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흘 붉은 꽃은 없다'의 해석

겸손 그리고 휴브리스 혹은 더닝-크루거 효과

by 포레스트 하이
앵도는 붉은빛이라야 좋고, 금귤은 황금빛이라야 좋다. 매실은 푸른 것이 최고요, 포도는 자줏빛이 으뜸이다. 이것들은 열매가 꽃보다 더 고운 것들이다.


청나라 강희제 때의 주석수(朱錫綏)가 쓴 자연에 관한 잠언집 <유몽속영(幽夢續影)>의 글입니다. 정민 교수의 <마음을 비우는 지혜>에 있던 문장의 일부를 필사해 뒀지요. 열매 색깔을 예로 들고 있습니다만, 꽃 색깔로 넘어가면 다양하다 못해 오묘할 지경입니다.


복수초, 생강나무, 산수유, 개나리, 유채꽃의 두루 통하는 점은 무엇일까요? 봄에 노란색 꽃을 피운다가 맞겠지요. <재미있어서 밤새 읽는 식물학 이야기>에서는 기온이 낮은 이른 봄, 벌과 나비가 기지개를 켜기도 전에 활동하는 등에 - 벌과 유사한 곤충 - 가 좋아하는 색이라 이들 식물들만의 꽃가루 번식 전략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과학은 꽃의 색깔을 식물이 가진 세 가지 색소 물질로 분석합니다. 광합성을 위한 녹색 계통의 ‘엽록소’, 노란색과 주황색의 특징으로 하는 '카로티노이드', 붉은색과 푸른색을 내는 ’안토시아닌‘이 그것이지요. 이들 색소 배합을 통해 식물은 천변만화한 색상을 내는 것이지요. 우리나라에 피는 꽃 약 3000종의 색을 분석해 보니, 흰색 32%, 빨간색 24% 그리고 노란색 21%의 순서라고 합니다. 흰색이 제일 많다네요.


배롱나무.jpg 안동 병산서원(왼쪽)과 순천 송광사(오른쪽)의 배롱나무


옛사람의 눈에는 유독 붉은 꽃이 많이 띄었나 봅니다. 다. ‘열흘 붉은 꽃 없다’라는 말도 있지요. 배롱나무는 붉은 꽃의 대표 주자입니다. 시인 백낙천의 눈에는 자줏빛으로 보였던지 자미화(紫微花)라고 노래했습니다. 배롱나무의 본디 이름은 목백일홍입니다. 백 일이란 기간을 맞춰 피지는 않지만, 7월에서 10월 사이 곳곳에서 볼 수 있습니다. 사실 배롱나무의 꽃 하나하나가 오랫동안 피어있는 것은 아닙니다. 연속해서 피었다 지기 때문에, 다시 말하면 무한화서(無限花序)로 인한 일종의 착시현상 때문이지요. 한편, 배롱나무는 해마다 껍질을 벗겨 교체하는데, 매끈하고 미끄럽습니다. 매년 껍질을 갈듯 욕망을 벗어던지고 용맹 정진하라는 뜻에서 사찰이나 서원에 많이 심었습니다.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 세불십년장(勢不十年長)! 권세와 부귀영화는 오래가지 않으니 늘 겸손하라는 경구입니다. 천년만년 임원 지위, 부장 자리 있을 줄 알았는데, 어느 순간 고개 들면 “어! 어디 갔지’ 하는 경험을 했을 겁니다. 누구나 언젠가는 회사를 떠나게 됩니다. 퇴직 후 절대 만나고 싶지 않은 상사도 허다합니다. 어쩔 수 없이 얼굴을 맞닥뜨려도, 떠나 남이 된 지금, 굳이 그럴 필요가 없어 데면데면하게 되지요. 반면 겸손한 내공을 보유한 – 역량까지 겸비한 사람들 – 사람을 만나면 언제건 살가운 마음이 가득합니다.


승진하면 달라지는 사람들


승진하고서 혹은 힘 있는 자리에 가면 유독 달라지는 사람이 있습니다. “저 사람이 그런 사람이었어!”라고 안타까운 사연들은 절대 먼 나라 이야기가 아니지요. 왜 그럴까요? 말 만들기 좋아하는 학자들은 ‘자기고양 편견(self-serving bias)’이라고 이름을 붙였습니다. 쉽게 말해서 ‘내가 잘나 내가 다 했다’ 겁니다. 성과와 성공의 뒤에는 늘 그 사람이 있었다니 말입니다.


‘더닝-크루거 효과(Dunning-Kruger effect)’도 거의 비슷한 내용입니다. 적당히 아는 사람은 자신의 능력을 과대평가하는 반면, 적당히 유능한 사람은 자신의 능력을 과소평가하는 경향을 보인다는 요지입니다. 겸손인지 교만인지 헷갈립니다.


자주 듣는 ‘휴브리스(Hubris)’는 어떤가요? 휴브리스는 영국의 역사학자 토인비가 만든 역사해석 용어로, 토인비는 “과거에 성공한 사람은 자신의 능력과 방법을 우상화함으로써 오류에 빠지게 된다”라고 했습니다. 고속 승진을 거듭한 사람이 자신이 했던 과거의 방식대로 일을 처리하다 실패를 겪는 오류를 경계하기 위해 자주 인용됩니다.


회사를 떠나고 나니 ‘좀 더 겸손했을걸’ 하는 자책을 자주 하게 됩니다. 스스로 추켜올리는 사람도 있고, 낮추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데 현대 직장에서 겸손은 작동하기 쉽지 않습니다. 모두가 자신을 알리지 못해 안달하는 시대에, 겸손은 자신감의 결여나 가식, 비굴한 모습으로 비칠 수도 있기 때문이지요. 제가 말하는 겸손은 배려와 자신감이 적당이 버무려진 태도를 말합니다. 겸손할 겸(謙)을 파자하면 말씀 언(言)과 겸할 겸(兼)이 조합된 글자인데, 겸(兼)은 ‘더불다, 아우르다, 포용하다’라는 의미가 있다니 포용력도 있어야겠지요.


겸손은 리더의 중요한 덕목 중 하나입니다. 꼭지 떨어지고 후회해도 소용없고, 권한도, 권력도, 재산도 조심스레 잘 휘둘러야 그 가치가 빛나겠지요. 너무 겸손해도 달리 비칠 수 있으니 적당한 자존감과 자신감을 양수겸장으로 장착하기 바랍니다. 그래서 후배들 만나면 ‘있을 때 잘하라'라고 합니다. 회사는 동물의 세계와 같아 누가 강하고 약한지, 보답할 사람인지 얌체인지 다 알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골다 메이어 총리의 해학적인 말은 음미해볼 만합니다.


그렇게 겸손해하지 마십시오. 당신은 그 정도로 대단하지 않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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