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브컬쳐로서의 장르문학 혹은 경계문학
백화제방과 같았던 신무협의 시대는 2010년 이후 새로운 패러다임을 맞게 된다. 실마리는 스마트 폰과 함께 다가왔다. 이전에도 인터넷 소설이라는 이름이 없지는 않았지만, 이제 무협소설은 스마트 폰 속 공간으로 들어와 버렸다. 언제 어디서건 읽기와 보기가 가능해진 것이다. 그리고 2013년 네이버 플랫폼에 – 지금은 시리즈 앱- 웹 소설 메뉴가 장착되었다. ‘웹 소설’은 이제 하나의 서브컬처로서 고유명사가 되었다.
웹 소설은 무협뿐 아니라 판타지, 로맨스 등 모든 장르를 포괄하는 개념이다. 장르는 크게 남성향과 여성향으로 나눠진다. 로맨스가 여성향에 속한다면, 무협은 단연 남성향 장르에 속한다. 무협 하위 장르로 정통무협과 퓨전무협이 있고, 대체역사와 게임과 뒤섞여 계속 진화되고 있다. 문피아, 카카오페이지, 네이버 시리즈, 조아라 등 플랫폼을 중심으로 구독 혹은 대여 방식으로 전환되었다. 도서대여점은 완전히 화석이 되었다.
누가 언제 왜 읽는가? 이것이 웹 소설의 핵심이다. 주된 독자층은 직장인 – 남녀 구분 없다 –이고, 출퇴근 시간 지하철이나 잠자리에 들기 전에 읽는다. 읽는 목적은 시간 보내기와 머리 비우기, 대리 만족으로 비교적 단순하다. 스낵 컬처의 영역이다. 그래서 길어지면 불리하고, 문장과 단락의 배열도 스마트 폰 화면에 맞춰 간결해졌다. 변화를 밀어붙이는 것은 회차별 유료결제 시스템이다.
순문학은 작가가 쓰고 싶은 걸 쓰는 것이고 웹 소설은 독자가 읽고 싶은 걸 쓰는 것이다.
유명 웹 소설 작가의 글이다. 수려한 문장보다는 스토리 전개가 확실히 중요하다는 의미다. 다음 회차 결제를 이끌어야 하므로, 매회 기승전결이 뚜렷해야 하고, 아슬아슬한 지점에서 급정거할 수 있는 ‘절단신공’은 작가의 필수 역량이다. 속칭 ‘고구마’라 불리는, 전개가 지지부진하다고 느끼면 바로 ‘하차합니다’라는 댓글이 올라온다.
일반적으로 1권 분량 25회 내외를 무료로 제공하는데, 공짜 무협만 보는 아버지를 안쓰럽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각 플랫폼은 일간, 주간, 월간 랭킹 순위를 발표하는데 신진 작가 중심의 마이너와 중견 작가가 포진하고 있는 메이저 간의 무한경쟁이 벌어진다. 지금 시리즈와 카카오페이지 무협 코너 상위에는 『화산귀환』, 『환생천마』, 『일타강사 백사부』, 『광마회귀』, 『남궁세가 천재 외손자』, 『구천구검』, 우각의 『사신표월』과 같은 작품들이 포진해 있다.
웹 소설이 등장하면서 판본조차 사라진 2000년대 이전의 작품들이 귀환하는 점은 매우 긍정적이다. 아쉬움이 없지는 않다. 작품의 내용이 일정한 경향 클리세 – 웹 소설의 특징인 – 에 함몰되었다는 점이다. 천마물, 먼치킨, 회. 빙. 환 - 회귀, 빙의, 환생의 첫 글자를 땄다 – 소설이 대세를 이루고 있다.
무협의 제목은 전통적인 네 글자 한문 조어 방식이었는데, 젊은 독자의 성향에 맞춰 우리말 제목이 돋보인다. 유진성의 『칼에 취한 밤을 걷다』, 최재봉의 『강호 미치다』, 오채지의 『칼끝에 천하를 묻다』같은 작품들은 독특한 문체와 박진감 넘치는 스토리 전개로 한번 발을 들이면 나가기 어렵다.
정리해 보자. 무협소설을 ‘귀화 문학’이라고도 부른다. 지리와 문화, 역사와 정서가 판이한 중국을 무대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무협소설의 열기가 중국, 대만, 홍콩 등 본토에서는 퇴조하는 가운데, 유난히 한국에서는 식지 않는 점은 한국화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가상의 시공간을 무대로 하고 있어 ‘어른용 동화’라는 말도 맞다. 특히 초우의 『호위무사』는 2007년 중국에 역수출한 최초의 한국 무협으로 장안의 지가를 올렸다.
한국에서 무협소설은 여전히 ‘무협지’로 불리고 있다. 주 독자층이 40대와 50대이기 때문일 것이다. '무협지=저질'이란 등식을 고착화시켜 문학으로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숨은 의도일까? 어쨌거나 독자들의 관심에 힘입어 무협지는 소설의 지위를 얻었다. SF, 환상소설, 판타지 등과 묶어 '장르문학'으로 분류하고 있다. 경계 문학’이란 용어로도 사용된다. 순수문학과 대중문학을 연결하는 중간 장르, 그 어느 경계선 위치에 놓여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사십여 년 전 만화 대본소에서 우연히 집어 들었던 와룡생의 『비연』이 시작이었다. 그리고 무협의 세계에 녹아들었다. 책상 아래 중고서점에서 소장용으로 사다 놓은 무협지들이 먼지를 날리고 있다. 언제부터 무협소설을 읽다 마음에 드는 문장이나 대사가 나오면 필사를 했다. (어떤 문장은 나중 표절임을 알고 지워 버렸다)
그냥 두기 아까워 『무협, 나를 움직인 문장들』로 제목을 잡고, 정리하려 한다. 서른 편 정도를 생각한다. 무협영화를 같이 다루고 싶다. 영화도 하나의 문화이므로. 시대의 순서에 맞춰 <자객 섭은낭>, <와호장룡>, <동사서독>, <일대종사> 그리고 <영웅본색>의 다섯 편을 생각해 봤다. 그리고 25편은 시대순과 무관하게 떠오르는 대로 필사의 글을 보아가며 적는다.
인간의 심리를 묘사한 글과 경영에 관련한 문장들이 좋았다. 강호도 사람이 사는 세상이고, 구대문파니 방(幇)과 회(會), 표국과 상단도 결국은 사람이 만들어낸 조직일 뿐이다. 그래서 내부의 알력과 자리싸움 그리고 세력의 확장은 결국, 지금의 기업의 세계와 하나도 다를 바 없다. 무공이라는 폭력을 수반하고 있어 현실의 세계보다 인간의 미추를 더 확연히 드러내기 때문이다.
무협 (소설과 영화)을 즐겼고, 즐기고 있고 앞으로도 계속 즐길 마니아로서 쓰면서 정리하고 싶었을 뿐이다. 그러는 와중에 다시 읽고 보는 즐거움을 덤이다. 나의 필명은 ‘소리비도 이발불요(小李飛刀 二發不要)’이다. 어디서 나왔는지 무협 마니아들은 알 것이다.