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란지교(芝蘭之交) 난향천리(蘭香千里)

얼굴 두껍고 마음 시커먼 면후심흑(面厚心黑)

by 포레스트 하이

알고 있는 난초 이름은 얼마나 되는지요? 한국 자생란만 해도 석곡, 풍란, 제주 난초, 한란, 탐라란, 보춘화 등 수백 가지가 됩니다. 난초과 식물은 다른 식물에 비해 지구 상에 비교적 늦게 출현했습니다. 살기 좋은 자리를 찾으려고 하니, 아뿔싸 이미 다른 식물들이 웬만한 자리를 다 차지해 버렸습니다. 그 틈새를 찾은 끝에, 결국 좁고 척박한 지역에 정착하게 되었고, 마침내 다양한 변종으로 분화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난초의 종류가 많다고 합니다. 키우기도 여간 어렵지 않습니다. 나무나 바위 표면에 붙어살기도 하고, 땅에 뿌리를 내려 살기도 합니다. 각각 착생란(着生蘭)과 지생란(地生蘭)으로 부릅니다.


동양에서는 오래전부터 난초를 청초함과 향기의 상징으로 칭송해 왔습니다. 그 향기 천 리를 가며(난향천리 蘭香千里), 깊은 숲 속에 있어도 스스로 향기를 뿜는다(난재유림역자향 蘭在幽林亦自香)는 문장이 이를 대신합니다. 금란지교(金蘭之交)는 쇠와 같이 단단하고 난초와 같이 향기로운 우정을 말하지요. 공자가 말씀하신 '지초와 난초처럼 향기로운 관계'를 말하는 지란지교(芝蘭之交)도 자주 인용됩니다. 지초는 약초의 효능이 좋아 술 담그는데 자주 사용되며 특히 진도 홍주의 재료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2천5백 년 전의 난초와 지금의 난초는 같은 식물일까요? 지금 보고 있는 난초는 10세기를 전후하여 재배되기 시작하였고요, 공자가 봤던 난초는 국화과의 향등골나물이라고 합니다. 생태계 교란 식물로 분류된 서양등골나물과 같은 과에 속합니다.


skschtpxm.jpg 동양란, 보춘화, 지초 by 위키디피아


유비가 장유를 처형하자 제갈량은 그가 무슨 죄를 지었냐 묻습니다. 유비는 능청스럽게 대꾸합니다. 유비는 건방지고 자기에게 공손하지 못한 장유를 벼르고 있었거든요.


향기로운 난초라도 문 앞에 피어나면 제거하지 않을 수 없지! 그 난초가 무슨 죄가 있냐고? 그 죄는 있지 말아야 할 곳에 있는 것이지.


유비와 같이 얼굴이 두꺼운 사람을 철면피라고도 합니다만, 달리는 면후심흑(面厚心黑) - 얼굴이 두껍고 마음은 검다 – 하다고 합니다. 19세기 말 청나라의 이종오는 영웅이 되기를 소망하며 공부하던 어느 날 큰 깨달음을 얻습니다. “그렇군! 옛날의 영웅호걸이란 다름 아니라 얼굴이 두껍고 뱃속이 시커먼 자들뿐이로군”. 후흑학(厚黑學)이 창시되는 순간이지요. 「관직을 구하는 여섯 가지 요령」, 「공무원의 여섯 가지 지침」 같은 글을 읽다 보면 저절로 헛웃음이 새어 나옵니다. 이종오는 유비를 후흑학의 비조로 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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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은 향기로, 사람은 욕심으로 목숨을 재촉한다


냉정하게 주위를 돌아보십시오. 출세한 사람, 출세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던 사람, 출세할 깜냥은 아닌데 어느새 그 길을 성큼 밟고 있는 사람들의 행적에는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후흑이 작용하고 있습니다. 바로 머리를 스치는 정치인도 있을 것이고, 회사에서도 "음, 그럴 수도 있겠군" 하는 사람이 떠오를 수도 있을 겁니다. 무협 소설의 가장 빈번한 대화가 "강호에서 오래 목숨을 부지하려면 능력의 삼 할을 숨기라"는 말입니다. 윗사람보다 더 똑똑할지도 모른다는 엄청난 비밀(?)이 노출되는 순간을 절대 피해야 합니다. 면전에서야 쏠쏠한 칭찬은 듣겠지만, 돌아서 ‘건방진 친구’로 각인되어 버릴지도 모릅니다. 나중에 내칠 꼬투리라도 잡히면 읍참마속(泣斬馬謖) 고사의 희생양이 될지도요!


“꽃은 향기로 제 목숨을 재촉하지만, 인간은 욕심으로 목숨을 재촉한다”라는 말은 그런 겁니다. 때로는 적절한 아부도 나쁘지 않습니다. 아부하다 처형당했거나 내침을 당한 사람 이야기 들어보셨습니까? 있다면 아부가 아니라 험담이나 모략이었겠지요. '있어서는 안 될 자리에서 자라고 있는 난초'가 되지 않도록 늘 좌고우면 하시기 바랍니다. 자신 만의 향내를 천천히 멀리까지 뿜어 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오해는 마시고, 아부는 회사 생활의 양념이고 윤활유라 여기세요. 특히 남자에게 윗사람의 칭찬과 인정은 마약과도 같습니다. 스스로를 낮추는 슬라이드 구질의 아부 사례 하나 들면서 마무리합니다.


베르사유 궁전 건축가 망사르(Mansart)는 궁정 설계도에 의도적으로 사소한 실수를 해 놓았습니다. 루이 14세가 지적하자 감탄하면서 “전혀 몰랐는데 역시 대단하십니다. 폐하 앞에만 서면 학생이 된 기분이다”라고 했습니다. 물론 루이 14세는 매우 뿌듯함을 느꼈고, 망사르를 건축 책임자로 발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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