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빛은 오직 그의 마음속에서 우러나온다.

마검패검(魔劍覇劍)ㅡ용대운

by 포레스트 하이

전옥심은 천천히 눈을 떴다.

천기수사 주자앙은 천하에서 아는 것이 가장 많은 사람이었다.

하나 그런 그도 한 가지 궁금한 것이 있었다. 그는 인간의 눈빛이 그 사람의 눈동자에서 나오는 것인지 아니면 그 사람의 마음속에서 나오는 것인지를 알 수 없었다. 이제 그는 알 수 있었다.

눈빛이란 그 사람의 눈동자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이 오직 그의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것이라는 것을.

눈은 비록 변했지만 전옥심의 눈빛은 옛날과 다름이 없었다.

처음 이름 모를 강가에서 만났을 때 자신의 가슴에 진한 인상을 남겼던 그 쓸쓸한 눈빛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허무하면서도 어딘지 모르게 하소연을 하는 듯한 눈빛.

전옥심은 그런 눈으로 자신을 보고 있었다.

한때는 사람의 마음을 뒤흔들어놓는 이 눈빛을 영원히 못 보게 되는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마검패검_용대운>

마검패검.jpg 마검패검 표지

한국 신무협의 비조, 용대운의 처녀작 《마검패검(魔劍覇劍)》발단 단계의 내러티브다. 신무협의 서막을 함께 한다는 희열로 네다섯 번쯤 읽었다. 그는 부친의 반대에도 무협소설을 써왔고, 《마검패검》을 읽은 부친의 응원을 얻고서야 본격 무협작가의 길을 걸었다고 밝힌 적이 있다. 복수 일변도의 구(舊) 무협에 비해 무도(武道)를 향한 여정의 비중이 월등히 높다. 천하제일 검객 남궁산은 세 개의 초식을 발견한다. 자신의 광검(光劍)과 비교해 보려고 하지만, 그 초식을 익힐 기재는 없다. 남궁산은 세 명의 천재를 선택하여 각자 한 초식씩을 익히게 한다. 운명은 그 세 개의 초식이 전옥심에게 모이도록 흐른다. 이 빛나는 작품을 읽다 보면 유독 이 문장에서 더욱 가슴이 떨렸다. 예외 없이.


거짓말은 말한 사람의 눈빛을 비천하게 한다.


안톤 체호프의 말이다. 거짓말은 하면 눈빛이 비천해진다니 무슨 말인가. 사람의 마음이 눈을 통해 투영된다는 느낌은 동양과 서양을 가리지 않는다. 과학적으로 뇌 속의 해마가 조정한다고 밝혔지만, 과학 이상의 신비로운 뭔가가 분명 있다고 본다. 마치 마음은 가슴에 있는지 머릿속에 있는지 묻는 것과 같다. 먼 옛날부터 사람의 생각을 ‘눈’을 통해 파악했다. 그래서 눈은 마음의 창(窓)이라고 한다.


사람이 변하면 먼저 눈빛이 변한다. 눈을, 눈빛을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다. 이것은 직관이다. 속속들이 너무 잘 알고 지내던 사람의 눈빛이 어느 순간 바뀐 느낌을 경험했다면 말이다. 눈빛은 날카롭다가도 부드러워지기도 하고, 장난스럽다가도 슬픔으로 찼다가, 기쁨으로 가득하다가도 분노로 변해 버리기도 한다.


노련한 배우들끼리는 서로의 눈빛만 봐도 ‘슬프다’, ‘기쁘다’와 같은 일차적 감정뿐 아니라, ‘배고픔’, ‘사랑’, ‘이별’은 물론, 심지어 상대방의 머릿속에 ‘노래’와 같은 감정까지 파악할 수 있다고 한다. 그러니 사랑하는 - 한다고 믿는 - 연인 또는 오래 살을 맞댄 부부끼리 사랑하고는 있는지, 다른 이성과 바람을 피우지 않는지 같은 가장 원초적 감정을 몰랐다는 말은 어이없다. 동물의 눈빛조차 개와 늑대가 다르고, 개 중에서도 백구와 진돗개와 셰퍼드는 다르다. 사자와 침팬지의 눈빛은 또 어떤가? 눈빛에 감정이 드러나기 때문이 아닐까.


사회학적으로 몸짓이나 눈빛 같은 비언어적인 태도가 말과 언어보다 더 인상 깊다고 한다. 그중 눈빛은 가장 강력한 수단이다. 여담이지만 요즘 세간이 미인이 왜 이리 늘어났냐는 질문에 대한 답이 그럴듯했다. 그 진위를 파악해 보니 코로나19로 인해 마스크 위 눈자위 부문만 드러내고 보니 그렇다고 한다. 얼굴에서 눈이 차지하는 비중이 그만큼 크다는 증거이다.


영화 <카사블랑카>에서 험프리 보카트는 잉글리드 버그만에게 ‘당신의 눈동자에 건배’를 보낸다. 'Here looking at you!'가 원래 대사인데도 굳이 ‘당신의 눈동자’로 번역한 것은 ‘눈이 곧 마음’이라는 철학이 깔려 있기 때문이 아닐까. 알랭 드 보통의 《불안》서두에 질투로 인한 불안한 사람들의 증거의 하나로 “어디에 몰두한 듯한 눈길, 부서질 것 같은 미소”로 표현하고 있다. 어디서나 눈빛의 힘은 같은 무게로 다가온다.


눈빛은 그 사람의 생각을 투영한다. 그렇기에 얼굴 윤곽을 성형해도, 눈동자를 이식하더라도 그 사람의 눈빛만은 좀처럼 바꿀 수 없다. 그래서 눈빛만 봐도 알 수 있다고 말하지 않던가. 가수 임재범이 노래했고, 어느 삼십 대 야당 대표가 인용해서 화제가 된 <너를 위해)의 가사 중 일부이다.

내 거친 생각과 불안한 눈빛과 지켜보는 너 / 그건 아마도 전쟁 같은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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