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에 관한 짧은 필름」과 「헤어질 결심」
폴란드 키에슬로프스키 감독의 영화 「사랑에 관한 짧은 필름」의 대사를 순차적으로 적었다. 19살 소년 토메크와 농염한 연상의 여자 두 사람의 이야기다.
저녁 8시 30분, 토메크는 어김없이 망원경을 통해 건너편 아파트에 사는 매혹적인 여자 마그다를 훔쳐본다. 호기심은 곧 사랑으로 변한다. 토메크의 애착은 주체되지 않는다. 그녀와 하고 싶은 건 없다. 그냥 그녀를 사랑할 뿐이다.
어느 날 어깨를 들먹이며 우는 마그다의 모습은 본 후 사랑을 고백한다. 마그다는 가당치 않다. 마그다는 토메크를 자신의 아파트로 유혹해 "사랑은 서로 손을 문지르고 정액을 배출하는 행위"일뿐이라고 비웃는다. 모욕감을 느낀 토메크는 면도날로 손목을 그었고 병원으로 실려간다.
그제야 실수했음을 안 마그다는 토메크가 돌아오기를 바라며 매일 밤 그의 방을 훔쳐본다. 토메크가 돌아온 날, 마그다는 그의 망원경을 통해 자신의 방을 들여다본다. 가장 슬펐던 그날 토메크가 환영이 다가와 자기를 위로해 줬음을 깨닫는다. 하지만 이제 토메크는 마그다를 더 이상 사랑할 수 없다.
영화 자체가 관음의 발화인데 훔쳐보기가 소재다. 키에슬로프스키 감독은 ‘모세의 십계’를 주제로 10편의 연작 영화를 구상했다. 「사랑에 관한 짧은 필름」 은 ‘간음하지 말라’가 주제다. 그리고 '살인하지 말라' 계명을 주제로 「살인에 관한 짧은 필름」을 만든 후 1996년 유명을 달리했다.
사랑은 상대적이다. 다가가면 물러나고 뒷걸음치면 쫓아온다. 그래서 사랑의 속성은 상처 입기다. 영롱한 진주도 조갯살의 상처가 변한 것이며, 상처 없는 사랑은 사랑이 아니다. 영화도, 소설도, 시가 될 수가 없다. 백미현의 노래 “내 삶의 전부를 눈물로 채워도 아마 난 평생 못 잊을지도 몰라"라는 가사만큼 비장하다.
사랑이란 상처 없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우리가 지나간 사랑을 말하는 이유는 바로 그 상처 때문이다." - 『허연의 책과 지성』에서 재인용
불가리아 태생의 구조주의 철학자 줄리아 크리스테바가 『사랑의 역사』에서 한 말은 바로 이 지점이다. 크리스테바는 “사랑은 대격변”이라고도 했다. 영화를 다시 본 후 박찬욱 감독의 「헤어질 결심」을 떠올렸다. 여기서도 사랑은 사건이었고 대격변이었다.
“당신이 사랑한다고 말할 때 당신의 사랑이 끝났고,
당신의 사랑이 끝났을 때 내 사랑이 시작됐다.”
- 「헤어질 결심」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