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 그르니에『카뮈를 추억하며』,『섬』
"빗속에서 담배를 나눠 필 때 우리는 동지애를 느낀다."
내 퇴임사 첫 문장이었던 카뮈의 말이다. 얼마 전 우연히 내 퇴임사에 관한 후배의 해석을 SNS에서 발견했다. "클리셰를 벗어난 읽을만한 퇴임사였지만, 많은 걸 누린 사람으로 더 많은 의미를 남겼어야 했다."라는 선배에 대한 지적의 글이었다.
그때 왜 카뮈의 문장을 퇴임사 첫 문장으로 떠올렸을까? 퇴임 며칠 전날 밤, 술과 감상에 살짝 젖은 탓이었을까? 나도 모르는 사이, 나를 아는 사람이, 내 글이 해부당하는 현실에 역시 글에 속임과 가식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반성과 함께 이제 그만 쓰기를 관둬야 하나 주춤거리게 된다.
처음 접한 카뮈는 범우사의 문고판 『시지프의 신화』였다. 80년 대의 미래는 흐렸고, 뭘 해야 할지 무엇이 될지 혼란스럽던 시대였다. 그 나이 청년들이 흔히 그랬듯 대충 살아버릴까 하다, 끊임없이 바위를 산 정상에 올리는 시지프스를 생각했고 그러나 이내 군에 입대해 버렸다.
이 글은 카뮈 사후 그의 문학 스승 장 그르니에가 쓴 『카뮈를 회고하며』에 등장한다. 열일곱 살 카뮈는 알제의 철학 교사였던 장 그르니에와 조우했고, 스승은 카뮈의 재능을 알아보고 문학으로 유인했다. 그리고 둘 사이 평생에 오갔던 편지들은 책으로 출간, 고전이 되었다.
카뮈에 대한 장 그르니에의 평가는 '행복하지도 오만하지도 자신감에 넘치지도 않았던 사람'이었다. 그랬기 때문에 카뮈는 큰 결실을 맺어, 1957년 마흔셋의 나이에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다. 당시 거장이었던 앙드레 말로, 버지니아 울프, 베르톨트 브레히트조차 눈길만 주던 시절이었다. 수상 소식을 들은 카뮈는 웃으며 말했다.
"인생의 한 편의 소설이다(La vie est un roman)"
그런 카뮈가 교통사고로 죽은 건 정말 아이러니다. 기차를 타려 했는데 친구가 굳이 자신의 차로 같이 가자고 했던 것이다. 카뮈는 평소 "자동차 사고로 죽는 것보다 더 의미 없는 죽음은 상상할 수 없다."라는 말을 남겼기 때문이다.
카뮈는 장 그르니에의 『섬』의 서문에 "오늘 처음으로 이 섬을 읽어보게 되는 저 낯 모르는 젊은 사람은 뜨거운 마음으로 부러워한다."라는 명문을 남겼고, 스승은 영원한 에트랑제(이방인)로서의 카뮈를 회고했다. 어찌 보면 카뮈의 죽음조차 부조리다. 합리적이지도 불합리하지도 않은 그런 우발적 죽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