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서향 Oct 03. 2016

엉킨 실타래 풀기


어머니는 밤늦게까지 뾰족한 대나무 바늘을 요리조리 움직이며 요술을 부리셨다. 어머니의 손에서는 언니의 스웨터가 풀려 동생의 모자가 되기도 하고, 아버지의 낡은 목도리가 내 벙어리장갑이 되기도 했다. 

그럴 때면 우리들은 늘 그 곁을 맴돌며 긴 겨울밤을 보냈고, 그러다 한번씩 호기심에 손을 넣어 어머니의 실타래를 엉망으로 만들어 놓기도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어머니는 팔 남매를 키우시면서 한번도 큰소리로 꾸짖지 않으신 것 같다. 우리가 엉켜 놓은 실타래를 보시고도 긴 한숨을 내리 쉬시곤 조용히 엉키고 설킨 실타래의 끝을 차근히 찾아 나서셨다.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짐작할 수 있으리라. 엉킨 실타래의 끝은 찾기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그리고 반드시 그 끝을 찾아야 실타래를 풀 수 있다는 것도...


어머니는 굵고 거친 손끝으로 엉킨 털실타래와 한참을 이리저리 씨름을 하시다 그 긑을 찾아 실을 솔솔 풀어내셨다. 하지만 가끔은 그 끝을 찾지 못하시거나 완전히 매듭이 지어져 더 이상 풀어 낼 수 없을 때는, 어느 한곳을 가위로 싹둑 잘라서 끝을 만드셨다.  


우리는 살아가다 보면 가끔은 생각지도 못한 실타래를 만나게 된다. 그럴 때는 긴 한숨을 쉬고 실마리를 찾아 나서시던 어머니의 눈빛을 떠올리며 차근히 끝을 찾아간다. 찾기만 하면, 그 실마리를 찾기만 하면 의외로 일은 잘 풀려간다. 


그리고 가끔은 도저히 내 힘으로 해결의 끝을 찾지 못할 때는 어머니의 그 과감한 가위질을 생각한다. 

가슴을 저미는 아픔이 우리 앞을 가로막고 있어도, 헤매며 울지 말자. 

어머니처럼 가끔은 매듭을 만들어 실마리를 스스로 찾자. 그리고 잊지 말자. 


가위질로 만들어 낸 실마리는 다시 솔솔 실을 풀어내고,

그렇게 여기 저기 매듭으로 이어진 실은 어머니의 정성으로 따스한 장갑이 되어 다시 태어난다는 사실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