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살 머스마들의 여름이야기
1박 2일의 짧은 여행을 준비했다. 혼자가 아니고 우리반 아이들과 떠나는 여행. 고3 올라가기 전 함께하는 마지막 여행이 될 것 같아 준비에 더 정성을 기울였다. 산으로? 바다로?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며 내린 결론은 두 가지였다.
첫째는, 학교에서 온종일 자리에 앉아 14시간 이상을 지내는 아이들에게 조금은 역동적이고 도전적인 활동을 해보게 하고 싶다는 것. 그것도 이왕이면 혼자 하는 도전이 아니라 친구들과 힘을 합쳐 해결하는 팀워크를 발휘할 수 있는 것이면 더 좋겠고.
두 번째는 땀이다. 운동장 땡볕 아래에서 축구를 하며 흘리는 땀과는 다른, 다른 사람을 위해 흘리는 땀의 보람을 느끼게 하고 싶었다.
그래서 최종 결정된 것이 ‘진짜사나이의 농활’이다. ‘진짜사나이’는 텔레비전에서 방영되는 연예인들의 병영체험 프로그램으로 아이들에게 익숙한 컨셉트라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고, ‘농활’ 역시 농촌의 여름 과일 수확을 돕는 일이라 하니 아이들은 흥미로워했다.
여행은 떠나기 전의 설렘이 더 즐거운 것 같다. 여행 장소와 주제가 정해진 다음에는 분야별로 분담을 하여 준비를 했다. 프로그램팀, 식사준비팀, 단체티 준비팀, 해설 담당 등으로 나누어, 서로에게 봉사하는 마음으로 임할 수 있도록 팀을 스스로 선택하게 하였다. 저녁과 야식 메뉴를 정하고 미리 장을 보는 일도 아이들 스스로 하도록 했다.
라면 설거지가 걸린 치열한 전투체험
진짜사나이 제1편은 육군이다. 여행지인 경북 상주로 가는 길목에 있는 대구사격장에 들러 전투체험을 했다. 홀짝수로 나누어 전후반 7분간 전투가 이루어졌는데 온라인상에서 많이 접해본 게임을 직접 해보는 것이라 아이들은 무더위 속에서도 즐거워했다. 센서가 장착된 전투복과 헬멧을 작용하고 비비탄 200발이 장전된 권총으로 상대편을 맞히면 전광판에 바로바로 점수가 올라간다. 각 팀의 초소에서 작전을 짜고 유인책을 쓰고, 기대했던 대로 팀워크가 발휘되었다. 야식으로 먹게 될 라면 설거지가 걸린 게임이라 전투는 치열했고 아이들은 최선을 다했다.
상주 경천대 카누장에서 이루어진 진짜사나이 제2편은 해군이다. 빨강, 노랑조끼를 맞춰 입고 팀별로 구령을 붙이며 풍광 좋은 낙동강을 오가는 모습은 어느 방향으로 카메라 셔터를 눌러도 그림같이 아름다웠다. 모터 보트가 만들어 내는 파도에 동요하는 친구를 안심시키며 한배를 탄 아이들은 한마음으로 중심을 잡아갔다. 꽉 막힌 교실에서 교과서 안에 담긴 세상만 봐야 했던 아이들의 표정은 그야말로 환하게 ‘살아있었다.’
진짜사나이의 미션은 다음날 돌아오는 길에 도전한 짚라인이 정점을 찍었다. 1시간 30분 동안 최대 360m나 되는 아홉 개 전 코스를 중도 낙오자 없이 모두 안전하게 성공했다. 수료증을 받아든 아이들은 두려움을 이겨낸 짜릿한 성취감을 느꼈고 10여 명이 한 팀으로 움직였기 때문에 서로에게 파이팅을 외치며 팀워크를 다질 수 있었다. 모두가 ‘진짜’ ‘멋진’ ‘사나이’들이었다.
