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에서도 그레셤의 법칙이 작동한다.
봉선화, 나팔꽃, 개망초, 달맞이꽃, 돼지풀, 미국자리공, 미국쑥부쟁이, 서양금혼초, 서양등골나무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봉선화와 나팔꽃은 흔히 우리 고유의 식물이라고 여기겠지만 아쉽게도 외래식물이다. 토착식물의 대척점에 있는 식물을 외래식물 혹은 귀화식물이라 부른다. 그들은 마차 바퀴에 딸려 왔건 선원의 옷에 묻어왔건 국경을 기준으로 국외에서 국내로 유입된 식물이다. 이 중 여러 세대를 거듭하며 토착화된 식물이 귀화식물이다. 봉선화, 개망초, 나팔꽃, 달맞이꽃 같은 식물은 이름만 들으면 토착종 같지만 귀화식물이다. 사실 식물의 번식에 국경이 어디 있겠냐마는 그리 정해버렸다.
매년 환경부는 ‘생물다양성 보전 및 이용에 관한 법률’에 따라 생태계 교란 식물을 발표하고 있다. 미국자리공, 돼지풀, 미국쑥부쟁이, 서양금혼초, 서양등골나무이 거기에 속한다. 이들은 번식력이 뛰어나, 빠른 속도로 광범위하게 퍼지는 것이 특징으로, 토착종의 성장을 방해함으로써 생태계를 훼손하다. 특히 돼지풀, 단풍잎돼지풀, 서양등골나물 등의 꽃가루는 호흡기 질환이나 알레르기를 일으키거나 농산물의 생장을 방해하고 있다. 그래서 지방자치단체나 환경단체에서 수시로 퇴치 행사를 하고 있다.
가만히 보면 식물 생태계에서도 ‘악화(惡貨)가 양화(良貨)를 밀어내, 결국 악화(惡貨)만 남는’ 이른바 ‘그레셤의 법칙’이 작동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예로 민들레를 보자. 봄부터 여름까지 우리 눈에 띄는 노란 민들레는 거의 ‘서양 민들레’라 보면 된다. 토종민들레의 색은 흰색이나 연한 노란색을 띤다. 진미령의 <하얀 민들레> 노랫말의 “나 어릴 적 철부지로 자랐지만, 민들레 민들레처럼 돌아오지 않아요. 민들레처럼”의 민들레가 토종이다. 비밀은 생식 방식에 있다. 서양민들레는 제꽃가루받이(자가수분)을 통해 백여 개의 씨를 바람에 날림으로써 번식하지만, 토종민들레는 딴꽃가루받이(타가수분)을 한다. 그렇기에 토종민들레는 밀려나 보려면 하늘의 별 따기와 같다. 류시화의 <민들레를 사랑하는 법>을 읽어 보자. 편의상 요약하였다.
어떤 사람이 정원을 가꾸기 시작했다. 온갖 아름다운 씨앗을 심었다. 얼마 후 꽃과 함께 수많은 민들레가 피어났다. 아무리 뽑아도 민들레 씨앗이 날아와 또 피었다. 그는 정원 가꾸기 협회에 전화를 걸어 물었다. 민들레를 제거하는 방법을 알려주었지만 이미 다 시도해 본 것들이었다. 마지막 한 가지 방법을 알려주었다.
‘그렇다면 민들레를 사랑하는 법을 배우세요.’
의외로 회사에서도 ‘그레셤의 법칙’이 작동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블라인드'로 대표되는 익명 게시판을 말함이다. 지금은 흔하지만 십 수년 전 도입할 때 비난, 민원, 고발, 불만 등의 부정적 글들이 많겠지만, 점점 자정(自淨) 작용을 거쳐 건전한 소통의 장으로 자리 잡을 것이라 믿었다. 하지만 지금 블라인드에서는 여전히 부정의 글들이 다수이다. 얼마 전 신도시 땅 투기 사건이 발생했을 때 어느 공기업의 블라인드에서 “꼬우면 이직, 28층이라 안 들림” 같은 조롱의 언어가 난무했던 바로 그 채널이다.
