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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향 Sep 30. 2016

맑지 않다고 더러운 건 아니다

슬로우보트를  타고 메콩강을 거슬러

아침이다. 루앙 프라방의 아침이다. 어느 아침이 새롭지 않을까마는 특별히 오늘은 그렇게 그리던 루앙 프라방의, 눈부시게 아름다운 아침이다.


태국을 거쳐 라오스에 들어온 지 5일째. 첫눈에 반해버린 방비엥에서 이틀을 묵고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옮긴 곳이 바로 이곳, 루앙 프라방이다. 지난밤 미니버스로 6시간을 달려 찾아온 루앙 프라방은 촉촉한 여름비에 젖어있었고, 나는 나이트 바자르에서 손바닥만한 의자에 쪼그리고 앉아 반주(飯酒)로 마신 라오 비어 한 잔에 여독(旅毒)이 녹아 일찍 단잠에 들었었다.


메콩강이 바로 내려다보이는 숙소 발코니에서 긴 숨을 들어 마시며 아직 가시지 않은 잠기운을 떨쳐내었다. 눈앞을 유유히 흐르는 메콩강의 황톳빛 물줄기가 이방인의 가슴을 평안하게 어루만져 주었다. 하루를 시작하기엔 이른 시간이지만 루앙 프라방의 볼거리 ‘탁발(托鉢)’을 경험해 보기 위해 숙소를 나섰다. 밤새 뿌린 빗줄기에 촉촉이 젖은 거리는 이국의 아침을 더 낭만적으로 느끼게 해주었다.


프랑스의 식민지로 오랫동안 지배를 받은 탓에 거리 곳곳에는 프랑스풍의 건물들이 옛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채 즐비해 있었다. 비엔티엔으로 수도가 옮겨지기 전까지 라오스 제 1의 도시였다는 루앙 프라방은 유네스코가 도시 전체를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할 만큼 역사성과 미학적 가치를 지닌 고도(古都)라는 사실만으로도 여행객들의 발길을 붙들기에 충분했다. 인도차이나 반도에서 수백 년 전 유럽의 모습을 볼 수 있다는 사실도 놀랍지만 그 모습을 지금까지 그대로 보존하고 있다는 것이 더 신기했다. 세월은 지나간 자리에 꼭 자신의 흔적을 남기는 법인데 이곳은 그 심술을 잘 이겨낸 것 같다.


골목길 여기저기에 사람들이 나란히 무릎을 꿇고 앉아 있었다. 모두들 작은 대나무함에 담은 고두밥, 바나나 같은 음식물과 작은 꽃송이들을 준비하고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잠시 후 멀리서 주홍색 가사 행렬이 천천히 다가오고 있었다. 맨발에, 무표정한 탁발승들은 어깨에 걸친 바리때 뚜껑을 비스듬히 열고 사람들이 내미는 음식들을 차례대로 받았다. 이곳 사람들은 이렇게 매일 아침 승려들에게 시주를 한 다음에 돌아가 아침을 먹는다고 한다. 소박한 음식이라도 먼저 베푸는 삶을 실천한 후에 자기 입에 음식물이 들어가는 것이다. 종교를 떠나 라오스인의 삶의 태도를 짐작하게 하는 모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일 년 내내 하루도 빠짐없이 행해진다는 경건한 종교의식에 나도 용기를 내어 끼어들어 보았다. 마음을 모아 정성을 다하려 했지만 손끝이 떨리고 가슴이 콩닥거려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무엇보다 무례한 짓을 하는 건 아닌가하는 생각에 마음이 편치 않았다. 하지만 내가“미안해요.”하고 말하면 그들은 특유의 선한 눈빛과 미소로 “버어 뺀 냥(괜찮습니다).”이라고 말하며, 그들이 섬기는 부처님의 가르침대로 자비롭게 이방인의 경거망동을 널리 이해해 주리라 믿는다.

 

곳곳에서 세월의 깊은 향기가 느껴지는 숙소에서 라오 커피 한잔으로 여유를 부리다가 그만 슬로우보트(Slow boat) 출발 시간에 쫓기고 말았다. 무거운 배낭을 메고 초등학교 운동회 때처럼 선착장을 향해 달렸다. 내가 타기로 한 슬로우보트는, 박뺑을 거쳐 국경지방인 훼이싸이까지 무려 18시간 동안 메콩강을 거슬러 오르는 것이었다. 밤 10시가 넘으면 정전(停電)이 된다는 박뺑에서 하룻밤을 정박하고 다음날 아침 다시 출발하는 일정이다.


