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화양연화의 맥커핀, 무협소설

양조위는 왜 무협소설을 쓰기 시작했을까?

by 포레스트 하이
참고한 서적은 아래와 같습니다. 『무협작가를 위한 무협세계 구축 대전』(량서우중), 『무협소설의 문화적 의미』(전형준), 『한국 무협소설의 작가와 작품』(전형준), 『웹소설 작가를 위한 장르 가이드 6권 무협』(좌백, 진산), 『태극문이 있었다』(태극문20주년 기념위원회), 『웹소설 큐레이션: 판타지·무협 편』(이융희 등), 『도전 웹소설 쓰기』 (이대성 등),『서브 컬쳐, 은하계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가이드』(손지상) '무협소설' (나무위키) 등


왕가위 감독의 빛나는 영화 – 영국 BBC 방송의 21세기 100대 영화 중 2위에 오른 - <화양연화(花樣年華)>의 배경은 1962년 홍콩이다. 챠우(양조위)와 수리첸(장만옥)을 이어주는 맥거핀으로 무협소설이 등장한다. 신문기자였던 챠우는 왜, 하필이면 무협소설 쓰기를 부업으로 했을까? 무협소설의 역사를 봐야만 한다. <화양연화>의 배경이었던 1960년대는 이른바 ‘신파무협(新派武俠)’의 태동기였다. 그렇다면 신파무협에 대응하는 ‘구파무협(舊派武俠)’은 또 무엇인가?

구파무협은 1919년~1949년까지 중국 대륙에서 성행한 무협소설의 어떤 경향을 말한다. 물론 그 이전인 당나라와 명나라 시절에도 비슷한 소설은 있었다. 영화로도 만들어졌던 『규염객전』, 『자객 섭은낭』, 『수호전』, 『봉신연의』와 같은 작품들이다. 홍콩의 량서우중이 쓴『무협작가를 위한 무협세계 구축 대전』에 의하면 무협소설이라는 명칭은 1915년 린수(林紓)가 그의 단편소설에서 처음 사용했다고 전한다.

영화 <화양연화>에서 무협소설을 쓰는 챠우(양조위)


이 시기의 대표 작품으로는 『강호기협전』, 『촉산검협전』, 『십이금전표』, 『와호장룡』이 잘 알려져 있다. 하지만 1951년 출범한 중국 사회주의 정권은 인민의 사상을 좀먹는다는 교조주의적 생각에서 무협소설의 출판을 전면 금지한다. 이에 따라 구파 무협은 종언을 고할 수밖에 없었다.


역사는 정-반-합으로 발전하는 법이다. 1949년 이후 홍콩과 대만에서는 새로운 조류의 무협소설이 탄생한다. 귀에 익은 작가 양우생(梁羽生)이 『용호투경화』, 『운행옥궁연』 등을 발표하여 큰 성공을 거두게 된다. 이때 홍콩 언론 「신만보(新晩報)」는 양우생을 ‘신파무협의 창시자'라고 불렀는데, 그것이 신파무협의 기원이 되었다.

그리고 1950년대 후반, 나중 신필로 불리게 될 김용(金鏞)이 『서검은구록』에 이어 『벽혈검』, 『사조영웅전』을 발표하면서 무협의 열기는 최고조에 달하게 된다. 김용은 장자(莊子)에서는 북명신공(北冥神功)을, 주역에서 항룡유회(亢龍有悔)와 같은 초식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이들을 필두로 무협 소설의 르네상스 시대가 조성되었고, 1960년대에 들어서면 대만의 와룡생, 제갈청운, 사마령 등이 무협의 백가쟁명, 화양연화의 시대를 열었다. 바야흐로 “무협 소설은 어른들의 동화”가 되어 버렸다.


영화 <화양연화>의 배경이 1960년대 초반이니 양조위가 무협소설을 쓴다는 플롯은 이런 배경이 아니었을까 싶다. 신파 무협은 홍콩의 호금전과 장철 감독의 무협영화 – 용문객잔, 대취협, 독비도, 금연자 등 – 와의 결합으로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하게 된다. 참고로 1985년 이후 무협 영화는 무협의 현대물이라는 <영웅본색> 등 홍콩 누아르의 출현으로 서서히 퇴조의 길을 걷는다. 영화 <영웅본색>에서 주윤발이 “강호의 도의가 땅에 떨어졌다(江湖道義已經不存在了)”라고 한 대목을 상기해 보라.

그렇다면 무협소설은 왜 읽는가 혹은 읽히는가? 홍콩과 대만의 무협의 뜨거운 바람이 우리나라에 상륙한 때는 1960년대 초였다. 1961년 경향신문에 연재된 『정협지』- 소설가 김훈의 부친 김광주가 번역 - 가 최초로 알려지고 있다. 어느 정도 인기였는지는 1969년 3월 14자 동아일보 1면 하단에 실린 와룡생의『비연(飛燕)』광고를 보면 알 수 있다. 알다시피 신문의 1면 하단은 광고료가 가장 비싸다.

무협소설 『비연』의 동아일보 광고

『비연』의 프리퀄 작품인 『비룡(飛龍)』이 소개되고, “정통 무협소설의 거탄 제2호 드디어 출판", "무협 소설의 귀재 와룡생의 일대 걸작" 등의 카피가 눈에 들어온다.

당시 무협소설의 인기를 짐작할 수 있겠는가? 1960년대의 이러한 분위기를 방증하듯 당대의 문학평론가 故 김현 선생은 잡지 <세대(世代)>의 1969년 10월 호에 <무협소설은 왜 읽히는가>라는 글을 올렸다. 우리나라 최초의 무협 평론이라 알려져 있는데, 그 부제는 '허무주의의 부정적 표출'이었다. 첫 문장을 읽으면 바로 무협소설 마니아의 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무협소설은 기이한 마력을 갖고 있다. 나의 동료 중 하나는 무협소설을 읽는다는 것은 그것 자체가 하나의 전투라고까지 말하고 있다. …… 무협소설을 통해 중산층은 이유 모를 불안감으로 휩싸여 있는 그들의 세계에서 도피하여 동면의 시간을 즐긴다. 그 동면의 시간 동안 그들은 아무런 고문을 당함이 없이 자신의 적을 무찌르고 자신의 동료들로부터 빼내며, 지배하는 자의 쾌감을 만끽한다. 그것은 환각제의 세계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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