그레셤의 법칙은 승진과 보직 인사에서도 빈번히 일어난다. 인사 담당자의 골머리 중 하나가 보직 이동이다. 왜 일 잘하는 사람만 힘든 부서로 배치하느냐 하는 것이다. “자네는 일을 몰고 다녀.”, “일복 많은 사람 어쩔 수 없어.” 하지만 쉽게 수긍할 수 없다. “왜 나만 고생해야 합니까?”, “저도 가정에 충실하고 싶습니다.” 해봤자 "너 아니면 이 일 할 사람 없다"라고 치켜세우면 도리가 없어진다. 반면 중간 정도만 가고 무탈하게 정년의 기쁨을 누리겠다는 사람들에게는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 경영진의 관심 과제 혹은 단기에 성과를 내야 하는 과제를 성공리에 마무리하려면, 떠오르는 건 검증된 직원밖에 없다.
특히 인사 평정이 문제다. 고과는 단위 조직별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에이스들이 즐비한, 속칭 X고생하는 부서에서 열정을 바쳐 일해봤자 좋은 고과 받기란 어림없다. 다소 느슨한 부서에서 오히려 좋은 점수를 받을 수 있다. 상대평가의 맹점이다. 정성평가의 비중을 높인다고 하지만, 공정이 화두인 요즘 세상에서는 그마저도 쉽지 않다.
과거 공무원 사회 - 민간기업도 마찬가지라 본다 - 에서 "출세하려면 청·비·총(靑秘總)"이란 조어가 유행한 적이 있다. 청와대·(장관)비서실·(인사)총무부를 근무하면 자연히 훈장처럼 챙겼던 확실한 승진과 꽃보직을 비꼰 말이다. 사실 생각해 보라. 이런 보직에 아무나 보낼 순 없다. 탁월한 업무역량, 보고 및 프레젠테이션 기법은 기본이고 추진력, 대외관계, 신뢰 등을 검증할 수밖에 없다. 문제는 이들이 복귀해도 또 끌려간다는데 있다. 잘 생각해보라. 어려울 때 가장 믿을만한 사람이 떠오를 수밖에 없다. “그는 믿을 수 있는 사람"이란 낙인효과가 평생 따라다닌다. 체력과 정신력이 많이 소진되는 조직이고, 을(乙)의 생활과 야근을 밥 먹듯 해야 한다.
반면 그런 이너서클에 속하지 못한 사람의 입장에서는 부럽기도 하지만, 세상에 이런 불공정도 이런 불공정이 따로 없다. 기회를 가진 자들이 또 가져 가버린다. (마태복음 효과를 기억하라.) 최후에 택한 수단은 일은 연봉만큼만 하고, 칼퇴근, 재테크로 관심을 돌리는 것이다. 요즘 같은 시대 승진 빨라봤자 더 빨리 퇴직해야 하고, 연봉의 차이란 것도 그리 큰 영향력은 없다. 매슬로의 자아실현 욕구니 사회적 욕구니 하는 것들이 우습기만 하다. 에이스 직원들의 운명은 고속승진 후 조기퇴직, 조기 번아웃 그리고 스카우트의 셋 중 하나로 귀결된다. 마지막으로 회사에 남을 사람은 누구인가? 비범과 핵심은 온데간데없고, 평범과 주변이 조직을 장악하게 된다.
경제학 용어로 설명하자면 여기저기 힘든 일에만 불려 다니는 직원들은 대체재가 없는 유일재로 봐야 한다. 그 일을 자신만이 할 수 있다고 한다면 대체재가 없으므로 탄력성이 매우 낮아 스카우트당하게 된다. 반면 누구라도 할 수 있는 일에 종사하고 있다면, 탄력성이 높으므로 항상 교체, 이동 심지어 좌천까지 될 수 있다. 자신만의 전문성(expertise)과 역량(competancy)을 확고히 해야 한다. (TV만 켜면 전지현, 이병헌, 유재석, 양세형, 전현무, 신동엽 등은 지겹고 지겹지만 대체재가 없기 때문이다.)
설명을 위해 부득이 인재를 두 가지 유형으로 구분한 건 유감이다. 사실 구분도 쉽지 않고, 유일재만 있는 것은 아니고, 대체재도 있고, 보완재도 있고, 공공재 다 있다. 한 가지 말하고 싶은 것은 스스로 유일재임을 즐기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아 대체재와 보완재를 키우는데 인색하다는 사실이다. ‘롱테일 법칙’을 들어 봤을 것이다. 공룡의 긴 꼬리 부분에 위치한 약 80%의 고만고만한 직원들은 오늘도 묵묵히 주어진 일을 하고 있다. 공룡의 긴 꼬리 덕분에 중심을 잡고 이동하듯, 우리 긴 꼬리로 조직을 지탱하는 버팀목인데 억울하긴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