낯선 남자의 손에 의지하여 좁다란 널빤지를 딛고 올라탄 보트에는 이미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메콩강가에 흩어져 사는 이곳 사람들에겐 중요한 이동수단이고 보니 사람 몸체만한 짐들이 여기저기 어지럽게 쌓여 있었다. 운전석 뒤에 간이의자처럼 놓인 작은 나무의자에 엉덩이를 걸치고 긴 여정을 가야 하게 생겼다. 걱정이 앞섰다. 방비엥에서 만나 동행한 두 자매는 루앙 프라방의 분위기에 빠져 그곳에서 이틀을 더 묵겠다며 방콕에서 만나자는 인사만 남기고 떠나버렸고, 또 다른 한국인 둘은 수도인 비엔티엔으로 돌아가겠다고 배에 오르지 않았다. 나만 괜한 코스를 선택한 것이 아닐까 후회가 되었다. 고생을 사서 할 나이는 이미 지났는데 말이다.

보트는 이름 그대로 천천히 움직였다. 생각했던 것보다는 속도감이 느껴지긴 했지만 강을 거슬러 오르면서 강가 곳곳에 사람들을 내려주기 위해 멈춰야 했다. 보트가 뭍에 가까이 다가갈 때마다 동네 아이들이 몰려와 강물 속으로 신나게 뛰어들었다. 분명 사람의 눈길이 그리웠던 게다. 검게 탄 야무진 몸매를 드러내고 다이빙 솜씨 자랑에 신이 났다. 아이들의 천진한 모습이 메콩강을 닮아 한없이 순박하고 건강해 보였다.


그렇게 서너 시간이 강물처럼 흐르자 사람들은 주섬주섬 먹을거리를 꺼내 점심을 해결했다. 모두 바나나 잎사귀에 싼 소박한 음식들이었다. 손으로 밥덩이를 조금씩 떼어 꼭꼭 다져 먹는 모습이 지저분하기보다는 오히려 군침이 돌게 했다. 나도 도시락을 준비해 오길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박뺑까지 가는 8시간 동안 배에서 내릴 수 없으니 도시락을 꼭 준비해야 한다는 여행선배의 조언에 새벽시장에 나가 커다란 대나무함에 밥을 넉넉히 사서 담고 소시지 구이와 과일도 많이 사왔다.

 

음식을 나누는 것은 사람의 마음을 열게 하나 보다. 출국할 때 공항에서 사서 간 구운 김에 밥을 싸서 옆에 앉은 프랑스 소년에게 건네니 맛있게 받아먹으며 웃음으로 답했다. 손녀를 데리고 훼이싸이에 있는 집으로 돌아가는 할머니도 우리나라 김 맛에 푹 빠지고 말았다. 바짝 다가앉으시더니 자신의 도시락을 함께 내어 놓으셨다. 경계(警戒)의 눈빛을 보내며 엄마 곁을 떠나지 않던 라오스 소년 하나도 내가 건네는 김밥을 먹어보더니 호기심어린 눈으로 자기를 지켜보는 엄마 입에도 하나를 넣어드렸다. 나중에 훼이싸이의 구멍가게집 세 모녀까지 합세하게 되어 우리의 점심상은 대식구가 되었다. 여러 사람이 함께 나눠먹는 음식은 훨씬 더 맛있는 법이다. 남은 밥을 고추장에 쓱쓱 비벼 먹는 것으로 선상(船上)의 오찬은 끝이 났다.

식후에 다시 무료함이 몰려왔다. 특히 아이들은 좁은 배 안에 갇혀 있어야 하는 이런 긴 여행에 몸살이 날 지경이다. 프랑스인 엄마와 라오스인 아빠 사이에서 태어났다는 아홉 살 난 소년은 더위에 지친 표정으로 배가 아프다며 엄마에게 짜증을 부리고 있었다. 가방에 넣어온 아톰 목걸이가 생각났다. 주먹을 불끈 쥐고 우주로 곧 날아오를 것 같은 씩씩한 모습의 아톰이 긴 체인에 달린 목걸이이다. 소년에게 그것을 보여 주며 아톰을 아냐고 물었더니 긴 속눈썹을 깜박거리며 고개를 끄덕인다. 아톰은 용감하고 씩씩한 소년이라고 가르쳐 주며 목에 걸어 주었더니 금세 얼굴에 웃음이 퍼졌다. 곁에 있던 아이엄마가 한국어로 'Thank you.'가 무엇인지 묻더니 아이와 입을 맞춰 ‘고맙습니다.’하고 내 말을 따라했다. 소년은 아톰 목걸이가 꽤 마음에 드는 모양이다. 내내 만지작거리며 좀 전의 짜증은 모두 잊은 표정이다.

