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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향 Oct 02. 2016

불질 없이 부질없이

               - 200억대 로또 도전

몇 해 전이었다.

인을 못 찾은 100억대의 로또 당첨금이 다음 주로 이월되어 1등 당첨금이 200억대를 넘길 거라는 남편의 목소리는 쇼호스트 같은 높은 음계였다. 마치 그 돈이 다음 주면 자기 주머니에 들어올 것처럼 흥분하고 있었다.     


“정말 돈벼락이다, 그 정도면. 어제 꿈도 좋았는데 나도 한번 해볼까?”

예의상 그냥 한 대답이었는데 그의 반응은 적극적이었다.

“어떤 꿈이야? 말해봐. 어서! 빨리!”    

예지몽으로 몇 차례 실력 발휘를 한 전적이 있었기에 내 말을 들은 그의 눈은 빛이 났다.


원래 나는 꿈을 잘 꾸는 체질이고 가끔은 흔치 않은 꿈을 꾸기도 했다. 부모님이 병환 중이실 때도 전날 꿈자리에서 두 분과의 이별을 짐작하고 새벽바람에 달려가 두 분의 임종을 다 지킬 수 있었다. 두 딸아이의 태몽도 참 신기했다. 두 아이 모두 임신한 사실을 꿈에서 먼저 알 수 있었고 성별도 이미 알고 있었다. 두 아이의 이름도 태몽과 연관 지어지었으니 남편은 내 꿈의 예지력을 확신하는 편이다.     


“온산이 불길에 휩싸였어. 꼭대기에 올라선 나는 타올라오는 불길을 보며 소리를 지르고 있었어. 근데 무서워서 지르는 비명이 아니고 이글거리는 불길이 추는 군무에 취해 환호를 지르고 있었다니까. 신기하죠? 진짜 진짜 멋있었어.”

“멋있는 게 문제가 아니고, 이건 대박 꿈이야. 정말 대박 꿈이야.”     

꿈 이야기를 들은 그의 목소리는 전품목 품절, 마감 임박을 알리는 쇼호스트 같았다. 그리고는 곧 점퍼를 입고 외출을 준비했다.     

“같이 가야 해. 당신 꿈이니까 당신이 사야지. 빨리 가자.”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외투까지 걸쳐 주며 재촉하는 그는 신혼 때처럼 다정하고 친절했다.


렇게 우리는 늦은 밤 외출을 하여 가족들의 생일과 전화번호, 결혼 날짜 등 45개의 숫자 가운데 우리에게 의미 있는 여섯 놈을 가려 들고 돌아왔다.     


그 후 며칠 동안 우리의 밥상머리 화제도, 베갯머리 화제도 온통 로또 당첨금 200억이었다. 당첨금을 언제 어떤 방법으로 수령하는 것이 좋은지, 세금은 얼마나 내는지, 어떻게 쓸 것인지 등을 진지하고 행복하게 의논했다. 대박 당첨 선배님들의 사례까지 들어가면서.     

형부의 실직으로 형편이 어려워진 언니네도 도울 수 있겠다, 동생도 월세에서 전세로 옮겨 주어야지, 조카 대학 등록금도 한번 내주고 용돈도 주어야지, 우리 집 아이들도 남들처럼 해외 어학연수 건사하게 한번 보내볼까…    

추첨일 전날 결국 우리는 본격적으로 백지 위에 행복한 돈나 누기를 시작했다. 우리 집 형제자매 8남매에게 가구당 1억씩 8억, 남편 형제 3남매에게도 1억씩 3억, 새집 마련 비용으로 5억, 아버님 새집 마련 비용으로 3억을 지출하며 하룻밤 사이에 20억이 넘는 돈을 써버렸다. 작은방 장판 색깔까지도 취향이 달라 다투던 우리가 이렇게 일사천리 마음이 착착 맞다니 참 행복한 밤이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참 부질없는 짓이라는 것은 시간이 일깨워 주었다.     

“뭐야, 이게? 당신 꿈 발 다 죽었네.”

친정부모님의 죽음도, 두 딸아이의 태몽도, 언니의 시험 결과까지도 다 맞힌 내 꿈의 효력이 이제 다 됐다고 남편은 빈정대며 따졌다. 마치 자신의 200억을 내가 다 까먹은 것처럼 억울해하며 허탈해했다.


다 부질없는 짓이었다.     

칼 한 자루, 호미 한 자루를 얻기 위해 대장간에서는 수없이 많은 풀무질을 하고 담금질을 한다. 쇠 덩어리 하나가 뜨거운 불길 속에서 다듬어지고 여러 차례의 담금질 끝에 단단한 연장으로 탄생한다. 그 수고와 노력, 뜨거운 ‘불질 없이’ 얻어진 연장은 쉽게 부서지고 휘어져 제 기능을 하지 못한다.     


‘불질 없이’ 얻고자 하는 것은 다 부질없는 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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