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은 오늘도 세상을 비추지만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는다

문우영-악공전기(樂工傳記)

by 포레스트 하이

환상도 착각도 아닙니다. 소저가 본 것은 조금의 거짓도 없는 진실한 달빛입니다.

달은 뜨지 않은 게 아니라, 비구름에 잠시 가렸을 뿐입니다.

이 순간에도 달빛은 저 너머, 구름 위에서 환히 비치고 있습니다.

우리가 낮은 곳에 있어 보지를 못할 따름이지요.

달은 오늘도 정성을 다해서 세상을 비추고 있는데 정작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는 겁니다.

그날 밤 사부님은 어린 저에게 그걸 보여주고 싶으셨던 섭니다. 그런데 너무 늦었지요. 제 깨달음이.

그러니 오늘 같은 밤에 달이 뜨지 않았다고 원망하면 안 되는 겁니다. (석도명)


달을 원망하지 않아요. 저 너머에서 나를 비춰주고 있다는 걸 알았잖아요. (한운영)


<악공전기>는 문우영 작가의 데뷔작이다. 무협 전문용어로 예체능계 주인공, 즉 악공(樂工)을 캐릭터로 삼았다. 그의 다음 작품은 화공(畫工)이 주인공인 <화선무적>이었다. 만류귀종(萬流歸宗)은 무협의 클리셰이긴 하지만, 또한 가장 무협다운 주제이다. 모든 물줄기는 바다에서 결국 하나가 된다는, 무술이 되었건 예술이 되었건 깨달으면 도에 이를 수 있다. 악공 석도명은 무공의 초식을 박자와 운율과 일치시켜 사광(師曠) - 춘추시대 음악의 대가 -이 현신하는 경지에까지 다다른다.

악공전기.jpg


음악을 제대로 알려면 눈알을 뽑아야 한다는 석도명의 스승. 하지만 석도명은 몇 년을 검은 안대로 눈을 가리고 다녔다. 무림맹에 입맹하고 천마협과의 싸움 와중에 실명하고 만다. 소나기 내리고 칠흑같이 검은 밤, 석도명은 아버지의 죽음에 상심하는 한운영에게 음악을 들려주며, 구름 뒤에서도 달은 여전히 빛나고 있음을 확인한다. 스승의 뜻을 알게 되었고 아버지에 대한 원망 또한 걷어낸다. 그리고 남해의 관음사로 떠난다. 소리를 본다는 관세음보살을 찾아서.


클래식 기타를 배울 때 오선지에 음표만 있고 가사가 없는 곡의 경우 감정 살리기가 여간 어렵지 않았다. 예를 들어 소르(F. Sor)의 Estudio는 연습곡이다. 생각 없이 연습하면 기계 반주이지만, 부제 '달빛'을 마음에 담으면, 은은한 달빛이 내리비치는 봄밤의 연인을 상상하며 연주할 수 있다. 기타 강사는 감정이 막히면 말했다.


연주곡도 원래 노래입니다. 다만 가사가 없는 악보일 뿐. 가사가 있다고 상상하고 연습하세요


본질을 보지 않고 껍데기만 보고 있으니 그런 것이다. 흔한 말로 달은 보지 않고, 자꾸만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만 보는 격이다. 달은 밤에만 뜬다는 우리의 고정관념은 거의 변하지 않는다. 우리 눈에 보이지 않을 뿐 낮에도 떠있고, 먹구름 뒤에도 달은 빛나고 있다. 달만 보면 되는데, 자꾸 손가락만 가지고 이러네 저러네 다툰다.

덩리쥔의 명곡이자 홍콩 영화 <첨밀밀>의 주제가는 ‘월량대표아적심(月亮代表我的心)이다. 달빛이 내 마음을 대신한다는 뜻이다. 가사는 "당신은 내가 얼마나 당신을 사랑하냐고 물었죠. 나의 마음은 떠나지 않습니다. 나의 사랑은 떠나지 않습니다. 달빛이 내 마음을 대신합니다"라고 계속 반복된다.


<티파니에서 아침을>에서 오드리 헵번은 창가에 앉아 '문 리버(Moon River)'를 부른다. "당신은 달빛 흐르는 강! 언젠가 당신을 멋지게 건너고, 당신이 어디를 가던 함께 하겠다"라고 노래한다. 달의 궁전에 머문다는 달의 여신 상아(孀娥) - 항아(姮娥)로 부르기도 한다 -의 이름을 딴 달 탐사 위성 '상아(창어 1호)'를 쏘아 올렸다. 신화에 목맬 시대는 아니지만, 달이 감상의 대상에서 멀어짐에 약간은 애련하다. 그래도 노랫말에서는 오늘도 많은 연인들이 달과 속삭인다.


동양에서는 유독 달과 사랑을 빚 대곤 했다. 해와 달리 달의 차고 기우는 변화무쌍함이 형태가 갈피를 못 잡는 사랑의 모습과 비슷하기 때문일 런지 모르겠다. 일본의 대문호 나쓰메 소세키의 '사랑과 달'에 관한 일화는 백미 중의 백미다. 소세키가 영어교사로 재직하던 시절, 학생들이 ‘I love you’를 ‘그대를 사랑하오’로 번역했다. 소세키는 일본인은 그런 낯 뜨거운 말을 하지 않는다며 말을 변용했다. 어떻게? 답을 알면 덩리쥔의 노래가 일본에서 그토록 큰 인기를 끈 비결을 살짝 엿볼 수 있을 것이다.

달이 참 예쁘네요 / 달이 아주 푸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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