

더 뜨겁게 껴안을 줄 알아야 한다.


<저녁 뿌자를 기다리며>


저녁 뿌자(예배)를 보는 자리에서, 일출을 보고 돌아오는 길에서 구걸하는 아이들을 만났다.

바라나시 역에서 본 장면들이 겹쳐 떠올랐다.

대합실 맨바닥에 눕혀져 있는 갓난아기, 그 얼굴에 까맣게 붙은 파리들.

생명이 사랑스럽고 아름다운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은 질기고도 독한 것이다.

그들이 나보다 불행해 보인다는 생각 역시 이방인의 생각일 뿐이지만 말이다.

신발도 신지 않은 채 몸을 겨우 가린 헐벗은 커다란 눈빛들이 내게 배고픈 손을 내밀었다.  

선한 눈빛에게 되묻고 싶었다.

삶 자체가 종교이기 때문에 종교라는 말이 없었다는 그대들의 나라에

사람보다 많다는 그대들의 신은 모두 무엇을 하고 있는가.

고통이 역설적으로 희망의 동기(動機)라고는 하지만

나는 한번도 생각해 본 적 없는 그들의 신이 원망스럽기만 했다.


<갠지스 강가, 한 순례자의 모든 것>


* 글 속에  ‘죽음이 삶을 껴안은 채 한 죽음을 받는 것을’은 고은의 시 <문의마을에 가서> 중에서 인용

* 이 글은 마흔의 나이에 떠났던 인도 여행 글의 일부를 '기록'의 차원에서 옮겨온 것이다.

  (총 3부 중 두 번째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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