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과 우연에 기대는 식물의 씨앗들

마키아벨리의 행운의 여신과 운오기오(運五技五)

by 포레스트 하이

민들레는 번식력이 무척 강하죠. 류시화가 쓴 <민들레를 사랑하는 법>을 읽어 보시면 결국 사랑하는 것으로 민들레와 화해합니다. 한 번에 적게는 10여 개, 많게는 200여 개의 씨앗을 바람에 날려 보냅니다. 봄날 소나무 송홧가루로 고생했던 기억은 다들 있으시죠. 애써 수정에 성공해 바람개비 씨앗을 만들어 엄마 품을 떠납니다. 민들레나 소나무 씨앗이 적지에 착지하여 뿌리를 내리고 싹을 틔우는 비율은 얼마나 될까요? 만약 모든 씨앗이 싹을 틔운다면 지금 지구는 민들레와 소나무로 뒤덮여 버렸을 겁니다.


신갈나무, 떡갈나무와 같은 참나무는 암수한그루 식물입니다. 4~5월에 원시 형태의 꽃을 피우는데 그 결실이 도토리지요. 건강한 참나무 한그루는 수천에서 수만 개의 도토리를 맺는다고 합니다. 도토리는 움직일 수 없으므로 다람쥐와 어치를 활용하여 수 킬로, 수십 킬로 멀리까지 번식을 도모합니다. 그런데 다람쥐는 겨울을 대비하여 도토리를 땅속 여기저기 보관해 두는데 95%를 기억하지 못한다고 합니다. 반면 어치는 숨겨놓은 도토리 중 75% 정도를 찾아낼 정도로 기억력이 탁월하다고 합니다. 다람쥐와 어치의 건망증이 참나무 번식의 일등공신입니다. 이처럼 생명의 세계에서 살아남으려면 운이 좋아야 합니다.


참나무 꽃과 도토리를 문 어치 ㅣ 위키백과


조직에서 운은 어떤 느낌으로 다가올까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성공은 그 사람의 노력과 실력보다 운과 편법이 작용했다고 믿고 있습니다. 오죽하면 운칠기삼(運七技三), 나아가 운칠복삼(運七福三)이라는 말이 클리셰가 되었겠습니까? 여러분의 주위는 어떤가요. 솔직히 높은 자리 오른 사람들 보면 운빨(?)로 치부하는 경우가 많지요. 가고 싶다고 오르고 싶다고 되는 것은 아니며, ‘어쩌다 보니’ 그리 되어 버렸다는 말입니다. 100m를 전력으로 달리다 80~90m 지점에서 주저앉는 사람 너무 많이 봤지 않습니까? 부하직원이 사고를 치거나, 느닷없이 구설에 오르거나, 밀어주던 상사가 바뀌거나, 갑자기 상사에게 찍히는 순간. 뒤따라 오던 사람이 슬쩍 그 자리를 꿰찹니다.


인간사는 얼마나 많은 운에 지배되는가, 그리고 인간은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


마키아벨리의 <군주론> 25장의 소제목입니다. 마키아벨리도 운칠기삼의 힘을 믿었던 것 같습니다. 그는 리더의 조건으로 ‘포루투나(Fortuna 행운)’와 ‘비르투(Virtu 덕, 역량)’를 들었습니다. 인간사의 반 이상을 운명의 여신이 지배하며, 인간의 역량으로 해결할 수 있는 일은 적다고 말합니다. 그렇지만 일의 성사는 하늘에 맡기되 노력을 통해 지배해야 한다고 합니다.


‘평균 회귀의 법칙’을 들어 보셨는지요. 뛰어난 성과를 보인 사람이 그 다음번엔 그보다 못한 성과를 보이고, 성과가 나빴던 사람이 다음엔 그보다는 나은 성과를 보이는 경향입니다. 성과 평가할 때 한번 더 기회를 주는 논리가 되기도 합니다. 통계적으로도 특별히 운이 좋거나 특별히 운이 나쁜 경우는 그리 오래 지속되지 않으며, 다음에는 반대의 결과가 나올 확률이 높겠지요. 새옹지마(塞翁之馬)의 다른 해석입니다.


군주론.jpg 마키아벨리와 군주론 원본 l pixabay


성공이 어디 100% 운으로만 되겠습니까? 이럴 때도 있고 저럴 때도 있지요. 하지만 분명 어느 정도의 비중은 작동하겠지요. 마키아벨리는 운이 50% 이상이지만, 나머지를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을 다 하고 난 후 하늘의 명을 기다리라는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과 정확히 일치하는 지점입니다. 동양이나 서양이나 진리에 이르는 결은 동일하네요.


성공의 밑바닥에는 여지없이 누적된 역량과 실력이 깔려있습니다. 실력이 없으며 행운이 눈앞에 다가와도 기회인지도 모르며, 행운인 줄 알아채더라도 잡을 수 없습니다. 요즘 MZ세대들은 요행에 많이 기대는 경향이 있습니다. 기성세대의 성공도 운과 좋았던 시절에 태어난 덕분이라 여깁니다. 벼락 거지, 빚투, 영끌, 포모(fear of missing out) 증후군 등의 신조어들은 그런 배경에서 나왔을 겁니다. MZ세대를 색안경을 투과하여 볼 필요는 없습니다. 그들도 나름 최선을 다하고 있을 겁니다. 따뜻한 격려의 눈으로 잘 지켜보시지요. 500년 전 마키아벨리도 청년 세대의 힘을 믿으라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운명은 여신이기에 언제나 젊은이의 편에 끌립니다. 젊은이는 덜 신중하고 열렬하며 대담하게 그녀를 제어해 나가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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