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호 이타주의 그리고 이기적 이타주의의 승리
겨울 아닌 어느 계절도 좋습니다. 숲 안으로 들어가 하늘을 올려다보면 장관입니다. 나뭇가지와 잎이 무더기를 이루고 있는데, 서로 마주하며 일정한 거리를 두고 있습니다. 마치 나뭇가지로 만들어진 왕관의 모습(樹冠)을 하고 있어 ‘수관기피(樹冠忌避) 현상'이라고 부릅니다. 서로 닿지 않으려는 수줍은 모습에 ‘꼭대기의 수줍음(Crown Shyness)’이란 시적 표현을 하기도 합니다. 과학적으로는 나무의 우듬지가 어떤 경계선 내에서만 자라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같은 수종, 비슷한 나이의 나무가 함께 자랄 때 나타나며, 우리나라에서는 소나무 숲에 가보면 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그 원인은 아직 명확하지 않습니다. 가장 설득력이 있는 가설은 햇빛을 골고루 이용하기 위해서라고 합니다. 병충해를 막기 위해 의도적으로 거리를 둔다는 가설도 있습니다. 나무들끼리의 자연스러운 가지치기 현상이라고도 하고요. 그래도 햇볕을 최대한 활용하기 위한 나무끼리의 상호 배려와 동반 생장에 무게가 쏠립니다. 수관 사이의 틈을 통해 나무 아랫부분까지 햇볕을 더 받을 수 있고, 그럼으로써 서로 생존확률을 높일 수 있다는 것이지요. 타감작용(他感作用, allelopathy)을 말하기도 합니다. 타감작용은 식물이 발산하는 타감물질이 다른 식물의 성장과 생존에 영향을 주는 현상을 말합니다. 소나무는 피톤치드라는 타감물질을 발산시켜 다른 식물의 접근을 막는데, 소나무 아래 풀이 자라지 않는 것을 생각해 보시면 됩니다.
생태계에서 서로를 배려하는, 즉 이타적 행동이 아주 드물지는 않습니다. 흡혈박쥐는 사냥에 실패하여 피가 부족한 동료에게 피를 게워내 나눠줍니다. 침팬지 무리들 사이에서 볼 수 있는 먹거리를 나눈다거나 서로 털을 다듬어 주는 행위 그리고 여왕개미를 보호하기 위한 꿀벌의 희생 같은 것들 말이지요. 리처드 도킨스는 <이기적 유전자>에서 "그런 이타적 행동 자체가 다른 도움을 기대하고 있는 유전자의 이기적 행위"라고 하여 허망하게 만들었습니다.
경제학은 '호모 에코노미쿠스'. 피도 눈물도 없는 이기적 동물로서의 인간을 창조해 냈습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온정, 배려, 자선, 협력, 신뢰와 같은 이타적 감정이 넘칩니다. 게임이론으로 가볼까요? '죄수의 딜레마'에서 보듯이 서로 협력한다면 최선의 전략이 도출되지만, 개인 입장에서는 '배신(이기적)'이 가장 우월한 전략이 됩니다. 이타적 행동을 설명할 수 있는 전략은 없을까요? 학자들은 '이에는 이, 피에는 피(Tif For Tat) 전략'과 '반복 상호성 가설(Reciprocal altruism theory)'을 찾아냈습니다. 쉽게 말하면 이타적 행동이 발생하는 이유는, 상대방이 다음 게임에서 보복할 것이 두려워 - 반대로 말하면 다음 게임에서는 도움을 받을 것을 기대하며 - 이번 게임에는 협조한다는 겁니다. 물론 게임이 무한 반복되어야 한다는 전제가 깔려 있습니다만. 핵심은 이기적 행동은 단기적인 개인의 이익을 추구하는 전략이지만, 이타적 행동은 장기적인 집단 전체의 이익을 추구하는 전략이라는 겁니다.
달리 말하면 사회나 집단의 이익은 궁극적으로 자신의 이익에도 부합한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어디서 본듯한 데자뷔 느낌이 들지 않습니까? 전략가들이 늘 일을 할 때 "회사의 발전(이익)과 개인의 발전(이익)을 동조화시켜라"라고 말하는 바로 그것입니다. 이제 이해했습니다. 게임이론으로 증명되었고요. 회사생활을 하다 보면 나 혼자만 잘 살겠다는 '배신 전략'에서, 너 죽고 나 죽자는 'Tit For Tat 전략'과, 다 같이 잘살자는 '상호 이타주의 전략'까지 모두 쉽게 목격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여기에 있는 것이지요. 어떤 회사건 서로 협력하고, 격려하고, 관심과 칭찬이 넘치는 조직문화를 가진 회사를 만들고, 일하고 싶어 합니다. 하지만 그런 이상적인 조직은 존재할 수 없습니다. 모든 사람에게 이타심을 강요할 수 없다는 말입니다. '상호 이타주의'의 길을 강조하고 또 강조할 수밖에 없습니다.
최근에는 MZ세대의 성향을 반영하듯 강력한 성과주의 풍조와 합리적 개인주의가 조직문화의 밑바탕에 깔려 있습니다. 이타적 행동을 상징해왔던 부서 회식, 집들이, 동반 야근, 도와주기, 배려와 같은 단어들은 폐기 처분해야 할 지경에 이렀습니다. 개인적인 관점에서 보면 배신이 최고의 전략은 맞습니다. 하지만 심리학자 애덤 그랜트는 이타주의도 성공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그의 책 <기브 앤 테이크>에서 다른 사람과 상호작용 -양보하고, 배려하고, 베풀고, 희생하고, 조건 없이 주는 - 이 활발한 사람이 성공 사다리의 꼭대기에 오른다는 사실을 증명합니다. (물론 호구나 호갱이 되지 않도록 경계해야 합니다만)
읽고 나니 왠지 씁쓸하지요. 배려의 방식에는 황금률(黃金律 Golden Rule)과 은율(銀律 Silver Rule), 두 가지가 있습니다. 황금률은 자기가 다른 사람에게 기대하는 대로 행동하는 것을 말합니다. 결혼 축하금으로 10만 원을 받고 싶다면 10만 원을 하는 것이지요. 비슷한 말이지만 은율은 내가 하기 싫은 것을 다른 사람에게도 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저는 군 복무 시절 구타 문화가 너무 싫어 선임이 된 후에도 절대 따르지 않았습니다. 지금 풍조로는 은률이 더 들어맞지 않을까 싶습니다. '팀장의 딜레마'라는 말이 있습니다. 팀장이 되고 보니 팀원들 일하는 모습보고 미칠 것만 같다는. 따지고 보면 얼마 전 자신의 모습 아니었을까요? 조금 더 융통성을 가지고, 부하직원의 고민거리를 들어주고, 입바른 소리를 줄이고, 짜증을 줄여 보는 것이 어떨까요? 또 상사가 기대하는 대로 더 빨리 보고하고, 열심히 하고, 자신 있게 일하는 모습으로 다가서는 것도 좋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