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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향 Sep 30. 2016

한바탕 울 만한 자리

칭짱열차 그리고 암드록쵸호수

好哭場, 可以哭矣!”

“참 좋은 울음터로구나! 한바탕 울어보자!”

 

연암 박지원이 사신으로 북경 가는 길에 요동 벌판을 보고 한 첫 마디이다. 좁디 좁은 한양바닥을 헤매던 조선 양반의 눈에 그 광활한 요동 벌판은 어떻게 비치었을까? 한눈에 바라볼 수 없을 정도로 아득히 멀고 넓은 끝없는 벌판-.

연암은 말을 세우고 이마에 손을 얹고 다시 말했다.


“나는 오늘에야 깨달았다. 인생이란 본디 의지할 데 없이 다만 하늘을 이고 땅을 밟은 채 이리저리 떠돌아다니는 존재임을.”

일망무제(一望無際)의 벌판에서 그는 인간이 얼마나 미미한 존재인지를 깨달은 것이다.


약간의 용기가 필요한 도전, 티베트 여행


몇 년을 벼르고 벼르다 용기를 냈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고 말들은 하지만 마흔아홉의 문턱에서 가족들을 두고 혼자 떠나는 8박 9일간의 티베트 여행은 약간의 용기가 필요한 도전이었다. 해발 4000m 이상을 오르내려야 하는 여정이다 보니 고산증에 대한 두려움도 있었다. 떠나기 두어 달 전부터 티베트 여행기인 박완서의 <모독(冒瀆)>을 시작으로 몇 권의 책을 읽으며 준비를 했다. 그런데 박완서는 ‘내 생에서 가장 고된 여행’이었다고 하며, 동전을 던지면 언젠가 다시 로마로 돌아오게 된다는 트레비 분수가 티베트에 있어도 동전을 던지지 않겠다고 얘기하고 있었다. 그만큼 힘든 여행이었다는 것이리라. 두려움이 더 커져 마음을 접으려고 했다. 그런데 다른 책에서 읽은 티베트의 속담 한 구절이 다시 마음을 뒤집어 놓았다. ‘내일이 먼저 올지 다음 생이 먼저 올지는 아무도 모른다.’ 더 늦기 전에 보고 싶은 건 보고, 가고 싶은 곳은 가보리라 다시 용기가 생겼다.


어차피 티베트 여행은 고행을 감수한 것이라 생각하고 칭짱열차로 중국 북경에서 티베트 라싸까지 48시간을 달려가는 여정을 선택하였다. 흔히 하늘 길을 달린다고 하늘열차라고도 불리는 칭짱열차는 해발 4000m 이상인 구역이 960km나 되고 가장 높은 구간은 5072m나 되는, 세상에서 가장 높은 지대를 달리는 기차이다. 2박을 기차 안에서 자야 하고 식사도 6끼를 그 안에서 해결해야 했다. 여행을 갈 때는 현지 음식 즐기는 것을 좋아하기에 고추장이며 라면 등 먹거리를 잘 챙겨 가지 않는 성격이었지만 48시간 동안 기차 안에서 심심할 거라는 주위 사람들의 조언대로 주전부리들을 이것저것 챙겼다. 커피도 넉넉하게 챙기고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며 읽겠노라 책도 세 권이나 챙겨 넣었다.


저것이 진짜 하늘색, 오롯한 태초의 모습

 

연암은 말했다.

“슬플 때만 우는 것은 아니다. 기쁨이 사무치면 울음이 날 만하고, 분노가 극에 치밀면 울음이 날 만하며, 즐거움이 극에 이르면 울음이 날 만하다. 또 사랑이 사무치면 울게 되고 욕심이 사무쳐도 울게 되는 것이다. 막히고 억눌린 마음을 시원하게 풀어버리는 데에는 소리를 지르는 것보다 더 빠른 방법이 없다.”


칭짱열차를 타고 48시간을 달리는 동안 끝없이 펼쳐진 창밖의 풍경은 가히 눈물이 날만했다. 열차 복도의 넓은 창가에 앉아 있으면 심심한 입을 위한 주전부리도, 귀를 위한 음악도 필요가 없어진다. 챙겨온 책도 읽을 마음이 사라진다.


식물 한계선을 넘은 고원에는 푸른빛이라고는 없는 천연의 흙색이 시작도 끝도 없이 펼쳐졌다. 하루를 꼬박 달려도 어제 그 모습 그대로다. 풀 한 포기 품어본 적 없을 것 같은 황량한 돌무더기 산과, 바람 한 줄기면 흙먼지가 일어 눈앞이 온통 뿌옇게 흐려질 것 같은 흙바닥에 입을 대고 멈춰선 야크 무리들. 휑해진 가슴 가득 알 수 없는 서러움이 차오른다. 그리고 가끔은 멀리 하얀 눈에 덮인 산들이 나타났다. 군더더기 하나 없이 단아하고 고결한 모습의 설산들을 보며 나는 ‘고고(孤高)하다’는 단어를 내내 되뇌었다. 속세에서 벗어나 홀로 깨끗하고 지조 있게 우뚝 솟은 모습, 저곳을 정복하려고 발을 딛는 것은 정말 자연에 대한 모독이 될 것 같은 신성함마저 느껴졌다.


그리고 무엇보다 가슴 시리게 신비로운 것은 흙빛 고원과 설산, 그리고 여행 중 만난 티베탄들의 피부색과 너무도 잘 어울리는 ‘하늘’의 색깔이었다. 파래서, 너무 파래서 오히려 인위적으로 보일 정도의 하늘빛, 그것이 고원의 흙빛을 흙빛으로, 설산을 설산의 빛으로 느껴지게 하는 것 같았다. ‘저것이 진짜 하늘색이었구나.’


눈이 시리게, 가슴이 시리게 푸르른 코발트색 짙은 그 하늘은, 고산증이 불러온 두통으로 잠이 깬 새벽마다 수많은 별들을 쏟아내어 또 한번 나를 놀라게 해주었다.


내가 보고 있는 창밖의 풍경, 이것이 오롯한 태초의 모습이리라.


한바탕 울어도 좋을 풍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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