라오스 아이들에게 주려고 준비해 간 볼펜과 색연필을 꺼내 놓고 아이들을 모이게 했다. 공책을 찢어 종이학 한 마리를 만들어 보여주며 함께 만들어보자고 했더니 운전석 뒤에 빈 공간에 신발을 벗고 빙 둘러앉았다. 우리는 모두 자신의 모국어인 프랑스어와 라오스어, 한국어로 이야기했지만 의사소통에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사람과 사람을 소통하게 하는 것은 언어만이 아니기에 마음의 눈과 귀로 그 뜻을 충분히 읽어낼 수 있었다. 공책종이로 학을 접고, 종이카메라를 만들어 서로 사진을 찍어 주며 맘껏 웃었다. 강바람에 엉클어진 소녀들의 머리도 예쁘게 땋아 주고 반짇고리에서 빼낸 실로 실뜨기놀이도 했다. 하찮은 종이 한 장, 고무밴드 하나, 무명실 한 올이 모두의 마음을 열고 친구가 될 수 있게 해주리라는 건 생각지도 못했다. 물론 끝없이 이어지는 황톳빛 메콩강 위를 떠가는 슬로우보트 안이라는 특별한 상황이 그렇게 만든 것인지는 몰라도 우리 모두에겐 너무나도 유쾌한 시간이었다.


프랑스 소년이 친구가 되어준 라오스 아이들에게 색색의 풍선 하나씩을 나눠주더니, 나에겐 작은 향수병 하나를 내밀었다. 뜻밖의 선물이다. 향수병을 열어 은은한 향기를 맡아보았다. 하지만 소년은 알까, 프랑스산(産) 향수보다 자신의 그 수줍은 미소가 내게는 더 향기로웠다는 것을.


곁에 있던 할머니도 뭔가를 나눠주고 싶으신 모양이다. 보자기 안에서 사탕수수 두 도막을 꺼내시며 먹어보라고 손짓하신다. 할머니를 따라 앞니로 껍질을 벗기고 단물을 빨아보았다. 영어를 모르시는 할머니께 ‘맛있어요.’하고 우리말로 말씀드렸는데도 다 알아들은 눈치시다.


서로의 눈빛을 보며 마음을 열 사이도 없이 바쁘게 사는 우리의 삶 속에서는, 부족한 것 없이 풍요로운 삶 속에서도 늘 모자란 구석만을 찾아 투정을 부리기에 바쁜 우리의 삶 속에서는 감히 느낄 수 따스한 사람살이의 모습이 아닌가. 작은 것 하나라도 ‘너’와 나누고 싶은 ‘나’의 마음, 그런 ‘나’의 순수한 베풂을 기꺼이 받아들여 주는 ‘너’의 열린 마음이 ‘우리’의 삶을 더 아름답게 하리라.


보트가 조심스럽게 뭍에 다가갔다. 친구가 되어 함께 놀던 라오스 소년이 엄마를 따라 짐을 챙겼다. 나뭇잎으로 엮어 만든 오두막 두어 채가 보이는 작은 마을이다. 일 년 내내 입었을 것 같은 소년의 낡은 티셔츠와 고장난 지퍼가 달린 색바랜 바지를 보니 마음 한 구석이 짠하게 아려왔다. 엄마와 뭔가 이야기를 나누던 소년이 꾸러미 안에서 뭔가를 꺼내주었다. 참새 같은 작은 새를 잡는 새틀이다. 보기에는 나뭇가지로 엉성하게 만들어진 것이지만 아마 그에게는 가족의 먹거리를 마련할 수 있는 소중한 물건일 터이다. 그 귀한 것을 나누어 주는 아름다운 마음이 내 눈가를 뜨겁게 했고 내 영혼까지 따스하게 감동시켰다.


“싸바이디(안녕)!” ‘그리울 거야.’

메콩강은 나에게 값진 선물을 주었다. 향기로운 향수와 달콤한 사탕수수, 귀여운 아이들의 그림, 그리고 소년의 귀한 새틀까지. 하지만 그 무엇보다도 더 소중한 것은 황톳빛 메콩강을 닮아가며 슬로우보트를 타고 ‘슬로우’의 삶을 사는 라오스인의 따스한 마음이다.


맑지 않다고 더러운 것은 아니다. 탁한 황톳물이 오히려 더 순박하고 정겹다. 메콩강과 함께 흐르는 그들의 삶이 힘겨워 보이지만 결코 불행하지 않듯이.


여행객 두엇을 태운 퀵보트가 시끄러운 엔진소리를 내며 지나갔다. 성난 물살에 보트가 출렁거렸다. 그 리듬에 맞춰 내 몸도 함께 흔들렸다. 나는 지금 답답하고 느린 슬로우보트를 타고 있다. 그래도 나는 행복하다. 아니 그래서 나는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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