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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레스트 하이 Sep 29. 2022

영원한 에트랑제 카뮈를 추억하며!

장 그르니에『카뮈를 추억하며』,『섬』




"빗속에서 담배를 나눠 필 때 우리는 동지애를 느낀다." 


내 퇴임사 첫 문장이었던 카뮈의 말이다. 얼마 전 우연히 내 퇴임사에 관한 후배의 해석을 SNS에서 발견했다. "클리셰를 벗어난 읽을만한 퇴임사였지만, 많은 걸 누린 사람으로 더 많은 의미를 남겼어야 했다."라는 선배에 대한 지적의 글이었다.


그때 왜 카뮈의 문장을 퇴임사 첫 문장으로 떠올렸을까? 퇴임 며칠 전날 밤, 술과 감상에 살짝 젖은 탓이었을까? 나도 모르는 사이, 나를 아는 사람이, 내 글이 해부당하는 현실에 역시 글에 속임과 가식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반성과 함께 이제 그만 쓰기를 관둬야 하나 주춤거리게 된다.


처음 접한 카뮈는 범우사의 문고판 『시지프의 신화』였다. 80년 대의 미래는 흐렸고, 뭘 해야 할지 무엇이 될지 혼란스럽던 시대였다. 그 나이 청년들이 흔히 그랬듯 대충 살아버릴까 하다, 끊임없이 바위를 산 정상에 올리는 시지프스를 생각했고 그러나 이내 군에 입대해 버렸다.  




카뮈의 문학 스승 장 그르니에 의『카뮈를 추억하며』와『섬』




이 글은 카뮈 사후 그의 문학 스승 장 그르니에가 쓴 『카뮈를 회고하며』에 등장한다.  열일곱 살  카뮈는 알제의 철학 교사였던 장 그르니에와 조우했고, 스승은 카뮈의 재능을 알아보고 문학으로 유인했다. 그리고 둘 사이 평생에 오갔던 편지들은 책으로 출간, 고전이 되었다. 


카뮈에 대한 장 그르니에의 평가는 '행복하지도 오만하지도 자신감에 넘치지도 않았던 사람'이었다. 그랬기 때문에 카뮈는 큰 결실을 맺어, 1957년 마흔셋의 나이에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다. 당시 거장이었던 앙드레 말로, 버지니아 울프, 베르톨트 브레히트조차 눈길만 주던 시절이었다. 수상 소식을 들은 카뮈는 웃으며 말했다. 


 "인생의 한 편의 소설이다(La vie est un roman)"


그런 카뮈가 교통사고로 죽은 건 정말 아이러니다. 기차를 타려 했는데 친구가 굳이 자신의 차로 같이 가자고 했던 것이다. 카뮈는 평소 "자동차 사고로 죽는 것보다 더 의미 없는 죽음은 상상할 수 없다."라는 말을 남겼기 때문이다. 


카뮈는 장 그르니에의  『섬』의 서문에 "오늘 처음으로 이 섬을 읽어보게 되는 저 낯 모르는 젊은 사람은 뜨거운 마음으로 부러워한다."라는 명문을 남겼고, 스승은 영원한 에트랑제(이방인)로서의 카뮈를 회고했다. 어찌 보면 카뮈의 죽음조차 부조리다. 합리적이지도 불합리하지도 않은 그런 우발적 죽음!


카뮈가 사랑한 알제리 티파사(왼쪽)과 태어난 도시 알제(오른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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