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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향 Jun 03. 2022

살지 않은 삶에 대하여

 - <우연한 생>을 읽고



 앤드루 H. 밀러의  <우연한 생> -  지난해 12월에 구입하여 가방 안에 넣어 다니며 뒤적이다가 책상 위에 던져놓기를 몇 달, 이제야 끝장을 봤다!

 ‘우리가 살지 않은 삶에 관하여’라는 부제가 붙은 이 책을 한 문장으로 요약하자면 ‘삶은 수없는 우연으로 결정되고 이어지지만 그 우연은 필연’이라는 것이다.      



 

 살아보지 않은, 아니 살아보지 못한 삶에 대한 생각은 누구나 한번쯤 하며 산다. 그때 내가 다른 결정을 했더라면 내 삶이 어떻게 달라졌을까? 하는. ‘~했더라면’이 들어가는 문장을 완성해 보라고 하면 쉽게 몇 문장 정도는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살지 않은 삶은 중년의 관심사다. … “어쩌다 이곳까지 오게 되었는지 모르겠지만, 어느새 오십이 당신을 노려보고 있다. 고개를 돌려 지나온 세월을 돌아보면 당신이 살 수도 있었을 다른 삶들이라는 유령이 설핏 스쳐 지나간다.”(47쪽)
“모든 사람의 삶에는 수많은 갈림길이 있습니다. 이 갈림길이야말로 제 삶에서 가장 중요한 갈림길이었습니다. 이 갈림길에서 모든 것이 달라졌으니까요.” (123쪽)     



 하지만 우리의 생은 단선적(單線的)이다. OX문제처럼 선택지가 둘이든 5지 선다형 문제처럼 선택지가 많든 간에 어차피 결정은 하나다.      

클리로드 기어츠는 이렇게 말했다. “인류에 관한 가장 중요한 사실은 누구나 수천 개의 삶을 살 수 있는 조건들을 가지고 태어났지만 결국에는 그중 단 한 개의 삶만 살게 된다는 것이다.” (26쪽)      

 


 우리는 가지 못한 길에 대한 환상을 어느 정도 갖고 있고, 어떤 이는 그 길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한 채 살아가기도 한다. 돌이킬 수 없는 일임을 알면서도, 그 당시엔 이것이 최선의 선택이었음을 알면서도 말이다.  

     기분이 살짝만 가라앉아도 내가 상상한 삶들이 지금 이 삶을 부족하다고 느끼게 한다. 살지 않은 삶이 내 세계를 풍성하게 만드는 대신 내 세계를 갉아먹는다. (86쪽)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또 가끔은 “다시 태어나면 이렇게 살지는 않을 거야,”하고 소리쳐 보기도 한다. 이 역시 불가능한 일임을 알면서도 말이다. 또 “난 내가 너무 싫어. 왜 이러고 사는지 모르겠어.” 넋두리도 한다.

 하지만 나는 ‘나’인 걸 어쩌겠나. 감정이 앞서 이성적으로 판단하지 못한 것도 ‘나’이고, 싫은 거 싫다, 좋은 거 좋다 말 못 한 것도 ‘나’인 걸. 내가 포기한 A로 성공한 너를 보며 과거의 그 분기점을 떠올려봐도 내가 ‘너’가 될 수는 없는 것이니.      

나 이외에는 그 누구도 가지고 있지 않은 기억들…그런 경험들이 곧 나다. …그런데 그 경험들은 아주 다를 수 있었고, 그랬다면 나도 지금과는 아주 다른 사람이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순간들은 수도 없이 많다. 그중 하나만 달랐어도 나는 다른 방향으로 굴렀을 것이다. …지금 여기에서의 내 삶은 기막힌 우연이면서도 좀처럼 벗어날 수 없는 삶이다. (18쪽)     
 다른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할 때 나는 진정 무엇을 원하는 걸까? 내가 완벽하게 다른 사람이 되기를 원하는 것일 리는 없다. 그것은 교체이지 변화가 아니다. (80쪽)    



   삶의 수많은 갈림길에서 우린 자의든 타의든 한쪽 길을 걸어왔다. 가끔 어쩌다 이 자리에 서있을까 돌아볼 때도 있지만 결국은 이 길이 나의 길이라 받아들이며 순간순간 최선을 다하며, 때로는 웃고 때로는 울며 지금에 이르렀다.      

“인간으로 살아가는 것은 엄연한 직업이다.”라고 토머스 나겔은 말한다. “그리고 모든 삶이 그 직업에 수십 년 동안 헌신한다.”  
 우리는 이를 너무나 당연하다고 여기기 때문에 아무도 이것이 특별하다거나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는 각자 자신의 삶을 산다. 하루 24시간을 자기 자신으로 살아간다. 그렇지 않으면 달리 무엇을 하겠는가, 다른 사람의 삶을 살겠는가? (253쪽)    



 우리가 걷고 있는 이 길은 어디로 이어질까? 언제까지 이어질까? 우리는 또 수많은 갈림길에서 고민을 하고 선택을 할 것이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을. “이것 이것.” 그렇게 우리의 길은 이어진다.  

필연적인 우연으로.      

우리가 할 수 있는 거라고는 화려한 살을 입힌 현재를 있는 그대로 제대로 보려고 노력하고, 그 현재를 보면서 참여하는 것이다.... 아무것도 결코 완성되지 않는다. 원래의 밑그림은 물감을 뚫고 떠오른다. 물고기는 저녁 호수의 수면 위로 떠오른다. 멍은 피부를 물들이며 올라온다. … 우리는 유심히, 깊숙이 들여다본다. 이름 없는 무언가가 우리의 가슴 안에서 열릴 수 있도록. 우리는 잠시 멈춰 서서 그것을 명확하게 그려내려고 노력한다. 단어들을 반복해서 덧칠하며 손본다. “이것, 이것.” 우리는 말한다. 이것. (28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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