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하듯 글쓰기
20대 초반에 겪게 된 일이다.
신촌에서 캔으로 된 이온 음료를 마시며 걷고 있었다.
정신없는 일상이 잠시 멈춘, 오랜만에 찾아온 여유.
다음 목적지로 이동하기까지 시간이 남아
심심했던 그런 날,
또래로 보이는 여성분이 다가와 말을 걸었다.
"핸드폰 케이스를 만드는 사람인데요, 사진들 중에서 5개만 마음에 드는 걸로 골라주실 수 있으실까요?"
친근하게 다가왔고 기분 좋은 목소리로 정중하게 부탁했고 무엇보다 심심했기에
부탁을 거절하지 않고
5개를 정말 고심하며 열심히 골라주었다.
케이스를 고르며 이런저런 이야기가 오갔고
현재 나의 직업과, 최근 하고 있는 고민에 대해
자연스럽게, 나도 모르게 조금씩 나누고 있었다.
나보다 나이가 많았기에 언니라고 칭하겠다.
언니는 내 심리상태가 조금 울적하게 느껴졌다면서
자신이 심리학 전공생인데, 자신의 전공을 살려서 심리상담을 해주고 싶다고 했다.
그 당시 자가 진단으로 번아웃 증후군과 초기 우울증상이 있다고 생각한 나는
심리학 관련 책, 유튜브, 심리학 라디오를 들으며 여유가 되다면 심리상담을 받고 싶다는 생각을 항상 가지고 있었던 터라
너무 감사한 마음으로 심리 상담을 받겠다고 이야기했고 그 자리에서 번호를 교환한 뒤
이틀 뒤 그 언니를 다시 만나러 가게 된다.
심리학 상담을 기다리며 카페에서 음료를 골라 놓아두고 들뜨는 마음으로 앉아 있었다.
언니가 들어오고 음료를 대접하고 싶은 마음에
카페에서 가장 비싼 음료를 계산하고 앉았다.
언니는 A4용지를 꺼내고 펜 한 자루를 꺼냈다.
종이에 기운 기 한자를 크게 적고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나의 가족 관계
요즘 가장 큰 고민,
나에 관한 이야기를 적고 난 뒤
언니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내 기운이 너무 어두워 보였다고,
혹시 전생을 믿느냐는 질문을 던졌다.
나는 모태 신앙이다 그래서 전생을 믿지 않는다.
나는 전생을 믿지 않는다 이야기했고,
언니는 그냥 알아두면 현재 살아가고 있는 삶에 도움이 될 수 있으니 한번 들어보라고 하며
전생에 어떤 업이 있을지 예상하시며
장군 혹은 기생이지 않았을까 싶다고, 전생에 한을 다 풀어내지 못하고 죽었기 때문에
이번 생이 조금 힘든 거라며 이야기한다.
기대했던 상담과는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기 시작하자 마음이 불편해졌고,
전생이야기에
올바른 정신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아, 도를 아십니까 이구나.
취약한 마음 상태를 이용해 내 이야기를 파고들었고, 현재 나는 지금 이런 것들을 분별할 정신도 잃을 정도로 올바른 정신을 갖고 있지 못했구나.
지금 내 상태가 많이 위험하구나 알아차리게 되었다.
언니에게 정중하게 이야기했다.
언니의 이야기가 불편하게 들린다고,
나는 전생을 믿지 않는 사람이고,
내가 생각한 심리학과는 조금 다르다고
일부로 시간 내주셨을 텐데 죄송하다고
가봐야겠다고 이야기하자.
그래도 계속 앉아있으라고 이야기하던 언니.
죄송하다며 의자에서 일어나자
사람 좋은 미소를 멈추고 싹 굳은 표정으로
그래도 끝까지 들어봐야 하지 않겠냐며 강요했고
나는 완강히 거부했다.
의자에서 일어서며 내게 무서운 말을 남겼다.
니 인생 똑바로 살라고
너는 지금 나를 만나서 여기서 보내주고 이걸로 끝나지만 다른 사람 만났으면 정말 이렇게 안 끝났을 거라고,
무시무시한 이야기를 남기고
그 자리를 떠나 버렸다.
이후 가끔 신촌에서 그 언니를 스쳐 지나가듯 본적이 몇 번 있다.
정말 너무 나도 평범했다.
그런 사람들은 음침하거나 불편한 기운이 풍겨 피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과는 다르게, 그 언니는 기분 좋은 에너지를 가지고 있었기에 정말 사람은 단지 외형으로 판단할 수 없겠다고 생각했다.
그 누구도 그 이야기에 속지 않길, 언니를 마주칠 때마다 섬뜩한 기분에 속으로 기도했다.
마음이 취약할 때
그 마음을 방치해서는 안된다.
그리고 너무 쉽게 내 마음을 잘 알지 못하는 타인에게 내 마음을 이용할 수 있게 허락해서는 안된다.
잘 모르는 타인과 이야기할 때
나의 이야기만 하고 있다고 알아차리는 순간,
촉을 날카롭게 세워 대처할 수 있기를 바란다.
면역력이 약해진 나의 마음을
알아차리고 그 속으로 파고들어 이용해 먹으려고 기회를 노리는 타인으로부터 나를 지킬 수 있어야 한다.
살면서 누가 도를 아십니까?를 당하겠어
하며 코웃음 치던 나는
심리상담을 받기 위해
오랫동안 기다려왔던 데이트를 미뤘고,
3시간 정도 이야기를 나눴으며
한 푼도 허트로 쓰지 않기 위해
아끼고 아꼈던 돈을 내어 비싼 음료를 대접했다.
마음이 약해서 누군가에게 의지하고 싶은 순간이 찾아왔을 때 정신 똑바로 차려서 흐려진 분별을 올바르게 할 수 있길.
마음이 힘들어 치료가 필요할 때는
심리 상담센터를 찾아가 돈을 내고 상담을 받는 것이 안전하다는 것도 이번 경험을 통해서 배울 수 있었다.
검증되지 않은 심리 상담은 경계하라.
도를 아십니까는
나를 아십니까 물으며 친근하게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