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 <무림일기>와 영화 <동사서독>
무협의 시대는 70년대와 80년 중반까지 계속된다. 나 또한, 70년대 중학생 시절부터 70년대 와룡생, 고룡의 작품에 탐닉하며 무협의 세계에 빠졌고, 80년대 암울한 대학 시절까지 계속되었다. 당시 재미와 시간 보내기로만 생각했었는데, 지금 와서 돌아보면 일종의 허무주의와 대리만족에 빠졌던 것 같다. 특이한 현상은 ‘한국적 창작 무협’ - 일본에는 전혀 표출되지 않았던 - 이 등장했다는 사실이다. 비록 대만과 홍콩 무협소설의 번역에서 발원하긴 했지만, 우리나라 작가들이 직접 창작에 참여했다.
1980년대 새로운 스타일의 작품 풍조는 나중 ‘무협 1세대’ 혹은 ‘구무협의 시대’로 일컬어지게 된다. 대표적으로 서효원의『대자객교』, 야설록의 『표향옥상』, 검궁인의 『십전서생』, 금강의 『금검경혼』 그리고 사마달의 『절대무존』등 중국식 필명을 딴 젊은 작가들이 등장했다. 그러나 이러한 황금기는 오래 지속되지 못했다. 출판시장의 한계, 신진 작가의 등단 제약, 남작(濫作)으로 인한 독창성의 상실로 곧 위기에 처한다.
무협의 내용 또한 천편일률적인 스토리 전개, 황당무계한 기연의 연속, 음약과 최음제가 난무하는 성행위를 묘사한 노루표 – 포르노를 거꾸로 발음 - 무협지로 비난받았다. 결국 독자들은 무협을 떠났다. (물론 나도 입대를 계기로 떠났지만) 군사정권 하의 허무주의도 작동했고, '무림파천황 필화' 사건 또한 큰 몫을 했다. 박영창의 『무림파천황』 내용 중 ‘강북 무림’이 ‘강남 무림’에 대해 남진을 주장한 대목이 북한의 남침을 연상시킨다는 이유로 작가가 옥고를 치른 사건이다.
무협의 바람은 1980년대 후반까지 계속되었지만, B급 삼류 문화로서 저속한 무협지라는 시선을 넘어, 장르문학이나 경계 문학 혹은 하위문화(서브 컬처)의 명칭을 얻기까지는 인고의 시간이 필요했다. 물론 순(純) 문학의 언저리에 발을 걸친 사례가 있다. 군사정권이 물러간 1989년 영화감독 유하 – 당시 시인으로 데뷔 – 는 시집 『무림일기』를 발간한다. 군사정권이 주도하던 정치판의 모습을 무협의 공간으로 비판한 것이다.
故 김현 선생은 이 시집의 발문에서 “그는 키치 중독자이며, 키치 반성자이다. 그 이중의 역할이 그의 시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는다. 그 활력의 이름은 건강함이다.”라고 적고 있다. 무협소설의 순기능과 역기능을 말하고 있음이다. 키치는 모방이고 베끼기이고 고급문화의 흉내내기임을 감안하면 그렇기도 하다. 「무림일기」의 한편을 보자.
武歷 18년에서 20년 사이-무림일기 1
경천동지할 무공으로 중원을 휩쓸고 우뚝 무림왕국을 세웠던
무림패왕 천마대제 만박이 주지육림에 빠져 온갖 영화를 누리다
무림의 안위를 위해 창설했던 정보기관 동창 서열 제이위
낙성천마 금규에게 불의의 일장을 맞고 척살되자
무림계는 난세 천하를 휘어잡으려는 군웅들이 어지러이 할거하기 시작했다
역사도 그렇지만, 모든 사조나 흐름은 정과 반과 합의 과정을 걷는다. 잔잔한 바다와 같았던 무협소설 시장에 쓰나미가 밀어닥친다. 첫 충격파는 1986년 김용의 소설 『영웅문』의 대성공이었다. (저작권료는 없었다고 한다.) 위대한 대협의 시대의 부활을 꿈꾼다는 부제로 『사조영웅전』, 『신조협려』, 『의천도룡기』 3부작 시리즈가 발간되었다.
영문은 3부작은 곽정과 황용, 양과와 소용녀, 장무기와 조민의 러브라인, 동사와 서독, 남제와 북개 등 수많은 군상의 활약에 무협에 문외한 여성들까지 영웅문 읽기에 동참하였다. 2000년대의 글이지만, 박정대 시인은 왕가위 감독의 영화 <동사서독>을 본 후 시(詩)「장만옥」을 썼고, 문학평론가 고려대 조재룡 교수는 「장만옥」에 대해 다음과 같은 여협(女俠)의 시대를 평론했다. 두고두고 음미하는 글이기도 하고, 영화를 다섯 번 이상 본 터라 모든 주인공이 파노라마와도 같이 흐른다.
영화 ‘동사서독’에서 장만옥은 최고였다. ‘신조협려’는 유역비, ‘소오강호’는 허청 때문에 눈을 떼지 못했다. 여협에 홀딱 반한 것이다. 황용은 지혜가 출중해 미련한 곽정을 영웅으로 만들었고 소용녀는 좌우호박기술을 구사할 만큼 단순했지만 고고함을 잃지 않았다. 홀로 전진파를 박살 내는 장면에서 눈물 흘리지 않을 수 없었다. …… 이막수는 복수의 화신이었고 남봉황은 표독했지만 정의를 알았다. 재주가 많았던 조민과 자상했던 소소 사이에서 장무기는 헛갈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영웅문의 여파는 김용의 다른 작품뿐 아니라 고룡의 『다정검객무정검(비도탈명)』, 『절대쌍교』로, 와룡생의 『군협지(옥차맹)』, 양우생의 『여도옥나찰(백발마녀전)』등 중국, 대만 작가들의 작품도 덩달아 인기를 누렸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