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아름다운 찻잔으로 만드는 것이 도(道)다

숭인문(崇仁門)-이길조

by 포레스트 하이
같은 물이라도 훌륭한 찻잔에 담아 마시면 대접에 물을 담아 마시는 것보다 더 그윽하게 마실 수 있다. 이는 아름다운 찻잔이 마음에 좋은 변화를 일으켰기 때문이다. 도(道)를 닦는다는 것은 이처럼 '마음'을 아름다운 찻잔으로 만드는 일이다.
숭인문(崇仁門)_이길조

매년 수많은 무협 소설이 발표되지만, 살아남는 건 드물다. 천편일률의 식상함에 질리기 때문이다. 무협 소설을 작품성을 차별 짓는 두 가지는 인물 캐릭터와 스타일. 즉 문체다. 용대운, 좌백의 신(新) 무협은 그런 경로를 거쳤다. <숭인문(崇仁門)>은 이길조 작가의 단 하나의 작품이다. 후속작을 기대하지만 깜깜무소식이다. 기연을 최대한 배제하고, 주인공과 사제들의 차분한 성장이 눈길을 끈다. 무협 특유의 호쾌함으로 무협의 향수를 자극한다. “몇 년 내 보는 걸출한 무협”이라는 금강 작가의 평가를 기억하자. 사실 무술과 무예를 도(道)에 이르는 길이라는 "무도(武道)" 콘셉트는 흔하긴 하지만 나름 마니아층을 이끌고 있다. 마음을 아름다운 찻잔으로 만드는 것이 도에 이르는 길이라니? 다도(茶道)와 무도를 같은 선으로 연결하고 있음이다.


483fcaf16a376864f6c03bcce187.png


그러고 보면 “하부구조가 상부구조를 결정한다”라는 마르크스의 언어는 곱씹을수록 정확하다. 생산의 양식이 지적 양식을, 존재가 의식을 규정한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비근한 예가 기업의 옷차림, 즉 복장 – 드레스 코드 -이다. 요즘에서야 복장이 자율화되었지만, 한때 아주 엄격했다. IBM, 골드만 삭스 직원들의 트레이드 마크가 감색 양복과 노란 타이였던 시절을 아스라하다. 복장의 수준이 하부구조이고, 복장을 통해 표출되는 말과 행동, 태도가 상부구조이다. 정장에 타이를 차리면 어느덧 언어의 수준과 행동의 격이 상승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블루칼라 – 폄하는 절대 아니다 – 복장을 하면 말과 행동이 사뭇 달라짐을 알 수 있다.


입성이 초라하면 사람도 초라하고 생각도 절로 초라해진다. 비슷한 사례는 비근하다. 제복을 차려입은 군인과 경찰의 절도 있는 자세, 두발 자유화와 교복 자율화가 초래한 버릇없음, 장교와 사병의 책임감의 차이 등 셀 수 없다. 예비군 훈련장에서는 마음이 풀어져 모두 막장이 되는 이치이다. 그래서 파티나 연회 등 중요 행사에 참석하면 그에 걸맞은 드레스 코드를 요구하는 것이다. 엄숙한 성당 사제, 산사의 스님들의 복장도 그렇다. “사무환경이 문화를 만든다”라는 말 또한 환경에 따라 일에 대한 태도와 의욕이 달라진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찻잔2.jpg 중국 차기와 미국 핑거푸드 by Pixabay

일곱살 아이가 셰익스피어를 읽으면!


문장을 읽고 나서야 비로소 찻잔, 그릇과 같은 주방기구에 집착하는 여성들의 심성을 짐작할 수 있었다. 숭늉은 밥그릇으로, 뚝배기는 사발에 먹어야 제 맛이다. 햄버거는 손으로 먹을 수 있지만, 스파게티와 스테이크 플레이트는 달라야만 한다. 그리고 커피 믹스는 종이컵으로, 스페셜티 커피는 멋진 잔이 겉 들어져 야만 제맛을 즐길 수 있다. 을 사용해야 한다. 영국 왕실의, 러시아 로마노프 왕조의 전용 식기가 잇 아이템(It item)으로 자리 잡고 있는 것도 그래서이다. 아름다운 찻잔이 마음을 움직이다는 말은 치명적이다.


언어는 어떨까? 비트겐슈타인은 “그 사람이 가진 어휘와 언어의 세계가 그의 세계를 규정한다”라고 했다. 언어와 말도 의식 혹은 생각이라는 상부구조를 규정짓는 하부구조일 수밖에 없다. 어휘의 수준이 낮으면 비속어와 상소리가 드러나고, 생각의 깊이도 뻔한 수준으로 노출되어 버린다. 외국어를 배우기 가장 좋은 시기는 초등학교 4학년이라고 한다. 어릴 때 배우면 발음은 좋지만, 흡수하는 어휘의 수준에는 한계가 있다.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어야 비로소 민주주의, 아름다움, 인생, 역사, 생명과 같은 어휘를 접하면서 비로소 그의 상부구조가 단단해지는 것이다. 일곱 살 아이에게 셰익스피어를 읽힌다면 셰익스피어는 그 아이들의 이해 수준에서 평가 받을 수 밖에 없다"는 알랭 드 보통의 고민도 당연하다.


차(茶)를 말하고 나니 작고한 일본 영화배우 키키 키린의 마지막 영화 <일일시호일(日日是好日)>을 떠올리게 된다. 스무 살의 노리코가 다도를 배우고 차 마시는 법을 익히면서 일상을 변화시키고, 인생을 깨달아가는 줄거리다. 그녀의 독백은 다음과 같다.


세상에는 금방 알 수 있는 일과 그렇지 않은 일이 있다. 금방 알 수 있는 건 지나가도록 두면 된다. 그러나 금세 알 수 없는 것은 오랜 세월을 거쳐 조금씩 깨닫게 된다. 어릴 때 이해 못 했던 펠리니의 영화 '길'에 지금의 내가 하염없이 눈물을 쏟듯.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저마다의 마음속에 하나의 문장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