엄마 밥상보다 조금 더 맛있는 저녁밥상
마을사람들의 힘으로 운영하는 ‘버드니녹색체험마을’에서의 저녁은 분주한 가운데에서도 마음만은 평온하고 여유로웠다. 숙소 뒷마당이 넓고 경치가 좋아 야외에서 저녁을 먹었으면 했더니 동네 어르신께서 천막을 집에서 가져 오셔서 바닥에 깔아주셨다. 지역에 사시는 고마운 분들이 바비큐 그릴도 옮겨 주고 등도 달아 주셔서 멋진 바비큐장이 마련되었다.
우리의 방문을 귀찮아하지 않으시고 지역에 계신 분들이 관심을 갖고 먹거리들을 푸짐하게 기증해 주셨다. 포도즙과 포도, 참외와 수박, 밭에서 막 따온 풋고추 한 소쿠리와 오이, 물김치 한 통 등 아직은 살아있는 따뜻한 인정을 느낄 수 있었다.
엄마가 지어준 밥보다 맛있는 저녁밥상이 차려졌다. 삼겹살에 쪽갈비가 익어가는 맛있는 시간이었다. 아이들이 직접 쌀도 씻고 채소도 준비했다. 뒷마당으로 상을 들어내고 밥상을 차리고 설거지를 하고 뒷정리를 하는 것까지 모두 아이들의 몫이었다. 친구가 입에 넣어준, 매운 고추를 숨긴 상추쌈을 한 입 가득 물고도 그저 즐겁고 행복했다.
시골에서 함께 보내는 하룻밤은 참 길었다. 새벽이 오도록 잠을 이루지 못했다. 프로그램 팀에서 준비한 영화도 함께 보고, 노래도 부르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몇몇 아이들은 배 깔고 나란히 누워 만화도 보고, 뒷마당 정자에 모기장을 치고 밤하늘 별도 보며 어제와는 다른 하루를 보냈다. 깊은 밤 자격증 없는 열여덟 살의 셰프들이 끓인 30봉지의 라면은 순식간에 바닥을 보일 만큼 달콤했다.
수확의 기쁨에 젖어 흘리는 땀방울
농촌의 아침은 도시보다 이르다. 식전에 오미자 밭으로 가서 오미자도 따고 포도도 땄다. 오미자 밭 옆 오이 밭에도 수확하는 손길들이 바삐 움직이고 있었다. 등줄기에 땀이 줄줄 흘러도 빨갛게 영글어가는 오미자 열매가 그저 신기하고 예쁘기만 했다. 포도 잎사귀 작은 그늘로 따가운 햇살을 피하며 수확의 기쁨에 젖어 흘리는 땀방울을 아이들에게 느껴보게 하고 싶었는데 시기가 적절치 못해 큰 도움이 되지 못한 것 같아 아쉬움이 컸다.
포도 순을 따는 봄철엔 집에 놀고 있는 강아지에게도 일을 시키고 싶을 정도로 바쁠 때가 있다던데 그런 시기에 맞춰 왔더라면 좀더 도움이 되었을 텐데 싶었다. 이번에 진 마음의 빚(?)은 대학 가서 꼭 도움이 필요한 곳에, 되도록이면 농촌의 바쁜 일손을 돕는 일에 꼭 동참하겠다고 아이들과 다짐을 하였다.
일 년 365일 중 하루! 어제와 같은, 내일과 같을 단 하루의 시간! 하지만 누구와 함께 있느냐에 따라 그 시간은 특별한 의미로 오래오래 기억될 수도 있고, 금세 잊힐 수도 있으리라. 어느 해보다 무더웠던 2016년 8월, 그 시간이 오래오래 추억으로 마음 속에 남아 있을 것 같다. 함께 소리 지르며 하나 되던 그 도전의 시간, 직접 지어먹은 저녁밥 한 끼, 찬란하게 눈부신 여름 햇살. 그리고 포도밭의 땀방울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