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이월드가 살아났다

- 2005년 엄마의 일기

by 서향

싸이월드가 살아났다.

그 덕분에 17년 전 사진과 일기도 살아났다.

스물여섯이 된 둘째 채원이와 어린 시절 사진을 보며 한참을 추억에 젖어보았다.


“엄마는 내 이야기 빼면 글이 안됐나?

왜 전부 내 이야기야? 히히”

“그때 엄마의 하루하루는 온통 너뿐이었거든.

감동이지 않니?”

또다시 그만큼의 세월이 흐른 후에

이 글과 사진을 다시 꺼내보게 된다면 어떤 기분이 들까?

어쩌면 아홉 살 적 채원이를 꼭 닮은 귀여운 꼬마 아가씨가

엄마의 아홉 살 시절을 신기한 듯 함께 보게 되진 않을까.



2005년 3월 9일

작년에 빠진 아홉 살 채원이의 앞니는 아직도 날 생각을 않는다.

매일 거울을 보며

"왜 안 나지?"

걱정이 많다. 더구나 이모랑 아빠가

"안 날지도 몰라. 그러면 어른이 돼서도 지금처럼 살아야 해."

괜히 놀려대어 더 걱정이 되는 모양이다.

어린 마음에 상처라도 받을까 싶어 오늘은 책 한 권을 사주었다.

제목은 '이가 빠졌어요.'인데 주인공 아이의 상황이 채원이랑 똑같다.

앞니 하나가 빠졌는데 나질 않는다.

하지만 그 애는 채원이처럼 심각하지 않다.

빠진 앞니 사이로 빨대를 끼우고 주스를 마시기도 하고

옥수수알을 끼워보기도 하며 그 상황 자체를 즐기는 듯하다.

자신의 모습과 꽤 닮은 책 속 그림을 보며 채원이는

그 특유의 웃음을 씨익 웃더니 책 속의 아이처럼 유쾌해졌다.

재미나게 빨대를 빠진 이 사이에 끼우고 깔깔거리기까지 한다.

그래, 빠진 이는 다시 예쁜 새 이가 돋아나 그 자리를 채워줄 거야.
꽁꽁 언 땅을 뚫고 돋아나는 향기로운 봄쑥처럼.
우리의 삶 어딘가, 그리고 마음속 어딘가에 느껴지는 빈 공간도
채원이의 새 이처럼 쑤욱 돋아나 잘 채워질 거야.
그래, 모두 다 잘 될 거야.




2005년 3월 25일

오늘 채원이는 경비실 앞에 자리를 잡았다.

혼자서 장사(?)를 시작했다.

물건값은 “고마워. 잘 쓸게.”

따뜻한 미소와 그 한 마디면 충분하다.

작아서 못 신는 장화, 세 살부터 가지고 놀아 이젠 싫증 나버린 씽씽카,

네 살 되던 해 크리스마스 때 산타에게 선물 받은 장난감 포클레인과 트럭,

그리고 병원놀이와 인형들, 레고 블록까지 다 내다 놓았다.

작은 기타와 실로폰은 기념 촬영이라도 해두어야겠다는 생각에

카메라 가지러 집에 다녀온 사이에

벌써 17층 할머니가 손자 주신다고 골라 가셨다 한다.

“이거 진짜 그냥 가져가도 되니?”

“네, 필요한 거 있으면 가져가세요.”

채원이는 신기할 뿐이다.

하나씩 사라지는 게 아쉽기도 했겠지만 표정은 온종일 즐겁기만 하다.

저녁 7시. 만화영화에 나오는 주인공이 휘두르는 요술봉을 끝으로

장사는 모두 끝이 났다.

거짓말같이 모두 다 팔려버렸다.

채원이의 실로폰은 지금 우리 아파트 어느 집 아이가

신나게 두드리고 있겠지.

기타도 어딘가에서 아름답게 울리고 있을 거야.

채원이의 방 한 구석이 허전해졌지만 그래도 마음은 흐뭇하다.




2005년 4월 18일

채원이의 앞니 하나가 드디어 나왔다.

치과에 가서 사진도 찍어 보고 레이저로 잇몸을 지져 찢어주기까지 하며

그렇게 기다렸는데.

누구나 나는 앞니가 자랑스럽기만 한 채원이.

온종일 거울 보며 히히 거린다.




2005년 7월 28일

책을 읽다 잠이 든 채원.

먹다 지쳐 잠이 드는 날이 더 많기는 하지만

가끔은 이런 날도 있어야지.

정말 달콤한 낮잠이 될 것 같다.

왕자님 만나는 공주 이야기 읽다 잠든 것이면 좋은 텐데,

걸리버 여행기면 어떨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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