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는 스스로 성장을 멈춘다

떠나야 할 때를 아는 사람의 뒷모습

by 포레스트 하이

멈춤의 최고수, 나무!


끝없이 성장할 것 같은 나무도 어느 순간 성장을 멈춘다. 죽은 것인가 하면 그렇지 않다. 나무는 높이성장과 부피성장을 동시에 하는데, 생물학적으로 부피성장을 멈추어야 비로소 죽은 것이다. 나무가 스스로 성장을 멈추는 행위는 생존전략에 따른 것이다. 멈추기에 딱 적절한 타이밍이라 판단했기 때문이다. 한편, 1년을 주기로 나무의 자라는 모습을 보면 철저히 지구의 공전에 맞추고 있다. 봄이 되면 잠에서 깨어나 활력을 찾고, 여름이면 성장은 극치에 다다른다. 가을이면 결실의 산물로 열매를 성숙시키고 남은 양분을 뿌리와 줄기로 이동시키며, 겨울이 되면 깊고 긴 휴면의 시간을 보낸다. 꼭 필요한 만큼의 영양분만 취득하고, 다음 해를 준비하기 위해 성장을 멈추는 지혜는 신비롭기 하다.


직장생활에서도 멈춤을 고민케 하는 두 가지 상황이 있다. 하나는 승진과 보직이 못마땅한 경우이고, 다른 하나는 반드시 다가오는 퇴직이다. 퇴직 혹은 은퇴는 직장인들에게 가장 민감한 지점이다. 알랭 드 보통은 “가장 큰 불안은 지위의 상실 그리고 남들의 시선에서 오며, 비통한 마음을 가지기 쉽다.”라고 그의 책 <불안>의 서문에서 날카롭게 지적했다. 경험하지 못한 길을 가야 하는 두려움은 피하려고 해서 피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아무리 정신승리를 외쳐봤자 현실도피일 뿐이다. 그리 유용하지 못한 감정이다. 변하지 않는 원칙은 누구도 나의 일에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사실이다. 나도 당신도 그렇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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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직 6개월 전부터 준비해 본 일들


얼마 전 33년을 근무를 마지막으로 퇴임식을 가졌다. "선배님, 꼭 연락 주십시오.", "우리 끝까지 가는 겁니다.", "존경했습니다." 등의 말로 위로와 축하를 받았지만 허언신공임을 이미 알고 있었다. 사실 축하를 하건 위로를 하건 그것은 자기 마음에 달린 것 같다. 퇴직을 즐겁게 기다리는 사람은 축하의 인사를 전하고, 두려운 사람은 어정쩡한 위로의 말을 건넨다. 6개월 전에 이미 퇴직을 결심한 터라 충분하진 않았지만 어느 정도 준비할 시간은 있었다. 이력서를 헤드 헌트 회사에 보내 상담도 해봤고, 지인들에게 적절한 자리를 부탁하기도 했다. 예상했던 대로 연락은 없다. 어쨌거나 후배들이 자주 물어보곤 했다.


”선배님, 퇴직하면 뭐 하실 겁니까? 저희는 무슨 준비 해야 합니까? 건강보험은, 실업급여는, 퇴직연금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


나는 이렇게 말했다. 자기 충족적 예언을 기대하기도 했고 지상담병(紙上談兵)이라 흉볼 수도 있겠지만.


“유언장 쓰듯 밀 퇴직 인사를 써봐라. 직장생활 주마등같이 흐르고, 회사에 감사한 마음 간절할 거다.”

“혼자 보낼 수 있는 일 반드시 찾아라. 나는 숲해설가 자격증을 땄고, 클래식 기타 열 곡 완성하여 연말 가족 연주회를 할 거다. 방송통신대 편입하여 대중문화를 공부할 생각이다.”

“퇴직은 마땅히 축하를 받아야 한다. 그동안 해 보지 못했던 것들을 할 것이다. 아름다운 일탈이 기대되고 가슴이 두근댄다.”

“토익 점수도 따놓았고, 여러분들과 나눴던 글과 편지 모으고 있다. 감정의 흔적이 아까워 자서전 쓸 거다.”

“낭비만 하지 않는다면 국민연금, 퇴직연금이면 생활비는 된다. ‘다 쓰고 죽어라.’(die broke)’라는 원칙만 지킬 수 있다면 하고 싶은 일 다 할 수 있다.”


지족상족 지지상지


‘지지지지(知止知止)’라는 말이 회자된 적이 있다. 언제라도 물러날 수 있음을 우회적으로 표명한 글이다. 도덕경이 원전이라고 하지만, 내게는 <명심보감> 안분(安分) 편의 글이 더 쉽게 다가온다.

지족상족(知足常足) 종신불욕(終身不辱)

지지상지(知止常止) 종신무치(終身無恥)


만족함을 알고 늘 만족한 마음으로 살면 평생 욕됨이 없을 것이고,

멈출 때를 알고 적절하게 멈추면 부끄러움이 없을 것이다.


아름다운 꽃도 언젠가는 떨어지게 마련이다. 다만 언제 어떤 모습으로 떨어질 것인가가 관건이다. 사람은 그것을 결정할 수 있다. 멈출 바로 '그' 타이밍을 잘 포착해야 한다. 이형기 시인은 <낙화>에서,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라고 노래하지 않았던가. 나무는 해마다 줄기 속에 깊은 곳에 동심원 하나를 훈장과 같이 획득한다. 나이테 혹은 연륜이라고 부르는 그것을. 나무가 왜 키와 몸을 더 키울 수 있음에도 스스로 생장을 멈추는지 그 지혜와 연륜을 본받으면 좋겠다. 지인의 아버님께서 퇴직 좌우명으로 글 하나를 보내 주셨다. 지족상족(知足常足) 지지상지(知止常止)! 표구하여 벽에 걸어 놓았다. 제대로 마음에 새긴다면 마음의 병 얻으려고 해도 힘들 것 같다.


1. 자기 충족적 예언(self-fufilng prophesy): 사회심리학 용어로 자기실현적 예언이라고도 한다. 어떤 일이 실현될 것이라는 기대를 가지고 나면, 지식을 활용하여 보다 적극 행동하게 되며 그 결과로 당초 기대한 목표가 이루어지는 현상을 말한다.

2. 나무에게는 풀에는 없는 '리그닌'이라는 성장 호르몬이 있다. 리그닌이 나무의 부피생장을 촉진하고, 나무껍질을 만든다.

3. 나무는 봄에서 여름까지 활발히 생장하고, 겨울에는 생장을 줄인다. 그리고 겨울에는 멈춘다. 봄에서 여름까지 생장한 부분의 색깔은 엷고 넓으며 (심재), 가을에 생장한 부분은 진하고 가늘다(변재). 반복된 것이 나이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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